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유미당有美堂에 대한 기문記文
胸次淸曠하야 洗絶古今이라
흉차가 맑고 넓어 시원스럽기가 고금에 으뜸이다.
嘉祐二年 龍圖閣直學士 尙書吏部郞中 出守于杭할새 於其行也 天子寵之以詩
가우嘉祐 2년에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 상서이부낭중尙書吏部郞中 매공梅公이 외직으로 나가 항주杭州 수령이 되었는데, 그가 임지로 갈 때에 천자가 총애하여 시를 하사하였다.
於是 始作有美之堂하니 蓋取賜詩之首章而名之하야 以爲杭人之榮이라
이에 비로소 유미당有美堂을 지으니, 대개 하사받은 시 첫 장의 말을 가지고 명명하여 항주杭州 사람들의 영광으로 삼은 것이다.
然公之甚愛斯堂也 이러니
그러나 이 이 당을 몹시 아꼈기에 비록 항주杭州를 떠났지만 잊지 못하였다.
今年遣人走京師하야 命予誌之하야
올해 금릉金陵에서 사람을 경사京師로 보내 나에게 기문記文을 써줄 것을 요청하였다.
其請 至六七而不倦이어늘 予乃爲之言曰
그가 예닐곱 번 청하면서도 지치지 않거늘, 내가 그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夫擧天下之至美與其樂 有不得而兼焉者多矣
대저 천하의 지극히 아름다운 것과 즐거운 것을 들어서 말해본다면 둘 다 아울러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故窮山水登臨之美者 必之乎寬閑之野寂寞之鄕而後 得焉하고 覽人物之盛麗하며 夸都邑之雄富者 必據乎四達之衝舟車之會而後 足焉이라
그러므로 산에 오르고 물에 임하는 아름다움을 궁구窮究하는 자는 반드시 한가한 들과 적막한 마을로 간 뒤에 얻고, 인물人物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고 도읍의 웅장하고 부유함을 과시하는 자는 반드시 사통팔달한 길과 배와 수레가 모이는 곳에 거주한 뒤에 만족한다.
蓋彼放心於物外하고 而此娛意於繁華하야 二者各有適焉이라
대개 저들은 물외物外에 마음을 풀어놓고 이들은 번화繁華함에 마음을 즐거워하여 두 사람이 각각 뜻에 맞는 것이 있다.
이나 其爲樂 不得而兼也
그러나 그 즐거움은 둘 다 아울러 가지지는 못한다.
今夫所謂羅浮天台衡岳廬阜 洞庭之廣 三峽之險 號爲東南奇偉秀絶者어늘 乃皆在乎下州小邑僻陋之邦하니 此幽潜之士窮愁放逐之臣之所樂也
지금 저 이른바 나부산羅浮山, 천태산天台山, 형산衡山, 여산廬山과 드넓은 동정호洞庭湖와 험준한 삼협三峽은 동남쪽에서 기이하고 수려하다고 일컬어지건만 이에 모두 하주下州소읍小邑으로 궁벽하고 누추한 지방에 있으니, 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선비와 찬축竄逐되어 곤궁하게 사는 신하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若乃四方之所聚 百貨之所交 物盛人衆하야 爲一都會하고 而又能兼有山水之美하야 以資富貴之娛者 惟金陵錢塘이라
사방이 모이는 곳과 온갖 재화가 교역되는 곳에 물산이 풍성하고 사람이 많아 하나의 도회지를 이루고, 게다가 산수山水의 아름다움까지 겸하여 부귀한 이들이 즐길 만한 곳이 되는 고을은 오직 금릉金陵전당錢塘뿐이다.
러니 及聖宋受命 海內爲一하얀 今其江山雖在 而頹垣廢址 荒烟野草 過而覽者 莫不爲之躊躇而悽愴이라
그러나 이 두 고을은 모두 난세에 적도들에게 빼앗겼는데, 우리 천명天命을 받아 해내海內가 통일됨에 이르러서는 금릉金陵후주後主가 독을 먹고 주륙誅戮을 당하였는지라, 지금 강산江山은 비록 남아 있지만 무너진 담과 폐허가 된 땅에 연무와 들풀을 지나가면서 보는 사람들이 서성이며 서글퍼하지 않는 이가 없다.
오직 전당錢塘만은 오대五代시대부터 중국을 존중하여 신하로 순종하는 직분을 다할 줄 알았는데, 망함에 이르러서는 머리를 조아리고 명령을 청하여 굳이 간과干戈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今其民 幸富完安樂하고 又其俗習工巧하야 邑屋華麗 蓋十餘萬家 環以湖山하야 左右映帶하고
그러니 지금 그곳의 백성들이 다행히 부유하고 안락하며 또 습속이 공교工巧로워 화려한 고을의 가옥이 대개 10여만 나 되고, 고을이 호산湖山으로 둘러싸여 좌우에 경치가 아름답다.
