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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1)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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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황하黃河를 수리하는 문제를 논한 첫째
此等奏疏 利害最深切하고 文字最圓暢하니 西漢而下 不多見者
이러한 주소奏疏는 이해가 매우 깊고 절실하고 문장이 매우 원만하고 통창通暢하니, 서한西漢 이후로 많이 볼 수 없는 것이다.
右臣竊見朝廷 近因臣寮하야 欲塞하고하야 回大河於故道하야 已下三司하야 候今秋興役하야
신은 삼가 보건대 조정이 근자에 신료의 건의에 따라 상호商胡를 막고 횡롱橫壟을 열어서 황하黃河를 옛 물길로 돌리고자 그 사안을 이미 삼사三司에 하달하여 올 가을을 기다려 공사를 일으키려고 합니다.
見令計度物料次
그래서 현재 경동京東으로 하여금 필요한 물자를 계산해보게 하였습니다.
臣伏以國家興大役動大衆 必先順天時量人力하야 謀於其始而審
신은 삼가 생각건대 국가가 큰 역사를 일으키고 많은 백성을 동원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천시天時에 순응하고 인력을 헤아려 시초에 계획을 세워서 신중히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然後必行하되 計其所利者多라야 乃能無悔
그런 뒤에 반드시 실행에 옮기되 계산해보아 이익 되는 바가 많아야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伏見比年以來 興役動衆하야 勞民費財어늘 不精謀慮於厥初하야 輕信利害之偏說하야
삼가 보건대 근년 이래 역사를 일으키고 대중들을 동원하여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물자를 허비하거늘, 그 시초에 정밀히 생각해 계획을 세우지 않고 이해利害에 관해 한쪽에 치우친 주장을 가벼이 믿었습니다.
擧事之始 旣已倉惶하고 群議一搖 尋復悔罷하니
그래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이미 황급하여 어쩔 줄 몰랐고 뭇사람들의 의논이 한 번 흔들자 얼마 못 가서 다시 후회하고서 역사를 그만두었습니다.
臣不敢遠引他事하야 上煩聖聰이라
신은 감히 다른 일을 끌어와서 성상의 귀를 귀찮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只如往年河決商胡하니
단지 지난해 상호商胡 지역에서 황하黃河의 둑이 터졌을 경우를 들어보겠습니다.
是時執政之臣 不愼計慮하야 遽謀修塞하야 一千八百萬하야 騷動六路一百有餘州하야
이때 집정대신이 신중히 생각해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대뜸 둑이 터진 곳을 막으려고 생각하여 1천8백만 초삼稍芟을 각 지역에 분담시켜 6 1백여 를 뒤흔들었습니다.
官吏催驅 急若星火 民庶愁苦 盈於道塗
그리하여 관리들의 독촉이 성화보다 더 급박함에 시름에 잠기고 고통받는 백성들이 도로에 가득하였습니다.
或物已輸官하고 或人方在路러니 未及興役 遽已罷修하야 虛費民財하야 爲國斂怨하니 擧事輕脫 爲害若斯
어떤 사람은 물자를 이미 관부에 수송했고 어떤 사람은 바야흐로 도로에 있었는데, 아직 역사를 일으키기도 전에 갑자기 황하를 보수하는 공사를 그만두어 백성들의 재물만 허비하여 국가에 원망을 돌아가게 했으니, 일하는 것이 경솔함에 그 피해가 이와 같았습니다.
雖旣往之失難追 而可鑑之蹤未遠이어늘 今者又聞復有修河之役하야 聚三十萬人之衆하야 開一千餘里之長河라하니 計其所用物力컨대 數倍往年이라
비록 이왕의 잘못은 어쩔 수 없더라도 거울삼을 수 있는 지난 자취가 멀지 않거늘, 지금 또 듣건대 다시 황하를 보수하는 역사를 시작해서 3만 명의 백성을 모으고 1천여 리의 긴 강을 뚫는다고 하니, 이 역사에 드는 물력物力을 계산해보면 지난해보다 몇 곱절이 더 많습니다.
