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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1)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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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금지禁地경작耕作하게 하기를 청하는 차자箚子
經國至計 與蘇子由所上乞禁邊臣爭界箚子 互看이라
국가를 경영하는 지극한 계책이니, 蘇子由(蘇轍)가 올린 〈邊臣들이 고을의 경계를 다투는 것을 금하기를 청한 차자[乞禁邊臣爭界箚子]〉와 서로 참고해 보아야 한다.
하야 相度沿邊經久利害
신이 근래 사명使命을 받들고 하동河東에 가서 변방 일대의 먼 장래의 이해를 상세히 살펴보았습니다.
臣竊見河東之患 患在盡禁沿邊之地하야 不許人耕하고斛斗하야 以爲邊儲하니 其大害有四
신이 삼가 보건대 하동의 근심은, 문제가 변방 일대의 땅에 모두 금지령을 내려 사람들이 경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백성들이 사적으로 북계北界(遼나라)의 곡식을 사들이게 해서 변방의 비축 식량을 삼는 데 있으니, 그 해로운 점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以臣相度컨댄 今若募人耕植禁地하면 則去四大害而有四大利
신이 헤아려보건대 지금 만약 사람을 모집하여 금지禁地를 경작해 곡식을 심게 하면 네 가지 큰 해로움을 없애고 네 가지 큰 이로움을 있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河東地形山險하여 輦運不通하니 邊地旣禁이면 則沿邊乏食하야 每歲仰河東一路稅賦斛斗支往이라
하동河東의 지형은 산이 험준하여 수레로 운송하지 못하니, 변방의 땅에 경작을 이미 금지하였고 보면 변방 일대에 양식이 부족하여 해마다 하동河東 지방의 부세賦稅, 화적和糴, 입중入中, 화박和博으로 들어온 곡식을 지급해주는 데 의지하고 있습니다.
沿邊人戶 旣阻險遠하야 不能輦運일새 遂賚金銀絹銅錢等物하야 就沿邊貴價하야 私糴北界斛斗
변방 일대의 인호人戶는 이미 지형이 험준하고 먼 지방이라 수레로 곡식을 운송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침내 금은과 명주, 동전 등 물품을 사서 변방 일대의 곡식 값이 비싼 지역에 가서 사적私糴으로 북계北界의 곡식을 사고 있습니다.
北界禁民以粟馬南入我境하야 其法至死어늘
북계는 백성들에게 곡식과 말을 남쪽으로 우리 땅에 들여 넣는 것을 금지하여 그 법이 사형에 이릅니다.
今邊民冒禁私相交易하야 時引爭鬪하야 輒相斫射하니 萬一興訟하면 遂搆事端이니
그런데도 지금 변방의 백성들은 금법禁法을 범하면서 사적으로 교역하다가 때로는 투쟁을 일으켜 서로 칼로 찍고 활로 쏘기까지 하니, 만일 쟁송이 일어나면 마침내 사단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其引惹之患一也
이것이 야기될 첫째 근심입니다.
今吾有地로되 不自耕植하고 而偸糴隣界之物以仰給하니 若敵常歲豐及緩法不察하야 而米過吾界하면 則尙有可望萬一이어니와 虜歲不豐이어나 或其與我有隙하야 頓嚴邊界禁約하야 而閉糴不通하면 則我軍遂至乏食이리니
지금 우리는 땅이 있는데도 스스로 경작하지 않고 이웃 북계北界의 곡물을 몰래 사들임으로써 그것에 의지해 공급하고 있으니, 만약 저 적국이 평상시 풍년이거나 법을 느슨히 적용해 세밀히 살피지 않아 곡물이 우리 땅으로 넘어온다면 그나마 만에 하나 가망이 있겠지만, 저 오랑캐들이 풍년이 들지 못하거나 우리와 사이가 나빠져서 갑자기 변방의 금약禁約을 엄격히 세워서 곡물을 유통하지 못하도록 폐쇄한다면 우리 군사들은 마침내 양식이 부족한 데 이를 것입니다.
是我師飢飽 繫在敵人이니 其患二也
이는 우리 군사의 굶주림과 배부름이 적국 사람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그 둘째 근심입니다.
四州軍 沿邊地旣不耕하야 荒無定主하야 虜人得以侵占이라
대주代州, 가람岢嵐, 영화寧化, 화산火山주군州軍은 변방 일대의 땅을 이미 경작하지 않아 주인 없이 황폐한 채 버려져 있어 적국 사람들이 들어와 〈이 변방 일대의 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往時代州陽武寨爲蘇直等爭界하야 訟久不決하야 卒侵却二三十里러니
예전에 대주 양무채陽武寨에서 소직蘇直 등에 의해 국경 분쟁이 일어나 쟁송이 오래도록 해결되지 못하는 바람에 마침내 2, 30리를 빼앗겼습니다.
見今寧化軍天池之側 杜思榮等又來爭侵하야 經年未決하고 岢嵐軍爭掘界壕러니多方力拒而定하니
현재 영화군寧化軍 천지天池 근처에 두사영杜思榮 등이 또 와서 다투어 침범하여 한 해가 넘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있고, 가람군岢嵐軍에서는 굴계호堀界壕 땅을 두고 다투었는데 미광준米光濬이 다방면으로 힘써 막은 덕분에 안정되었습니다.
