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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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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태서泰誓〉에 대한
反覆剖晳이라
반복해 말하여 자세히 분석하였다.
書稱商始咎周以乘黎하니 乘黎者
서경書經》에 나라가 와 싸워 이긴 것을 나라가 허물하기 시작하였다고 일컬었으니, 와 싸워 이긴 자는 서백西伯이다.
西伯以征伐諸侯爲職事하니 其伐黎而勝也 商人已疑其難制而惡之하야 使西伯赫然見其不臣之狀하야 與商竝立而稱王이어늘
서백이 제후를 정벌하는 것을 직책으로 삼았는데, 그가 여를 정벌하여 이겼을 때에 상나라 사람이 이미 그를 제어하기 어렵다고 의심하고 미워해서, 서백으로 하여금 분명히 신복臣服하지 않는 상태를 드러내어 상나라와 병립하여 이라고 일컫게 하였다.
如此十年 商人反晏然不以爲怪하고 其父師老臣如之徒 亦黙然相與熟視而無一言하니 此豈近於人情邪
그런데 이와 같이 한 지 10년 만에 상나라 사람이 도리어 편안하여 괴이하게 여기지 않고, 조이祖伊미자微子와 같은 부사父師노신老臣들도 묵묵히 서로 더불어 익히 보고 한마디 말도 없었으니, 이 어찌 인정人情에 가깝겠는가.
由是言之컨대 謂西伯受命稱王十年者 妄說也
이로 말미암아 말하건대, 서백이 천명天命을 받아 왕이라 일컬은 지 10년이라고 한 것은 망령된 설이다.
以紂之雄猜暴虐으로어늘 西伯聞之竊歎하니 遂執而囚之하야 幾不免死하고
의 시기심과 포학함으로 구후九侯는 죽여 육젓을 담그고 악후鄂侯는 포를 떠서 죽였는데, 서백西伯이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탄식하니 주왕이 드디어 서백을 잡아 가두어 거의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至其叛己不臣而自王하얀 乃反優容而不問者十年 此豈近於人情邪
서백이 자신을 배반하여 신복臣服하지 않고 스스로 이라 일컫기에 이르러, 곧 도리어 관용寬容을 베풀어 따져 묻지 않은 지가 10년이라는 것이 어찌 인정仁情에 가깝겠는가.
由是言之컨대 謂西伯受命稱王十年者 妄說也
이로 말미암아 말하건대, 서백이 천명天命을 받아 왕이라 일컬은 지 10년이라고 한 것은 망령된 설이다.
孔子曰 이라하니 使西伯不稱臣而稱王이면 安能服事於商乎리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천하를 3분하여 그 둘을 소유하고서도 나라를 섬겼다.”라고 하였으니, 가령 서백西伯신하臣下라고 일컫지 않고 이라고 일컬었다면 어찌 복종하여 나라를 섬겼겠는가.
且謂西伯稱王者 起於何說
또 생각건대, 서백이 왕이라고 일컬은 것이 어떤 설에서 비롯된 것인가.
而孔子之言 萬世之信也
공자의 말씀은 만세의 신표이다.
由是言之컨대 謂西伯受命稱王十年者 妄說也
이로 말미암아 말하건대, 서백이 천명天命을 받아 왕이라고 일컬은 지 10년이라고 한 것은 망령된 설이다.
伯夷叔齊 古之知義之士也
백이伯夷숙제叔齊는 옛적의 를 아는 선비이다.
막 나라를 사양하고 떠나서 천하를 돌아봄에 돌아갈 곳이 없었으므로 서백西伯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 가서 귀의하였다.
當是時하야 紂雖無道 天子也
이때에 주왕紂王이 비록 무도하였으나 천자天子였다.
天子在 上諸侯不稱臣而稱王 是僭叛之國也
천자가 계시는데 상제후上諸侯가 신하라고 일컫지 않고 왕이라고 일컬은 것은 바로 참람되고 반역한 나라인 것이다.
然二子不以爲非하고 依之久而不去라가 하야 始以爲非而棄去하니
그러나 백이와 숙제가 그릇되게 여기지 않고 오래도록 의지하여 떠나지 않다가 무왕武王주왕紂王을 정벌하기에 이르러 비로소 그릇되게 여겨 버리고 떠났다.
彼二子者始顧天下 莫可歸일새 卒依僭叛之國而不去하야 不非其父하고 而非其子하니 此豈近於人情邪
저 백이와 숙제가 처음 천하를 돌아볼 때에 돌아갈 곳이 없었으므로 마침내 참람되고 반역한 나라에 의지하여 떠나지 않아, 그 아버지인 문왕文王을 그릇되게 여기지 않고 그 아들인 무왕을 그릇되게 여겼으니, 이것이 어찌 인정에 가깝겠는가.