當此天災歲旱之時民困國貧之際하야 不量人力하고 不順天時하니 臣知其有大不可者五
천재天災로 가뭄이 든 때, 백성은 곤궁하고 국가는 빈핍할 즈음에 인력을 헤아리지 않고 천시天時를 따르지 않으니, 신은 매우 불가한 점 다섯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蓋自去秋 以及今春 半天下苦旱 而京東尤甚하고 河北次之하니 國家常務安靜賑恤之라도 猶恐饑民起而爲盜어든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천하의 반쪽이 가뭄에 시달렸는데 경동로京東路가 더욱 심하고 하북로河北路가 그 다음으로 심하였으니, 국가가 늘 백성을 안정시키고 진휼賑恤하는 데 힘쓰더라도 오히려 굶주린 백성이 일어나 도적이 될까 걱정입니다.
何況於此兩路 聚大衆하야 興大役이리오
하물며 이 경동과 하북 두 지역에서 많은 백성을 모아 큰 역사를 일으킴에 있어서이겠습니까.
此其必不可者一也
이는 첫째로 반드시 불가한 점입니다.
河北自恩州用兵之後 繼以凶年하야 人戶流亡하야 十失八九라가 數年以來 稍稍歸復이라
하북로河北路은주恩州에 전쟁이 있은 이후로 흉년까지 이어진 탓에 백성들(人戶)이 집을 떠나 떠돌아다녀 본향本鄕인호人戶 중 10호에 8, 9호가 없어졌다가 몇 해 이래로 차츰 백성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然死亡之餘 所存無幾하고 瘡痍未斂하며 物力未完이어늘
그러나 사망한 나머지 남은 백성이 얼마 안 되며 백성들의 질고는 아직 아물지 않고 물력은 아직도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今又遭此旱歲하야 京東自去冬으로 無雨雪하야 麥不生苗하야 已及暮春하얀 粟未布種하니 不惟目下乏食이요 兼亦向去無望이어늘
게다가 지금 또 이 가뭄이 든 해를 만나 경동로京東路는 지난해 겨울부터 눈이 내리지 않아 보리가 싹을 틔우지 못하고 늦봄에 이르러서는 곡식을 파종하지 못하고 있으니, 당장에 양식이 부족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가망이 없습니다.
而欲於此兩路 興三十萬人之役하니 若別路差夫 則遠處難爲赴役하고 就河便近이면 則此兩路力所不任이니
그런데도 이 두 지역(路)에서 30만 명을 동원하는 역사를 일으키려 하니, 만약 다른 지역에서 인부를 차출하려 하면 먼 곳에서는 부역赴役하기 어려울 것이고 황하 가까운 곳에서 인부를 모으면 이 두 지역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此其必不可者二也
이것이 둘째로 반드시 불가한 점입니다.
臣伏見往年河決 曾議修塞하니
신은 삼가 보건대 지난해 활주滑州에서 황하黃河의 둑이 터졌을 때 보수해서 막는 일을 의논한 적이 있었습니다.
當時公私事力 未如今日貧虛 然猶收聚物料하고 誘率民財하야 數年之間 方能興役이어든
당시에 공사公私 간의 사력事力이 지금처럼 빈핍하지 않았는데도 물자를 모으고 백성들을 설득해 재물을 거두어서 몇 해 만에야 비로소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況今國用方乏하며 民力方疲
하물며 지금은 국가의 재용이 바야흐로 궁핍하고 백성들의 힘이 바야흐로 피로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且合商胡하야 塞大決之洪流 此自是一大役也 鑿橫壟하야 開久廢之故道 此又一大役也
게다가 상호商胡를 메워서 크게 터진 홍수의 흐름을 막는 것은 본래 하나의 큰 역사이고, 횡롱橫壟을 뚫어서 물이 흐르지 않은 지 오래인 옛 물길을 여는 것은 또 하나의 큰 역사입니다.
自橫壟至海一千餘里 久已廢壞어늘 頓須修緝하니 此又一大役也
횡롱으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1천여 리에 소안埽岸이 이미 붕괴된 지 오래이거늘 이를 단번에 보수해야 할 것이니, 이는 또 하나의 큰 역사입니다.
往年公私有力之時 興一大役에도 尙須數年이어든 今倂三大役倉卒興爲於災旱貧虛之際하니 此其必不可者三也
지난해 공사 간에 힘이 있을 때 큰 역사를 일으켰는데도 오히려 몇 해가 걸렸는데 지금은 세 가지 큰 역사를 가뭄으로 빈핍한 때에 창졸간에 함께 일으키려 하니, 이것이 셋째로 반드시 불가한 점입니다.
