數十年之間에 易世者五이어늘 其所當州郡이 分割畫次가 如掌하니 太史公所欲爲而不能者라
러니 後世鑒古矯失
하야 나 而自秦漢以來
로 爲國孰與三代長短
가
及其亡也하얀 未始不分하고 至或無地以自存焉하니 蓋得其要則雖萬國而治요 失其所守則雖一天下라도 不能以容이니 豈非一本於道德哉아
나 而其勢未分
이러니 曁其衰也
하얀 하니 鎭之大者
는 連州十餘
요 小者
도 猶兼三四
라
故其兵驕則逐帥하고 帥彊則叛上하야 土地爲其世有하고 干戈起而相侵하니 天下之勢가 自玆而分이라
其興衰救難을 常倚鎭兵扶持하고 而侵凌亂亡도 亦終以此하니 豈其利害之理然歟아
初起幷代
하야 取幽滄
하야 有州三十五
하고 其後又取梁魏博等十有六州
하야 合五十一州
하야 以滅梁
하고 岐王稱臣
할새 又得其州七
하고 破蜀
하고 已而復失
하야 惟得秦鳳階成四州
하고 而營平二州
는 陷于契丹
하니 其增置之州一
이라
代漢
에 하고 하니 又增置之州五
요 而廢者三
이라 合一百一十八州
하야 以爲周
하다
自江以下二十一州爲
이며 自
以南及
四十六州爲蜀
하며 自湖南北十州爲楚
이며 自浙東西十三州爲吳越
이며 自
南北四十七州爲南漢
이며 自太原以北十州爲
이며 而荊歸峽三州爲南平
이니 合中國所有二百六十八州而
不在焉
이라
五代亂世
에 文字不完
하야 而時有廢省
하고 又或陷于夷狄
이로되 不可考究其詳
하니 其可見者
는 具之如
라
自唐有方鎭으로 而史官不錄于地理之書하니 以謂方鎭兵戎之事는 非職方所掌故也라
然而後世因習하야 以軍目地而沒其州名하고 又今置軍者가 徒以虛名升建爲州府之重하니 此不可以不書也라
州縣 凡唐故而廢于五代와 若五代所置而見于今者와 及縣之割隷今因之者를 皆宜列以備職方之考하고 其餘嘗置而復廢어나 嘗改割而復舊者는 皆不足書라
山川物俗은 職方之掌也나 五代短世라 無所遷變일새 故亦不復錄하고 而錄其方鎭軍名하야 以與前史互見之云이라
01. 《오대사五代史》 〈직방고職方考〉에 대한 논論
수십 년 동안에 세상이 바뀐 것이 다섯 번인데 그 해당되는 주州‧군郡을 나누고 구획한 것이 손바닥을 보는 듯하니, 태사공太史公이 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삼대三代 이상은 땅을 나누어 다스리지 않음이 없었는데, 후세에는 옛날을 거울삼아 잘못을 고치느라 비로소 천하를 군郡‧현縣으로 만들었으나, 진秦‧한漢 이래 국가들이 삼대三代와 비교해 어느 쪽이 낫고 못한가?
그 국가들이 망할 때에는 땅이 나뉘지 않은 적이 없었고, 혹 자존自存할 땅조차 없게 된 나라도 있었으니, 그 요령要領을 얻으면 비록 만국萬國이라도 잘 다스려질 것이고 그 지킬 바를 잃으면 비록 천하를 통일하더라도 용납될 수 없으니, 어찌 한결같이 도덕道德에 근본을 두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唐나라가 융성할 때 비록 천하를 이름하여 10도道라 하였으나 그 형세는 아직 나뉘지 않았었는데 쇠약해질 때에 이르러서는 절도사를 두어서 방진方鎭이라 불렀으니, 방진 중에서 큰 것은 주州 10여 개를 연이었고 작은 것도 서너 개를 아울렀다.
그러므로 그 병사들이 교만하면 장수將帥를 축출하고 장수가 강하면 위를 배반하여 토지가 대대로 그의 소유가 되고 전란을 일으켜 침범하였으니, 천하의 형세가 이로부터 나뉘었다.
그래서 쇠미한 형세를 일으키고 곤란한 상황을 구제하는 일을 늘 방진 병력의 도움에 의지하였고 침략侵略과 난망亂亡 또한 마침내 이 때문이었으니, 어쩌면 그 이해利害의 이치가 그러한 것인가!
