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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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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장망지章望之에 대한 서문
典實이라
전아典雅하고 질실質實하다.
嘗以其名望之來請字曰 願有所敎使得以勉焉而自勗者라하야늘
교서랑校書郞 장군章君이 ‘망지望之’라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와서 를 지어달라고 하며 말하기를 “제가 면려勉勵하여 스스로 힘쓸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予爲之字曰表民이라하고 而告之曰
내가 그를 위해 ‘표민表民’이라 를 지어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古之君子所以異乎衆人者 言出而爲民信하며 事行而爲世法하고 其動作容貌 皆可以表於民也
옛날의 군자君子중인衆人들과 달랐던 까닭은 말을 하면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고 일을 하면 세상에 법도가 되고 그 동작과 용모가 모두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以爲首容하며 以爲行容하며 衣裳以爲身容하고
그래서 굉연紘綖면변冕弁으로 머리의 의용儀容을 삼으며 패옥珮玉결환玦環으로 행동의 의용을 삼으며 의상衣裳보불黼黻로 몸의 의용을 삼는다.
手有手容하며 足有足容하고 莫不有容하고
손에는 손의 의용이 있으며 발에는 발의 의용이 있고 읍양揖讓하고 등강登降하며 헌수獻酬하고 부앙俯仰함에 의용이 없는 경우가 없다.
又見其寬柔溫厚剛嚴果毅之色하야 以爲仁義之容하고 服其服하며 載其車하야
또 그 관유寬柔온후溫厚, 강엄剛嚴과의果毅한 낯빛을 드러내어 인의仁義의 의용을 삼고 법도에 맞는 복장을 입으며 규정에 맞는 수레를 타고서
立乎朝廷而正君臣하며 出入宗廟而臨하야
조정朝廷에 서서 군신간을 바로잡고 종묘宗廟에 출입하며 대사大事를 행하여
하야 曰 此吾民之所尊也라하나니
엄숙하게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모두 외경畏敬하면서 “이 사람이 우리 백성들이 존경하는 분이다.”라고 말하니,
非民之知尊君子 而君子者能自修而尊者也
백성들이 군자를 존경할 줄 알아서가 아니고 군자가 스스로 수신修身하여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然而行不充于內하며 德不備於人이면 雖盛其服하며 文其容이라도 民不尊也니라
그런데 행실이 내면에 충만하지 않고 이 신체에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비록 그 복장을 성대하게 하고 그 의용을 꾸미더라도 백성들이 존경하지 않는다.
名山大川 一方之望也 天下之望也
명산名山대천大川은 한 지방地方이 우러르는 것이고 산천山川 가운데 악독嶽瀆천하天下가 우러르는 것이다.
故君子之賢於一鄕者 一鄕之望也 賢於一國者 一國之望也 名烈著于天下者 天下之望也 功德被於後世者 萬世之望也
그러므로 군자 가운데 한 향리鄕里에서 어진 자는 한 향리가 우러르는 사람이고, 한 국가에서 어진 자는 한 국가가 우러르는 사람이며, 천하에 명절名節공적功績이 드러난 자는 천하가 우러르는 사람이고, 후세에 공덕이 미치는 자는 만세가 우러르는 사람이다.
孝慈友悌達于一鄕古所謂 一鄕之望也 春秋之賢大夫 一國之望也
효자孝慈우제友悌가 한 향리에 두루 알려진 옛날의 이른바 향선생鄕先生이라는 자는 한 향리가 우러르는 사람이고, 춘추春秋시대의 어진 대부로서 나라의 계량季良, 나라의 자산子産 같은 이는 한 국가가 우러르는 사람이다.
位于中而姦臣賊子不敢竊發于外如 出入將相 朝廷以爲輕重하고 天下繫其安危 天下之望也
조정에 자리함에 간신姦臣적자賊子가 외부에서 감히 몰래 일어나지 못했던 나라의 대장군大將軍 같은 이와, 변방에 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조정에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어 그의 존부存否로 조정의 무게가 결정되고 천하의 안위安危가 달려 있었던 나라의 배승상裴丞相 같은 이는 천하가 우러르는 사람이다.
