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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王安石(1)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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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中多名言이라
하노라
伏蒙再賜書하니 爲吏民稱誦 至今不絶하고 傷今之士大夫不盡知하며 又恐史官不能記載하야 以次前世良吏之後
此皆不肖之孤 言行不足信於天下하야 不能推揚先人之功緒餘烈하야 使人人得聞知之 所以夙夜愁痛하야 疚心疾首而不敢息者 以此也
先人之存 某尙少하야 不得備聞爲政之跡이나
然嘗侍左右하야 尙能記誦敎誨之餘니이다
蓋先君所存 嘗欲大潤澤於天下하야 一物枯槁 以爲身羞러니라
大者 旣不得試하시고 已試乃其小者耳 小者 又將泯沒而無傳하니 則不肖之孤 罪大釁厚矣 尙何以自立於天地之間耶리오
閤下勤勤惻惻하야 以不傳爲念하니 非夫仁人君子 樂道人之善이면 安能以及此리오
自三代之時 國各有史하니 而當時之史 多世其家하야 往往以身死職하야 不負其意하니 蓋其所傳 皆可考據니라
後旣無諸侯之史하고 而近世 非尊爵盛位 雖雄奇儁烈하야 道德滿衍이라도 不幸不爲朝廷所稱이면 輒不得見於史 而執筆者 又雜出一時之貴人이라
觀其在廷論議之時하면 人人得講其然不로되 尙或以忠爲邪하고 以異爲同하야 誅當前而不慄하고 訕在後而不羞하야 苟以饜其忿好之心而止耳 而況陰挾翰墨하야 以裁前人之善惡하야
疑可以貸褒하고 似可以附毁하니 往者不能訟當否 生者不得論曲直하야 賞罰謗譽 又不施其間이라
以彼其私 獨安能無欺於冥昧之間邪
善旣不盡傳이요 而傳者 又不可盡信이니
如此 唯能言之君子 有大公至正之道하야 名實足以信後世者 耳目所遇 一以言載之 則遂以不朽於無窮耳리라
伏惟閤下 於先人非有一日之雅
餘論所及 無黨私之嫌하니 苟以發潛德爲己事하야 務推所聞하야 告世之能言而足信者하야 使得論次以傳焉이면 則先君之不得列於史官 豈有恨哉리오


14. 소주韶州 전승殿丞에게 보낸 답서
글 가운데 명언名言이 많다.
가 올리나이다.
엎드려 두 번째 보내 주신 서신을 받자오니, 선친先親께서 소주韶州를 다스리실 때에 관리와 백성들에게 칭송稱誦을 받음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고, 지금의 사대부士大夫들이 이를 다 알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셨으며, 또 사관史官전세前世 양리良吏들의 뒤에 기록하여 배열하지 못할까 하고 걱정하셨습니다.
이는 모두가 못난 자식이 언행言行천하天下신뢰信賴를 받기에 부족하여, 선친先親께서 남기신 공적功績추숭推崇해 드날려서 사람마다 이를 듣고 알게 할 수가 없어서이니, 밤낮으로 근심하고 마음 아파하며 괴로워하고 걱정하기를 감히 그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선친先親께서 생존해 계실 때에는 가 아직 어렸으므로, 정무政務를 처리하신 업적業績을 두루 갖추어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곁에서 모시면서 오히려 가르쳐 주신 것들을 기억하고 암송할 수는 있었습니다.
대체로 선친先親께서 간직하셨던 뜻은, 일찍이 천하 사람들을 크게 윤택潤澤하게 하고자 하시어 한 사람이라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이를 자신의 부끄러움으로 여기셨습니다.
품고 계신 큰 뜻을 시험해 보실 기회가 없었으므로 시험해보신 것은 곧 작은 일 뿐이었고, 그 작은 일조차도 묻히고 없어져서 전해지지 않게 되었으므로 이 못난 자식의 죄는 크고 허물은 중하니, 그런데도 어찌 천지天地 사이에서 스스로 떳떳이 서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합하閤下께서 측은하게 여기시는 간절한 지성至誠으로 선친의 업적이 전해지지 않음을 염려해 주시니, 인인仁人 군자君子로서 다른 사람의 장점長點을 말하기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삼대三代시대부터 나라마다 각기 사관史官을 두었고, 당시當時사관史官세습世襲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왕왕往往 직무의 충실한 수행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그 뜻에 위배되는 일을 하지 않았음은, 전해오는 기록을 통하여 모두 고증할 수가 있습니다.
후세後世제후국諸侯國사관史官이 없게 되면서부터, 근세에는 존귀尊貴작위爵位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비록 크게 걸출傑出하고 강직剛直하며 도덕이 충만하여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 해도, 불행하게도 조정의 칭찬을 받지 못하면 사서史書에 기록됨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사필史筆을 잡는 사람도 당시의 고관 중에서 일정한 기준이 없이 선발하고 있습니다.
그 인물이 조정朝廷에서 논의論議할 때에 관찰해 보면, 사람마다 그 옳고 그름을 밝힐 수가 있는데도, 오히려 더러는 충성忠誠을 사악하다 하고 다른 것을 같다고 하며, 죽을 죄가 앞에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비방誹謗하는 말이 뒤에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구차하게 그들의 분한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을 만족시키는데 그칠 뿐이고, 더구나 암암리에 필묵을 잡고 전대前代 사람들의 선악善惡을 함부로 재단裁斷하기도 합니다.
포양褒揚하기에는 의문이 생기고 비난하기에 합당할 듯하면, 이미 사망한 사람은 합당했는가 부당했는가를 따져서는 안 되고, 살아있는 사람도 그 곡직을 따져서는 안 되며, 주고 주고 비난하고 칭찬하는 일을 또 그 사이에서 시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개인적 견해에 따라서 행한다면 어찌 신령들을 기망하는 일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 행실이 이미 모두 전해지지도 않았고, 전해진 것도 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다면 오직 말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군자君子로서, 크게 공정公正하고 지극히 바른 를 지니고 명성名聲실상實相이 후세 사람들의 신뢰를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한번 그 말을 사전史傳에 실어 놓으면, 드디어 무궁토록 없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합하閤下께서는 선친先親과는 하루 이틀 친교를 맺었던 사이가 아닙니다.
광박廣博식견識見으로 언급하신 것이 당파黨派나 개인적 친분親分 때문이라는 혐의가 없으시니, 진실로 묻혀있는 미덕美德발굴發掘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셔서 알게 된 바를 받들어 칭찬하기에 힘쓰시면서, 세상에서 말을 잘하고 신뢰를 받기에 족한 사람에게 알려 주어 그로 하여금 논정論定편차編次하여 하게 하신다면 선친先親께서 비록 사관史官의 기록에 나열될 수 없게 된다 해도 어찌 여한이 있겠나이까.


역주
역주1 答韶州張殿丞書 : 이 편지는 殿中司의 丞으로 韶州에 差遣되어 있던 張某(名 및 生涯 未詳)가 왕안석의 선친 王益이 知韶州事로 있을 때에 많은 치적을 남겼으면서도 史傳에 오르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는 편지를 보낸 데 대하여 고마움을 표한 답신이다.
역주2 示及先君韶州之政 : 王安石의 父 王益은 天聖 8년(1030)에 殿中丞으로 知韶州事를 역임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왕안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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