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議論得大體하고 而文殊圓轉澹宕이라
嗚呼
天下之惡梁 久矣
自後唐以來 皆以爲僞也로되 至予論次五代하야 獨不僞梁하니
議者或譏予大失春秋之旨하야 以謂梁負大惡하니 當加誅絶이어늘 而反進之하니 是獎簒也 非春秋之志也라하야늘
予應之하야
是春秋之志爾
聖人於春秋 皆不絶其爲君하니
此予所以不僞梁者 用春秋之法也
然則春秋亦獎纂乎
曰 惟不絶四者之爲君이라
於此 見春秋之意也로다
聖人之於春秋 用意深이라 故能勸戒切하고 爲言信然後 善惡明이라
夫欲著其罪於後世 在乎不沒其實이니 其實嘗爲君矣 書其爲君하고 其實纂也 書其纂하야 各傳其實하야 而使後世信之하면 則四君之罪 不可得而掩爾
使爲君者不得掩其惡이라 然後 人知惡名不可逃하니 則爲惡者庶乎其息矣
是謂用意深而勸戒切하고 爲言信而善惡明也
桀紂不待貶其王하야도 而萬世所共惡者也 春秋於大惡之君 不誅絶之者 不害其褒善貶惡之旨也
惟不沒其實하야 以著其罪하야 而信乎後世하고 與其爲君而不掩其惡하야 以息人之爲惡하니 能知春秋之此意然後 知予不僞梁之旨也


06. 《오대사五代史》 〈양태조기梁太祖紀〉에 대한
의론이 대체大體를 얻었고 문장은 특히 원전圓轉하고 담탕澹宕하다.
아!
천하가 나라를 미워한 것이 오래되었다.
후당後唐 이래로 모두 양나라를 위조僞朝라고 하는데, 내가 오대五代논차論次하기에 미쳐 유독 양나라를 위조라고 하지 않으니,
의론하는 이들이 나를 두고 《춘추春秋》의 지의旨意를 잃었다고 나무라며 “양나라는 큰 악덕을 지었으니 응당 가차 없이 폄하해야 하거늘 도리어 추켜세웠으니, 이는 찬탈簒奪을 장려하는 것이요, 《춘추》의 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응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는 《춘추》의 뜻일 뿐이다.
환공桓公은공隱公을 시해하고 스스로 즉위한 자이고, 선공宣公자적子赤을 시해하고 스스로 즉위한 자이고, 여공厲公세자世子 을 축출하고 스스로 즉위한 자이고, 나라 공손표公孫剽는 군주 을 축출하고 스스로 즉위한 자이다.
그러나 성인이 《춘추》에서 모두 그들이 임금 된 것을 벌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양나라를 위조로 간주하지 않은 이유이니, 《춘추》의 법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춘추春秋》 또한 찬탈簒奪을 장려한 것인가.”
“오직 네 사람이 임금이 된 것을 주절誅絶하지 않았을 뿐이다.
여기에서 《춘추》의 지의旨意를 보인 것이다.
성인聖人이 《춘추》에 마음을 쓴 것이 깊기 때문에 권계勸戒가 절실하고, 말을 함이 미더운 연후에 선악善惡이 분명해진다.
무릇 후세에 죄를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 방법은 사실을 없애지 않는 데에 있으니, 사실이 임금이면 임금이 되었다고 쓰고 사실이 찬탈簒奪이면 찬탈하였다고 써서, 각각 사실을 전하여 후세로 하여금 미덥게 하면 네 임금의 죄를 덮을 수가 없다.
임금이 된 자로 하여금 죄악을 덮을 수 없게 한 뒤에 사람들로 하여금 오명惡名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하였으니, 이렇게 되면 악을 행하는 자가 거의 사라질 것이다.
이를 일러 저술한 뜻이 깊고 권계勸戒가 절실하며 그 내용이 미덥고 선악善惡이 분명하다고 하는 것이다.
는 그 왕을 폄하貶下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만세萬世에서 공동으로 미워하는 자이니, 《춘추春秋》가 대악大惡의 군주에 대해 주절誅絶하지 않는 것이 선을 포장褒獎하고 악을 폄척貶斥하는 뜻에 해롭지 않다.
오직 사실을 없애지 않아 그 죄를 드러내어 후세에 미덥게 하고, 임금 된 것과 더불어 그 악을 덮지 않아 사람의 행악行惡을 종식시키니, 《춘추》의 이러한 의도를 능히 안 뒤에야 내가 위조僞朝라고 하지 않은 뜻을 알 것이다.”


역주
역주1 五代史梁太祖論 : 이 글은 본디 《新五代史》 〈梁太祖紀〉의 끝에 총괄하는 성격의 의론문이다. 傳論 또는 傳贊에 해당하는 글이다. 梁 太祖는 이름이 朱溫(852~912)으로, 宋州 碭山 午溝里 사람이다. 黃巢起義에 참가하여 누차 전공을 세우고 대장이 되었다. 뒤에 唐나라에 투항하여 朱全忠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天祐 원년(907)에 당을 대신하여 稱帝하고 汴 땅에 도읍하고 국호를 梁이라고 하였다. 흔히 後梁이라고 부르며 재위 기간은 907년에서 912년까지 6년간이다. 만년에 크게 사치하고 荒淫하여 셋째 아들 朱友珪에게 피살되었다.
역주2 魯桓公 弑隱公而自立者 : 춘추시대 魯 隱公 11년에 公子 揮가 世子 允의 지지를 받고 은공을 죽였다. 그리고 세자 윤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桓公이다. 《春秋左氏傳 隱公 11년》
역주3 宣公 弑子赤而自立者 : 춘추시대 魯 宣公은 이름은 倭이며 文公의 庶子이다. 그의 어머니 敬嬴이 大臣 襄仲을 은근히 섬겨서 환심을 사두었다가 문공이 죽자 양중을 사주하여 嫡室 소생인 태자 惡과 그의 아우 視를 죽이고 선공을 임금으로 세웠다. 《春秋左氏傳 文公 18년》
역주4 鄭厲公 逐世子忽而自立者 : 춘추시대 鄭 莊公이 죽자 태자 忽이 祭仲의 추대를 받고 임금이 되니, 그가 昭公이다. 소공의 아우인 突이 소공의 자리를 뺏고 즉위하니 이 사람이 厲公이다. 소공은 衛나라로 망명했다가 채중의 도움으로 귀국한 뒤에 射殺되었고, 여공은 채중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櫟邑으로 피신했다가 17년 뒤에 도성으로 돌아와 복위하였다. 《春秋左氏傳 桓公 11년, 15년》
역주5 衛公孫剽 逐其君衎(간)而自立者 : 衎은 춘추시대 衛 獻公의 이름이다. 부친인 定公을 이어 즉위했다가 大臣 孫文子에 의해 축출되어 12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다가 복위하였다. 公孫剽는 헌공의 조부인 衛 穆公의 손자인데 헌공이 齊나라로 망명하자 위나라 사람들에 의해 추대되니, 그가 殤公이다. 상공은 寧喜에게 피살되었다. 《春秋左氏傳 襄公 14년, 26년》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