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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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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此篇 極精神骨髓하니 荊公所以直入神宗之脅 全在說仁廟處하니 可謂搏虎屠龍手
臣前蒙陛下問及本朝所以享國百年 天下無事之故호이다
臣以淺陋 誤承聖問하고 迫於日晷하야 不敢久留하야 語不及悉하고 遂辭而退하니이다
竊惟念聖問及此 天下之福이어늘 而臣遂無一言之獻이면 非近臣所以事君之義 故敢冒昧而粗有所陳하노이다
伏惟 躬上智獨見之明하시고 而周知人物之情僞하사 指揮付託 必盡其材하시고 變置設施 必當其務하시니이다
故能駕馭將帥하시고 訓齊士卒하사 外以扞하시고 內以平中國하시니이다
於是 除苛賦하고 止虐刑하며 廢强橫之하고 誅貪殘之官吏하사 躬以簡儉爲天下先하시니 其於出政發令之間 一以安利元元爲事하시니이다
承之以聰武하시고 守之以謙仁하시며 以至 無有逸德하니
此所以享國百年而天下無事也니이다
仁宗在位 歷年最久하니 臣於時 實備從官하야 施爲本末 臣所親見이로소이다
嘗試爲陛下陳其一二하노니 而陛下詳擇其可시면 亦足以申鑒於方今이니이다
伏惟仁宗之爲君也 仰畏天하시고 俯畏人하사 寬仁恭儉 出於自然하고 而忠恕誠慤 終始如一하니이다
未嘗妄興一役하시고 未嘗妄殺一人하시며 斷獄務在生之하시고 而特惡吏之殘擾하시니이다
寧屈己棄財於外敵이언정 而終不忍加兵하시니이다
刑平而公하고 賞重而信하며 納用諫官御史하시고 公聽竝觀하사 而不蔽於偏至之讒하시며 因任衆人耳目하사 拔擧疏遠호되 而隨之以하시니이다
之吏 以至州縣 無敢暴虐殘酷하고 擅有調發하야 以傷百姓하니이다
으로 蠻夷遂無大變하야 邊人父子夫婦 得免於兵死하고 而中國之人 安逸蕃息하야 以至今日者니이다 未嘗妄興一役하시고 未嘗妄殺一人하시며 斷獄務在生之하시고 而特惡吏之殘擾하시며 寧屈己棄財於夷狄이언정 而不忍加兵之效也하시니이다
大臣貴戚 左右近習 莫敢强橫犯法하야 其自重愼 或甚於閭巷之人 此刑平而公之效也로소이다
募天下驍雄橫猾以爲兵하야 幾至百萬하니 非有良將以御之로되 而謀變者輒敗하고 聚天下財物 雖有文籍하고 委之府史 非有能吏以鉤考로되 而斷盜者輒發하고 凶年饑歲 流者塡道하고 死者相枕이로되 而寇攘者輒得하니 此賞重而信之效也니이다
大臣貴戚 左右近習 莫能大擅威福하고 廣私貨賂하니 一有姦慝이면 隨輒上聞하고 貪邪橫猾 雖間或見用이나 未嘗得久하니 納用諫官御史하고 公聽竝觀하야 而不蔽於偏至之讒之效也니이다
自縣令京官으로 以至監司臺閣 陞擢之任 雖不皆得人이나 然一時之所謂才士 亦罕蔽塞而不見收擧者하니 因任衆人之耳目하야 拔擧疏遠하고 而隨之以相坐之法之效也니이다
升遐之日 天下號慟 如喪考妣하니 寬仁恭儉 出於自然하고 忠恕誠慤 終始如一之效也니이다
이나 本朝累世因循末俗之弊로되 而無親友群臣之議하고 人君朝夕與處 不過宦官女子 出而視事 又不過有司之細故하야 未嘗如古大有爲之君 與學士大夫討論先王之法하야 以措之天下也로소이다
一切因任自然之理勢하고 而精神之運 有所不加하며 名實之間 有所不察하니이다
君子非不見貴 然小人 亦得厠其間하고 正論非不見容이나 然邪說 亦有時而用하니이다
以詩賦記誦으로 求天下之士하고 而無學校養成之法하며 以科名資歷敍朝廷之位하고 而無官司課試之方이니이다
監司 無檢察之人이요 守將 非選擇之吏
轉徙之亟 旣難於考績하고 而遊談之衆하야 因得以亂眞이로소이다
交私養望者 多得顯官하고 獨立營職者 或見排沮
故上下偸惰取容而已 雖有能者在職이라도 亦無以異於庸人이니이다
農民壞於繇役이로되 而未嘗特見救恤하고 又不爲之設官하야 以修其水土之利하며
