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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1)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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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서변西邊사의事宜를 논한 두 번째 차자箚子
覽歐公前所上兵事컨댄 當時君臣合擊節而指揮者 顧猶逡巡若此하니 宋之政體特弱이라
구양공歐陽公이 앞에 올린 병사兵事를 보건대, 당시 기세를 올리며 지휘해야 할 임금과 신하가 도리어 이처럼 뒷걸음질을 치며 머뭇거리고 있었으니, 나라의 정치 체계가 매우 약하였다.
臣近曾上言諒祚爲邊患이니 朝廷宜早圖禦備하고 及乞遣一重臣하야 親與邊將議定攻守大計等事러니
신이 근자에 ‘양조諒祚가 변방의 근심이 되었으니 조정이 서둘러 비어備禦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 및 한 중신을 파견하여 직접 변방의 장수들과 의논하여 공수攻守의 큰 계책을 결정하기를 청하는 등의 일을 아뢰었습니다.
至今多日 未蒙降出施行이라
그런데 지금까지 시일이 오래 지났는데도 조서를 내려 시행하지 않으십니다.
臣竊見慶曆中元昊作過時 朝廷輕敵翫寇하야 無素定之謀하야
신은 삼가 보건대 경력慶曆 연간에 원호元昊가 과오를 저지를 때, 조정이 적을 가볍게 보고 침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평소 결정해둔 계책이 없었습니다.
每遇邊奏急來 則上下惶恐하야 倉卒指揮 旣多不中事機
그래서 매양 변방의 보고가 급히 올라오면 상하가 황공하여 창졸간에 지휘하는 것이 이미 사기事機에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所以落賊姦便하야 敗軍殺將하니 可爲痛心이라
그런 까닭에 적의 간계에 빠져 군대는 패하고 장수는 죽었으니, 애통한 일입니다.
今者諒祚以萬騎寇秦渭兩路하야 焚燒數百里間하야 掃蕩俱盡이어늘 而兩路將帥不敢出一人一騎하니 則國威固已挫矣
지금 양조諒祚가 만 명의 기병으로 두 지방(路)을 공격하여 수백 리 지역을 불태워 남김없이 분탕질을 쳤는데도 이 두 지방의 장수들은 감히 한 사람, 한 기마도 출동하지 않았으니, 국가의 위세가 진실로 이미 꺾였습니다.
諒祚負恩背德如此어늘 陛下未能發兵誅討하고 但遣使者齎詔書賜之어늘 又拒而不納하니 使者羞媿俛首하야 懷詔而回하니 則大國不勝其辱矣
양조의 배은망덕함이 이와 같거늘 폐하께서는 군사를 출동시켜 토벌하지 못하고 단지 사자를 보내 조서를 내려주었는데도 양조가 또 거절하고 받지 않으니, 사자가 부끄러워 머리를 숙인 채 조서를 품고서 돌아왔은즉 대국으로서 너무도 큰 모욕입니다.
當陛下臨御之初하야 遭此狂童하야 威沮國辱하니 此臣等之罪也
폐하께서 임어臨御하신 당초에 이런 고약한 놈을 만나 위엄이 꺾이고 국가가 모욕을 당했으니, 이는 신들의 죄입니다.
臣謂陛下宜赫然發憤하야 以邊事切責大臣이요
신은 생각건대 폐하께서 마땅히 혁연赫然히 분노하여 변방의 일로 대신들을 호되게 질책하셔야 할 것입니다.
至於山川形勢 有利有不利 士卒勇怯 孰可用하며 孰不可用 何處宜攻하며 何處宜守하고 何兵宜屯某地하며 何將可付某兵하얀 如此等事甚多로되 皆陛下聖慮所宜及者
산천의 형세가 유리한지 불리한지, 사졸 중에 누가 용감하여 쓸 만하고 누가 비겁하여 써서는 안 되는지, 어느 곳을 공격해야 하고 어느 곳을 공격해서는 안 되는지, 어느 군대는 어느 지역에 주둔하고 어느 장수에게는 어느 군대를 맡겨야 할지에 이르러서는 이와 같은 일들이 매우 많지만 모두 폐하께서도 이미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臣謂陛下宜因閒時하야 御便殿하야 召當職之臣하야 使按圖指畫하야 各陳所見이면 陛下可以不下席而盡在目前이니
신은 생각건대 폐하께서 한가한 때를 틈타 편전에 납시어 당직當職 신하들을 불러서 지도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마다 소견을 진달하게 하면 폐하께서 좌석을 내려오시지 않고도 모두 눈앞에 본 듯이 환히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然後制以神機睿略하야 責將相以成功이어늘
그런 뒤에 성상의 신령한 슬기와 계책으로 제어하여 장상將相들에게 성공하도록 책려해야 할 것입니다.
