當此之時하야 臣弑其君하고 子弑其父어늘 而搢紳之士가 安其祿而立其朝하야 充然無復廉恥之色者皆是也라
雖曰干戈興하고 學校廢하야 而禮義衰하고 風俗隳壞가 至於如此나 然自古天下에 未嘗無人也라
自古材賢
이 有
於中而不見於外
하야 或窮居陋巷
하야 委身草莽
하니 이어든
吾又以謂必有負材能修節義而沈淪於下泯沒而無聞者라하야
求之傳記호되 而亂世崩離하고 文字殘缺하야 不可復得이라
나 然與其食人之祿
하야 俛首而包羞
론 孰若無媿於心
하야 放身而自得
가
勢利不屈其心
하고 去就不違其義
는 吾得一人焉
하니 曰
이라
五代之亂에 君不君하며 臣不臣하며 父不父하며 子不子하고 至於兄弟夫婦人倫之際하야도 無不大壞而天理幾乎其滅하니
於此之時에 能以孝悌自修於一鄕而風行於天下者는 猶或有之라
然其事迹不著而無可紀次하니 獨其名氏或因見於書者를 吾亦不敢沒이라
09. 《오대사五代史》 〈일행전一行傳〉에 대한 논論
이 일단의 의론은 《사기史記》‧《한서漢書》 이래 누구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오대五代의 혼란이 극도에 이르렀으니, 옛글에 이른바 “천지天地가 닫히면 현인賢人이 숨는다.”는 때일 것이다.
이 당시에 신하는 자기 임금을 시해하고 자식은 자기 아버지를 시해하거늘, 사대부들은 모두 녹봉을 편안히 받으며 조정에 서서 만족스러워할 뿐 더 이상 염치廉恥의 기색도 없는 자들이었다.
나는 생각비대 예로부터 충신忠臣‧의사義士들은 혼란한 세상에서 많이 나오는 법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말할 만한 이들이 어찌하여 적은지 괴이하게 여기노니, 어찌 그러한 사람이 없었으리오.
비록 전란이 일어나고 학교가 없어져 예의禮義가 쇠퇴하고 풍속風俗이 파괴된 것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으나 예로부터 천하에 훌륭한 사람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생각건대 자신을 깨끗이 하여 자부심을 가진 선비로서 세상을 미워하여 멀리 떠나 볼 수 없는 이들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재주 있고 어진 인재로서 내면에 재능을 온축하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혹 누추한 거리에 곤궁히 살면서 산야山野에 몸을 의탁한 이들이 있었으니, 비록 안자顔子의 행실이라도 중니仲尼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름이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세상에 변고變故가 많아 군자의 도가 사라질 때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나는 또 생각건대 재능을 자부하고 절의節義를 지키면서 아래에 침체한 채 민몰泯沒되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기傳記에서 찾아보았지만, 난세의 북새통에 문헌이 잔결殘缺하여 찾아낼 수 없었다.
산림山林에 살면서 고라니‧사슴과 어울리는 것은 비록 중도中道라 할 수는 없지만, 남의 녹봉을 먹으면서 머리를 숙인 채 수치심을 품기보다는 차라리 마음에 부끄러움 없이 몸을 한가히 풀어놓은 채 유유자적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나는 이러한 이를 두 사람 찾았으니, 정오鄭遨와 장천명張薦明이다.
권세와 이익이 그 마음을 굽히지 못하고 벼슬에 나아가고 떠남에 의리를 어기지 않는 이를 나는 한 사람 찾았으니, 석앙石昻이다.
진실로 임금에게 이로우면 충성을 다하다 죄를 얻었으니 무엇하러 굳이 자신을 변명하리오.
죽음에 이르러도 말하지 않는 이가 있으니, 이는 옛날의 의사義士이다.
내 그러한 이를 한 사람 찾았으니, 정복빈鄭福贇이다.
오대五代의 난세亂世에는 임금은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였으며, 형제‧부부의 인륜人倫에 이르러서도 크게 무너져 천리天理가 거의 소멸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러한 때에 효제孝悌로 한 고을에서 그 행실을 스스로 닦아서 그 풍범風範이 천하에 널리 알려진 이는 그래도 혹 있었다.
그러나 그 사적이 드러나지 않아 기술할 수 없으니, 오직 그 이름과 성씨만이라도 혹 서적에 드러난 이들을 내가 감히 민몰泯沒시킬 수 없다.
그 대략 기록할 만한 이를 내 한 사람 찾았으니, 이자륜李自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