葛從周는 事梁爲大將하야 百戰不失하니 可謂兵之善者已라
葛從周는 字通美요 濮州甄城人也라 少從黃巢러니 巢敗降梁하다
從太祖하야 攻蔡州할새 太祖墜馬어늘 從周扶太祖復騎라가 與敵步鬪傷面하고 身被數瘡이어늘
偏將張延壽從旁擊之하야 從周得與太祖俱去라 太祖盡黜諸將하고 獨用從周延壽하야 爲大將하다
한대 하고 從朱珍
하야 收兵淄靑
하야 遇東兵輒戰
하야 珍得兵歸
하니 從周功爲多
라
張全義가 襲李罕之於河陽한대 罕之奔晉하야 召晉兵以攻全義라 全義가 乞兵於梁이어늘 太祖遣從周丁會等救之하야 敗晉兵於沇河라
潞州馮霸가 殺晉守將李克修하야 以降梁하니 太祖遣從周하야 入潞州어늘 晉兵攻之하야 從周不能守하야 走河陽이라
太祖攻魏에 從周與丁會는 先下黎陽臨河하고 會太祖於內黃하야 敗魏兵於永定橋하고 從丁會하야 攻宿州할새 以水浸其城하야 遂破之라
太祖攻朱瑾于兗州하야 未下하고 留從周圍之어늘 瑾閉壁不出이라 從周詐言救兵至하고 陽避之高吳라가 夜半에 潛還城下하니
瑾以謂從周已去
하고 乃出兵
하야 收
어늘 從周掩擊之
하야 殺千餘人
이라
晉攻魏에 魏人求救하니 太祖遣侯言救魏어늘 言築壘于洹水하니 太祖怒言不出戰하야 遣從周代言이라
從周至軍에 益閉壘不出하고 而鑿三闇門以待라 晉兵攻之에 從周以精兵自闇門出하야 擊敗晉兵하니 晉王怒하야 自將擊從周라
從周雖大敗나 而梁兵擒其子落落하야 送于魏하야 斬之하고
遂徙攻鄆州하야 擒朱宣於中都하고 又攻兗州하야 走朱瑾이라 太祖表從周兗州留後하다
以兗鄆兵으로 攻淮南할새 出安豐하야 會龐師古于淸口라
從周行至濠州하야 聞師古死하고 遽還至渒河하야 將渡에 而淮兵追之하니 從周亦大敗라
是時에 晉兵出山東하야 攻相衛한대 太祖遣從周하야 略地山東하야 下洺州하야 斬其刺史邢善益하고
又下
州
하야 走其刺史馬師素
하고 又下磁州
하야 殺其刺史袁奉滔
하야 五日而下三州
하니 太祖乃表從周兼邢州留後
하다
劉仁恭攻魏하야 已屠貝州어늘 羅紹威求救于梁하니 從周會太祖救魏하야 入于魏州하다
燕兵攻
한대 從周
가 以五百騎出戰曰 大敵在前
하니 何可返顧
리오하고 使閉門而後戰
하다
破其八柵에 燕兵走어늘 追至于臨淸하야 擁之御河하니 溺死者甚衆이라 太祖以從周爲宣義行軍司馬하다
太祖遣從周
하야 攻劉守文于滄州
하고 이라 守文求救于其父仁恭
하니 仁恭以燕兵救之
라
暉語諸將曰 吾王以我監諸將이어늘 今燕兵來하니 不可迎戰이라 宜縱其入城하야 聚食倉廩하야 使兩困而後取之라하니 諸將頗以爲然이라
從周怒曰 兵在上將하니 豈監軍所得言리오 且暉之言은 乃常談爾라 勝敗之機는 在吾心하니 暉豈足以知之리오하고
乃勒兵逆仁恭于乾寧하야 戰于老鴉堤하니 仁恭大敗어늘 斬首三萬餘級하고 獲其將馬愼交等百餘人과 馬三千匹하다
是時에 守文亦求救于晉하니 晉爲攻邢洺以牽之어늘 從周遽還하야 敗晉兵于靑山하고
遂從太祖하야 攻鎭州하야 下臨城하니 王鎔乞盟하다 太祖表從周泰寧軍節度使하야 從氏叔琮하야 攻晉太原이나 不克하다
梁兵이 西攻鳳翔하니 靑州王師範이 遣其將劉鄩하야 襲兗州어늘 從周家屬爲鄩所得이러니 厚遇之而不殺하다
太祖還自鳳翔하고 乃遣從周하야 攻鄩하니 從周卒招降鄩하다 太祖卽位에 拜左金吾衛上將軍이라가 以疾致仕하고 拜右衛上將軍하야 居于偃師하다
末帝卽位에 拜昭義軍節度使하고 封陳留郡王하야 食其俸于家라 卒贈太尉하다
葛從周는 梁나라에 벼슬하여 大將이 되어 수많은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으니, 用兵에 능통한 사람이라 이를 만하다.