是自空其地하야 引惹北人하야 歲歲爭界 其害三也
이는 스스로 우리 땅을 비워두어 북계北界의 사람들을 들어오게 만들어서 해마다 국경의 땅을 놓고 다투는 것이니, 그 셋째 해로운 것입니다.
禁膏腴之地不耕하고 而困民之力以遠輸하니 其害四也
기름진 땅을 금지禁地로 만들어 경작하지 않고 백성들의 힘을 피곤하게 하면서까지 먼 곳의 곡물을 수송해오니, 그 넷째 해로운 것입니다.
臣謂禁地若耕하면 則一二歲間 北界斛斗 可以不糴이리니 則邊民無爭糴引惹之害하고 我軍無饑飽在敵之害하고 沿邊地有定主無爭界之害 邊州自有粟이면 則內地之民無遠輸之害
신은 생각건대 금지禁地를 경작하면 한두 해 사이에 북계北界의 곡물을 사들이지 않을 수 있을 터이니, 그렇게 되면 변방의 백성들은 곡물을 사들이느라 일어나는 분쟁의 해로움이 없으며, 우리 군사들은 굶주림과 배부름이 적국 사람에게 달려 있는 해로움이 없으며, 변방 일대에는 정해진 땅 주인이 있어 경계를 다투는 해로움이 없고, 변방 고을 자체에 곡물이 있으면 내지의 백성들이 멀리서 곡물을 수송해오는 해로움이 없을 것입니다.
是謂去四大害而有四大利
이것이 제가 말한 “네 가지 큰 해로움을 없애고, 네 가지 큰 이로움을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今四州軍地 可二三萬頃이니 若盡耕之 則其利歲可得三五百萬石이니
지금 네 주군州軍의 땅은 2, 3만 이나 되니, 만약 이 땅을 모두 경작한다면 그 이득은 한 해에 3, 5백만 섬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伏望聖慈特下兩府商議하야 如可施行이어든 則召募耕種하소서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이 문제를 특별히 양부兩府에 하달하여 상의하게 하여 시행할 만하면 백성들을 모집해서 경작하게 하소서.
稅入之法 各有事目하니 容臣續具條陳하리이다
세입稅入에 관한 법은 각각 사목事目이 있으니, 신이 이어서 조목조목 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取進止하소서
성상께서 결정하소서.
역주
역주1 請耕禁地箚子 : 이 글은 仁宗 慶曆 4년(1044)에 지은 것으로, 당시 歐陽脩는 河東路轉運使의 命을 받들고 河東에 있었다. 宋나라의 개국공신 潘美가 河東 지방을 통수할 때 도적들이 침탈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변방 백성들에게 이주정책을 펴서, 변방 일대 農地에 농경을 금하고 空地로 비워두었다. 이것을 禁地라고 하는데, 이후로 空地가 매우 광범하게 발생하였다. 인종 때에 와서 歐陽脩가 解禁을 하여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청하였는데, 바로 이 글이다.
역주2 臣昨奉使河東 : 慶曆 4년 陝西 지방에 병란이 일어나고 河東에 식량이 바닥났다. 이에 麟州(州治가 現 섬서성 神木縣에 있었음)를 폐지하거나 州의 治所를 內地로 옮기자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그러자 麟州를 폐지했을 때 발생하는 백성들의 부담 때문에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조정에서 歐陽脩를 河東路에 보내어 麟州 존폐에 따른 손익이 어떠한지 실질적으로 고찰하게 하였다.
역주3 私糴 : 백성들이 개인적으로 高價에 식량을 구매하여 관부의 和糴에 부응하는 것이다. 和糴은 본래 정부가 백성을 위해 고가로 곡식을 사들여 군량미로 쓴다는 취지에서 만든 제도이다. 그러나 변질되어 관아에서 낮은 가격에 강제로 사들였는데, 백성들은 여기에 부응하기 위해 富豪에게 高價로 곡식을 사서 바쳐야 했다. 결국 과세처럼 되었던 것이다.
역주4 北界 : 宋나라 북쪽에 있던 遼나라를 가리킨다.
역주5 和糴 : 변방의 급한 수요에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군량과 馬草를 구입하는 것이다.
역주6 入中 : 상인들이 군량과 마초를 변방에 운송해주고 증명을 받아 가지고 京城에 가서 그 값으로 현금 또는 차와 같은 專賣物을 받는 것이다.
역주7 和博 : 관부에서 은이나 비단 따위의 물품을 가지고 식량으로 바꾸어 변방에 보내는 것이다.
역주8 代州岢嵐寧化火山 : 모두 河東路에 속하는 고을로 現 山西省과 陝西省 북쪽 지역에 해당한다.
역주9 米光濬 : 米光濬은 당시 岢嵐軍使로 있던 인물이다. 능력이 있고 무예에 능한데다 변방의 일을 환히 꿰고 있으며 통솔력이 뛰어나 歐陽脩가 누차 추천했던 인물이다. 本集에 〈擧米光濬狀〉과 〈再擧米光濬狀〉이 있다. 하동의 변경 지대에 경작을 금하자, 하동 지방 일대는 심한 식량 부족에 시달렸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눈을 피해 契丹과 암암리에 식량을 교역하였다. 그로 인해 국경이나 식량가격으로 인한 분쟁이 자주 발생하였다. 이때 활약하여 거란의 도발을 막은 인물이 미광준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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