兵士雜於疲老하야 而未嘗申勅訓練하고 又不爲之擇將하야 而久其疆埸之權하니이다
宿衛則聚卒伍無賴之人하야 而未有以變五代姑息羈縻之俗하고
宗室則無敎訓選擧之實하야 而未有以合先王親疏隆殺之宜로소이다
其於理財 大抵無法이라 故雖儉約而民不富하고 雖憂勤而國不强하니이다
賴非夷狄昌熾之時하고 又無堯湯水旱之變이라 故天下無事하야 過於百年하니이다
雖曰人事 亦天助也라하나 蓋累聖相繼하야 仰畏天하고 俯畏人하며 寬仁恭儉하고 忠恕誠慤하니 此其所以獲天助也니이다
伏惟陛下 躬上聖之質하시고 承無窮之緖하사 知天助之不可常恃하시고 知人事之不可怠終하시니 則大有爲之時 正在今日이로소이다
臣不敢輒廢將明之義하고 而苟逃諱忌之誅니이다
伏惟陛下 幸赦而留神하시면 則天下之福也니이다
하소서
自本朝以下 節節議得的確하고 而荊公所欲爲朝廷 節節立法措注處 亦自可見이요 神廟所以以伊傅周召 任之信之로되
而惜也로다
荊公之志雖劖畫하고 而學問淵源 則得之講習考覈者多 而非出於疏通博大之養也
況其强愎自用하야 得之天授하고 而偏見所向 遂至於幷其同心同志라가 稍稍隔絶하야
及其位高而勢危하고 寵專而氣銳하야 所以材佞之士得投間以入하고 而平生所自喜者 反爲左右所閼하야 而國家 亦多故矣 惜哉로다


01. 우리나라가 백 년간 큰 변고變故 없이 지낼 수 있었던 이유를 물으신 황제皇帝의 질문에 답한 차자箚子
이 편에는 형공荊公사상思想의식意識의 핵심이 지극하게 드러났으니, 형공이 곧바로 신종神宗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인종仁宗에 대하여 말한 부분에 있으니 호랑이를 때려잡고 용을 도륙한 솜씨라 이를 만하다.
에 폐하로부터 우리 왕조王朝국가國家소유所有하고 있는 백년百年 동안 천하天下무사無事했던 이유에 대하여 질문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신은 학문이 천박하고 견식이 고루한데도 잘못 인식되어 성스러운 황상의 질문을 받게 되었고, 당시 시간이 촉박하여 감히 오래 머물 수가 없어서 올린 말씀이 상세한 데까지 미치지를 못했는데도 드디어 인사를 올리고 물러나왔었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성상聖上께서 이런 하문을 하신 것은 천하天下홍복洪福인데, 이 이에 대해 한 말씀도 올리지 않는다면 근신近臣으로서 군주를 모시는 의리에 합당하지 않으므로, 감히 몽매蒙昧함을 무릅쓰고 대략이나마 진술하고자 합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태조太祖께서는 최고의 지혜를 가지시고, 뛰어나게 밝은 식견으로 인물의 속마음과 거짓됨을 두루 파악하셔서, 지휘하고 파견해 맡김에 반드시 그 적합한 인물인가를 극진하게 살피셨고, 옛 제도制度를 변혁하여 새롭게 제정할 때에도 반드시 그 임무에 합당한 인물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므로 장수들을 훌륭히 통솔하시고 사졸들을 훈련하여 고르게 할 수 있었으며, 밖으로는 모든 변방 오랑캐들의 침입을 막고 안으로는 중국을 평화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세금을 가혹하게 징수徵收하는 폐단을 제거하고, 잔학한 형벌刑罰을 중지하고, 억세고 방자한 번진藩鎭발호跋扈를 막고, 탐욕스럽거나 잔인한 관리들을 처형하였으며, 몸소 간결 검소한 생활로 천하에 솔선수범率先垂範하셨고, 정령政令을 반포하실 때에는 한결같이 백성들을 편안하고 이롭게 하는 것을 긴요한 일로 삼으셨습니다.