희종僖宗‧소종昭宗 이래로 국가가 날이 갈수록 더욱 분열하더니, 후량後梁 초에 천하가 11개로 나뉘어 남쪽에는 오吳‧절浙‧형荊‧호湖‧민閩‧한漢이 있고, 서쪽에는 기岐‧촉蜀이 있고, 북쪽에는 연燕‧진晉이 있었으며, 주씨朱氏는 차지한 78주州로 양梁을 세웠다.
장종莊宗은 처음 병주幷州와 대주代州에서 일어나 유주幽州와 창주滄州를 차지하여 35개 주州를 소유하였고, 그 후에 또 양주梁州‧위주魏州‧박주博州 등 16주州를 차지하여 도합 51주州를 소유하여 양梁나라를 멸망시켰으며, 기왕岐王이 칭신稱臣하자 또 그 주州 일곱 개를 얻었고 동광同光 연간에 촉蜀을 점령했다가 이윽고 다시 잃어서 오직 진주秦州‧봉주鳳州‧계주階州‧성주成州의 4주州만을 얻었고 영주營州와 평주平州의 2주州는 거란에 함락되었으니, 그 증가한 주州는 하나였다.
석씨石氏가 중국에 들어와 즉위하여 거란契丹에 16주州를 바치고 금주金州를 얻었으며, 또 더 둔 주州가 하나이니, 109주를 합하여 진晉을 세웠다.
유씨劉氏의 처음에는 진주秦州‧봉주鳳州‧계주階州‧성주成州가 모두 촉蜀에 들어가고, 은제隱帝 때 증치增置한 주州가 하나이다.
곽씨郭氏가 한漢을 대신함에 10주州가 유민劉旻에게 들어갔고, 세종世宗은 봉주鳳州‧계주階州‧성주成州‧영주瀛州‧막주莫州 및 회남淮南의 14주州를 취하였는데, 또 증치增置한 주州가 다섯이고 없앤 주가 셋이라 도합 118주로 주周를 세웠다.
송宋이 일어나자 이를 그대로 이어받았으니, 이것이 중국中國의 대략이다.
그 나머지 중국 밖의 나라들은 강한 쪽이 약한 쪽을 병탄幷呑하여 그 득실이 일정하지 않았다.
후주後周 말기에 이르러 민閩이 먼저 망하고 남아 있는 것은 일곱 나라였다.
양자강揚子江 이하 21주州가 남당南唐이고, 검각劍閣으로부터 남쪽 및 산남山南의 서도西道 46주州는 촉蜀이고, 동정호洞庭湖로부터 남북쪽 10주州는 초楚이고, 절강浙江으로부터 동서쪽 13주州는 오월吳越이고, 오령五嶺으로부터 남북쪽 47주州는 남한南漢이고, 태원太原으로부터 북쪽 10주州는 동한東漢이며, 형주荊州‧귀주歸州‧협주峽州 3주州는 남평南平이니, 중국에 있는 268주州를 합하였고 군軍은 여기에 들지 않았다.
전 시대 역사에 다 기재되어 있으나 기미책羈縻策을 써서 지방에 위임해 통치하느라 이름만 있는 주州가 그 가운데 들어 있었다.
그러나 오대五代 때에는 기록이 온전하지 못하여 때로 없어진 성省도 있고 또 오랑캐에게 함락된 지방도 있었지만 상세한 실정을 상고하여 알 수 없으니, 알 수 있는 것은 도보圖譜와 같이 갖추어 기록해둔다.
당唐나라 때 방진方鎭을 둠으로부터 사관史官들이 지리서地理書에 수록하지 않았으니, 방진의 병융兵戎에 관한 일은 직방씨職方氏가 관장하는 바가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를 그대로 인습因習하여 군軍으로 그 지명을 부르고 그 주州의 이름은 인몰湮沒시켰으며, 게다가 지금 군軍을 둔 것은 한갓 빈 명칭으로 승격시켜 주州‧부府와 같은 중요한 행정구역으로 삼은 것이니, 이는 기록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주州‧현縣은 무릇 당唐나라 때 있었다가 오대五代 때 없어진 것과 오대 때 설치하여 오늘날에도 보이는 것 및 분할시키거나 예속시킨 현縣을 지금 그대로 인습因習하는 것을 모두 열거하여 직방씨가 살펴보는 데 대비하고, 그 나머지 일찍이 두었다가 다시 없앴거나 일찍이 분할했다가 다시 복구시킨 것은 모두 기록할 게 못 된다.
산천山川과 물속物俗은 직방씨가 관장하는 것이나, 오대五代는 시대가 짧아 변천한 바가 없기 때문에 역시 기록하지 않고 그 방진方鎭‧군軍의 명칭을 기록하여 전대前代 역사와 참고해 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