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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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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섬서안무사陝西安撫使 범룡도范龍圖에게 답하여 징소徵召를 사양한 편지
歐公本不欲爲范公幕府書記
구양공歐陽公은 본래 범공范公막부幕府 서기書記가 되고 싶지 않았다.
故云 與之同其退 可也어니와 與之同其進 不可也라하니 此是歐公自立處
그래서 “함께 물러나는 것은 괜찮지만, 함께 나아가는 것은 안 된다.” 하였으니, 이것이 구양공이 자립自立하는 대목이다.
脩頓首再拜啓하노이다
는 머리를 조아려 재배하고 아룁니다.
得七月十九日華州所發書하야 伏審尊體動止萬福이라
심부름꾼이 옴에 7월 19일 화주華州에서 보내신 편지를 받고서 즉일卽日존체尊體의 기거가 만복하심을 삼가 알았습니다.
戎狄侵邊 自古常事어늘 邊吏無狀하야 하니
융적戎狄이 변방을 침략하는 것은 예로부터 늘 있어온 일이거늘 변방의 관리가 못나서 대현大賢을 번거롭게 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伏惟執事 忠義之節 信於天下하야 天下之士得一識面者 退誇於人하야 以爲榮耀하고 至於游談布衣之賤하야도 往往竊託門下之名이온
삼가 생각건대 집사執事께서는 충의忠義로운 절개로 천하에 신망信望을 얻어 천하의 선비들이 한 번 집사를 만나본 사람은 물러나 사람들에게 자랑하면서 영광으로 여기고, 실없는 얘기를 일삼는 신분이 낮은 포의布衣들조차도 왕왕 집사의 이름을 몰래 가탁하곤 합니다.
矧今以大謀小하고 以順取逆하야 濟以明哲之才 有必成功之勢하니 則士之好功名者 於此爲時 孰不願出所長하야 少助萬一하야 得託附以成其名哉
하물며 지금은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도모하고 순리順理의 나라로서 역리逆理의 나라를 정벌함에 명철하신 재주로 일하여 반드시 성공할 형세가 있으니, 선비들로서 공명功名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때에 누군들 자기의 소장所長을 발휘하여 만에 하나라도 조금 도와서 집사에게 의탁하여 그 명성을 이루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況聞狂寇猖獗하야 하며 加之하고 至於하고 殺害邊民하니 凡此數事 在於脩輩 尤爲憤恥 每一思之 中夜三起로라
더구나 미친 외적이 창궐하여 누차 조정을 지적하여 꾸짖는 말을 하고, 게다가 각장榷場의 세금을 징수할 수 있게 해달라는 모욕적인 요구를 하였으며, 심지어 장리將吏를 죽이고 변방의 백성들을 살육하였으니, 무릇 이 몇 가지 사건들은 저희들에 있어 더욱 분하고 수치스런 것이라, 생각할 때마다 한밤중에 세 번씩이나 벌떡 일어나곤 합니다.
不幸脩無所能하고 徒以少喜文字 過爲世俗見許하니 此豈足以當大君子之擧哉
불행히도 저는 아무런 능력이 없고 단지 젊어서 글을 좋아한 덕분에 지나치게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으니, 이 어찌 대군자大君子의 임용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若夫參決軍謀하며 經畫財利하야 料敵制勝 在於幕府 苟不乏人이면 則軍書奏記 一末事耳 有不待脩而堪者矣
군대의 계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국방에 쓰이는 재리財利를 경영하여 적의 형세를 헤아려 승리를 거두는 것 같은 일에는 집사의 막부幕府에 진실로 인재가 부족하지 않다면 군대 서기書記의 직책은 일개 말단의 일이니, 굳이 제가 아니어도 맡을 만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由此始敢以親爲辭
이런 까닭에 처음으로 감히 모친 봉양을 이유로 사양합니다.
況今世人所謂四六者 非脩所好
더구나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륙문四六文은 제가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少爲進士時 不免作之라가 自及第 遂棄不復作이라
젊어서 진사進士가 될 때 어쩔 수 없이 짓다가, 급제한 뒤로는 끊어버리고 다시는 그런 글을 짓지 않았습니다.
하얀 於職當作이로되 亦不爲作하니所見이라
서경西京에서 삼상三相의 막부에 추관推官으로 있을 때에는 응당 직책상 사륙문을 지어야 하는데도 짓지 않았으니, 이는 사로師魯가 본 바입니다.
今廢已久하니 懼無好辭以辱嘉命이니 此一端也
지금은 그런 글을 짓지 않은 지 이미 오래라 좋은 문사文辭가 없어 집사의 임명任命을 욕되게 할까 두려우니, 이것이 한 가지 이유입니다.
伏見自至關西 辟士甚衆이라
삼가 보건대 관서關西로 부임하신 뒤부터 매우 많은 선비들을 휘하에 불러들이셨습니다.
