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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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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조택지祖擇之에게 답한 편지
中多名言하니 吾覽之 當刺心縮頸이라
내용 중에 명언名言이 많으니, 내가 읽어봄에 심장이 칼에 찔리고 목이 움츠러드는 것 같다.
脩啓하노라
는 말씀드립니다.
秀才人至 蒙示書一通幷詩賦雜文兩冊하고 諭之曰 一覽以爲如何오하니
보냈던 수재秀才가 돌아오는 편에 편지 한 통과 시부詩賦잡문雜文 두 책을 보내주셨고, 편지에서 “한번 읽어보고서 어떻다고 생각합니까?”라 하셨습니다.
某旣陋 不足以辱好學者之問하고 又其少賤而長窮하니 其素所爲 未有足稱以取信於人이라
나는 이미 비루한 사람이라 학문을 좋아하는 분의 물음을 받을 자격이 없고, 게다가 젊을 때 신분이 미천하고 오래도록 곤궁하였으니 평소에 지은 글이 일컬어져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에 부족하였습니다.
亦嘗有人問者 以不足問之愚어늘 而未嘗答人之問이러니 足下卒然及之
그래도 묻는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한 점으로 나에게 물어도 그들의 질문에 답한 적이 없었는데, 족하가 갑작스레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是以 愧懼不知所言이라
이런 까닭에 부끄럽고 두려워 말할 바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雖然不遠數百里하야 走使者以及門 意厚禮勤하니 何敢不報리오
비록 그렇지만 수백 리 길을 멀다 않고 심부름꾼을 나의 집에 보냄에 그 뜻이 근후勤厚하고 그 지성至誠스러우니, 어찌 감히 답하지 않겠습니까.
某聞이요 篤敬然後能自守 能自守然後果於用이요 果於用然後不畏而不遷이라
나는 듣건대 옛날의 학자는 반드시 그 스승을 무섭게 여겼다 하니, 스승이 무서워야 도가 높아지고, 도가 높아야 공경하는 마음이 독실해지고, 공경하는 마음이 독실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자기 견해를 주장하는 데 과감하고, 자기 견해를 주장하는 데 과감해야 두려워하지 않아 뜻이 옮겨가지 않는 법입니다.
三代之衰 學校廢 至兩漢하야 師道尙存이라
삼대三代의 세상이 쇠미衰微해지자 학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으나, 양한兩漢에 이르러서도 사도師道는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학자들이 저마다 전공하는 경서經書를 지키면서 스스로 자기 견해를 주장하였습니다.
是以 漢之政理文章與其當時之事後世莫及者 其所從來 深矣
이런 까닭에 나라의 정치‧문장과 그 당시의 사적事跡을, 후세에서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 소종래所從來가 깊습니다.
後世 師法漸하고 而今世無師하니 則學者不尊嚴이라
후세에는 사법師法이 점차 쇠하여졌고 오늘날 세상에는 올바른 스승이 없으니, 학자가 높여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故自輕其道하니 輕之則不能至하고 不至則不能篤信하고 信不篤則不知所守하고 守不固則有所畏而物可移
그러므로 학자들이 자기의 도를 스스로 가볍게 여기니, 가볍게 여기면 그 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 도에 도달하지 못하면 독실하게 믿지 못하고,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면 지킬 바를 알지 못하고, 지키는 것이 견고하지 못하면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 사물이 그 뜻을 옮길 수 있습니다.
是故 學者惟俯仰徇時하야 以希祿利爲急하야 至於忘本趨末流而不返하나니
이런 까닭에 학자들은 오직 시속時俗의 추이에 따라 움직이면서 녹리祿利를 희구하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근본根本을 잊고 말류末流로 달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데 이릅니다.
夫以不信不固之心으로 守不至之學하니 雖欲果於自用이나 莫知其所以用之之道어든 又況有祿利之誘刑禍之懼以遷之哉
대저 믿지 못하고 견고하지 못한 마음으로 아직 도달하지 못한 학문을 지키니, 비록 스스로 자기 견해를 주장하고자 해도 주장하는 도를 알지 못하는데, 게다가 녹리祿利의 유혹과 형화刑禍의 두려움이 그 뜻을 옮김에 있어서이겠습니까.
