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 漢東僻陋
하야 無學者
요 吾家又貧
하야 無藏書
라
州南有大姓李氏者하니 其子堯輔頗好學일새 予爲兒童時에 多遊其家하야 見有弊筐貯故書在壁間하고 發而視之라가
得唐昌黎先生文集六卷하니 脫落顚倒하야 無次序라 因乞李氏以歸하야 讀之에 見其言深厚而雄博이라
然予猶少하야 未能悉究其義요 徒見其浩然無涯가 若可愛러라
是時
에 이라 能者取科第擅名聲
하야 以誇榮當世
요 未嘗有道韓文者
라
因取所藏韓氏之文하야 復閱之하고 則喟然歎曰 學者當至於是而止爾라하고
因怪時人之不道로되 而顧己亦未暇學이요 徒時時獨念于予心하야 以謂方從進士干祿하야 以養親하니
遂相與作爲古文할새 因出所藏昌黎集而補綴之하야 求人家所有舊本而校定之러니
其後天下學者亦漸趨於古라 而韓文遂行於世가 至于今히 蓋三十餘年矣라 學者非韓不學也하니 可謂盛矣로다
嗚呼라 道固有行于遠而止於近하며 有忽于往而貴于今者하니 非惟世俗好惡之使然이라 亦其理有當然者하니
而孔孟惶惶于一時나 而師法於千萬世라 韓氏之文이 沒而不見者二百年而後에 大施于今하니
此又非特好惡之所上下라 蓋其久而愈明하야 不可磨滅이라 雖蔽于暫이나 而終耀于無窮者는 其道當然也라
予之始得於韓也에 當其沈沒棄廢之時하니 予固知其不足以追時好而取勢利라
於是에 就而學之하니 則予之所爲者가 豈所以急名譽而干勢利之用哉리오 亦志乎久而已矣라
故予之仕가 於進不爲喜退不爲懼者는 蓋其志先定이니 而所學者宜然也라
하니 文字刻畫
이 頗精於今世俗本
이나 而脫繆尤多
라 凡三十年間
에 聞人有善本者
하면 必求而改正之
러니
其最後卷帙不足이어늘 今不復補者는 重增其故也라 予家藏書萬卷이로되 獨昌黎先生集이 爲舊物也라
嗚呼라 韓氏之文之道는 萬世所共尊이요 天下所共傳而有也니 予於此本에 特以其舊物而尤惜之하노라
나는 어린 시절 漢東에서 살았는데 漢東은 궁벽하고 누추해서 學者가 없었고 우리 집이 또 가난하여 藏書가 없었다.
州의 남쪽에 大姓인 李氏 집이 있었는데, 그 아들 堯輔가 자못 학문을 좋아하였기에 내가 아이였을 때 그 집에 자주 놀러가서 벽 사이에 오래된 책들이 담겨 있는 낡은 상자가 있는 것을 보고 꺼내어 보다가,
唐나라 ≪昌黎先生文集≫ 6卷을 찾았는데 빠져 있고 뒤섞여 있어서 순서가 없었다. 그래서 李氏에게 빌려 가지고 돌아와 읽어봄에 그 말이 深厚하고 雄博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아직 어려서 그 뜻을 다 알지는 못하였고, 그저 가없이 드넓은 것이 좋아할 만함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이때
天下의
學者들이
楊億과
劉筠의 작품을
時文이라고 불렀다. 이
時文을 잘 짓는 이는
科第에 급제하고
名聲을 차지하여
當世에 영화를 뽐냈고
韓愈의 문장을 말하는 자들은 있지 않았다.
韓愈(≪晩笑堂畫傳≫)
나 또한 바야흐로 進士試에 應擧하면서 禮部에서 규정하는 詩賦를 배우는 데 종사하여 나이 열일곱에 州에서 시험을 보고서 시험관에게 낙제를 받았다.
이 일로 인해 보관하고 있던 韓氏의 문장을 가져다 다시 읽어보고 한숨을 쉬고 탄식하면서 “學者는 마땅히 여기에 이르러 그칠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지금 사람들이 한유를 말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으나 나 또한 이를 배울 겨를이 없었고, 그저 때때로 내 마음에 품고서 지금 당장은 進士를 통해 녹봉을 구해 어버이를 봉양해야 하니
만약 녹봉을 얻게 되면 마땅히 이 문장에 진력하여 평소의 뜻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7년 뒤에 進士試에 應擧하여 及第해서 洛陽에서 벼슬살이를 하였는데 尹師魯의 同流들이 모두 있었다.
마침내 서로 더불어 古文을 지을 때 이로 인하여 보관하고 있던 ≪昌黎集≫을 꺼내어 정리해 보완하고 어떤 집에서 소유하고 있는 舊本을 구하여 校定하였는데,
그 뒤로 천하의 學者들이 또한 점차 古文으로 관심이 향하는지라 韓愈의 문장이 마침내 세상에 유행한 것이 지금까지 30여 년이 되었다. 學者들이 韓愈가 아니면 배우지 않게 되었으니 盛行한다고 이를 만하다.
아, 道는 진실로 먼 후대에는 유행하게 되면서도 가까운 시대에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과거에는 홀시되다가 지금에서야 존귀해지는 경우가 있다. 세속 사람들의 好惡가 그렇게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이치가 마땅히 그러한 점이 있으니,
孔子와 孟子가 생전에 뜻을 펴려고 애태웠으나 후세에야 영원토록 師表가 된 것이다. 韓氏의 문장이 죽어서 드러나지 못한 지 2백 년 뒤인 지금에서야 크게 유행하니,
이는 또 好惡가 變化無常한 것일 뿐만 아니라 대체로 悠久할수록 더욱 분명해져서 없애버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비록 잠시 동안은 가려지더라도 끝내 무궁한 후세에 밝게 빛나는 것은 그 道가 마땅히 그러한 것이다.
내가 처음 韓愈의 문장을 얻어 보았을 때는 그 문장이 묻혀 있고 버려진 때였으니 내가 족히 時俗의 嗜好를 따르고 권세와 이익을 취할 수 없음을 참으로 잘 알고 있었다.
이에 그 문장을 가져다 놓고 배웠으니 내가 하는 일이 어찌 名譽를 급급하게 취하고 권세와 이익을 구하는 데 쓰고자 해서였겠는가. 또한 悠久한 데 뜻을 둔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의 벼슬살이의 자세가 관직에 나아감이 기쁨이 되지 않고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두려움이 되지 못한 것은, 대체로 그 뜻이 먼저 정해져 있어서이니 배운 바가 의당 그러한 것이었다.
한유의 문집이 본래 蜀에서 나왔으니 文字의 刻畫이 지금 세상의 俗本보다 퍽 정밀하였으나 誤脫은 더욱 많았다. 내가 30년 동안 善本을 소장한 이가 있다는 말만 들으면 반드시 구하여 고치고 바로잡았다.
그렇지만 최후에 卷帙이 부족한데도 지금 다시 보충하지 않은 것은 그 舊本의 본모습에서 권수를 더하는 일을 신중하게 여겨서였다. 우리 집에는 藏書가 만 권이나 되지만 유독 ≪昌黎先生集≫이 유래가 오랜 서책이다.
아, 韓氏의 文과 道는 萬世의 후인들이 함께 尊崇하는 것이고 천하 사람들이 함께 전하면서 소유하는 것이니, 내가 이 本에 대해 특히 유래가 오랜 서책이라는 이유로 더욱 아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