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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7)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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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曆法尙矣 而夏商周 하야 爲曆固已不同이요 而其法不傳이라
蓋曆起於數하니 數者 自然之用也 其用無窮而無所不通하니 以之於律於易 皆可以合也 然其要在於候天地之氣하야 以知四時寒暑而仰察天日月星之行運하야 以相參合而已
然四時寒暑 無形而運於下하고 天日月星 有象而見于上하니 二者常動而不息이라 一有一無하고 出入升降 或遲或疾하야 不相爲謀하니 其久而不能無差忒者 勢使之然也
故爲曆者其始未嘗不精密이라가 而其後多疎而不合 亦理之然也 不合則屢變其法以求之 自堯舜三代以來 曆未嘗同也


역지에 관한
역법曆法은 유래가 오래되었다. 임금이 희씨羲氏화씨和氏에게 명하여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관찰하여 윤달을 두는 방식으로 사시四時를 정해 한 해를 이루니 그 일이 ≪서경書經≫에 간략히 드러나 있고, , , 삼대三代에는 삼통三統으로 정삭正朔을 개정하여 역법을 만든 것이 본래 이미 같지 않았던 데다 그 방법이 전해지지 않는다.
한대漢代에 역법을 만들 때에 이르러 비로소 81분모分母로 삼았는데 그 숫자는 황종黃鍾에서 기원起源하였으니 그 방법이 한결같이 음률音律에 근본한 것이었다. 그 후에 유흠劉歆이 다시 ≪춘추春秋≫와 역상易象을 가지고 그 숫자를 추산推算하여 합치시켰는데 대체로 억지로 갖다 맞춘 이었다. 당대唐代일행一行이 처음으로 대연大衍산법算法만을 사용한 때에 이르러서는 역술曆術이 다시 ≪주역周易≫에 근본하였다.
요堯임금요堯임금
대개 역법曆法에 기원하니 자연自然스러운 작용作用이다. 그 작용이 무궁하면서 통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이것으로 음률音律이나 에 적용하면 모두 합치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주요한 쓰임은 천지天地측후測候하여 사시四時, 한서寒暑를 알아 위로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관찰하여 상호 부합되도록 하는 데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사시, 한서는 형체가 없으면서 아래에서 변화하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은 형상이 있으면서 위에서 드러나니, 두 가지가 늘 움직이면서 쉬지 않는다. 하나는 형상이 있고 하나는 형상이 없으며 나가고 들어오며 오르고 내리는 것이 더디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여 서로 상의해 맞추지 않으니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오차가 없을 수 없는 것은 형세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법을 만든 것이 처음에는 정밀精密하지 않은 적이 없다가 이후에 엉성해지고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은 또한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부합하지 않으면 누차 그 방법을 변경하여 부합하기를 강구하니 , , 삼대三代 이래로 역법이 일찍이 같은 적이 없었다.


역주
역주1 曆志論 : 본 편은 〈曆志〉의 서론에 해당하는 글로, 신화적인 성격이 강한 上古 시대 曆法의 기원으로부터 唐代 이전까지의 변천 과정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史書에 나타나는 역법에 대한 논의의 시초는 ≪史記≫의 〈曆書〉이고, 이후 班固가 ≪漢書≫를 지으면서 ≪사기≫의 〈律書〉와 〈역서〉를 통합하여 〈律曆志〉를 지었다. ≪舊唐書≫에서는 〈曆志〉를 독립시키고 ≪新唐書≫와 마찬가지로 隋代까지의 변천을 한 단락으로 간단히 서술한 뒤, 당대의 역법으로 들어가 前史에서 傅仁均, 李淳風, 南宮說, 一行 이상 四家의 曆經을 가져다 曆志 4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역법은 각각 戊寅曆經, 麟德甲子元曆, 景龍曆, 開元大衍曆經으로 불렸는데 ≪구당서≫에서는 이 가운데 일행의 개원대연력이 千古를 지나도 어그러짐이 없다고 극찬하고서 경룡역을 제외한 나머지 세 역법의 내용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와 대비하여, ≪신당서≫ 〈역지〉에서는 당대 290여 년 동안 역법이 8번 바뀌었다고 말하면서, 戊寅元曆, 인덕갑자원력, 개원대연력, 寶應五紀曆, 建中正元曆, 元和觀象曆, 長慶宣明曆, 景福崇玄曆을 들고 이어지는 부분에서 이 역법들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역법은 시대가 내려올수록 천문을 관측하고 기후를 살피는 과정에서 推步하는 데 차이가 발생하여 이를 보정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후대에 새롭게 추보한 역법들에 여러 명칭이 붙게 되었다.
