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협주峽州 지희정至喜亭에 대한 기문記文
極力摹寫蜀之險之不測하야 以形出人情喜幸之至此하니 文字布置斡旋之法이라
땅의 헤아리기 어려운 험고함을 힘을 다해 모사摹寫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기뻐하고 다행스러워함을 드러낸 것이 이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문장을 배치하고 주선하는 법이다.
하야 以險爲虞하고 以富自足하야 舟車之迹 不通乎中國者 五十有九年이라
오대五代 때에 참국僭國이 되어 지형이 험고한 것으로 방비를 삼고 물산이 풍부한 것으로 자족하여, 배와 수레의 자취가 중국에 통하지 못한 것이 59년 세월이다.
宋受天命하야 一海內 四方次第平이라
나라가 천명天命을 받아 해내海內를 통일함에 사방四方이 차례로 평정되었다.
太祖改元之三年 始平蜀하니 然後蜀之絲枲織文之富 衣被於天下하야 而貢輸商旅之往來者 하야 不絶于萬里之外
태조太祖께서 개원改元한 지 3년에 비로소 촉이 평정되니, 연후에 촉 땅의 풍부한 생사生絲로 짠 문양 있는 직물 같은 물산의 혜택이 천하에 두루 미쳐서, 공물을 운반하는 수레와 상인들의 왕래가 육로 운송은 진봉로秦鳳路를 통하고 뱃길은 민강岷江을 통하여 만 리 밖까지 끊이지 않았다.
岷江之來 合蜀衆水하야 出三峽爲荊江하야 傾折回直하고 捍怒鬪激하야 束之爲湍이요 觸之爲旋이라
민강岷江이 흘러옴에 촉의 뭇 물길과 합쳐져 삼협三峽으로 나와 형강荊江이 되어, 물줄기가 기울어져 꺾이고 돌기도 하고 곧게 가기도 하면서 성난 듯 싸우는 듯 거칠고 격렬하여, 〈흐름이 좁을 길을 통과하느라〉 묶이게 되면 급류가 되고 〈바위나 암벽 같은 곳에〉 부딪히면 굽이쳐 흐른다.
順流之舟 頃刻數百里라가 不及顧視하야 一失毫釐하야 與崖石遇 則糜潰漂沒하야 不見蹤迹이라
물길을 따라가던 배가 순식간에 수백 리를 가다가 미처 살피지 못하고서 한번 털끝만큼이라도 실수하여 바위와 부딪히게 되면, 배가 산산조각이 나 파편은 뜨고 선체며 사람은 가라앉아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된다.
故凡蜀之可以充內府供京師而移用乎諸州者 皆陸出이요 而其羡餘不急之物 乃下于江 若棄之然하니 其爲險且不測 如此
그러므로 무릇 촉에서 내부內府를 채우고 경사京師에 공급하여 여러 에 옮겨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은 모두 육로로 운반해내고, 그 나머지 급하지 않은 물건들은 이에 강을 통해 내려보내기를 마치 버리는 물건인 것처럼 하니, 그 험난하고 헤아릴 수 없음이 이와 같다.
夷陵爲州 當峽口하니 江出峽하야 始漫爲平流
이릉夷陵이라는 고을은 삼협三峽의 입구에 있으니, 강이 삼협三峽을 나와 비로소 완만해져 평탄한 물줄기가 된다.
故舟人至此者 必瀝酒再拜相賀하야 以爲更生이라
그러므로 이곳에 당도한 뱃사람들은 반드시 술을 뿌리며 재배하고 서로 축하하면서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尙書虞部郞中朱公 再治是州之三月 作至喜亭于江津하야 以爲舟者之停留也하고 且誌夫天下之大險 至此而始平夷하야 以爲行人之喜幸이러라
상서우부낭중尙書虞部郞中 주공朱公이 이 협주峽州를 다시 다스리게 된 지 석 달째에 강나루에 지희정至喜亭을 지어 뱃사람들이 머무르는 장소로 삼고, 또 대저 천하의 큰 험고함이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평탄해져 행인行人들이 기뻐하고 다행으로 여김을 기록하였다.
이릉夷陵은 진실로 작은 고을이다.
