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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1)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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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8. 허회덕許懷德을 다시 논하는
宋人 於國家體統處 多失之因循寬弛
송나라 사람이 국가의 체통에 관계되는 곳에서는 대개 그럭저럭 넘기고 엄격히 처리하지 못하였다.
故歐公 往往發憤하야 勸主上振肅紀綱하야 以維持之
그러므로 구양공歐陽公이 왕왕 분노하여 임금에게 기강을 바로잡아 체통을 유지할 것을 권하였다.
蘇氏父子亦如此
소씨蘇氏 부자父子(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도 이와 같은 글을 올렸다.
臣竊以謂治天下 在明號令이요 正朝廷 在修紀綱이니 號令所行 紀綱所振 由人主有賞罰之柄也
신은 삼가 생각건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호령을 분명히 하는 데 있고 조정을 바로잡는 것은 기강을 바로 세우는 데 있으니, 호령이 행해지고 기강이 바로 서는 것은 임금이 상벌賞罰의 권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若號令出而不從하며 紀綱弛而不整하고 又不以賞罰臨之 而欲正朝廷治天下인댄 臣不知其可也
만약 호령이 나갔는데도 따르지 않으며 기강이 느슨한데도 바로 세우지 않고 게다가 상벌로 다스리지 않고서, 조정을 바로잡고 천하를 다스리고자 한다면 신은 가능한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今者陛下親祀宗廟 不敢獨受其福하고 推恩群臣하야 徧及中外하니 此聖德之至深厚也어늘
지금 폐하께서 종묘에 친히 제사를 지내면서 감히 그 복을 홀로 받지 않고 은혜를 신하들에게 미루어주셨으니, 이는 지극히 심후한 성덕聖德입니다.
而臣下輒敢有所輕重하야 以謂例恩泛及이라하야 視以爲輕而慢之하니 原其情理컨대 其可恕乎
그런데 신하들이 감히 제멋대로 논의하여 “으레 주는 은혜가 범범하게 두루 미친 것이다.”라 하여 가볍게 보아 홀만忽慢히 여기니, 그 정상을 따져보건대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方祫享始畢 恩典推行하니 命出之日 宰相하야 百官在列하고 宣揚制誥하야 布告天下어늘 而將臣偃蹇하야 不肯受命하고 稽停制書四十餘日이로되
협향祫享이 막 끝났을 때 은전恩典을 신하들에게까지 베푸시니, 그 명이 나오던 날 재상이 압반押班하여 백관이 반열에 있었고 제고制誥를 선양하여 천하에 두루 알렸거늘, 장신將臣들이 오만하여 그 명을 받으려 하지 않고 제서制書를 40여 일 동안이나 계류稽留해두었습니다.
하니 是陛下號令不能行於朝廷하고 而紀綱弛壞於武士
그런데도 유사有司가 거듭 올리지 않은 채 태연히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으니, 이는 폐하의 호령이 조정에 행해지지 못하고 기강이 무사武士들에게서 해이해진 것입니다.
凡士之知治體者 皆爲陛下惜也
무릇 선비로서 통치의 체통을 아는 이들은 모두 폐하를 위해 애석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臣謂方今國家全盛하고 天下無虞하야 非有强臣悍將難制之患이로되
신은 생각건대 지금 국가가 매우 융성하고 천하에 우환이 없어 강한 신하와 사나운 장수를 제어하기 어려운 근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而握兵之帥 輒敢如此不畏朝廷者 蓋由從前不惜事體하고 因循寬弛하야 有以馴致也
그런데 병권을 쥔 장수가 감히 이와 같이 조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종전에 일의 체통을 중히 여기지 않아 그럭저럭 넘기고 엄격히 처리하지 못하여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今若又不正其罪罰하고 而公爲縱弛하면 則恐朝廷失刑 自此而始하고 武臣驕慢 亦自此而始하며 號令不行於下하고 紀綱遂壞於上 亦自此而始리라
지금 만약 또 그 죄벌罪罰을 바로잡지 못하고 공공연히 느슨하게 풀어놓으면 조정이 형벌을 잘못 시행하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고, 무신이 교만을 부리는 것 또한 이로부터 시작되며, 호령이 아래서 행해지지 못하고 기강이 위에 무너지는 것 또한 이로부터 시작될까 염려됩니다.
夫古人所謂見於未萌者 智之明也 若事有萌而能杜其漸者 又其次也 若見其漸而之浸成後患者 深可戒也
대저 옛사람이 이른바 “일이 아직 싹트기 전에 알아차린다.”는 경우는 지혜가 밝은 것이고, 일이 싹텄어도 그 조짐을 막을 수 있는 경우는 또 그 다음이니, 그 조짐이 생겨난 것을 보고도 점차 후환을 이루게 방치해두는 것을 깊이 경계해야 합니다.
臣前日爲許懷德事하야 曾有奏論하야 略陳大槪하니 蓋以方今賞罰之行 只據簿書法令以從事하고 而罕思治體어든
신이 허회덕許懷德의 일 때문에 일찍이 상주上奏하여 그 대강을 진달한 적이 있었으니, 대개 현재 상벌賞罰이 단지 부서簿書와 법령에 의거하여 시행되고 정치의 체통을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었습니다.
況如懷德 在法非輕하고 於事體又重이라
하물며 회덕 같은 자는 법에 있어 그 죄가 가볍지 않고 일의 체통에 있어서도 중대합니다.
故臣復罄愚瞽하노니 伏乞聖慈裁擇而行之하소서
그러므로 신이 다시 어리석은 생각을 다 아뢴 것이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께서 헤아려 선택해 시행하소서.
역주
역주1 再論許懷德狀 : 이 글은 仁宗 嘉祐 5년(1060)에 지어졌다. 許懷德은 자가 師古이고 開封府 祥符 사람이다. 신장이 6척이 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였다. 젊은 나이에 부친이 東西班殿侍에 임명됨으로 해서 누차 발탁되어서 殿前都指揮使 左班都虞候에 이르렀다. 元昊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외직으로 나가 邊將이 되어 누차 전공을 세웠고 한편으로는 누차 모종의 일로 폄직되었다.
역주2 押班 : 조회할 때 재상이 신하들의 반열 제일 앞에 있기 때문에 반열을 통솔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宋나라 초기에는 押班官이 있었다가 후에 폐지되고 재상이 맡았다.
역주3 將臣偃蹇…恬然不以爲怪 : 歐陽脩의 〈論許懷德狀〉에 “근자에 허회덕은 祫享하고 신하들에게 성은을 내렸을 때 응당 두 차례 表를 올려 사양하는 뜻을 진달해야 하는데도 단지 한 차례만 表를 올렸고, 비답이 내린 뒤에 다시 표를 올리지 않은 채 지금까지 40일 동안이나 지체하여 制書는 閤門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명을 받지도 않고 사양하는 뜻을 진달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계류해둔 채 사양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있으니, 이는 분명 조정을 가벼이 보아 업신여기고 임금의 명을 거역하는 것인데도 합문에서 거듭 올리지 않고 台司와 風憲도 규탄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였다.
역주4 : 本集에는 ‘興’자로 되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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