葛從周는 자가 通美이고 濮州 甄城 사람이다. 어려서 黃巢를 따랐는데, 황소가 패하자 梁나라에 투항하였다.
後梁 太祖를 따라 蔡州를 공격할 때에 태조가 말에서 떨어지자 갈종주가 태조를 부축하여 다시 말에 태웠다가 적의 보병들과 싸우다 얼굴을 다쳤고 몸에는 몇 군데 창상을 입었는데,
偏將 張延壽가 곁에서 공격하여 갈종주가 태조와 함께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태조가 장수들을 모두 내쫒고 갈종주와 장연수를 大將으로 삼았다.
秦宗權이 潁州와 亳州를 공격하여 梁나라 병사와 焦夷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갈종주가 그 장수 王涓 한 사람을 사로잡고 朱珍을 따라 淄靑에서 병력을 모집해서 동쪽의 병사를 만날 때마다 싸워 주진이 군사를 온전히 수습하여 돌아왔으니, 갈종주의 공이 가장 높았다.
張全義가 河陽에서 李罕之를 습격하자 이한지가 晉나라로 달아나 晉나라 병사를 불러들여 장전의를 공격하였다. 장전의가 梁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자 太祖가 葛從周와 丁會 등을 보내 구원하여 沇河에서 晉나라 병사를 패퇴시켰다.
潞州의 馮霸가 晉나라의 守將 李克修를 죽이고 梁나라에 항복하니, 태조가 갈종주를 보내 노주로 들어가게 하였는데, 晉나라 병사가 공격하여 갈종주가 지키지 못하고 河陽으로 달아났다.
태조가 魏州를 공격함에 갈종주와 정회는 먼저 黎陽과 臨河를 함락시키고 內黃에서 태조와 만나 永定橋에서 위주의 병사를 패퇴시키고, 정회를 따라 宿州를 공격할 때에 水攻을 가해 그 성을 침수시켜 마침내 격파하였다.
태조가 兗州에서 朱瑾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지 못하고 갈종주를 남겨두어 포위하게 하였는데, 주근이 성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갈종주가 구원병이 당도했다고 거짓 소문을 내고 거짓으로 高吳로 피하였다가 한밤중에 몰래 성 아래로 돌아왔다.
주근이 갈종주가 이미 떠났다고 생각하고 이에 출병하여 外壕를 거두자 갈종주가 습격하여 천여 명을 죽였다.
晉나라가 魏州를 공격함에 위주의 사람들이 구원해주기를 청하니, 太祖가 侯言을 보내 위주를 구원하게 하였다. 그런데 후언이 洹水에 성채를 쌓자 태조가 후언이 출전하지 않는 것에 노하여 葛從周를 보내 후언을 대신하게 하였다.
갈종주는 軍營에 이르러 더욱 굳게 성채를 닫고서 출전하지 않고 세 개의 闇門을 뚫고 기다렸다. 晉나라 병사가 공격하자 갈종주가 정예병을 거느리고 암문을 통해 나와 晉나라 병사를 공격하여 패퇴시키니, 晉王이 노하여 스스로 군사를 거느리고 갈종주를 공격하였다.
갈종주는 비록 크게 패하였으나 梁나라 병사가 진왕의 아들 落落을 사로잡아 위주로 보내 참수하였다.
마침내는 옮겨가 鄆州를 공격하여 中都에서 朱宣을 사로잡았고 또 兗州를 공격하여 朱瑾을 패주시켰다. 태조가 〈唐 황제에게〉 表文을 올려 청하여 갈종주를 兗州留後로 삼았다.