而陛下以萬機之繁으로 旣未及此하고 兩府之臣如臣等日所進呈 又皆常程公事 亦未嘗聚首合謀하야 講定大計하고 外則四路邊臣 自賊馬過後 亦不聞別有擘畫하니 臣恐上下因循 又如慶曆之初矣
그런데 폐하께서는 만기萬機의 번다한 정무 때문에 미쳐 이렇게 하지 못하셨고 양부兩府의 대신인 신 등 같은 이들이 날마다 보고해 올린 것들은 모두 통상적인 관례에 따른 공사公事일 뿐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의논하여 큰 계책을 결정하지는 못하였으며, 밖으로는 4변신邊臣들이 적의 기마가 침공해 온 뒤로 역시 별다른 계획을 올렸단 말을 듣지 못했으니, 신은 상하가 그럭저럭 고식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경력慶曆 연간 초기와 같을까 걱정스럽습니다.
近者韓琦曾將慶曆中議文字進呈하니 此邊事百端中一端爾
근자에 한기韓琦경력慶曆 연간 중에 산계山界를 의논한 글을 바쳤는데 이는 변방의 일 백 가지 중에 한 가지일 뿐입니다.
蓋琦亦患事未講求하야 假此文字爲題目하야 以牽合衆人之論爾
대개 한기 또한 일의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여 이 글을 빌어서 제목으로 삼아서 뭇사람들의 의논에 애써 부합시킨 것일 뿐입니다.
自進呈後 尋送密院 至今多日이로되 亦未曾擬議하니
이 글이 올려진 뒤로 추밀원樞蜜院으로 보내진 지가 지금까지 오랜 시일이 지났는데도 이에 대해 의논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하니 便是國之謀臣이라
신은 무능한 몸임에도 폐하께서 정부에 임용하셨으니, 이는 국가의 모신謀臣입니다.
若其謀慮淺近하며 所言狂妄이면 自可黜去不疑
따라서 모려謀慮가 천근하고 말하는 바가 광망狂妄하면 의심할 것 없이 폐출廢黜해야 옳습니다.
臣亦昨因目疾하야 懇求解職이러니 曲蒙聖恩하야 未許其去
신도 근자에 안질眼疾 때문에 해직해주기를 간절히 요구했었는데 성은을 곡진히 입어 성상께서 벼슬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旣使在其位하고 又棄其言而不問하니 使臣尸祿厚顔 何以自處
이미 그 지위에 있게 해놓고 또 그 말을 무시하고 묻지 않으시니, 신으로 하여금 녹만 먹으며 뻔뻔스럽게 자리만 지키게 하는데 어떻게 스스로 처신하겠습니까.
所有臣前來所上奏狀 欲望聖慈降付中書密院하야 與韓琦山界文字 一處商量하야
신이 종전에 올린 모든 주장奏狀들을,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중서성中書省추밀원樞密院에 내려보내 한기의 산계에 대한 글과 함께 의논해보게 하소서.
若其言果不足取어든 棄之未晩이라
만약 그 말이 과연 취할 게 못 되면 버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今取進止하소서
지금 성상께서 결정하소서.
역주
역주1 言西邊事宜第二箚子 : 이 글은 英宗 治平 2년(1065) 정월에 지어진 것이다. 치평 원년 가을에 西夏의 임금 李諒祚가 자주 出兵하여 秦風과 涇原路를 침공하여 사람을 살육하고 가축을 노략질하였다. 그래서 歐陽脩가 이 글을 올려 “서하가 맹약을 어기고 변방을 침공하였으니, 조정이 사람을 잘 뽑아서 備禦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 언사가 극히 간절하다.
역주2 山界 : 山間 지방과 같은 말이다. 西夏의 소수 민족들이 산간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이들이 사는 곳을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3 臣以非才 陛下任之政府 : 嘉祐 6년(1061) 윤8월에서 治平 4년(1067)까지 歐陽脩가 參知政事를 맡았다. 政府는 재상이 정무를 보는 관청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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