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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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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양치楊寘를 보내는 서문
此文 當肩視昌黎而直上之
이 글은 한창려韓昌黎(한유韓愈)의 문장과 대등하면서 곧장 그 위에 놓일 만하다.
予嘗有하야 退而閑居하되 不能治也
내 일찍이 깊은 근심으로 생긴 병이 있어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로이 지냈지만 고칠 수가 없었다.
旣而學琴於友人하야 하야 久而樂之하야 不知疾之在其體也
그런데 얼마 뒤에 벗 손도자孫道滋에게 을 배워 궁성宮聲 몇 곡을 가르침 받고서 오랫동안 즐거워하며 질병이 몸에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夫琴之爲技 小矣 及其至也하얀
무릇 을 다루는 기예가 하찮은 것이지만 그 지극한 경지에 미쳐서는, 큰 소리는 궁성宮聲이 되고 작은 소리는 우성羽聲이 된다.
操絃驟作 忽然變之하야 急者悽然以促하며 緩者舒然以和 如崩崖裂石하며 高山出泉하고 而風雨夜至也하며
줄을 잡고 튕김에 홀연히 변화하여 급한 것은 처량하게 촉급促急하며 느긋한 것은 여유롭게 온화溫和함이 마치 무너지는 절벽에 돌이 부서져 내리기도 하고 높은 산에 샘물이 흘러나오기도 하며 비바람이 밤에 몰아치는 듯하다.
또 마치 홀아비와 과부가 탄식하기도 하고 암컷과 수컷 새가 사이좋게 서로 울기도 하는 듯하다.
그 근심과 생각이 심원深遠한 것으로 말하면 임금과 문왕文王공자孔子가 남긴 소리이고, 슬퍼하고 시름겨워하며 감격하고 분노하는 것으로 말하면 고아 백기伯奇와 충신 굴원屈原이 탄식하는 소리이다.
喜怒哀樂 動人必深하고하니 其能聽之以耳하며 應之以手하야 하야 道其湮鬱하며 寫其 則感人之際 亦有至者焉이라
〈연주를 듣고 생겨나는〉 희로喜怒애락哀樂이 사람을 감동시킴이 반드시 깊고, 〈 연주의〉 순고純古하고 담박淡泊함이 요순堯舜삼대三代 시절의 언어와 공자孔子의 문장, 《역경易經》의 우환과 《시경詩經》의 원망‧풍자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으니, 그 귀로 듣고 손으로 호응하여 그 조화로움을 취하여 그 막힌 속을 소통시키고 그 울적한 생각을 풀 수 있는 것으로 보자면 이 사람을 감동시킬 때 또한 지극함이 있는 것이다.
予友楊君 好學有文이로되 累以進士擧不得志러니
내 벗 양군은 학문을 좋아하여 문아文雅가 있었는데 여러 차례 진사시를 치렀지만 급제하지 못하였다.
及從하야 爲尉於 區區在東南數千里外하니 是其心固有不平者
그러다 음직蔭職으로 조용調用되어 검포劍浦에서 현위縣尉가 되어 보잘것없이 동남쪽 수천 리 밖에 있게 되니 이것이 그 마음에 본래 불평하는 뜻이 있게 된 것이다.
且少又多疾하되 而南方少醫藥하고 風俗飮食異宜하니
게다가 어렸을 때는 또 질병이 많았는데 남쪽 지방이 의약醫藥이 적고 풍속과 음식이 맞지 않았다.
以多疾之體 有不平之心하야 居異宜之俗하니 其能鬱鬱以久乎
병이 많은 몸으로 불평하는 마음이 있으면서 풍속이 맞지 않는 지방에 머물고 있으니 어떻게 울적하게 오랫동안 지낼 수 있겠는가.
然欲平其心하야 以養其疾인댄 於琴亦將有得焉이라
그렇지만 그 마음을 진정하여 그 질병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을 통해서 또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故予作琴說以贈其行하고 且邀道滋하야 酌酒進琴以爲別하노라
그래서 내가 금설琴說을 지어 그가 가는 길에 주고 또 손도자孫道滋를 맞이하여 술을 따르고 을 올려 작별하고자 한다.
역주
역주1 : 이 글은 慶曆 7년(1047)에 지은 것이다. 이해에 구양수는 滁州의 임기가 찼다. 楊寘는 傳記가 자세하지 않다. 《宋史》 〈文苑傳〉에 楊寘라는 이가 立傳되어 있는데 시대는 같지만 행적이 매우 달라서 同名異人으로 보인다.
역주2 幽憂之疾 : 깊은 근심과 염려에 빠져 생기는 질병으로, 세상을 염려하고 있음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莊子》 〈讓王〉에 “그렇지만 내가 마침 깊은 근심으로 생긴 병이 있어 한창 치료하고 있는 중이라 천하를 다스릴 겨를이 없습니다.[雖然 我適有幽憂之病 方且治之 未暇治天下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역주3 孫道滋 : 구양수의 벗이다. 구양수가 《于役志》라는 책에서 “처음 夷陵에 貶謫되었을 적에 여러 번 道滋 등과 함께 밤에 술을 마시며 琴을 연주하고 유숙하다가 이별하였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역주4 受宮聲數引 : 宮聲은 五音 가운데 하나이다. 《春秋公羊傳》 何休의 주석에 “宮聲을 들으면 사람을 溫雅하고 廣大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引은 曲과 같은 말로, 《初學記》 권16 〈樂部下 琴第一〉에 “옛 琴曲에 〈九引〉이 있다.”라고 하였다.