兗州와 鄆州의 군사로 淮南을 공격할 때에 安豐으로 나가 淸口에서 龐師古와 만났다.
葛從周가 행군하여 濠州에 이르렀을 때에 방사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회군하여 渒河에 이르러 강을 건너려 하였는데, 회남의 군사가 추격해 오니 갈종주도 크게 패하였다.
이때에 晉나라 병사가 山東으로 나와 相州와 衛州를 공격하였는데, 太祖가 갈종주를 보내 山東의 땅을 공략하게 해서 洺州를 함락하여 刺史 邢善益을 참수하고,
또 邢州를 함락하여 자사 馬師素를 패주시켰으며, 또 磁州를 함락하여 자사 袁奉滔를 죽여 5일 만에 세 州를 함락하니, 태조가 이에 〈唐 황제에게〉 表文을 올려 갈종주가 邢州留後를 兼帶하게 하였다.
劉仁恭이 魏州를 공격하여 이미 貝州를 도륙하자 羅紹威가 梁나라에 원병을 청하니, 葛從周가 太祖와 만나 위주를 구원하기 위하여 위주로 들어갔다.
燕나라 군사가 館陶門을 공격하였는데, 갈종주가 500명의 기병으로 출전하며 말하기를 “큰 적이 앞에 있으니 어찌 돌아올 생각을 하겠는가.”라고 하고는 문을 닫게 한 뒤에 전투에 임하였다.
8개의 성책을 격파하자 燕나라의 군사가 달아나거늘 추격하여 臨淸에 이르러 御河에서 포위하니, 물에 빠져 죽은 군사들이 매우 많았다. 태조가 갈종주를 宣義行軍司馬로 삼았다.
太祖가 葛從周를 보내 滄州에서 劉守文을 공격하고 蔣暉로 그 군을 감독하게 하였다. 유수문이 그의 아버지 劉仁恭에게 구원을 청하자 유인공이 燕나라의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하니,
장휘가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나에게 장수들을 감독하게 하셨는데, 이제 燕나라 군사가 왔으니 맞이하여 싸워서는 안 된다. 의당 성에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어 모여서 창고의 곡식을 먹다 양쪽이 다 지치게 한 뒤에 취해야 한다.”라고 하니 장수들이 옳다고 여겼다.
갈종주가 노하여 말하기를 “兵營에는 上將이 있으니, 어찌 監軍이 함부로 말을 하는가. 또 장휘의 말은 바로 일상적인 말일 뿐이다. 승패의 기회는 나의 마음에 있으니, 장휘가 어찌 이를 알겠는가.”라고 하고,
이에 군사를 동원하여 乾寧에서 유인공을 맞이하여 老鴉堤에서 싸우니, 유인공이 크게 패하였다. 3만 명 정도의 수급을 베고 그 장수 馬愼交 등 100여 명과 말 3천 필을 노획하였다.
이때에 劉守文이 또한 晉나라에 구원을 청하니, 晉나라가 邢州와 洺州를 공격하여 葛從周를 견제하자 갈종주가 급히 회군하여 靑山에서 晉나라 군사를 패퇴시켰다.
마침내 太祖를 따라 鎭州를 공격하여 臨城을 함락시키니, 王鎔이 동맹을 청하였다. 태조가 表文을 올려 갈종주를 泰寧軍節度使로 삼아 氏叔琮을 따라 晉나라 太原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梁나라 군사가 서쪽으로 가 鳳翔을 공격하자 靑州의 王師範이 그 장수 劉鄩을 보내 兗州를 습격하였는데, 갈종주의 가솔들이 유심에게 사로잡혔는데 후하게 대우하고 죽이지 않았다.
태조가 봉상에서 돌아와 이에 갈종주를 보내 유심을 공격하니, 갈종주가 끝내 유심을 불러서 투항하게 하였다. 태조가 즉위함에 左金吾衛上將軍을 배수했다가 병으로 치사하고, 右衛上將軍에 배수하여 偃師에 머물렀다.
末帝가 즉위하여 昭義軍節度使에 배수하고 陳留郡王에 봉해져 집에서 녹봉을 받으며 살았다. 卒하자 太尉에 贈職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