由是言之컨대 謂西伯受命稱王十年者 妄說也
이로 말미암아 말하건대, 서백이 천명을 받아 왕이라고 일컬은 지 10년이라는 것은 망령된 설이다.
書之泰誓 稱十有一年이어늘 說者因以謂自文王受命九年及武王居喪二年 幷數之爾
서경書經》 〈주서周書 태서泰誓〉에 11년이라고 일컬었는데, 설명하는 자가 인하여 문왕文王천명天命을 받은 9년으로부터 무왕武王거상居喪한 2년까지를 아울러 헤아렸다고 여겼던 것이다.
是以 西伯聽 謂之受命이라하야 以爲元年하니 此又妄說也
이런 까닭으로 서백西伯의 송사를 다스린 것을 천명을 받았다고 하여 원년元年으로 삼았으니, 이는 또 망령된 설이다.
古者 人君 卽位必稱元年 常事爾 不以爲重也어늘 後世曲學之士 說春秋 始以改元爲重事
옛적에 인군人君이 즉위하면 반드시 원년元年이라고 일컬은 것은 예사로운 일이지 중대한 일이 아닌데, 후세에 곡학曲學하는 선비가 《춘추春秋》에 비로소 원년을 고친 것을 중대한 일이라고 말하였다.
然則果常事歟
그렇다면 과연 예사로운 일인가.
固不足道也
진실로 말할 것이 없다.
果重事歟
과연 중대한 일인가.
西伯卽位 已改元矣 中間不宜改元이어늘 而又改元하고 至武王卽位하얀 宜改元이어늘 而反不改元하고 乃上冒先君之元年하야 幷其居喪하야 稱十一年하고 及其滅商而得天下하얀 其事大於聽訟 遠矣어늘 又不改元하니
서백이 즉위함에 이미 개원改元하였으니 중간에 개원해서는 안 되는데 또 개원하였고, 무왕이 즉위하기에 이르러서는 개원해야 하는데 도리어 개원하지 않고 곧 위로 선군先君원년元年을 그대로 써서 거상居喪한 기간까지 아울러 11년이라 일컬었고, 나라를 멸하여 천하天下를 얻음에 이르러서는 그 일이 송사訟事를 다스린 것보다 현격하게 중대한데도 또 개원하지 않았다.
由是言之컨대 謂西伯以受命之年爲元年者 妄說也
이로 말미암아 말하건대, 서백이 천명을 받은 해를 원년으로 삼았다는 것은 망령된 설이다.
後之學者 知西伯生不稱王而中間不再改元하니 粲然明白而不誣矣
후일의 학자가 서백西伯이 살아서 왕이라고 일컫지 않고 중간에 거듭 개원改元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 실린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일이 찬연히 명백하여 속이지 않은 것이다.
或曰 然則武王畢喪伐紂어늘 而泰誓曷謂稱十有一年 對曰 畢喪伐紂 出於諸家之小說이요 而泰誓 之明文也
혹자가 묻기를 “그렇다면 무왕武王문왕文王의 상을 마치고 주왕紂王을 정벌하였는데 〈태서泰誓〉에 어찌 11년이라고 일컬었는가?”라고 하기에, 대답하기를 “상을 마치고 주왕을 정벌한 것은 제가諸家의 천박하고 보잘것없는 에서 나온 것이고, 〈태서〉는 육경六經의 분명한 문장이다.
昔者 孔子當衰周之際하야 患衆說紛紜하야 以惑亂當世
옛적에 공자孔子나라가 쇠퇴한 때에 뭇 설이 분분해서 당세를 혼란스럽게 만들까 근심하였다.
於是 退而修六經하야 以爲後世法이러니 及孔子旣歿하야 去聖稍遠而衆說復興하야 與六經相亂이라
이에 물러나 육경六經을 편수하여 후세의 법칙을 세웠는데, 공자가 이미 돌아가시기에 이르러 성인과의 거리가 조금 멀어지자 뭇 설이 다시 일어나서 육경六經과 뒤섞이게 되고 말았다.
自漢以來 莫能辯正하니 今有卓然之士 一取信乎六經이면 則泰誓者 武王之事也 十有一年者 武王卽位之十有一年爾 復何疑哉리오
나라 이후로 변별하여 바로잡지 못하였는데, 지금 특출한 선비가 한번 육경六經에서 믿음을 취한다면 〈태서〉라는 것은 무왕의 일이고, 11년이라는 것은 무왕이 즉위한 11년일 뿐이니, 다시 어찌 의심하겠는가.
司馬遷作周本紀 雖曰武王卽位九年 祭於文王之墓然後 治兵於盟津이라하고 至作伯夷列傳하얀 則又載父死不葬之說하니 皆不可爲信이라
사마천司馬遷이 〈주본기周本紀〉를 지을 때에 비록 무왕이 즉위한 9년에 문왕의 묘소에 제사한 뒤에 맹진盟津에서 열병閱兵하였다고 하고, 〈백이열전伯夷列傳〉을 짓기에 이르러서는 또 아버지가 죽고 장례 지내지 않았다는 설을 실었으니, 모두 믿을 수 없다.
