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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2)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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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형공荊公 爲人 多氣岸하고 不妄交하니 所交者 皆天下名賢이라
故於其歿而제문제문多奇崛之氣 悲愴之思하야 令人讀之 不能以不掩卷而涕洟하니 凡得十首
범공范公 爲一代殊絶人物이요형공荊公제문祭文 亦極力摹寫하야 涕洟嗚咽하니 可爲兩絶矣
嗚呼我公 一世之師
由初迄終 名節無疵
治功亟聞하야 부윤帝之都하고
閉姦興良하니 稚子歌呼
赫赫之家 萬首俯趨로되
士爭留公호되 蹈禍不慄하니
風俗之衰 駭正怡邪어늘
蹇蹇我初 人以疑嗟
力行不回하니 慕者興起하고
儒先酋酋하야 以節相侈
公之在貶 愈勇爲忠이라
稽前引古하야 誼不營躬이라
外更三州하야 施有餘澤하니
如釃河江하야 以灌尋尺이라
宿贓自解하야 不以刑加하고
猾盜涵仁하야 終老無邪
講藝絃歌하니 慕來千里하고
溝川障澤하니 田桑有喜
戎孽猘狂하야 敢齮我疆커늘
聲之所加 虜不敢瀕하니
以其餘威 走敵完隣이라
昔也始至 瘡痍滿道어늘
藥之養之하야 內外完好
旣其無爲 飮酒笑歌하니
百城晏眠하고 吏士委蛇
上嘉曰材라하야추밀부사추밀부사樞密호되
稽首辭讓하야 至于六七이라
참지정사宰相하야 釐我典常하고
扶賢贊傑하야 亂宂除荒이라
官更於朝하고 士變於鄕하야
百治具修하니 偸墮勉强이라
彼閼不遂하야 歸侍帝側하니
卒屛于外하야 身屯道塞이라
謂宜耈老 尙有以爲어늘
神乎孰忍하야 使至於斯
蓋公之才 猶不盡試하니
肆其經綸이면 功孰與計리오
自公之貴 廐庫逾空하고
和其色辭하야 傲訐以容이라
化于婦妾하야 不靡珠玉하고
翼翼公子 弊綈惡粟이라
閔死憐窮하야 惟是之奢하니
孤女以嫁하고 男成厥家
孰堙于深이며 孰鍥乎厚
其傳其詳하야 以法永久
碩人今亡하니 邦國之憂
矧鄙不肖 辱公知尤
承凶萬里하야 不往而留하고
涕洟馳辭하야 以贊醪羞


07. 범영주 중엄의 제문
형공荊公은 사람됨이 의기義氣가 넘치고 사람을 함부로 사귀지 않았으며, 친교親交를 맺은 사람들이 모두 천하天下명현名賢들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이 사망하여 제문祭文을 짓게 되면, 그 글에 뛰어난 기상氣象비감悲感강개慷慨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을 덮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게 하는데, 이런 제문祭文으로 모두 10를 얻었다.
범공范公은 한 시대의 특별하게 뛰어난 인물이었고, 형공荊公제문祭文 또한 그러한 인물人物됨을 힘을 다해 그려내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게 하니, 〈범공范公행실行實형공荊公의 제문이〉 둘 다 뛰어나다 하겠다.
아아! 우리 께서는 한 시대의 스승이셨도다.
처음부터 마치실 때까지 명절名節에 허물이 없으셨도다.
명숙태후明肅太后전횡專橫이 심할 때 위태로움 겪었으나, 충간忠諫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도다.
요화궁瑤華宮곽황후郭皇后실위失位하자, 또 부당함을 간하였다가 배척을 당하였도다.
치적治績이 자주 알려져, 수도首都 개봉부開封府부윤府尹이 되셨도다.
간사한 무리를 가로막고 어진 이들 일으키니, 어린이들도 환호하며 노래 불렀도다.
혁혁赫赫하게 일가一家를 이루니, 만인萬人이 머리를 숙이고 따랐으나,
홀로 재상宰相사욕私慾을 규탄하다가, 이 때문에 강호江湖로 쫓겨났도다.