태종太宗께서는 총명하고 결단력 있는 일처리로 이를 계승하셨고, 진종眞宗께서는 겸손과 사랑으로 이를 지키셨고, 이로써 인종仁宗, 영종대英宗代에 이르러서도 을 잃으심이 없으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백년百年동안 국가를 향유享有하면서 천하가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인종仁宗께서는 재위하신 기간이 가장 길었으며, 은 당시에 가까이서 시종侍從하는 관원의 수에 들어 있어서 시행하는 정사政事본말本末이 직접 목격했습니다.
시험 삼아 폐하를 위해 그 가운데 한두 가지를 말씀드리오니, 폐하께서 상세히 고찰하시고 그 가운데 쓸 만한 것을 채택하신다면, 지금의 귀감으로 삼기에도 충분할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인종께서 군주로 계실 때에, 우러러 하늘을 경외하고 굽어 사람들을 두려워하셨으며, 관후寬厚 인자仁慈하시고 공손恭遜 검소儉素하심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셔서, 곧은 내심內心, 용서容恕하는 마음, 정성精誠스러움, 독실篤實함 등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으셨습니다.
일찍이 한 가지 역사役事도 함부로 일으킨 일이 없고, 일찍이 한 사람도 함부로 죽인 일이 없으시며, 죄인罪人을 심판할 때는 살려주고자 힘쓰셨고, 관리들이 잔인하게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특히 싫어하셨습니다.
차라리 자신을 낮추고 변방邊防 오랑캐에게 재물을 제공할지언정 끝내 차마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형벌을 공정하게 시행하여 공평함을 믿게 하였고, 을 후하게 주어 신뢰를 얻었으며, 간관諫官 어사御史간언諫言채납採納하고, 광범하게 듣고 관찰하여 편파적인 참소讒訴현혹眩惑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들은데 의거하여 자신과의 관계가 소원한 사람도 발탁하여 임용하면서 상좌지법相坐之法을 따르게 하였습니다.
대체로 감사監司의 관리들로부터 의 관리에 이르기까지 감히 포학 잔혹한 짓을 하거나 세금 징수와 징발을 멋대로 하여 백성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나라 사람들이 순복順服하고부터 드디어 오랑캐들의 변고가 없어져서 변경지대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전쟁으로 죽는 일을 면할 수 있게 되었고, 나라 안에 있는 사람들은 편안히 지내며 번창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것은 일찍이 한 역사役事도 함부로 일으킨 일이 없고, 일찍이 한 사람도 함부로 죽인 일이 없으며, 형옥刑獄의 판결에는 살려주기에 힘썼고, 특히 관리가 잔혹하게 백성을 괴롭히는 것을 미워하였으며, 차라리 오랑캐에게 몸을 낮추고 재물을 줄지언정 차마 무력을 동원하지 않으셨던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대신大臣귀척貴戚들 및 총애를 받는 근신近臣들이 감히 억세고 방자하게 법을 범하는 일이 없고 자중自重하고 조심함이 일반 서민보다 더함이 있었던 것은, 형벌刑罰을 공정하게 시행하여 천하가 공평해진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천하의 사납고 날래며 도리를 지키지 않는 교활한 사람들을 뽑아 군사軍士로 삼아 거의 100만에 이르렀는데, 훌륭한 장수將帥가 있어 이를 통제하지 않는데도 변란을 도모하는 자는 곧 실패하였고, 천하의 재물財物을 모으는데 비록 장부를 비치해두고 관부官府하리下吏에게 관리하게 하고 있지만, 유능한 관리로 하여금 이를 고찰하고 조사하게 한 일이 없었는데도 도둑질을 하는 자는 즉시 발각되었고, 흉년凶年 들어 굶주리게 된 해에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길을 메우고 굶어죽은 사람들이 연이어 누워 있는데도 강도나 절도를 행한 사람은 즉시 체포되었으니, 이는 을 후하게 주고 신뢰를 얻었던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대신大臣귀척貴戚총애寵愛받는 근신近臣들이 큰 위복威福을 독점하거나 많은 재물을 사사로이 소유할 수가 없게 되었고, 한 가지라도 간악奸惡하고 사특私慝함이 있게 되면 즉시 조정에 보고되어, 탐욕스럽고 비루하며 도리를 지키지 않는 교활한 인물이 비록 간혹 등용된 일이 있다 해도 오래 버틸 수가 없었으니, 이는 간관諫官 어사御史간언諫言채납採納하고 공평하게 듣고 