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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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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中多名言하니 可爲世戒
嗚呼
自古 治世少而亂世多하니 三代之王有天下者皆數百年이로되 其可道者 數君而已어든
況於後世邪
況於五代邪
予聞長老爲予言하되
明宗雖出夷狄이나 而爲人純質하야 寬仁愛人하니 於五代之君 有足稱也
嘗夜焚香하야 仰天而祝하야 曰 臣本蕃人이니 豈足治天下리오
世亂久矣 願天早生聖人하소서하더라
自初卽位 減罷宮人伶官하고 廢內藏庫四方所上物하야 悉歸之有司하다
廣壽殿火災어늘 有司理之하야 請加丹하니 喟然嘆曰 天以火戒我하니 豈宜增以侈邪리오하다
歲嘗旱이라가 已而雪이러니 暴坐庭中하야 詔武德司하야 宮中無得掃雪하고 曰 此天所以賜我也라하다
數問宰相等民間疾苦하고 聞道等言穀帛賤民無疾疫하면 則欣然曰 吾何以堪之리오
當與公等作好事以報上天이라하다
吏有犯贓이면 輒置之死하야 曰 此民之蠹也라하고
以詔書褒廉吏孫岳等하야 以風示天下하니 其愛人恤物 蓋亦有意於治矣
其卽位時 春秋已高하야 不邇聲色하며 不樂遊하고
在位十年이니 於五代之君 最爲長世
兵革粗息하고 年屢豐登하야 生民實賴以休息이라
性果하야 仁而不明이라 屢以非辜誅殺臣下
至於從榮父子之間하얀 不能慮患爲防하야 而變起倉卒이어늘 卒陷之以大惡하고
帝亦由此飮恨而終하니
當是時하야 大理少卿 上疏言時事 其言曰 爲國家者 有不足懼者五 深可畏者六이니
三辰失行 不足懼 天象變見 不足懼 小人訛言 不足懼 山崩川竭 不足懼 水旱蟲蝗不足懼也
賢士藏匿 深可畏 四民遷業 深可畏 上下相徇 深可畏 廉恥道消 深可畏 毁譽亂眞 深可畏 直言不聞 深可畏也라하니
識者皆多澄言切中時病이러라
若從榮之變 等之死 可謂上下相徇而毁譽亂眞之敝矣
然澄之言 豈止一時之病이리오
凡爲國者可不戒哉


07. 《오대사五代史》 〈당명종기唐明宗紀〉에 대한
중간에 명언名言이 많으니 세상의 경계가 될 만하다.
아.
예로부터 치세治世는 적고 난세亂世는 많으니, 삼대三代의 왕이 천하天下를 소유한 것이 모두 수백數百 이로되 말할 만한 사람은 두세 군주뿐이다.
하물며 후세에랴.
하물며 오대五代에랴.
나는 장로長老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는 것을 들었다.
명종明宗이 비록 이적夷狄 출신이지만 사람됨이 순질純質하여 관인寬仁하고 사람을 사랑하니 오대五代의 임금 중에서 칭송받기에 충분하다.
일찍이 밤에 향을 피우고 하늘을 우러러 축원하여 ‘이 본래 변방국 사람이니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난세가 오래 지속되니 원컨대 하늘에서 빨리 성인聖人을 내려주십시오.’ 하였다.”
처음 즉위한 때로부터 궁인宮人영관伶官을 감축하고, 내장고內藏庫사방四方에서 상납하는 재물을 폐지하여 모두 유사有司에게 귀속시켰다.
광수전廣壽殿화재火災가 발생하자 유사有司가 다스려 단청을 더하기를 청하니, 한숨지으며 탄식하기를 “하늘이 화재로 나를 경계하니, 어찌 사치함을 더하리오?”라고 하였다.
한 해의 날씨가 일찍이 가물다가 이윽고 눈이 내리니, 궁전 뜰 가운데 폭좌暴坐하여 무덕사武德司에 명하여 궁중宮中에 눈을 쓸어내지 못하게 하고,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수차례 재상宰相 풍도馮道 등에게 민간民間질고疾苦를 묻고, 풍도 등이 “곡식과 비단은 흔하고 백성들은 질고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흔연히 기뻐서 “내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마땅히 등과 더불어 좋은 일을 하여 상천上天에 보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관리 가운데 장물죄를 범한 자가 있으면 곧바로 사형에 처하면서 “이는 백성의 좀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청렴한 관리 손악孫岳 등에게 조서를 내려 포상하면서 천하에 훈시訓示하니, 그 사람을 사랑하고 백성을 긍휼히 여김이 대개 또한 치세治世에 뜻이 있는 것이다.