就令商胡可塞하고 故道可回라도 猶宜重察天時人力之難爲어든 何況商胡未必可塞이요 故道未必可回者哉
가령 상호商胡를 막을 수 있고 옛 물길을 되돌릴 수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천시天時민력民力으로 보아 하기 어려운지를 신중히 살펴야 하거늘, 하물며 상호를 막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고 옛 물길을 되돌릴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臣聞障洪水하야 九年無功이러니 하야 乃因水之流하야 疏決就下하니 而水患乃息이라
신은 듣건대 이 홍수를 막으면서 9년 동안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는데, 임금은 홍범오행洪範五行의 책을 얻어서 물이 아래로 흐르는 속성을 알고서 비로소 물의 흐름에 따라 물길을 틔워서 아래로 흐르게 하니, 홍수의 우환이 그제야 그쳤습니다.
然則以大禹之神功으로도 不能障塞其流하고 但能因而疏決爾어늘 今欲逆水之性하야 障而塞之하야 奪洪河之正流하야 斡以人力而回注하니 此大禹之所不能이라
그렇다면 우임금의 신공神功으로도 물길의 흐름을 막지 못하고 단지 물길을 따라 소통시켰을 뿐이거늘, 지금 물의 성질을 거슬러 물길을 가로막아서 홍수의 바른 물길을 빼앗아서 사람의 힘으로 물길을 바꾸어 돌려서 흘러가게 하고자 하니, 이는 우임금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此其必不可者四也
이것이 넷째로 반드시 불가한 점입니다.
橫壟湮塞 已二十年이요 商胡決流 又亦數歲 故道已塞而難鑿하고 安流已久而難回
횡롱橫壟에 물길이 매몰되어 없어진 지가 이미 20년이고 상호商胡에 물길을 틔운 지가 또한 몇 해이니, 옛 물길은 이미 막혀서 뚫기 어렵고 편안히 물이 흐른 지 오래되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昨聞朝廷 曾遣故樞密直學士計度 功料極大러니 近者再行檢計 減得功料하야 全少功料하니
어저께 듣건대 조정이 일찍이 추밀직학사樞密直學士 장규張奎를 보내 계산해보게 한 결과 공정과 필요한 물자가 매우 많았는데, 근자에 다시 조사하고 계산해본 결과 공정과 필요한 물자를 줄여서 이것이 현저히 적어졌다고 합니다.
少則所開淺狹하고 淺狹則水勢難回
공정과 필요한 물자가 적으면 새로 뚫는 물길이 얕고 좁을 것이고 물길이 얕고 좁으면 물길의 형세를 돌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此其必不可者五也
이것이 다섯째로 반드시 불가한 점입니다.
臣伏見國家累歲甚多하고 其於京東 變異尤大
신은 삼가 보건대 국가에는 여러 해에 걸쳐 천재天災가 매우 많았고, 특히 경동로京東路에는 재이災異가 더욱 컸습니다.
地貴安靜이어늘 動而有聲이라
땅은 안정安靜을 중시하는 법이거늘 땅이 움직여서 소리가 났습니다.
巨嵎山摧하고 海水搖蕩하니 如此不止 僅乎十年이니
그리하여 큰 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크게 일렁였으니, 이와 같은 현상이 그치지 않은 지가 10년에 가까웠습니다.
天地警戒 必不虛發이라
천지의 경계는 반드시 헛되이 내는 것이 아닙니다.