관찰하여 편파적인 참소讒訴에 현혹되지 않았던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경관京官에서 파견된 현령縣令으로부터 감사監司 및 모든 중앙정부기구中央政府機構에 발탁되고 승진된 자들에 이르기까지 비록 모두 적임자를 얻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한 시대의 이른바 재능있는 선비들 가운데 가려지고 묻혀져서 등용되지 못한 자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들은데 의거하여 자신과의 관계가 소원한 사람도 발탁하여 임용하고 상좌지법相坐之法을 따르게 했던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승하昇遐하시던 날 온 천하 사람들이 울부짖고 통곡하기를 마치 부모를 잃은 것처럼 한 것은, 이것은 바로 관후寬厚 인자仁慈하시고 공손恭遜 검소儉素하심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곧은 마음, 용서하는 마음, 진실하고 정성스러움 등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으셨던 효과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여러 동안 말세末世의 퇴폐한 풍습을 그대로 이어오는데도 친우親友군신群臣들 사이에 이를 비판하는 일이 없었고, 군주君主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지내는 인물들이 환관과 여인들뿐이었고, 조정에 나와 정무를 처리한다 해도 또한 담당관서에서 올린 자질구레한 일들에 불과할 뿐이었으며, 옛날 크게 업적을 남겼던 군주가 학사學士 대부大夫들과 더불어 선왕先王법도法度를 토론하고 이를 천하에 시행했던 것과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일체一切를 자연히 돌아가는 형세대로 맡겨두고 마음을 써서 개혁하려는 것이 없었으며, 명분과 실제에 대하여 고찰해보고자 하지도 않았습니다.
군자君子중용重用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소인小人이 또한 그 사이에 끼어들게 되었고, 바른 주장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사악邪惡한 주장이 또한 때때로 채택되기도 하였습니다.
및 기억과 암송시험으로 선비를 선발할 뿐이었고 학교에서 인재를 바르게 양성하는 제도가 없었으며, 합격했던 과거科擧의 명칭과 경력經歷을 바탕으로 하여 조정의 관위官位제수除授할 뿐이었고 관리官吏의 업적을 고찰하는 제도가 없었습니다.
감사監司는 검사해 살펴서 임명한 사람이 없었고 수장守將은 가려서 뽑은 관리가 아니었습니다.
이동移動이 빈번하여 이미 업적을 평가하기가 어렵게 되었고, 돌아다니며 허튼 말을 떠들어대는 사람이 많아서 그 때문에 진실을 어지럽히게 되었습니다.
사사롭게 친교를 맺어 명예를 얻으려는 자들이 좋은 벼슬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많아졌고, 권귀權貴에게 아첨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직책을 충실히 행하는 사람은 더러 배척당하고 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안일하고 게으르게 지내며 잘 보이려고만 했으므로, 유능한 사람이 직책을 맡고 있어도 범용凡庸한 사람과 다를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농민農民들이 노역에 곤고困苦를 겪어도 일찍이 구휼救恤을 받은 일이 없었고, 또한 그들을 위해 관서官署를 설치하여 전지田地를 정리하고 수리시설水利施設수리修理한 일이 없었습니다.
병사兵士들은 피로한 늙은이들과 뒤섞여서 엄격하게 훈련받은 일이 없었고, 또한 그들을 위해 적임자를 장수將帥로 골라서 국경을 수호할 권한을 오랫동안 맡긴 일도 없었습니다.
궁성의 수호는 무뢰배들 가운데서 졸오卒伍들을 모아놓았고, 오대五代 시대時代임시변통책臨時變通策을 바꾼 일이 없었습니다.
종실宗室은 가르침을 받아 훈도된 사람을 선발하여 임용하는 진실함이 없었고, 선왕들이 그들을 친소에 따라 관직을 올려주거나 낮추어주어 예우를 하였던 것과도 합치된 일이 없었습니다.
재무財務를 관리함에 있어서는 대체로 법도가 없어서, 비록 검약에 힘써도 백성들이 넉넉해지지 않았고, 비록 근심하며 부지런히 힘써도 나라가 부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오랑캐들이 강성한 때도 아니었고, 또 임금이나 임금 때처럼 홍수洪水한발旱魃의 변고도 없었기 때문에 천하가 무사하게 100년을 지나온 것입니다.
