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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7)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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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自六經焚於秦而復出於漢으로 其師傳之道中絶하고 而簡編脱亂訛缺하야 學者莫得其本眞이라 於是 諸儒章句之學興焉하고 其後 傳注箋解義疏之流 轉相講述하야 而聖道粗明이나 然其爲說 固已不勝其繁矣
至於上古以來世次國家興滅終始 僭竊僞亂하얀 史官備矣 而傳記小說 外曁方言地理職官氏族 皆出於史官之流也 自孔子在時 方修明聖經하야 以絀繆異하고 而老子著書論道德이러니
接乎周衰하야 戰國游談放蕩之士 列莊之徒 各極其辯이어늘 而孟軻荀卿 始專修孔氏하야 以折異端이라 然諸子之論 各成一家하야 自前世 皆存而不絶也러라
夫王迹熄而詩亡하고 離騷作而文辭之士興하니 歷代盛衰 文章與時高下러라 然其變態百出하야 不可窮極 何其多也 自漢以來 史官列其名氏篇第하야 以爲이러니 至唐하야 始分爲四類하니 曰經史子集이라
而藏書之盛 莫盛於開元하니 其著錄者五萬三千九百一十五卷이오 而唐之學者 自爲之書 又二萬八千四百六十九卷이니 嗚呼 可謂盛矣로다
六經之道 簡嚴易直하야 而天人備 故其愈久而益明이러니 其餘作者衆矣어늘 質之聖人 或離或合이나 然其精深閎博하야 各盡其術하고 而怪奇偉麗하야 往往震發於其間하니 此所以使好奇博愛者不能忘也
然凋零磨滅 亦不可勝數하니 豈其華文少實하야 不足以行遠歟 而俚言俗說 猥有存者 亦其有幸不幸歟 今著于篇 有其名而亡其書者 十蓋五六也 可不惜哉


예문지에 관한
나라에서 육경六經이 불탔다가 나라에서 다시 출현한 이래로 스승이 전한 가 중도에 끊어졌고, 간편簡編이 빠지고 어질러지고 잔결殘缺되어 학자들이 본래의 참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제유諸儒장구章句의 학문이 흥기하였다. 뒤에 전주傳注전해箋解의소義疏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서로서로 강술講述하여 성인의 도가 조금 밝아졌다. 그러나 그 주장들이 실로 이미 너무 번잡하였다.
상고시대 삼황三皇오제五帝 이래로 역대로 국가國家하고 하며 끝나고 시작함과 찬탈하여 훔치고 속여 어지럽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사관史官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기傳記소설小說과 밖으로 방언方言지리地理직관職官씨족氏族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관의 부류에서 나왔다. 공자孔子가 계실 때부터 성인의 경전을 닦아 밝혀 오류를 바로잡았고, 노자老子가 책을 저술하여 도덕道德을 논하였다.
그러다가 주나라의 말기에 와서 전국戰國시대의 유담지사游談之士방탕지사放蕩之士로서 전병田駢신도愼到열자列子장자莊子와 같은 무리가 각각 극력 논변을 하였는데, 맹가孟軻순경荀卿이 비로소 공자의 학문을 전적으로 연구하여 이단을 꺾었다. 그러나 제자諸子의 논변은 각각 일가一家를 이루어 이전 세대로부터 모두 남아서 멸절되지 않았다.
공자孔子노자老子공자孔子노자老子
저 제왕의 공업功業이 끊어지자 가 없어졌고, 〈이소離騷〉가 쓰여지자 문사文辭를 짓는 선비가 흥기하니, 역대歷代 성쇠盛衰문장文章이 시대와 더불어 부침하였다. 그러나 온갖 변화가 다 나와서 끝이 없음이 어찌 그리도 많은가. 나라 이래로 사관史官이 그 이름과 편장篇章의 순서를 나열하여 육예六藝구종九種이니 ≪칠략七略≫이니 등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나라에 와서 비로소 사류四類로 분류하니 ‘’이다.
장서藏書의 성대함이 개원開元 연간에 절정을 이루니, 저록著錄한 것이 53,915이고, 나라 학자가 스스로 지은 책이 또 28,469권이다. 아! 성대하다 하겠다.
육경六經는 간략하고 엄격하며 평이하고 질박하여 천인天人이 갖추어졌다. 그러므로 오래되면 될수록 더욱 밝아졌다. 그러다가 그 밖에 지은 책들이 많아졌는데 성인에 질정해보면 혹 유리되기도 하고 혹 부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심精深하고 굉박宏博하여 각각 나름의 학술을 다하고, 괴기怪奇하고 위려偉麗하여 왕왕往往 그 사이에 떨쳐 일어나니, 이것이 기이한 것을 좋아하고 박학을 사랑하는 자들이 잊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영락하고 마멸된 것이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어쩌면 화려한 문채에 실질이 적어 멀리 전해지기에 부족해서 그런 것인가. 그럼에도 이언俚言속설俗說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또한 거기에 행운과 불운이 존재하는 것인가. 지금 편명을 저록著錄함에 이름만 있고 책 자체는 없는 것이 열에 대여섯이니, 안타깝지 않겠는가.