선비들이 다투어 을 만류하였지만, 를 당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바른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과 함께 좌천당하기를 청하였도다.
미풍양속美風良俗쇠미衰微해지니, 바른말하는 사람을 의심하고 사악한 소인이 즐거워하였도다.
우리 께서 처음에 부지런히 충언忠言을 하였으나, 사람들은 이를 의심하였도다.
힘써 실천하기를 바꾸지 않으니, 연모戀慕하는 사람들이 흥기興起하였도다.
유생儒生들이 드높이 일어나서, 절의節義를 서로 펼쳐 드날렸도다.
께서는 폄직貶職을 당하면서도, 더욱 용기를 내어 충성을 하였도다.
전대前代의 일을 상고詳考하고 옛 일을 인용引用하여, 의리義理에 맞게 할 뿐 몸을 돌보지 않았도다.
지방으로 나가 세 차례 고을을 맡으니, 정사政事를 베풀어 넉넉한 은택恩澤을 입혔도다.
마치 강하江河를 터놓아 흐르게 하여 좁은 땅까지 모두 적셔주듯이 하였도다.
곧은 기풍氣風 이르는 곳에 묵은 폐습弊習 저절로 밝혀져서, 형벌刑罰을 시행할 필요 없었고,
교활狡猾한 도둑도 인의仁義에 감화되어, 죽을 때까지 사악邪惡한 행위를 하지 않게 되었도다.
경학經學강술講述하고 예악禮樂으로 교화敎化하니, 천 리 밖에서도 연모戀慕하여 모여들었도다.
수리시설水利施設을 정비하니, 농사짓고 누에치는 이들 기뻐하였도다.
요물妖物인 오랑캐들이 미친개처럼 날뛰며, 감히 우리의 강역疆域을 침범하자,
인장印章부절符節을 받은 절도사節度使가 되어, 께서 한 지방을 방어하셨네.
졸오卒伍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장수로 삼으니, 이들이 후에 항상 명성을 드날렸고,
선비를 거두어서 보좌관으로 삼으니, 이에 한 나라에서 받드는 국사國士가 되었네.
명성이 더욱 드러나, 오랑캐들도 감히 접근하여 침범하지 못하니,
공의 성대한 위의威儀 덕택으로, 을 달아나게 하여 이웃 고을도 온전하였네.
전에 께서 처음 이르렀을 때는, 부상자負傷者가 길에 가득하였으나,
치료해주고 길러주어서, 변방의 안과 밖(漢族과 강족羌族)이 완전하게 안정되었네.
이미 변방이 무사하게 되자, 백성들이 가무歌舞하고 음주飮酒하며 웃고,
모든 안의 사람이 편안하게 잠자고, 관리와 군사들도 느긋하게 마음을 놓았네.
황상皇上께서 가상히 여겨 “훌륭한 인재人材이다.” 하시면서,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제수하셨으나,
머리를 조아리며 사양하기를, 예닐곱 차례에 이르렀네.
드디어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어, 우리의 상법常法을 정비하였고,
어진 사람을 보호하고 뛰어난 인물을 도와주어, 불필요한 벼슬자리를 정리하고 그릇된 정사政事는 제거하였네.
관리들은 조정에서 더욱 노력하고, 군사들은 지방에서 마음을 바꾸어서,
온갖 정사政事가 잘 다스려지니, 태만했던 관리들이 힘껏 진력하게 되었네.
반대파에 저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여, 간신姦臣들이 황제를 에워싸니,
끝내는 지방으로 쫓겨나서, 몸은 곤경에 처하고 실현하려던 는 가로막혀 버렸네.
황상皇上자문諮問할 만한 원로元老라 이르기에 마땅하고, 아직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데,
이여! 어찌 차마 그를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였는가.
대체로 의 능력을 오히려 모두 시험해볼 수 없었으니,
그의 경륜經綸을 다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면, 그 공업功業을 누구와 비교할 수 있었으랴!
