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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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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내제집內制集》에 대한 서문
有老成人之言在
노성老成한 사람의 말이 있다.
嘗以謂朝廷之官 雖宰相之重이라도 皆可雜以他才處之어니와
옛날에 전사공錢思公이 일찍이 “조정의 관원은 비록 재상의 중임重任이라도 모두 다양한 인재를 섞어 쓸 수 있지만
惟翰林學士 非文章이면 不可라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만은 문장文章에 재능 있는 선비가 아니면 불가하다.”라고 하였고,
思公自言爲此語하야 頗取怒於達官이나 然亦自負以爲至論이라
전사공錢思公이 스스로 말하기를 “이 말을 하여 고관高官들에게 퍽 노여움을 샀다.”라고 하였지만 또한 지론至論이라 자부하였다.
今學士所作文書 多矣
지금 한림학사翰林學士가 지은 문서가 많다.
至於하얀 必用老子浮圖之說하며 往往近於家人里巷之事하고 取便於宣讀하야 常拘以世俗所謂하니 其類多如此
청사靑詞재문齋文에 이르러서는 노자老子부도浮圖의 설을 반드시 사용하고, 기양祈禳비축祕祝은 왕왕 민간과 세속의 일에 가깝고, 제조制詔는 선포하여 읽는 데에 편의를 위하여 세속에서 이른바 사륙문四六文이라는 것으로 늘 국한하여 지었으니, 이런 종류의 글들은 대부분 이와 같다.
然則果可謂之文章者歟
그렇다면 과연 문장이라 할 수 있겠는가.
予在翰林六年이라
내가 한림원翰林院에 재직한 기간은 6년이다.
이요 而天下無事 四夷和好하야 兵革不用이라
그 사이에 두세 명의 대신大臣을 등용하였지만 모두 마침 내가 조령詔令을 지을 순번에 있지 않았고, 천하에 일이 없음에 사이四夷가 화목하여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凡朝廷之文所以指麾號令訓戒約束 自非因事 無以發明이온
지휘指揮, 호령號令, 훈계訓戒, 약속約束 등에 사용하는 조정의 글은 본래 일로 인한 것이 아니면 글을 지어 천명闡明할 수 없다.
矧予中年早衰하야 意思零落이어늘 以非工之作으로 又無所遇以發焉하니 其屑屑應用하고 拘牽常格하야 卑弱不振 宜可羞也
하물며 나는 중년에 일찍 노쇠하여 생각이 쇠락해졌는데, 잘 짓지 못하는 글로써 또 일을 만나 발명한 것이 없으니, 일의 수요에 부응하기 급급하고, 일반적인 글의 격식에 구애되어 문장이 나약하여 기세를 떨치지 못한 것이 의당 부끄럽다.
然今文士尤以翰林爲榮選이라
그러나 지금 문사文士들은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용되는 것을 영화로운 선발이라 여긴다.
予旣罷職 院吏取予直草하야 以日次之하야 得四百餘篇이라 因不忍棄
내가 파직罷職된 뒤에 한림원翰林院의 아전이 내가 지은 초고草稿를 가지고 날짜별로 정리하여 400여 편을 모았으므로 차마 버리지 못하였다.
況其上自朝廷內及宮禁으로 下曁蠻夷海外 事無不載하고有所略而不記 未必不有取於斯焉이라
더구나 위로는 조정朝廷 안과 궁금宮禁으로부터 아래로 만이蠻夷해외海外에 이르기까지 수록하지 않은 일이 없고, 시정기時政記일력日曆기거랑起居郞사인舍人이 내용을 생략하고 기록하지 않은 것을 여기에 반드시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嗚呼
오호라!
予且老矣 方買田淮潁之間하니
나는 또 노쇠하였는지라 바야흐로 회수淮水영주潁州 사이에 전답을 구매하였다.
若夫涼竹簟之暑風 曝茅簷之冬日 睡餘支枕하야 念昔平生仕宦出處하고 顧瞻玉堂 如在天上이라
대자리 위에서 더운 바람을 식히고 처마 밑에서 겨울 햇볕을 쬐는 〈한가한 생활을 할 때에〉 잠에서 깨어 베개를 고이고서 옛날 평생 사환仕宦의 출처를 생각하고, 옥당玉堂을 뒤돌아봄에 마치 천상天上에 있는 듯하였다.