臣謂變異所起之方 尤宜加意防懼어늘 今乃欲於凶旱之年 聚三十萬之大衆於變異最大之方하니 臣恐地動山搖 災禍自此而始
신은 생각건대 재이災異가 일어나는 지방에 더욱 마음을 써서 방비하고 걱정해야 하거늘 지금 가뭄이 든 해에 30만 대중을 재이가 가장 큰 지방에서 모으려 하니, 신은 땅이 움직이고 산이 흔들려 재이가 이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方今京東 赤地千里 饑饉之民 正苦天災어늘 又聞河役將動 往往伐桑拆屋하야 無復生計하니 流亡盜賊之患 不可不虞
지금 경동로京東路는 천 리에 붉은 맨땅만 드러나 굶주리는 백성들이 그야말로 천재天災에 고통을 받고 있거늘, 또 듣건대 황하黃河를 수리하는 일을 장차 시작할 때라 왕왕 뽕나무를 베고 뜯어가서 백성들이 더 이상 살아갈 길이 없다고 하니, 백성들이 유리걸식하다 도적이 되는 우환을 근심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欲望聖慈 特降德音하야 速罷其事하고 當此凶歲하야 務安人心하고 徐詔有司하야 審詳利害하며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특별히 덕음德音을 내려 속히 그 일을 그만두고 이 흉년이 든 때에 인심을 힘써 안정시키고 유사有司에게 천천히 명을 내려 이 일의 이해利害를 상세히 조사하게 하소서.
縱令河道可復이라도 乞候豐年餘力하야 漸次興爲하소서
비록 황하의 옛 물길을 회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바라옵건대 풍년에 힘이 넉넉할 때를 기다려 점차적으로 공사를 일으키소서.
臣實庸愚 本無遠見이로되 得於外論 不敢不言이라
신은 실로 용렬하고 우매한 자라 본래 원대한 식견이 없지만 외부의 논의를 들었기에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謹具狀奏聞하노이다
삼가 을 갖추어 아룁니다.
역주
역주1 〉論修河 第一狀 : 이 글은 仁宗 至和 2년(1055) 3월에 지어졌다. 당시 富弼이 재상으로 있으면서 李仲昌이 六塔河를 수리하여 황하의 옛 水路를 회복시키자는 주장에 찬동하였다. 歐陽脩가 이 글을 올려서 그러한 큰 공사를 일으키지 말 것을 청하였다. 전후로 세 차례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이 맨 처음 올린 것이다. 六塔河는 河南 淸風縣 六塔鎭 동남쪽 30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지금은 진흙이 가득 차고 물은 흐르지 않는다.
역주2 : 저본에는 ‘諫’자로 되어 있는데, 本集과 四庫全書本 《唐宋八大家文鈔》에 의거하여 ‘建’자로 바로잡았다.
역주3 商胡 : 澶州에 있던 지역이다.
역주4 橫壟 : 澶州에 있던 지역이다.
역주5 京東 : 京東路로 北宋 至道 3년(997)에 설치한 15路의 하나이다.
역주6 科配 : 관부에서 정식으로 부과하는 세금 외에 임시로 더 세금을 부과하여 각 지역 또는 사람들로 하여금 분담하게 하는 것이다.
역주7 稍芟 : 강을 메워서 물길을 방해하는 나뭇가지나 갈대 따위이다.
역주8 滑州 : 現 河南 滑縣이다.
역주9 埽岸 : 埽는 옛날에 황하의 물길을 다스릴 때 볏짚, 돌덩이, 나뭇가지 등을 한 데 모아 묶어서 둥근 기둥 모양으로 만들어서 물길을 막거나 기슭을 보호하던 물건이다. 즉 이것으로 축조한 제방이다.
역주10 : 禹의 아버지로 崇伯에 봉해졌으며 四凶 중의 한 사람이다. 堯임금 때 큰 홍수가 있어 사방이 물에 잠겼다. 그래서 요임금이 곤에게 물길을 다스리도록 명했으나 9년 동안 공적을 이루지 못하였고, 아들 禹가 그 뒤를 이어서 황하의 治水를 이루었다 한다. 箕子가 “옛날에 곤이 홍수를 막다가 오행의 순서를 어지럽혀 놓았다.[在昔鯀陻洪水 汩陳其五行]”고 하였다. 《書經 周書 洪範》
역주11 禹得洪範五行之書 知水趨下之性 : 《書經》 〈周書 洪範〉에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大法인 九疇를 말했으니, 五行‧五事‧八政‧五紀‧皇極‧三德‧稽疑‧庶徵‧五福이다. 그중 오행에서 “물은 적시면서 아래로 흐른다.[水曰潤下]” 하였다.
역주12 張奎 : 988~1052. 宋나라 때 臨濮 사람으로 자는 仲野이다. 河南府의 수령으로 나아가서 정사를 잘한 것으로 이름났다.
역주13 災譴 : 하늘이 災異를 내려 임금을 譴責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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