古人所與成事者 必有國士共之 非惟在上者以知人爲難이요 士雖貧賤이라도 以身許人 固亦未易하니
고인古人이 함께 일을 이룰 때에는 반드시 함께한 국사國士가 있었으니, 윗사람이 인재를 알아보는 것을 어렵게 여길 뿐 아니라, 선비가 비록 빈천貧賤하더라도 자신을 남에게 허여하는 것은 진실로 쉽지 않습니다.
欲其盡死인댄 必深相知 知之不盡이면 士不爲用이라
그 사람이 목숨을 바쳐 충성하길 바란다면 반드시 그 사람을 깊이 알아야 할 것이니, 아는 것이 극진하지 않으면 선비가 쓰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今奇怪豪傑之士 往往蒙見收擇하니 顧用之如何爾
지금 기괴奇怪하고 출중한 선비들이 왕왕 집사의 휘하에 뽑혀 들어갔으니, 이제는 도리어 그들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然尙慮山林草莽 有挺特知義慷慨自重之士 未得出於門下也 宜少思焉하라
그러나 아직도 산림山林초야草野에 특출하고 의리를 알며 강개慷慨하면서 몸가짐이 무거운 선비로 아직 집사의 문하에 나오지 않은 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니, 조금 더 생각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若脩者 恨無他才以當長者之用하니 非敢效庸人苟且樂安佚也
저 같은 사람은 아쉽게도 장자長者의 임용을 감당할 별다른 재능이 없으니, 구차히 안일을 즐기려는 용렬한 사람의 작태를 감히 본받는 것이 아닙니다.
幸察하라
양찰諒察해주시기 바랍니다.
역주
역주1 答陝西安撫使范龍圖辭辟命書 : 이 편지는 康定 원년(1040)에 쓴 것이다. 이해에 西夏가 누차 宋나라 변방을 침공하여 城寨를 자주 함락시키고, 송나라 대장 劉平과 石元孫을 포로로 잡았다. 이해 8월에 范仲淹이 나가서 陝西經略安撫副使를 맡아 구양수를 불러 幕府의 書記로 삼고자 하였다. 그래서 구양수가 이 편지를 써서 사양한 것이다.
安撫使는 관직 이름이다. 처음에는 諸路의 災害와 用兵에 관한 일을 위해 특별히 파견하였는데, 후에 점차 각 路의 軍務와 治安을 담당하는 長官이 되었다. 통상 知州나 知府가 겸임하였다.
范龍圖는 범중엄을 가리킨다. 그가 龍圖閣直學士를 兼帶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辟命은 장관이 불러서 屬吏로 임명하는 것이다.
역주2 急步 : 급히 가서 편지를 전하는 사람이란 말로, 편지를 전하는 심부름꾼을 뜻하는 말이다. 急足, 急脚, 健步 등과 같은 말이다. 本集에는 ‘急脚’으로 되어 있다.
역주3 卽日 : 편지에서 상대방이 편지를 보낸 당일을 가리킨다.
역주4 至煩大賢 : 大賢은 范仲淹을 가리킨다. 즉, 변방을 지키던 관리가 무능하여 범중엄이 변방을 지키는 중책을 맡게 되었음을 뜻한다.
역주5 屢有斥指之詞 : 寶元 2년(1038)에 西夏의 군주 元昊가 반란을 통고하는 國書를 보냈는데, 그 글에서 宋나라의 잘못을 지적하여 꾸짖는 내용이 있었다. 元昊는, 일명은 李曩霄이고 어릴 때의 자는 嵬理이다. 선대에는 본래 李氏였는데, 송나라로부터 趙氏 성을 하사받았다. 宋 仁宗 寶元 원년(1038)에 西蜀 일대에서 일어나 稱帝하여 국호를 夏라 하고 송나라에 맞서 여러 차례 교전하다가, 經曆 4년에 비로소 表를 올려 稱臣하고 송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宋史 권485 外國列傳》
역주6 輕侮購募之辱 : 宋나라가 西夏와 화친을 맺을 때 양국의 국경 지역에 榷場을 설치하여 교역할 수 있게 해주되 그 세금 몫으로 일정한 물자를 달라고 한 서하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榷場은 專賣의 세금을 징수하는 교역 장소이다.
역주7 執戮將吏 : 宋나라가 西夏와 교전하여 송나라 군대의 대장 葛懷敏이 전사하고 李士彬 부자가 사로잡혔으며, 그 후에는 또 劉平, 石元孫, 傅偃, 劉發 등이 포로가 되었다.
역주8 在西京佐三相幕府 : 西京은 洛陽의 이칭이다. 歐陽脩가 景祐 원년(1034) 3월에 西京留守 推官에 임명되었다. 구양수의 임기 중에 錢惟演, 張士遜, 楊崇勛 세 사람이 同平章事로서 서경유수를 맡았기 때문에 三相, 즉 세 재상이라 한 것이다.
역주9 師魯 : 구양수의 知己인 尹洙의 자이다. 그는 문학에 조예가 깊어 문장의 풍격이 簡古하고 시를 잘 지었으며, 구양수와 함께 古文運動을 제창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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