因覽遺稿하야 見其所載職官名氏하야 以較其人盛衰先後 孰在孰亡이면 足以知榮寵爲虛名而資笑談之一噱也 亦因以誇於田夫野老而已로다
인하여 유고遺稿를 보면서 수록되어 있는 직관職官명씨名氏를 보고서 그 사람의 성쇠盛衰선후先後와 누가 살아 있고 누가 죽었는지를 비교해보면 영광榮光총애寵愛허명虛名이라 담소하며 웃음거리가 되기에 족할 뿐임을 알겠고, 또한 인하여 시골 농부나 노인들에게 자랑이나 할 수 있을 뿐이다.
역주
역주1 : 이 글은 宋 仁宗 嘉祐 6년(1061) 8월 2일에 지은 것이다. 歐陽脩는 仁宗 至和 원년(1054) 9월에 翰林學士가 되어 6년간 재직하다 嘉祐 5년에 파직되었다. 이듬해에 翰林學士 시절에 지었던 詔令 400여 편을 편집하여 《內制集》이라 명명하고 서문을 지었다. 內制는 唐宋시대의 제도로서, 翰林學士가 조서를 관장한 것을 말한다.
역주2 錢思公 : 思는 錢惟演(977~1034)의 諡號이다. 北宋 杭州 臨安 사람으로 字는 希聖이다. 吳越王 錢俶의 아들이며, 아버지를 따라 宋나라에 귀순하여 右神武將軍을 역임했다. 관직은 知制誥, 翰林學士, 樞密副使 등을 역임했다. 저서에 《典懿集》, 《金坡遺事》, 《家王故事》 등이 있다. 錢惟演의 처음 시호는 文墨이었는데, 思로 개정하였고 다시 文僖로 개정하였다.
역주3 靑詞齋文 : 靑詞는 天子가 제사를 지내면서 天神에게 고하는 글인데, 朱筆로 靑藤紙에 쓰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唐나라 李肇가 쓴 《翰林志》에 “太淸宮 道觀이 고하는 글은 청등지에 붉은 글씨로 쓰는데 이를 靑詞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 일종의 문체가 되었다. 齋文은 祭壇을 쌓아놓고 제사를 지낼 때에 읽는 祭文을 이른다.
역주4 祈禳祕祝 : 祈禳은 복을 구하고 재앙을 없애기 위해 축원하는 글을 이르고, 祕祝은 暗中에 축원을 비는 글을 이르는데, 이 두 가지 글도 內制가 작성한다.
역주5 制詔 : 帝王의 命令을 이르는데, 《史記》 권6 〈秦始皇本紀〉에 “命을 制라 하고, 令을 詔라 한다.”라고 하였다.
역주6 四六之文 : 중국의 六朝와 唐나라 때 성행한 문체인 騈儷文을 가리킨다. 4字‧6字로 대구를 맞추기 때문에 四六文이라고 한다.
역주7 中間進拜二三大臣 皆適不當直 : 歐陽脩가 翰林院에 재직한 6년 동안 두세 명의 대신이 翰林院에 임명되었지만, 이때에 歐陽脩는 詔令을 지을 순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詔令을 짓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8 時政記日曆 : 時政記는 時政에 있어서 역사상 자료가 될 만한 것을 史官이 기록한 것으로 宰相 및 執政官이 관장한다. 日曆은 史官이 날짜별로 조정의 사무를 기록한 책으로, 唐 永貞 1년(805)에 사관에게 짓도록 명한 것이 처음이다. 日曆은 時政記ㆍ起居注와 여러 관청의 關報를 모아 엮으며, 후일 會要의 편찬과 實錄의 편찬, 그리고 本紀와 列傳을 편찬할 때에 반드시 日曆을 기초 자료로 삼았다. 宋나라의 경우 日曆의 편찬은 著作郞과 著作佐郞이 담당하였다. 《宋史 권164 職官志4 祕書省》
역주9 起居郞舍人 : 起居郞은 官名으로 天子의 언행을 기록하는데 門下省 소속이다. 舍人은 起居舍人으로 관장하는 일은 起居郞과 같은데 中書省 소속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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