은 존귀하게 되면서부터 외양간과 곳간은 더욱 비게 되었고,
낯빛과 말씀을 온화하게 하여, 자신에게 오만하게 대하며 공격했던 사람들도 포용하였네.
부인夫人들도 감화되어, 주옥珠玉을 패용하고자 낭비한 일이 없었고,
의 아드님들도 공경하고 삼가서, 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었네.
이웃의 곤궁한 사람의 사망死亡을 가엽게 여겨서, 사치스러울 정도로 풍부하게 도와주었네.
부모 잃은 처자處子출가出嫁시켜 주고, 남자男子에게는 장가들어 가정家庭을 이루게 해주었네.
어찌 묘지명墓誌銘을 깊이 묻으며, 어찌 두터운 비석에 새길 게 있으랴!
입으로 상세히 전해져서, 영원히 본받을 만한 이 되었는데.
위대한 인물 이제 사망死亡하시니, 온 나라가 수심愁心에 잠겼도다.
더구나 비루하고 못난 허물 많은 나를 께서 알아주셨도다.
만리萬里 밖에서 서거逝去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머물며 조문弔問하지 못하였도다.
눈물 흘리며 이 제문祭文 짓고, 박주薄酒서수庶羞를 바치나이다.


역주
역주1 祭范穎州文 仲淹 : 本 祭文은 慶曆新政을 주재하였던 范仲淹의 功績을 讚美하고, 政敵의 陰害로 인해 地方官으로 떠돌다가 皇祐 4년(1052)에 夭折했던 悲劇的 終末에 悲嘆을 표한 글로, 당시 왕안석은 32세였다.
祭文의 文體는 定式이 없이 散文, 韻文, 騈文, 騷文體가 모두 허용되며, 句式도 四言, 六言, 雜言이 모두 허용되나, 대체로 謹嚴하고 莊重한 표현에 적합한 四言으로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역주2 明肅之盛 身危志殖 : 大中祥符 5년(1012)에 仁宗이 12세로 卽位하자 皇太后 劉氏(諡號 明肅)가 垂簾聽政을 하였는데, 范仲淹이 天聖 7년(1029)부터 屢次에 걸쳐 皇帝가 親政할 것을 請하였다가 明肅太后의 미움을 받아 危機에 처하였으나, 危機에 處할수록 忠諫의 意志는 더욱 굳건해졌음을 표현한 것이다.
역주3 瑤華失位 又隨以斥 : 仁宗이 皇后 郭氏를 廢하여 瑤華宮에 安置하자, 范仲淹 등이 極力 不可함을 諫하다가 貶斥당했던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역주4 獨繩其私 以走江湖 : 范仲淹이 홀로 당시의 宰相 呂夷簡의 奸巧함을 糾彈하다가 饒州로 左遷되었던 사실을 말한 것이다.
역주5 有危其辭 謁與俱出 : 宰相 呂夷簡이 范仲淹이 私益을 위해 朋黨을 조성하였다고 謀陷하니, 館閣校勘 尹洙와 龍圖閣直學士 李紘 및 集賢校理 王質 등이 자신들도 범중엄과 뜻이 같으니 함께 左遷시켜 달라고 항의한 것을 말한다(文瑩의 《湘山續錄》 참조).
역주6 戎孽猘狂……公屛一方 : 宋의 서쪽에 있던 西夏가 宋을 공격하여 延州, 保安 등을 占據하자, 越州로 좌천되었던 范仲淹을 소환하여 陝西經略按撫副使로 삼아 敵을 방어한 것을 말한다.
역주7 取將於伍 後常名顯 : 范仲淹이 陝西宣撫使로 있을 때에 卒伍 가운데 戰功을 세웠거나 武藝에 뛰어난 자를 선발 천거하여, 그 가운데 狄靑, 郭逵, 種世衡 등은 名將이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8 收士至佐 維邦之彦 : 范仲淹이 幕僚 가운데 크게 될 인물을 잘 알아보고 선발 추천하여, 歐陽脩, 張方平, 胡琬, 孫復, 石介, 李觀 등 傑出한 人材가 다수 배출되었음을 말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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