역주
역주1 藝文志論 : 본 편은 〈藝文志〉의 서론에 해당하는 글로, 上古 시대에서 唐代까지의 書籍의 흥망성쇠를 간략하게 다루면서 漢代 劉歆의 ≪七略≫에 이르러 文體에 따라 서적을 분류하게 되었고 당대에 經史子集의 네 부류로 분류하기 시작한 한편, 開元 연간에 藏書가 제일 성대하게 발전하였다고 서술하였다. 다만 본 편에서는 당대 중엽 이후 書籍의 浮沈을 다룬 후반부는 발췌하지 않았다. 전체 서론 부분이 길지 않은 점에 비추어 茅坤이 후반부를 발췌하지 않은 이유는 자세하지 않다.
한편 〈예문지〉의 연혁을 살펴보면, ≪史記≫에는 이러한 성격의 篇目이 없고 유흠의 ≪칠략≫을 바탕으로 班固가 지은 ≪漢書≫ 〈藝文志〉가 이 분야의 최초라고 할 수 있다. ≪한서≫ 〈예문지〉는 ≪칠략≫의 六分法을 채택하여 先秦부터 前漢까지의 학술 발전 상황을 6略 38類로 분류하여 도합 596家, 13,269卷을 著錄한 중국 최초의 도서 분류목록이다. 이후의 史書들은 대부분 〈예문지〉 내지 동일한 성격의 편목인 〈經籍志〉를 두었는바, 예를 들어 ≪隋書≫와 ≪舊唐書≫는 〈경적지〉를 두었고 이후 ≪新唐書≫에서는 다시 〈예문지〉라고 개칭하였다. ≪수서≫ 〈경적지〉는 최초로 經籍을 경사자집 4部 40類로 나누고 佛家類와 道家類의 典籍을 별도로 붙여 總序와 小序에 小注 형식의 설명을 가하였다. ≪구당서≫ 〈경적지〉는 訓詁書, 文字書, 音韻書, 書法書 등의 도서를 著錄하고 또 錢譜, 竹譜를 史部 譜牒類에서 빼내어 子部로 옮기기도 하였다.
≪신당서≫ 〈예문지〉는 ≪구당서≫ 〈경적지〉의 체재를 그대로 받아들여 甲部經錄, 乙部史錄, 丙部子錄, 丁部集錄의 四部로 나누어 목록을 기재하였는데, 구체적인 하위 분류와 수록 서목에는 상호 출입이 있다. 예를 들어 갑부의 경우 ≪구당서≫에서는 易類, 書類, 詩類, 禮類, 樂類, 春秋類, 孝經類, 論語類, 圖緯類, 經解類, 詁訓類, 小學類 등 모두 12類로 분류한 반면, ≪신당서≫에서는 역류, 서류, 시류, 예류, 악류, 춘추류, 효경류, 논어류, 讖緯類, 경해류, 소학류 등 모두 11類로, 고훈류가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들어가 역류를 살펴보면, ≪구당서≫에는 78部, 673卷을 저록한 반면, ≪신당서≫에서는 76家, 88部, 665卷을 저록하여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新舊 唐書의 상호간의 차이에 대해서는 정밀한 대조가 필요해 보인다.
한편, 淸나라 때 학자인 金榜(1735~1801)은 ≪한서≫ 〈예문지〉에 통달하지 않으면 천하의 책들을 읽을 수 없다고 하여 〈예문지〉 연구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하였다.
역주2 三皇五帝 : 상고시대의 전설적인 제왕들로 三皇은 伏羲ㆍ神農ㆍ黃帝이고, 五帝는 少昊ㆍ顓頊ㆍ帝嚳ㆍ唐堯ㆍ虞舜을 말한다.
역주3 田駢愼到 : 戰國 시대 齊 宣王이 學士와 遊說하는 선비를 좋아하여 稷下에 學館을 지어 놓고 鄒衍, 淳于髡, 接子, 環淵 등과 함께 초빙하여 집을 주고 上大夫로 삼아 직무 없이 토론만 하게 한 선비들이다. ≪荀子≫ 〈非十二子〉편에서는 이들이 법도를 숭상하면서 법도가 없다고 비판하였고 ≪莊子≫ 〈天下〉편에서는 이들이 ‘齊萬物’, ‘棄知去己’, ‘笑天下之尙賢’, ‘無用賢聖’ 등의 설을 주장하였다고 하였다.
역주4 六藝九種七略 : 六藝는 유가의 六經인 ≪詩≫, ≪書≫, ≪禮≫, ≪樂≫, ≪易≫, ≪春秋≫를 말한다. 九種은 ≪易≫, ≪書≫, ≪詩≫, ≪春秋≫, ≪禮≫, ≪樂≫, ≪論語≫, ≪孝經≫ 및 ≪小學≫ 등 9종의 儒家 經典을 가리킨다. 七略은 前漢의 학자 劉向이 지은 ≪別錄≫을 토대로 아들 劉歆이 지은 서적 분류 목록으로, 輯略, 六藝略, 諸子略, 詩賦略, 兵書略, 術數略, 方技略을 합칭한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7)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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