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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6)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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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通篇 俱虛語點綴이요 無一實事
郭延魯 沁州綿上人也 父饒以驍勇事晉하야 數立軍功하고 爲沁州刺史者九年 爲政有惠愛하니 州人思之하다
延魯以善槊爲將하야 累遷神武都知兵馬使하다 朱守殷反 從攻汴州할새 以先登功爲汴州馬步軍都指揮使하고 累遷復州刺史하다
延魯嘆曰 吾先君爲沁州者九年 民到于今思之 吾今幸得爲刺史하니 其敢忘吾先君之志리오하고 由是 益以廉平自勵하니 民甚賴之하다
秩滿 州人乞留 不許하니 皆遮道攀號하다 天福中 拜單州刺史하고 卒于官하다
當是時 刺史皆以軍功拜하니 者多以爲言하야 以謂今天下多事民力困敝之時 不宜以刺史任武夫 恃功縱下하야 爲害不細라하되 而延魯父子特以善政著聞焉이라하다
嗚呼 五代之民 其何以堪之哉리오 上輸兵賦之急하고 下困剝斂之苛
自莊宗以來 進獻之事稍作이러니 至於晉而不可勝紀矣之物 動以千數計하고 至於來朝奉使贖罪하야도 莫不出於進獻이요
而功臣大將不幸而死 則其子孫率以家貲求刺史하되 其物多者得大州善地 蓋自天子 皆以賄賂爲事矣 則爲民者其何以堪之哉리오
於此之時 循廉之吏如延魯之徒者 誠難得而可貴也哉
按延魯父子俱以循良爲政하니 誠五代時所難得者 歐公旣知之어늘 而特勒入雜傳하니 殊不可曉


04. 곽연로郭延魯전기傳記
전편의 내용이 모두 행적을 가상假想하여 서술하였고 실제의 일은 하나도 없다.
곽연로郭延魯심주沁州 면상綿上 사람이다. 아버지 곽요郭饒는 용맹함으로 나라를 섬겨 여러 차례 군공軍功을 세웠고 심주자사沁州刺史로 있은 지 9년 동안 은혜와 사랑으로 정사를 펴니 의 백성들이 그의 은덕을 잊지 않았다.
곽연로는 창을 잘 다뤄 장수가 되어 누차 승진하여 신무도지병마사神武都知兵馬使가 되었다. 주수은朱守殷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종군從軍하여 변주汴州를 공격하여 먼저 성에 오른 공으로 변주마보군도지휘사汴州馬步軍都指揮使가 되었고 누차 승진하여 복주자사復州刺史가 되었다.
곽연로가 탄식하기를 “나의 선군先君께서 심주자사로 9년 간 계셨는데 백성들이 지금까지 은덕을 잊지 않고 있다. 내가 지금 다행히 자사가 되었으니 어찌 감히 나의 선군先君의 뜻을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이로부터 더욱 청렴함과 공평함으로 스스로 분발하니 백성들이 매우 의지하였다.
임기가 차자 의 백성들이 유임留任해주길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으니, 의 백성들이 모두 길을 막고 곽연로를 붙잡고 애통해하였다. 천복天福 연간에 단주자사單州刺史에 배수되었고 관소官所에서 하였다.
이때에 자사刺史는 모두 군공軍功으로 배수되었으니, 언사言事하는 이들이 이 문제를 많이 지적하여 말하기를 “지금처럼 천하에 일이 많고 민력民力이 피폐한 때에 자사刺史무부武夫로 임명해서는 안 되니, 전공戰功을 믿고 아래 사람들에게 방종하여 피해가 적지 않다.”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곽연로郭延魯 부자父子만은 선정善政으로 알려졌다.
오호라, 오대五代의 백성들이 어찌 이를 견딜 수 있었겠는가. 위로는 병부兵賦를 대기에 급급하고 아래로는 가혹한 수탈에 시달렸다.