是以 吾無取焉하니 取信於書 可矣
이런 까닭으로 내가 취하지 않으니 《서경》에서 믿음을 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泰誓論 : 이 글은 비록 〈泰誓論〉이라고 하였으나, 실제 논한 바는 《書經》 〈周書 泰誓〉편 첫 구의 ‘惟十有一年’이 마침내 文王 11년인지 아니면 武王 11년인지 하는 문제이다.
역주2 西伯 : 周 文王이다. 성은 姬, 이름은 昌이다. 商 紂王 때 서방의 方伯이 되었기 때문에 西伯이라고 칭한 것이다.
역주3 祖伊 : 商나라의 대신으로, 현신인 祖己의 후손이다.
역주4 微子 : 商나라의 대신으로, 紂王의 庶兄이다. 이름은 啓이고, 微에 봉해졌으므로 微子 혹은 微子啓라고 일컫는다.
역주5 醢(해)九侯而脯鄂侯 : 九侯와 鄂侯는 모두 商 紂王 때의 제후이다. 구후에게 예쁜 딸이 있었는데 紂王에게 시집보냈다. 구후의 딸이 음란함을 좋아하지 않자 주왕이 노하여 죽이고 구후를 죽여 육젓을 담았다. 鄂侯는 강하게 爭論하고 빠르게 辯論하였는데 아울러 악후를 포를 떠서 죽였다. 西伯 昌이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탄식하였는데, 崇侯 虎가 이를 알아서 고하였다. 이에 紂가 서백을 羑里에 가두었다. 구후는 鬼侯라고도 한다. 《史記 권3 殷本紀》
역주6 三分天下……以服事商 : 周 文王이 商 紂王에게 신하로 복종함을 말한다. 孔子가 말하기를 “문왕은 천하를 3분하여 그 둘을 소유하였는데도 복종하여 殷나라를 섬겼으니, 주 문왕의 덕은 지극한 덕이라고 이를 만하다.”라고 하였다. 《論語 泰伯》
역주7 伯夷叔齊……共往歸之 : 《史記》 권61 〈伯夷列傳〉에 “伯夷와 叔齊는 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아버지가 아우인 숙제를 왕위에 세우고자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졸한 뒤에 숙제가 왕위를 형인 백이에게 사양하였다. 백이가 말하기를 ‘아버지의 명이다.’ 하고는 달아나버렸다. 숙제 또한 왕위에 오르려 하지 않고 달아나버렸다. 나라 사람들이 둘째 아들을 왕으로 세웠다. 이에 백이와 숙제가 西伯 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어찌 가서 귀의하지 않았겠는가.”라고 하였다.
역주8 至武王伐紂 : 《史記》 권61 〈伯夷列傳〉에 “西伯이 죽고 그의 아들 武王이 시호를 文王이라고 추존한 아버지의 나무 위패를 수레에 받들어 싣고 동쪽으로 紂王을 정벌하려고 하였다. 伯夷와 叔齊가 무왕의 말고삐를 부여잡고 간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孝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하는 것을 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무왕 좌우에 있던 시위자들이 이들의 목을 치려고 하였다. 이때 姜太公이 ‘이들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하며, 그들을 보호하여 돌려보내 주었다. 무왕이 殷나라의 난리를 평정한 뒤에 천하가 周나라를 宗主로 받들었으나, 백이와 숙제는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의리를 지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首陽山에 은거하며 고사리를 캐서 먹었다.”라고 하였다.
역주9 虞芮之訟 : 周나라 초기에 虞나라와 芮나라 임금이 田畓의 경계 문제로 爭訟하였으나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였다. 당시의 西伯인 文王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이에 두 사람이 주나라로 갔다. 주나라 국경에 들어가니, 밭을 가는 사람들은 밭의 경계를 양보하고, 길 가는 사람들은 길을 양보하였으며, 그 都邑에 들어가니, 남녀가 길을 달리하고 머리가 반백이 된 자가 짐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 朝廷에 들어가니, 士는 大夫가 되기를 사양하고, 大夫는 卿이 되기를 사양하였다. 두 나라 임금이 감동하여 서로 말하기를 “우리들은 小人이다. 君子의 조정을 밟을 수 없다.”라고 하고, 드디어 돌아와서는 다투던 토지를 사양하여 閒田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詩集傳 大雅 緜》
역주10 詩書所載文武之事 : 《詩經》의 〈文王〉, 〈大明〉, 〈緜〉, 〈文王有聲〉과 《서경》의 〈泰誓〉, 〈牧誓〉에 실려 있는 文王과 武王의 일을 말한다.
역주11 六經 : 《詩經》, 《書經》, 《周易》, 《禮記》, 《樂記》, 《春秋》를 말한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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