廩與俸皆薄하고 而僻且遠하니 雖有善政이라도 不足爲名譽以資進取어늘
관름官廩봉록俸祿이 모두 박하고 지역도 외지고 머니, 비록 선정善政을 펼치더라도 명예로워서 승진의 밑천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朱公 能不以陋而安之하고 其心又喜夫人之去憂患而就樂易하니 로다
그런데도 주공朱公은 비루하다 여기지 않고서 편안히 하고, 그 마음이 또 사람들이 우환을 떠나 즐겁고 편안한 데로 나아오는 것을 기쁘게 여겼으니, 《시경詩經》의 이른바 개제군자愷悌君子라는 것이다.
自公之來 歲數大豐일새 因民之餘하야 然後有作하야 惠于往來하야 以館以勞하되 動不違時하고 而人有賴하니 是皆宜書
이 이곳에 온 이래로 해마다 자주 큰 풍년이 들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여유로움을 말미암은 연후에, 정자를 지어 왕래하는 사람에게 은택을 끼쳐 머물게 하고 위로하되 민력을 동원함에 농번기를 피하였고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을 수 있게 했으니 이는 모두 기록해야 할 일이다.
故凡公之佐吏 因相與謀하야 而屬筆於脩焉이러라
그러므로 무릇 공을 보좌하는 관원들이 이로 인하여 서로 상의해서 나에게 글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역주
역주1 : 이 글은 景祐 4년(1037)에 지은 것이다. 景祐 3년 5월에 구양수가 폄적되어 峽州 夷陵令으로 좌천되었고 7월에 임소에 도착하였는데, 그 다음 해에 峽州知州 朱慶基가 정자를 짓고 至喜亭이라 이름한 뒤 구양수에게 기문을 요청하여 짓게 된 것이다.
靑泉 申維翰의 《靑泉集》 續集 9권의 〈三家狐白評〉에 이 글에 대한 평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이 글에서 岷江에서부터 夷陵에 이르기까지는 문장이 겨우 몇 줄이지만 水路의 험난함과 뱃사람들이 죽음에서 벗어나 生路로 들어오는 광경들을 형용한 것이 마치 그림과 같은지라, 至喜亭이라는 정자 이름의 본뜻에 부응하니, 이는 어떠한 筆力이란 말인가. 또 그 앞 단락의 起頭에서 만약 蜀의 財貨와 공물의 운반과 상인들을 성대하게 논하지 않고 단지 강의 험고함만을 말했다면 뒷 단락의 生死에 대한 부분이 곧 응당 아무 색깔이 없게 되었을 것이다. 구양수의 글을 읽는 자는 마땅히 그 厚處를 살펴야 한다. 또 陸放翁(陸游)의 《入蜀記》를 읽어보니, ‘10월 6일에 峽州에 이르러 至喜亭 아래에 정박하였는데, 정자의 기문은 구양수가 지었고 글은 黃魯直(黃庭堅)이 썼다.’고 되어 있었다. 대저 이 기문의 기이함으로 黃太史의 필적을 얻었으니 江神으로 하여금 얼굴빛을 움직이게 할 만하다.”
역주2 蜀於五代爲僭國 : 僭國은 正統이 아니면서 나라를 세워 帝位를 참칭하는 것을 말한다. 《舊五代史》에서는 梁‧唐‧晉‧漢‧周를 정통으로 세웠고, 楊行密의 吳와 王建의 蜀을 僭國으로 분류하였다.
역주3 陸輦秦鳳 水道岷江 : 秦鳳은 秦鳳路로 지금의 陝西 서부 지역 및 甘肅 일대이다. 岷江은 四川省 중부에 있다.
역주4 夷陵 固爲下州 : 下州는 매우 작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宋代에는 州를 輔, 雄, 望, 緊, 上, 中, 下 7등급으로 구분하였고, 縣은 赤, 畿, 緊, 望, 上, 中, 下 7등급으로 구분하였다. 《宋史》 〈地理志〉에 의거하면 峽州는 中州, 夷陵은 中縣에 속하였다.
역주5 詩所謂愷悌君子者矣 : 《詩經》 〈大雅 旱麓〉에 나오는 말로, 愷悌는 즐겁고 화평하다는 뜻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