장종莊宗으로부터 이후로 방진方鎭이 물품을 진상進上하는 일이 점차 생기더니 나라에 이르러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첨도添都조국助國 등의 공물은 거둘 때마다 수 천으로 헤아릴 정도였고, 내조來朝, 봉사奉使, 매연買宴, 속죄贖罪의 경우에도 물품 진상進上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었다.
그리고 공신功臣대장大將이 불행히 죽으면 그 자손들이 대개 집안의 재물을 가지고 자사직刺史職매관買官하는 데, 바치는 물건이 많을수록 큰 와 좋은 지역을 얻었다. 대개 천자天子로부터 모두 뇌물 받는 것을 일삼으니 백성들이 어떻게 이를 견딜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때에 곽연로郭延魯 부자父子와 같이 순량循良하고 청렴淸廉한 관리는 참으로 얻기 어려워 존중할 만하다.
살펴보건대 곽연로郭延魯 부자父子는 모두 순량循良함으로 정사政事를 행하였으니 참으로 오대시대五代時代에 얻기 어려운 사람이다. 구양공歐陽公이 이미 이를 알고 있었는데도 단지 잡전雜傳에 억지로 집어넣었으니, 매우 이해할 수 없다.


역주
역주1 郭延魯傳 : 郭延魯(?~?)는 沁州 綿上 사람이다. 列傳은 ≪舊五代史≫ 卷94 〈晉書 第20 列傳 第9〉, ≪新五代史≫ 卷46 〈雜傳 第34〉에 각각 실려 있다.
곽연로는 창을 잘 다뤄 장수가 되었는데, 汴州를 공격하여 먼저 성에 오른 공으로 都指揮使가 되었고 누차 승진하여 復州刺史가 되었다. 刺史로 있으면서 아버지 郭饒가 沁州刺史로 재직한 9년 동안 은혜와 사랑으로 정사를 펼쳤듯 청렴함과 공평함으로 정사를 펼쳐 임기가 완료되었을 때에 백성들이 유임해주기를 청하였고 떠날 때에는 백성들이 길을 막고 애통해하였다. 후에 單州刺史에 배수되었는데 官所에서 卒하였다.
이 열전은 곽연로와 곽요의 善政에 대한 이야기를 짧지만 상세하게 서술하여 그들의 善政을 부각시켰다. 史評에서도 五代시대에는 天子로부터 모두 뇌물 받기를 일삼았는데 이때에 곽연로의 父子와 같이 循良하고 淸廉한 관리는 참으로 얻기 어려워 존중할 만하다고 하였다.
≪구오대사≫에는 郭延魯의 군공과 관직에 대한 사실만을 논한 반면 ≪신오대사≫에는 곽연로가 복주자사가 되자 아버지를 생각하며 탄식한 말을 첨가하여 극적인 효과를 주었고 이로 인해 곽연로가 대를 이어 善政을 베푼 사실이 더욱 드러나게 하였다. 하지만 茅坤은 이들은 五代時代에 얻기 어려운 사람이었음에도 歐陽脩가 雜傳에 억지로 집어넣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평하였다.
역주2 言事 : 고대에 군왕을 향해 간언을 올리거나 政事에 대해 의론하는 것이다.
역주3 方鎭 : 兵權을 장악하거나 一方의 軍事를 鎭守하는 장관을 말한다. 晉나라의 指節都督이나 唐나라의 觀察使, 節度使, 經略 등을 이르는 말이다.
역주4 添都助國 : 添都는 五代에 군수품을 조달하던 것을 이르고, 助國은 ≪新五代史≫ 卷8 〈晉本紀 第8 高祖〉에 “天福 2년에 宣武軍節度使 楊光遠이 助國錢을 진상하였다.”는 기사가 있으니, 助國은 助國錢을 가리키는 듯한데,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역주5 買宴 : 봉건시대에 신하가 돈과 재물을 바쳐 군왕이 베푸는 연회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6)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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