其人已沒하고 其事已久하되 聞其名하고 想其人 若不可及者 是也 其功可以及하고 其道可以師百王하야 雖有賢聖이라도 莫敢過之者 周孔是也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그 일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그 이름을 듣고 그 사람을 상상해봄에 마치 미칠 수 없을 듯한 자는 이 이런 사람들이고, 그 만세萬世에 전해질 만하고 그 백왕百王의 본보기가 될 만하여 비록 현인과 성인이더라도 감히 그들보다 더 뛰어날 수 없는 자는 주공周公공자孔子가 이런 분들이다.
此萬世之望而皆所以爲民之表也니라
이들은 만세가 우러르는 사람들로 모두 백성들의 본보기가 되는 분들이다.
에 이르기를 “어진 이는 그 원대한 것을 안다.”라고 하였는데,
章君儒其衣冠하야 氣剛色仁하고 好學而有志하니 其絜然修乎其外하고 而煇然充乎其內하야 以發乎文辭하면
장군章君유자儒者의관衣冠을 입고서 기운이 굳세고 낯빛이 인자하며 학문을 좋아하고 품은 뜻이 있으니, 맑게 그 외면을 정제하고 찬란하게 그 내면을 가득 채워 문사文辭로 드러낸다면
則又辯博放肆而리라
언변言辯이 풍부하고 유창하면서도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 것이다.
是數者皆可以自擇而勉焉者也 是固能識夫遠大者矣
이 몇 가지는 모두 스스로 선택하여 힘쓸 수 있는 것들이니 이것이 참으로 원대한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雖予何以勗焉이리오
비록 나라고 한들 어떻게 면려하겠는가.
第因其志하야 廣其說하야하노라
단지 장군章君의 뜻을 인하여 그 설을 넓혀서 자를 지어달라는 청에 부응한다.
역주
역주1 : 이 글은 宋 仁宗 慶曆 3년(1043)에 지은 것이다. 이해 6월 歐陽脩는 滑州에서 召命을 받고 돌아와 太常丞으로 옮겼다가 知諫院事가 되었다.
章望之는 字가 表民으로 建州 浦城 사람이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었는데 학문을 좋아하였고 議論에 뛰어났다. 처음에 杭州茶庫監官이 되었는데 질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났을 때 모친상을 당했다. 뒤에 歐陽脩와 韓絳 등이 그의 재주를 높이 사 조정에 천거하여 관직이 大理評事에 이르렀고 光祿寺丞으로 致仕했다. 《宋史》에 傳記가 있다.
字는 옛사람이 冠禮를 치르고 성인이 되어 받던 것으로 이름과 그 의미가 서로 호응하도록 짓는다.
역주2 校書郞章君 : 바로 章望之이다. 《宋史》 권443 〈列傳 文苑5 章望之傳〉에는 “처음에 伯父 得象을 통해 蔭補로 祕書省校書郞, 杭州茶庫監官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역주3 紘綖冕弁 : 머리에 하는 裝飾이다. 紘은 古代에 冠冕에 붙여 턱 아래로 묶는 끈인데, 이 끈의 양쪽 끝을 비녀로 묶었다. 綖은 고대에 冠冕을 싸는 裝飾을 가리킨다. 冕은 禮帽이고, 弁은 皮革으로 만든 모자이다.
역주4 珮玉玦環 : 의복에 차는 玉制의 장식물이다. 環은 고리 모양으로 만든 옥이고, 玦은 고리 모양이면서 고리의 한 부분이 잘려 있는 옥이다. ‘珮’는 本集에 ‘佩’로 되어 있다.
역주5 黼黻 : 고대에 예복에 刺繡하는 花紋으로, 黼는 흑색과 백색이 반씩 나뉘어 있는 花紋이고, 黻은 청색과 흑색이 錯綜되어 있는 花紋이다.
역주6 揖讓登降 獻酬俯仰 : 고대에 네 가지 종류의 禮節을 가리키는 것으로, 揖讓은 相見할 때 拱手하여 禮를 표하는 것이고, 登降은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며, 獻酬는 본인이 술을 마시고 남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고, 俯仰은 고개를 숙였다 올리면서 周旋하며 응대하는 것이다.