명종明宗이 즉위할 때에 나이가 이미 많아 성색聲色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유전遊畋을 즐기지 않았다.
그리고 재위在位가 10년이니 오대五代의 임금 중에 가장 오래 정치하였다.
전쟁이 조금 잦아들고 해마다 풍년이 들어 민생이 이에 힘입어 편안해졌다.
그러나 이적夷狄이 품성이 과감하여 어질지만 총명하지 못하여 누차 죄가 없이 신하를 주살하였다.
종영從榮부자간父子間에 이르러서는 환란에 대비하지 못하여 창졸간에 변란이 일어났다가 끝내 반란의 대악大惡으로 함몰되었다.
명종 역시 이 때문에 통한을 머금고 세상을 마쳤다.
이때에 대리소경大理少卿 강징康澄상소上疏하여 시사時事를 말하였는데 그중에 “국가를 다스리는 자에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 다섯이 있고, 심히 두려워해야 할 것이 여섯이 있습니다.
삼신三辰이 궤도를 벗어난 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고, 천문天文에 이변이 나타나는 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고, 소인小人의 유언비어는 두려워할 것이 없고, 산이 무너지고 시내가 마르는 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고, 가뭄이 들고 메뚜기가 창궐하는 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현사賢士가 숨는 것은 심히 두려워할 만한 것이고, 사민四民이 생업을 잃는 것은 심히 두려워할 만한 것이고, 상하上下가 무턱대고 서로 따르는 것은 심히 두려워할 만한 것이고, 염치廉恥의 도가 없어지는 것은 심히 두려워할 만한 것이고, 비방과 칭찬이 진실을 어지럽히는 것은 심히 두려워할 만한 것이고, 직언直言을 듣지 않는 것은 심히 두려워할 만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식자識者들이 모두 강징康澄의 말이 시병時病을 정확히 지적한 것을 훌륭하게 여겼다.
종영從榮의 변란에 임환任圜안중회安重誨 등이 죽은 일과 같은 것은 상하上下가 무턱대고 서로 따르고 비난과 칭찬이 진실을 어지럽히는 폐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강징의 말이 어찌 단지 한 시대의 병을 지적한 것에 그치겠는가.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五代史唐明宗論 : 이 글은 《新五代史》 〈唐明宗紀〉의 傳論이다. 後唐 明宗은 沙陀部 사람으로 본명은 邈佶烈이다. 李克用의 양자가 되어 李嗣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戰功으로 관직이 馬步軍總管에 올랐다. 莊宗 李存勗이 변란에 피살되자 이름을 亶으로 바꾸고 황제가 되었다. 글 가운데 명종의 품성이 근검하고 인후한 것을 칭찬하였으나, 사리가 분명하지 못해 무고한 신하를 주살한 것에 대해서는 몹시 비판하였다.
역주2 : 확
역주3 馮道 : 자는 可道이다. 五代시대의 宰相 馮道가 일생 동안 唐ㆍ晉ㆍ契丹ㆍ漢ㆍ周, 이렇게 五朝의 재상으로 六帝를 섬긴 인물이다. 풍도는 長樂老라 自號하여 스스로 매우 영화롭게 여겼는데, 歐陽脩가 《新五代史》를 편찬할 때 풍도의 傳記를 雜傳에 넣고, 염치없는 자라고 혹평하였다.
역주4 : 전
역주5 夷狄 : 後唐 明宗이 오랑캐 출신이기 때문에 경멸하는 뜻에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역주6 康澄 : 後唐 明宗 때 大理少卿을 맡았다는 것 외에는 상고할 수 없다.
역주7 任圜 : 京兆 三原 사람이다. 後唐 莊宗 당시 工部尙書를 맡았고, 명종 때에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올랐다. 뒤에 安重誨에게 피살당했다.
역주8 安重誨 : 應州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後唐 明宗을 섬겨 총애를 받았다. 명종이 즉위하자 兵部尙書와 中書令을 맡았다. 뒤에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다가 참소를 받아 죽었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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