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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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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오대사五代史》 〈주세종기周世宗紀〉에 대한
直敍
직실直實하게 서술하였다.
嗚呼
아!
五代本紀備矣로다
오대사五代史》 〈본기本紀〉는 기록이 자세하다.
君臣之際 可勝道哉
군신君臣의 사이를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하니 則父子骨肉之恩 幾何其不絶矣리오
나라에서 우규友珪가 반란을 일으켰으며, 나라에서 극녕克寧을 죽이고 존예存乂종찬從璨을 살해하였으니, 부자父子골육骨肉의 은혜가 어찌 끊어지지 않겠는가.
하니 則夫婦之義 幾何其不乖而不至於禽獸矣리오
태비太妃훙어薨御하자 조회를 거두고, 유씨劉氏풍씨馮氏를 세워 황후皇后로 삼았으니, 부부夫婦의 의리가 얼마나 가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금수에 이르지 않겠는가.
하고 하고 하니 則禮樂刑政 幾何其不壞矣리오
한식에 들제사를 지내고 지전紙錢을 사르며, 거상居喪하면서 개원改元을 하고 음악을 쓰며, 마연馬延임환任圜을 죽였으니, 예악禮樂형정刑政이 어찌 무너지지 않겠는가.
至於하얀 則中國幾何其不夷狄矣리오
뇌산雷山에 제사를 올리고 화살을 쏘고 말을 잡아 제사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중국이 얼마나 가서 오랑캐가 되지 않으리오.
可謂亂世也歟인저
참으로 난세亂世라 하겠다.
而世宗區區五六年間 取秦하고 平淮右하고 復三關하야 威武之聲 震懾夷夏하고
그러나 세종世宗구구區區한 5, 6년 사이에 진롱秦隴을 취하고 회우淮右를 평정하고 삼관三關을 회복하여 위무威武의 명성이 오랑캐와 중국에 진동하였다.
而方內延儒學文章之士하야 考制度하며 修通禮하며 定正樂하며 議刑統이라 其制作之法 皆可施於後世하고
그리고 안으로 유학儒學문장文章의 선비를 초빙하여 제도制度를 고증하고 통례通禮를 편수하고 정악正樂을 설정하고 형통刑統을 논의한지라, 제작制作의 법도가 모두 후세에 시행될 수 있었다.
其爲人 明達英果하고 議論偉然이라 卽位之明年 廢天下佛寺三千三百三十六하니
사람됨이 명달明達영과英果하고 의론議論웅위雄偉한지라 즉위한 이듬해에 천하天下불사佛寺 3,336개를 없앴다.
是時 中國乏錢이어늘 乃詔悉毁天下銅佛像以鑄錢하고
이때에 중국中國동전銅錢이 부족하거늘 이에 조서를 내려 천하의 동불상銅佛像을 모두 녹여 동전을 주조하게 하였다.
嘗曰吾聞佛說以身世爲妄하고 而以利人爲急하니
일찍이 말하기를 “내 듣자니 불가佛家의 설에는 육신과 세상을 허망虛妄하게 여기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급무로 여긴다고 한다.
使其眞身尙在라도 苟利於世 猶欲割截이어든 況此銅像 豈有所惜哉아하니 由是 群臣皆不敢言이러라
가령 진짜 살아 있는 몸이라 하더라도 만약 세상에 이롭다면 오히려 잘라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이 구리 불상이 어찌 아까울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니, 이로부터 여러 신하들이 모두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嘗夜讀書 見唐均田圖하고 慨然嘆曰 此致治之本也로다
일찍이 밤에 책을 읽을 때에 나라 원진元稹의 〈균전도均田圖〉를 보고 개연慨然히 탄식하여, “이것이 지극한 정치의 근본이다.
王者之政 自此始라하고 乃詔頒其圖法하야 使吏民先習知之하야 期以一歲 大均天下之田하니 其規爲志意 豈小哉
왕자王者의 정치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고는, 곧 조서를 내려 그 도법圖法을 반포하여 이민吏民으로 하여금 먼저 익혀 알게 하여 1년 만에 천하의 전야田野를 크게 고르게 하기를 기약하니, 지의志意를 기획함이 어찌 작겠는가.
其伐南唐 問宰相以計策하고 後克淮南 出穀疏하야 使學士爲贊하고 而盛以錦囊하야 常置之坐側하니 其英武之材 可謂雄傑이라
남당南唐을 정벌할 때에 재상宰相 이곡李穀에게 계책計策을 묻고, 뒤에 회남淮南을 칠 적에 이곡李穀소장疏章을 꺼내어 학사學士 도곡陶穀에게 을 짓게 하여 금랑錦囊에 담아 늘 자리 곁에 놓아두니, 영무英武한 재질이 웅걸雄傑이라 하겠다.
及其虛心聽納하고 用人不疑하얀 豈非所謂賢主哉
마음을 비우고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며, 사람을 쓸 때에 의심하지 않는 것에 미쳐서는 어찌 이른바 현주賢主가 아니겠는가.
其北取三關 兵不血刃이로되 而史家猶譏其輕社稷之重而僥倖一勝於倉卒하니 殊不知其料彊弱較彼我하고 而乘述律之殆하야 得不可失之機
북쪽으로 삼관三關을 취함에 병사가 칼에 피를 묻히지 않았으되, 사가史家가 오히려 막중한 사직社稷을 가벼이 여기고 창졸간倉卒間에 한 번의 승리를 바란다고 비판하였으니, 이는 세종世宗강약彊弱을 헤아리고 피아彼我를 가늠하였으며 술률述律의 위태로움을 타서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를 잡은 것인 줄을 〈사가史家가〉 전혀 모른 것이다.