역주2 自堯命羲和……其事略見于書 : ≪書經≫ 〈虞書․堯典〉에 “이에 羲氏와 和氏에게 명하여 하늘의 운행을 공경히 따라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관찰하여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알려 주게 하였다.[乃命羲和 欽若昊天 曆象日月星辰 敬授人時]”라고 하였다.
역주3 以三統改正朔 : 三統은 夏나라의 正月은 寅月로 하였으니 人統이 되고, 商나라의 정월은 丑月로 하였으니 地統이 되고, 주나라의 정월은 子月로 하였으니 天統이 됨을 이른다. (≪論語集註≫ 〈爲政〉) 인월은 지금의 1월, 축월은 지금의 12월, 자월은 지금의 11월을 말한다. 正朔의 正은 한 해의 시작, 朔은 한 달의 시작을 말하는 것으로 제왕이 새로 반포하는 曆法을 말한다. 古代에 帝王이 易姓革命을 하면 반드시 정삭을 개정하였으므로 夏, 商, 周, 秦 및 漢나라 초기의 정삭은 저마다 같지 않았는데 漢 武帝 이후로 오늘날의 陰曆에 이르도록 모두 夏나라의 曆法을 사용하였다.
역주4 至漢造曆 始以八十一分爲統母 : 한 무제 太初 1년(B.C. 104)에 司馬遷의 주관 하에 鄧平, 洛下閎 등이 太初曆을 만들었는데 1回歸年이 365와 1539분의 385일과 같고, 1朔望月이 29와 81분의 43일과 같고, 1일을 81로 等分하였다. 그래서 이를 八十一分率曆이라고도 한다.
역주5 其數起於黃鍾之龠(약) : 黃鐘은 音價의 이름인데 서양의 7음계에서는 도쯤에 해당하고 동양의 5음계에서는 宮쯤에 해당한다. 황종의 음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대통으로 만든 黃鍾管으로, 황종관이 중요한 이유는 길이와 부피 등 도량형의 기본 단위가 되기 때문이다. 황종의 음가를 만들어 내는 황종관의 길이를 黃鐘尺이라 하여 길이의 단위로 삼았고, 검은 기장알 1천 2백개로 그 관을 가득 채울 때의 부피를 1龠이라 하였고 10약이 바로 1合으로 부피의 기본 단위가 되었다.
역주6 其後劉歆又以春秋易象……蓋傅會之說也 : 劉歆(?~23)은 前漢 沛 땅 사람으로, 字는 子駿인데, 후에 劉秀로 개명하고 자를 穎叔이라고 하였다. 劉向의 아들로, 어려서 詩書에 통달하여 부친과 함께 校書를 맡아 중국 최초의 도서분류목록인 ≪七略≫을 저술하였다. 曆法 등 數學에 밝아 ≪三統曆譜≫를 지었고 이전의 태초력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三統曆을 만들었다.
역주7 至唐一行始專用大衍之策 : 一行(683~727)은 唐 玄宗 때 高僧 大慧禪師의 이름이다. 이전에 쓰이던 麟德曆의 日食이 맞지 않자 현종의 명으로 각지의 緯度를 측정하여 15년 만에 새 曆書를 만들었는데 ≪周易≫ 大衍의 數를 인용해 설을 세웠으므로 ≪開元大衍曆≫이라 명명하고 반포하여, 728년~762년에 사용하였다. 참고로, 인덕력은 唐 高宗 麟德 2년(665)에 李淳風에게 명하여 제작 반포한 것으로, 이순풍은 관측에 매우 정밀하여 스스로 낙하굉의 태초력 이후 자신의 달력이 가장 정확하다고 자부하였으나 시행한 지 40년 만에 緯晷에 오차가 생겼다고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7)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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