此足下所謂志古知道之士世所鮮而未有合者 由此也
족하가 말한 “옛것에 뜻을 두고 도를 아는 선비가 세상에 드물고 뜻이 맞는 이가 없다.”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足下所爲文 用意甚高하야 卓然有不顧世俗之心하고 直欲自到於古人하니 今世之人 用心如足下者有幾
족하가 지은 글은 그 뜻이 매우 높아 우뚝이 세속을 돌아보지 않는 마음이 있고 곧장 스스로 고인古人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니, 오늘날 세상 사람이 마음을 쓰는 것이 족하와 같은 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렇고 보면 향리鄕吏 중에 족하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자가 누구이겠으며, 교유하는 벗들 사이에 족하의 의론을 내게 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學不師則守不一하고 議論不博則無所發明而究其深이라 足下之言高趣遠 甚善이라
학문에 스승을 섬기지 않으면 학문을 지킴이 전일하지 못하고, 의론이 넓지 못하면 이치를 밝혀서 깊이 궁구할 수 없으니, 족하의 말이 높고 지취旨趣심원深遠한 것은 매우 좋습니다.
然所守未一而議論未精하니 此其病也
그러나 지키는 바가 전일하지 못하고 의론이 정밀하지 못하니, 이것이 병통입니다.
竊惟足下之交游 能爲足下稱才譽美者不少어늘 今皆捨之하고 遠而見及이라 乃知足下是欲求其不至하니 此古君子之用心也
삼가 생각건대 족하가 교유하는 벗들 중에서 족하에 대해 재주와 좋은 점을 칭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터이거늘, 지금 모두 버리고 멀리 나를 찾았기에 족하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이는 옛날 군자의 마음 씀입니다.
是以 言之不敢隱이로라
이런 까닭에 나도 말하고 감히 숨기지 않았습니다.
夫世無師矣 學者當師經이니라
대저 세상에 옳은 스승이 없으니 학자들은 경서經書를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다.
師經必先求其意 意得則心定하고 心定則道純하고 道純則充於中者實하고 中充實則發爲文者輝光하고 施於事者果毅 三代兩漢之學 不過此也
경서를 스승으로 삼을 때는 반드시 그 뜻을 찾아야 하니, 뜻을 알면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가 순수해지고, 도가 순수해지면 마음속이 충실하고, 마음속이 충실하면 발휘하여 지은 글이 광휘光輝롭고 일에 시행하는 것이 강의剛毅하게 되니, 삼대三代양한兩漢의 학문은 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足下患世未有合者而不棄其愚하야 將某以爲合이라
족하는 세상에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여 자신의 우직함을 버리지 않고 나를 자신과 합치시키려 하셨습니다.
故敢道此하노니 未知於足下之意合否
그래서 감히 이런 말을 하였는데,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족하의 뜻에 합치하는지요?
역주
역주1 答祖擇之書 : 이 글은 仁宗 康定 원년(1040)에 쓴 것이다. 이해 6월에 歐陽脩는 武成軍 節度判官으로 있다가 召命을 받고 京師로 돌아와 館閣校勘이 되어 《崇文總目》을 편찬하는 일을 맡았다. 祖擇之는 이름은 無擇이고 上蔡 사람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孫復에게서 經術을 배우고 穆修에게서 문장을 배웠고 進士試에 급제하였다. 袁州 수령으로 있을 때 學官을 세워서 생도들을 유치하여 교육하였는데, 이 일로 당세에 이름이 알려졌다. 《宋史 권331 祖無擇傳》
역주2 古之學者……道尊然後篤敬 : 《禮記》 〈學記〉에 “무릇 학문의 도는 스승을 무섭게 여기는 것이 어려우니, 스승이 무서워야 도가 높아지고 도가 높아야 백성들이 학문을 공경할 줄 안다.[凡學之道 嚴師爲難 師嚴然後道尊 道尊然後民知敬學]”라고 하였다.
역주3 至兩漢……各守其經以自用 : 漢나라 때 田何는 《易經》에 조예가 깊었고, 伏生은 《尙書》에 조예가 깊었고, 齊‧魯‧韓‧毛의 四家는 《詩經》에 조예가 깊었다.
역주4 : 本集에는 ‘壞’자로 되어 있다.
역주5 鄕曲之中……謂誰 : 여기서 두 ‘謂’가 本集에는 ‘爲’자로 되어 있다. ‘交游之間 能發足下之議論者 謂誰’는 ‘벗들 중에서 족하로 하여금 의론을 내게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라는 말이니, 이를테면 족하와 함께 토론할 만한 벗이 드물 것이라는 뜻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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