역주5 大者爲宮 細者爲羽 : 宮聲은 浩大하고 壯闊하며 羽聲은 尖細하고 淸脆하다는 말이다.
역주6 如崩崖裂石……雌雄雍雍之相鳴也 : 모두 琴을 연주하는 소리를 묘사한 것으로, 앞의 3구는 琴을 연주하는 소리가 高亢되고 激烈하며 淸新하고 急促한 것을 묘사한 것이고, 뒤의 2구는 각각 슬프고 원망스러운 琴聲과 온화하고 완곡한 琴聲을 묘사한 것이다.
역주7 其憂深思遠 則舜與文王孔子之遺音也 : 舜‧文王‧孔子가 琴을 연주했던 고사를 가지고 琴이 근심과 생각이 심원한[憂深思遠]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설명한 것이다.
舜의 사례는 《春秋左氏傳》 襄公 29년에 “吳나라 公子 季札이 魯나라에 聘問 가서 음악을 구경하였다. 그를 위해 〈唐風〉을 연주하니 계찰이 말하기를 ‘생각이 깊구나! 陶唐氏(堯임금)의 遺民이 지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리 근심이 깊단 말인가.’라고 하였다.”라고 하였고, 《孔子家語》에 “舜임금이 五絃琴을 뜯으며 〈南風〉 시를 지으니, 그 시에 ‘남풍이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여움을 풀어줄 만하도다. 남풍이 때맞춰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부유케 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라고 하였다.”라고 한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文王의 사례는 琴曲 가운데 〈文王操〉라는 것이 있는데, 桓譚의 《新論》에 “〈文王操〉라는 것은 文王 때 殷王 紂가 無道하니……문왕이 몸소 法度를 지키고 仁義를 남몰래 행하면서 琴을 잡고 歌操를 지었다. 그래서 그 소리가 분란하고 어지러워 놀라게 하는 角聲과 뒤흔드는 商聲을 내었다.”라고 한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孔子의 사례는 《禮記》 〈檀弓〉에 “공자께서 祥祭를 지내시고 닷새가 되었을 때 琴을 연주하되 가락을 이루지 않으셨고 열흘이 지나서야 笙歌를 하셨다.”라고 한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역주8 悲愁感憤 則伯奇孤子屈原忠臣之所歎也 : 伯奇와 屈原이 죄가 없는데도 쫓겨난 고사를 가지고 琴을 연주하는 소리가 슬퍼하고 시름겨워하며 감격하고 분노하는[悲愁感憤] 감정을 드러낼 수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伯奇는 周 宣王 때 重臣 尹吉甫의 맏아들이다. 모친이 세상을 떠나고 繼母가 자신이 낳은 아들 伯封을 태자로 세우려고 윤길보에게 백기를 헐뜯자 윤길보가 노하여 들판으로 백기를 쫓아버렸다. 백기는 자신이 죄가 없는데도 쫓겨난 데 상심하여 〈履霜操〉라는 琴曲을 지어 회포를 폈다. 윤길보는 이 금곡을 듣고 感悟하여 마침내 백기를 찾고 後妻를 활로 쏘아 죽였다고 한다.
屈原은 이름이 平으로 楚나라의 三閭大夫였는데, 懷王이 忠諫을 따르지 않았고, 뒤에 懷王에게 쫓겨나자 〈離騷〉를 짓고 汨羅水에 빠져 죽었다.
역주9 純古淡泊……無以異 : 《尙書》‧《春秋》‧《易經》‧《詩經》 등 경전의 문장을 가지고 琴을 연주하는 소리가 純古하고 淡泊한 특색을 비유한 것이다. 堯舜 및 三代 시절의 언어는 《尙書》를 가리키니, 《尙書》가 堯舜과 夏‧殷‧周 三代의 言辭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공자의 문장은 《春秋》를 가리키니, 전설에 따르면 《春秋》는 공자가 編修한 것이라고 한다. 《易經》의 우환은 〈繫辭傳 下〉에 “《易》이 발생한 것은 中古 시절일 것이다. 《易》을 만든 이는 憂患이 있어서였을 것이다.”라고 한 것을 가리키는데, 전설에 따르면 周 文王이 羑里에 수감되어 있을 때 《易》을 演繹하였기에 그 안에 깊은 우환의식이 충만하였다고 한다. 《詩經》의 원망과 풍자는 《漢書》 〈禮樂志〉에 “周나라의 道가 처음 어그러지자 원망하고 풍자하는 시[怨刺之詩]가 생겨났다.”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역주10 取其和者 : 傅奕의 〈琴賦序〉에 “神農氏가 琴을 만든 것은 天下의 人性을 協和하여 至和의 주인이 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1 : 본집에는 ‘憂’로 되어 있다.
역주12 廕調 : 父兄의 地位를 통해 官職에 임명되는 것을 말한다.
역주13 劍浦 : 宋代에 劍州 劍浦縣으로 지금의 福建省 南平縣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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