오직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하늘의 도움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대체로 몇 분의 성스러운 황제께서 연이어 계승하시고, 이 분들이 우러러 하늘을 경외하시고 굽어 사람을 두려워하시며, 관후 인자하시고 공손 검소하시며, 곧은 마음, 용서하는 마음, 진실함과 정성스러움을 지니셔서, 바로 이것이 하늘의 도움을 받게 되었던 까닭인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폐하께서는 몸소 최고 성인聖人의 바탕을 지니시고 무궁한 선현들의 업적을 계승하셔서, 하늘의 도움을 항상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사람의 일을 게으르게 마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니, 큰 업적業績을 남길 일을 할 때가 바로 오늘날인 것입니다.
신이 감히 명을 받들어 행하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해 밝히는 도리道理를 저버리거나, 꺼리고 기피하여 말씀을 올리지 않고 구차하게 도피逃避하는 죄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폐하께서 행여 이를 용서하셔서 유의해 주신다면 천하의 큰 복이 될 것입니다.
받아들이실 것과 물리치실 것을 취택하시옵소서.
본조本朝’ 이하부터는 구구절절이 논의한 바가 적확하고, 형공荊公이 조정에서 시행하고자 하였던 법도와 조처하고자 하였던 것이 또한 절절이 잘 드러났는데, 이것이 신종神宗이 그를 옛 명재상들인 이윤伊尹, 부열傅說, 주공周公, 소공召公처럼 여기고 신임한 소이所以였다.
그러나 애석하도다!
형공의 뜻이 비록 마음속에 굳게 아로새겨져 있었고, 학문學問의 연원은 강구하고 고찰하여 얻은 것이 많았으나, 만인을 형통하게 하고 널리 생양生養하는 방향으로 나가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타고난 강퍅한 성정性情을 드러내고도 황제의 지지를 얻었으나 편견을 고집하여 드디어 그와 마음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조차 멀어지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형세는 위태롭게 되었고, 군왕의 총애寵愛를 받을수록 의기가 날카롭고 성하게 되어, 이것이 아첨하는 인물들이 틈을 비집고 끼어드는 원인이 되었으며, 평생 스스로 좋아하던 사람이 도리어 그의 좌우를 가로막아서, 국가도 또한 많은 변고變故를 겪게 되었으니, 애석한 일이로다!


역주
역주1 本朝百年無事箚子 : 本 箚子는 神宗 熙寧 元年(1068)에 올린 것으로, 王安石이 신종을 獨對하였을 때, 황제가 ‘우리 조정이 백년 동안 太平을 누린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물은 것에 대하여 서면으로 답변한 것이다. 이 글에는 당시 송나라가 직면하였던 문제와 왕안석의 정치적 이상이 잘 드러나 있다.
箚子는 臣下가 君主에게 올린 짤막한 글로 文體上 奏議類에 해당된다.
역주2 太祖 : 宋을 開國한 趙光胤(927~976)을 稱한다.
역주3 諸邊 : 저본에는 ‘夷狄’으로 되어 있는데, 淸 四庫館에서 고쳐 놓은 것이다.
역주4 藩鎭 : 唐代 安祿山의 亂 以後 各地에 설치한 都督部로서, 管轄地區의 軍政, 民政, 財政 등의 全權을 장악하고 지방에 割據하며 朝廷에 대항하였다.
역주5 太宗 : 宋의 二世皇帝로 太祖의 弟 趙光義(939~997)를 칭하며, 22年間 在位하였다.
역주6 眞宗 : 太宗의 子 趙恒(968~1022)으로, 26년간 재위하였다.
역주7 仁宗 : 眞宗의 子 趙禎(1010~1063)으로, 42年間 在位하였다.
역주8 英宗 : 太宗의 曾孫 趙曙(1032~1067)로, 5年間 在位하였다.
역주9 相坐之法 : 추천받아 임용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를 추천한 사람도 함께 벌하는 連坐制度이다.
역주10 監司 : 宋代에는 각 路의 轉運使나 提點刑獄 및 提擧常平 등을 모두 按察이 겸하고 있는 직임이므로 이를 監司라 칭하였다.
역주11 自夏人順服 : 夏나라는 拓拔氏가 宋나라 서쪽에 1038년에 건국했던 왕조로, 국력이 매우 강성하였으며, 1227년에 蒙古에게 패망하였다. 宋은 夏에 每年 銀과 비단 등을 보내어 전쟁을 피하였다.
역주12 取進止 : 통치자에게 올린 글 마지막에 넣는 상투어로, 황제께서 이 글의 옳은 점과 그른 점을 헤아려서 받아들일 것과 물리칠 것을 골라 택하라는 의미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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