此非明於決勝者 孰能至哉리오
이는 결승決勝에 밝은 이가 아니면 누가 능히 이를 수 있겠는가?
誠非史氏之所及也
참으로 사씨史氏가 미치지 못하는 면이다.
역주
역주1 五代史周世宗論 : 이 글은 《新五代史》 〈周世宗紀〉의 贊이다. 後周 世宗은 邢州 龍岡 사람으로 본명은 柴榮이다. 周 太祖 郭威의 양자가 되어 954년에 등극하였다. 이 글에서는 후주 세종의 文治와 武功에 대해 성대하게 칭송하였다.
역주2 梁之友珪反 唐戕(장)克寧而殺(從)[存]乂(存)[從]璨 : 友珪는 後梁의 太祖 朱溫의 아들이다. 克寧은 後唐의 태조 李克用의 아우로, 태조가 임종 무렵 莊宗을 그에게 부탁했으나, 뒤에 주변 사람의 꾐에 빠져 난을 일으켰다가 피살되었다. 存乂는 태조 이극용의 여섯째 아들로, 참소를 받아 피살되었다. 從璨은 후당 명종 李嗣源의 조카이다. 뒤에 술에 취해 御榻에 올랐다가 賜死되었다.
저본에는 ‘存’이 ‘從’으로, ‘從’이 ‘存’으로 되어 있으나, 《新五代史》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3 太妃薨而輟朝 立劉氏馮氏爲皇后 : 太妃는 後唐 莊宗 李存勖의 嫡母이다. 예법에 맞는 葬儀 절차를 거행하지 않고 5일 동안 조회를 중지하였으니, 매우 박대했음을 알 수 있다. 장종이 晉王으로 있을 때 韓氏, 伊氏, 劉氏 세 부인을 두었는데, 한씨가 정실이었고 그 다음이 이씨였고 유씨는 位次가 가장 낮았다. 그런데 장종이 즉위한 뒤 同光 2년(924) 明光殿에 가서 史官을 시켜 劉氏를 皇后로 삼게 하였다. 《新五代史 권14 唐太祖家人傳 皇后劉氏》
馮氏는 後晉 出帝의 숙부인 石重胤의 처로 美色이 있었는데 일찍 과부가 되었다. 高祖 石敬瑭이 죽자 황제의 널이 빈소에 있는데 출제가 그녀를 황후로 삼았다. 《新五代史 권14 唐太祖家人傳 出帝皇后劉氏》
역주4 寒食野祭而焚紙錢 : 五代 때에는 禮樂이 붕괴되어 제도와 문물이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後唐 莊宗, 後晉 出帝 등 황제들이 寒食 때에 野祭를 지내면서 紙錢을 사르는 민간의 풍속을 따랐다. 《新五代史 唐本紀 莊宗 下》, 《新五代史 晉本紀 出帝》
역주5 居喪改元而用樂 : 居喪 중에 연호를 바꾸고 음악을 연주한 것이다. 禮에 거상 중에는 음악을 연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後唐 明帝가 長興 4년(933) 11월에 죽고 그 이듬해 정월에 아직 거상 중인데 愍帝가 大赦令을 내리고 연호를 바꾸고 음악을 연주했다. 《新五代史 唐本紀 愍帝》
역주6 殺馬延及任圜 : 馬延은 後唐의 대신으로 명종의 殿直, 시종관이었는데, 권신 安重晦가 자기 행차를 범했다고 참수한 뒤에 보고하였다. 任圜은 同中書門下平章事 兼判三司의 높은 관직에 있었는데 안중회와 사이가 나빴다. 안중회가 誣陷하여 황제의 명을 가탁하여 그를 죽였다.
역주7 賽雷山傳箭而撲馬 : 雷山에서 제사를 올리고 화살을 쏘고 말을 잡아 제사하는 것으로 모두 서북쪽 오랑캐의 풍속이다. 《新五代史》 〈唐本紀 莊宗紀〉에 “同光 2년(924) 가을 7월 己酉에 雷山에 가서 天神에게 제사를 올렸다.”라고 하였다. 《新五代史》 〈雜傳 霍彦威〉에 “朱守殷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誅殺되자 霍彦威가 使者로 하여금 말을 달려 가서 화살 두 대를 쏘아서 축하하게 하니, 명종이 화살 답례로 화살 두 대를 하사했다.”라고 하였다. 撲馬는 말을 희생으로 써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新五代史》 〈晉本紀 出帝〉에 “高祖가 崩御하자 황제가 널 앞에서 즉위하였고 庚午日에 右驍衛將軍 石德超를 시켜서 御馬 두 필을 잡아 相州의 西山에서 제사 지내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8 : 롱
역주9 元稹 : 779~831. 자는 微之이고, 다른 자는 威明이며, 唐나라 때 洛陽 사람이다. 北魏의 宗室인 선비족 拓拔部의 后裔이다. 白居易와 함께 樂府詩에 뛰어나 세칭 ‘元白’이라 불린다.
역주10 李穀 : 자는 惟珍이고, 穎州 汝陽 사람이다. 後周 世宗의 신임을 얻었으며, 후주 세종을 도와 太原과 淮南을 평정하였다. 뒤에 恭帝 때에 越國公에 봉해졌다.
역주11 陶穀 : 자는 秀實이고, 邠州 新平 사람이다. 後周 때에 翰林學士, 兵部侍郞 등을 역임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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