風帆浪舶 出入於江濤浩渺烟雲杳靄之間하니 可謂盛矣
그리고 민주閩州의 장사치와 해상무역을 하는 자들의 돛단배와 선박들이 넘실대는 강물결과 자욱한 연무煙霧 사이를 출입하니 성대하다 이를 만하다.
而臨是邦者 必皆朝廷公卿大臣若天子之侍從이요 又有四方遊士 爲之賓客이라
이 고을에 부임한 자들은 반드시 모두 조정의 공경대신公卿大臣 및 천자의 시종신侍從臣이었고, 또 세상에 노니는 선비들이 찾아왔다.
故喜占形勝治亭榭하야 相與極遊覽之娛
그러므로 승경지勝景地를 점유하여 정각亭閣대사臺榭를 짓고서 함께 노닐며 바라보는 즐거움을 극진히 하기를 좋아하였다.
然其於所取 有得於此者 必有遺於彼로되 獨所謂有美堂者 山水登臨之美 人物邑居之繁 一寓目而盡得之
그러나 선택에 따라 이것을 얻을 경우 반드시 저것을 버려야 하는데, 이른바 유미당有美堂만은 산을 오르고 물에 임하는 아름다움과 인물人物과 주택의 번화함을 한눈에 모두 볼 수 있다.
蓋錢塘 兼有天下之美하고 而斯堂者又盡得錢塘之美焉하니 宜乎公之甚愛而難忘也로다
대개 전당錢塘이 천하의 아름다움을 겸유했고, 이 유미당有美堂은 게다가 전당錢塘의 아름다움까지 모두 얻었으니, 공이 몹시도 아껴 잊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梅公 淸愼好學君子也 視其所好 可以知其人焉이로다
매공梅公은 청렴하고 신중하며 학문을 좋아하는 군자인지라 그가 좋아하는 바를 봄에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荊川云
형천荊川이 말하였다.
如累九層之臺 一層高一層하니 眞是奇絶이로다
“예컨대 9층 누대를 쌓을 때 한 층 한 층 높아지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뛰어난 작품이다.”
역주
역주1 : 이 글은 嘉祐 4년(1059)에 지은 것이다. 嘉祐 2년(1057)에 梅摯가 杭州를 다스리게 되었는데, 宋 仁宗이 “땅에 吳山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동남쪽 최고의 주이다.[地有吳山美 東南第一州]”라는 시를 하사하였다. 이에 梅摯가 吳山에 당을 짓고 ‘有美’라고 명명하고서 歐陽脩에게 記文을 부탁하였는데, 2년 뒤에 歐陽脩가 記文을 완성하였다.
역주2 梅公 : 梅摯를 가리킨다. 자는 公儀, 成都 新繁 사람이다. 여러 번 右諫議大夫에 천거되었다.
역주3 雖去而不忘 : 嘉祐 2년에 杭州를 다스리다가 嘉祐 4년에 江寧府를 다스리게 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4 金陵 : 江寧府의 治所가 金陵에 있다.
역주5 惟金陵錢塘 然二邦皆僭竊於亂世 : 金陵은 지금 南京市에 있고, 錢塘은 지금 杭州市에 있다. 五代時代에 李昪이 金陵에 나라를 세우고는 南唐이라 국호를 정하였고, 錢鏐가 錢塘에 나라를 세우고는 吳越이라 국호를 정하였다.
역주6 金陵以後服見誅 : 宋 太祖 開寶 7년(974)에 南唐의 後主인 李煜에게 入朝할 것을 고유하였는데 李煜이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에 大將 曹彬과 潘美 등을 보내 南唐을 공격하게 하였다. 다음 해 봄에 宋나라 병사가 金陵을 포위하였고, 그해 11월에 金陵을 함락시키고 李煜을 사로잡아 汴京으로 보냈다. 후에 李煜은 太宗이 보낸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사망하였다.
역주7 獨錢塘……不煩干戈 : 五代十國 가운데 하나인 吳越은 건국 초기부터 중국에 나아와 신하로 복종하였고, 宋 太祖 때에는 京師로 조회를 왔으며, 太宗 太平興國 3년(978)에는 錢俶이 땅과 백성을 宋나라에 바치고 歸附하였다.
역주8 閩商海賈 : 福建省 일대에서 해상무역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杭州는 바다와 가깝고 閩州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해상무역을 할 수 있는 중요한 항구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