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遒宕이라
不學無術하고 少孤以賤하야 材行無可道 而名聲不聞於當世하니 巨公貴人之門 無可進之路 而亦不敢輒有意於求通이라 以故 聞閣下之名於天下之日久로되 而獨未嘗得望於門이로소이다
比者得邑海上하야 而聞之別業 實在敝境이나 猶不敢因是以求聞名於從者러니 卒然蒙賜敎督하니 讀之 茫然不知其爲媿且恐也로이다
伏惟閣下 危言讜論 流風善政 簡在天子之心하고 而諷於士大夫之口하니 名聲之盛 位勢之尊 不宜以細故 苟自貶損이니이다
今咳唾之餘 先加於新進之小生하니 疑左右者之誤 而非閣下之本意也
以是 不敢卽時報謝하야 以忤視聽하고 以累左右하야 而自得不敏之誅하니 顧未嘗一日而忘拜賜也로소이다
今玆使來하야 又拜敎之辱하니 然後知閣下眞有意其存之也호이다
自敵以下不可廢어든
況王公大人而先加禮新進之小生이어늘 而其報謝之禮缺然者久之하니 其爲非也大矣니이다
雖聰明寬閎으로 其有以容而察於此 而獨區區之心 不知所以裁焉이로소이다


09. 손원규孫元規 대자大資에게 보낸 답서
문장이 굳세고 호방하다.
는 배우지 못하여 학술學術기예技藝도 없으며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미천하게 지내어 재능과 덕행에 말할 만한 것이 없어서 당세에 명성이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큰 인물이나 권세있는 분들의 문하門下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었고 또한 감히 곧바로 통교通交를 추구할 뜻도 없어서, 이 때문에 천하에 널리 퍼진 각하閣下의 명성을 들은 지 오래 되었으나, 홀로 일찍이 문하에서 존안을 뵐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근자에 해변의 한 고을을 다스릴 수 있게 되어 각하의 별장이 제가 관할하는 지역 안에 있다고 들었지만, 오히려 감히 이 때문에 각하께 이름을 아뢰기를 청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보내 주신 교도敎導하고 독촉督促하시는 편지를 받으니, 이를 읽고서 부끄럽고 황공함을 금할 길이 없어 망연茫然할 뿐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각하의 정직하고 곧은 말과 대대로 전해오는 선정善政의 기풍은 천자天子의 마음에 큰 인상을 남겼고 사대부士大夫들의 입에서 염송念誦되어 명성名聲하시고 위세威勢가 드높으시니, 자질구레한 일 때문에 자신을 함부로 폄하하시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이제 훌륭하신 분께서 명문장名文章의 편지를 새로 관계官界에 진출한 소생小生에게 먼저 보내셨으니, 보좌하는 자들의 착오이지 각하의 본의가 아닐 것입니다.
이 때문에 감히 즉시 답장을 올리지 못하여 뜻을 거스르고 각하에게 누를 끼쳐 스스로도 불민한 죄를 얻게 되었으나, 돌이켜보건대 단 하루도 내려주신 가르침에 감사드림을 잊은 일이 없습니다.
오늘 보내 주신 사람을 통하여 못난 사람이 가르침을 받은 연후에야 각하께서 진실로 뜻을 두신 바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대저 는 베풂이 있으면 보답이 있어야 하니, 을 제외하고는 이 예법을 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왕공王公이신 대인大人께서 먼저 새로 벼슬자리에 오른 소생小生에게 를 표하셨는데, 이에 보답하고 감사를 드려야 할 일을 빠뜨린 지가 오래되었으니 그 잘못됨이 크옵니다.
비록 총명하시고 크게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이를 용납해 주시고 살펴주신다 해도 유독 못난 마음으로는 어찌 재결裁決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역주
역주1 答孫元規大資書 : 이 편지는 왕안석이 知鄞縣事가 된 직후인 慶曆 7년(1047)에, 鄞縣에 別業을 소유하고 있던 당시의 권력자 孫元規가 부당한 요구를 하는 편지를 보내오자, 權臣의 요구와 國法 사이에서 난처해진 자신의 처지를 완곡하게 표현한 답신이다. 孫元規(996~1066)는 進士에 오른 후 好色과 放縱에 빠져서 士節을 지키지 않았으나 용맹함과 直言으로 이름이 났으며, 樞密院副使를 역임하였던 인물로 資政殿 大學士를 지내었으므로 이를 簡稱하여 大資라 한 것이다.
역주2 履舃 : 발바닥이 홑겹인 것을 履라 하고, 두 겹인 것을 舃이라 하는데, 履舃은 書信에서 상대방을 높이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足下’와 같은 뜻이다.
역주3 左右 : 존경을 나타내어 상대방을 직접 일컫지 않고 그 휘하의 사람을 대신 일컫는 말이다. 아래의 從者도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역주4 夫禮之有施報 : 《禮記》 〈曲禮 上〉에, “가장 훌륭한 것은 덕을 귀히 여기는 것이고, 그 다음은 베풀음이 있으면 보답에 힘쓰는 것이니, 禮는 주고 받음을 높이 여긴다.[太上貴德 其次務施報 禮尙往來]”라 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이를 축약하여 인용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