역주7 大事 : 祭祀를 말한다. 옛날에는 祭祀와 戰爭을 국가의 大事라고 일컬었다.
역주8 儼然人望而皆畏之 : 本集에는 ‘皆’가 ‘人’과 ‘望’ 사이에 있다.
역주9 山川之嶽瀆 : 중국의 五嶽과 四瀆을 말한다. 오악은 동쪽의 岱宗山(泰山), 남쪽의 衡山, 서쪽의 華山, 북쪽의 恒山, 중앙의 嵩高山을 말하고, 사독은 長江, 黃河, 淮河, 濟水를 말한다.
역주10 鄕先生 : 年老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사는 사람으로, 《儀禮》 〈士冠禮〉 鄭玄의 주석에는 “卿大夫에서 致仕한 鄕中의 노인이다.[鄕中老人爲卿大夫致仕者]”라고 하였다.
역주11 若隋之季良鄭之子産者 : 季良은 춘추시대 隋나라의 大夫인데, 자세하지 않다. 子産은 公孫僑로 鄭나라의 귀족 子國의 아들이다. 簡公 12년(B.C. 554)에 卿이 되고, 13년(B.C. 553)에 執政하여 개혁을 추진, 田地의 경계와 물길을 정돈하여 농사를 진흥시켰다. 뒤에 또 ‘丘’에 기준하여 조세를 징수하는 제도를 도입하였고 솥에 새긴 ‘刑書’를 公布하였으며 鄕校를 毁撤하지 않고 나라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정나라를 진흥시켜 세상 사람들이 그 어짊을 칭송하였다. 本集에는 ‘隋’가 ‘隨’로 되어 있다.
역주12 漢之大將軍 : 漢 武帝 때의 대장군 霍光을 말한다. 곽광은 字가 子孟으로 河東 平陽 사람이다. 무제 때 奉車都尉가 되었다. 昭帝가 즉위할 때 그는 桑弘羊과 함께 국정을 보좌하라는 무제의 遺詔를 받고 大司馬 大將軍의 중임을 맡았다. 昭帝가 崩御한 뒤에는 昌邑王을 황제로 세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폐위시키고 다시 맞아들여 宣帝를 세웠다. 전후로 20년 동안 執政하였다.
역주13 唐之裴丞相 : 唐 憲宗 때의 재상 裴度를 가리킨다. 字는 中立이고 河東 聞喜 사람이다. 貞元 연간에 進士가 되어 監察御史를 거쳐 御史中丞으로 승진하였다. 藩鎭을 약화시킬 것을 힘써 주장하여 재상이 되었다. 元和 12년(817) 군대를 이끌고 蔡州를 공격하여 吳元濟를 사로잡자 河北의 藩鎭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대부분 臣服하였다. 그래서 이후로 唐代 藩鎭들의 반란 국면이 잠시 진정되었다. 만년에 宦官의 專權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 洛陽에서 살았다.
역주14 夔龍稷契(설) : 夔와 龍은 虞舜의 두 신하로 夔는 樂官이고 龍은 諫官이라 전한다. 稷은 바로 后稷으로 周나라의 시조이다. 전설에 邰氏의 딸 姜嫄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懷妊하여 稷을 낳았는데 기이한 일이라 하여 버려졌기 때문에 棄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곡식을 잘 심어 堯‧舜의 農官이 되었다. 契은 전설에 商나라의 시조로 帝嚳의 아들인데 모친은 簡狄이다. 禹임금을 도와 治水에 공로가 있어 司徒에 임명되어 文敎를 주관하였다.
역주15 : 本集에는 ‘百’으로 되어 있다.
역주16 傳曰 其在賢者識其大者遠者 : 《論語》 〈子張〉에 “자공이 말하였다. ‘文王과 武王의 道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아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어진 이는 그 큰 것을 알고 있고 그렇지 못한 자는 그 작은 것을 알고 있어 모두 문왕과 무왕의 도를 보존하고 있다.’[子貢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라고 하였다.
역주17 不流 : 本集에는 ‘無涯’로 되어 있다.
역주18 塞請 : 本集에는 이 뒤에 ‘慶曆三年六月日序’ 8자가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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