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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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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장응지張應之에 대한 서문
思入細
사유가 세밀한 데까지 들어갔다.
라하니 謂乎名之必可言也
에 이르기를 “이름으로써 그 사람의 분의分義제정制定한다.”라고 하니, 명명命名하면 반드시 사리에 맞아 말할 만함을 이른 것이다.
世之士君子 名而無所言하고 言則不能稱述以見乎遠이라
그런데 지금 세상의 사군자士君子들은 이름은 있지만 말할 만한 것이 없고, 말을 하더라도 칭술하여 오랜 뒤에까지 전해지지 못한다.
余友河南主簿張君 名谷이요 字仲容이라
내 벗 하남주부河南主簿 장군張君은 이름이 이고 중용仲容이다.
谷之爲義 하며 動而能應하고 湛然而深 有似乎賢人君子之德하니 其所謂名而可言者也
이라는 뜻[]은 움푹 패여 물을 채워도 가득 차지 않으며 진동하기만 하면 메아리로 응하고 물이 맑으면서도 깊은 것이 마치 현인賢人군자君子의 덕과 비슷한 점이 있으니, 바로 이른바 ‘명명하면 사리에 맞아 말할 만하다.’는 것이다.
然嘗竊謂仲容之字 不足以表其所以名之之義로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나는 속으로 중용仲容이라는 는 그가 이라고 명명한 뜻을 충분히 드러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大凡物以至虛而爲用者有三하니 其體殊焉이라
대체로 사물 가운데 지극한 비움으로 쓰이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각각의 양상은 다르다.
有虛其形而能受者 器之圓方是也
그 형체를 비워서 담을 수 있는 것은 둥글거나 모난 그릇이 바로 그것이다.
然受則有量이라 故多盈溢敗覆之過하며
그렇지만 담는 데에 한량限量이 있기 때문에 가득 차 넘치거나 뒤집어지는 지나침이 많이 생긴다.
有虛其中而能鳴乎外者 鐘鼓是也
그 중심을 비워서 외부로 울릴 수 있는 것은 종과 북이 바로 그것이다.
然鳴必假物이라 故須考擊之設이요
그렇지만 이것들을 울리려면 반드시 다른 물건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걸어 매거나 두드릴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有虛其體而能應物者 空谷是也
그 몸체를 비워서 사물에 호응할 수 있는 것은 빈 골짜기[]가 바로 그것이다.
然應必有待 故常自然以至靜接物而無窮이라
그렇지만 호응하자면 반드시 무언가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항상 자연스럽게 지극한 고요함으로 사물을 접하여 다함이 없다.
士之以是爲其名하니 則君之道 從可知也
선비가 이것으로 그 이름을 삼았으니 장군張君이 지키는 도리를 여기에서 알 수 있다.
宜易其字曰應之 蓋容以言其虛之狀 不若應以體乎容之德也니라
의당 그 응지應之라고 바꿔야 할 것이니 이라는 글자로 그 비운 모양을 명명하는 것이 이라는 글자로 체현體現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君早以文藝 考行於鄕里하야 薦之於有司하고 而又試其用於者之選하야 深中隱厚하고 學優道充하니 其有以應乎物矣
장군張君은 일찍 효렴孝廉문예文藝향리鄕里에서 좋은 평판을 받아 유사有司에게 천거되었고, 또 춘관春官의 고시에서 그 재능을 펼쳐서 염정廉正하고 충후忠厚하며 학식이 넉넉하고 도덕이 충실하니 사물에 호응함이 있을 것이다.
然今方爲小官主簿書하야 其所應者近而小하니 誠未能有以發乎其聲也
그렇지만 지금 문서를 관장하는 미관微官이 되어 그 호응함이 천근淺近하면서 쇄소瑣小하니 참으로 아직 그 소리를 발하지 못하고 있다.
余知夫虛以待之 則物之來者益廣하며 響之應者益遠하니 可涯也哉
비움으로 기다리면 사물이 다가오는 것이 더욱 광대해지고 호응하는 메아리가 더욱 멀리 미칠 것임을 나는 아노니 그 끝이 있겠는가.
余與君同以進士登于科하고 又同爲吏于此하야 群居肩隨 宴閒相語하야 得以字而相呼
내가 장군張君과 함께 진사進士로 과거에 급제하였고 또 함께 여기에서 관리가 되어 무리 지어 지내고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한가로이 지낼 때 담소하면서 를 가지고 서로 불렀다.
故於是 不能讓而默也일새 敢爲序以易之하노라
그래서 이에 사양하며 침묵하고 있지 못하겠기에 감히 서문을 지어 를 바꾸어준다.
역주
역주1 : 이 글의 마지막 단락에 “내가 張君과 함께 進士로 과거에 급제하였고 또 함께 여기에서 관리가 되었다.”라고 한 말이 있는데 《年譜》에 의거해보면, 구양수는 天聖 9년(1031) 3월에서 景祐 元年(1034) 3월까지 西京留守의 推官으로 있었으므로 이 글은 이 수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다.
張應之는 바로 張谷으로 구양수와 같은 해 進士가 되었고 또 함께 西京留守의 막부에서 구양수는 推官을, 장곡은 主簿를 맡았다.
역주2 傳曰 名以制義 : 《春秋左氏傳》 桓公 2년에 “이름으로써 그 사람의 分義를 制定하고 의로써 예를 낸다.[夫名以制義 義以出禮]”라고 하였는데, 그 주석에 “命名하면 반드시 사리에 맞아 말할 만하다.[名之必可言也]”라고 하였다.
역주3 窪而不盈 : 窪는 움푹 패여 있는 작은 물웅덩이로, 《老子》 22장에 “움푹 패어 있으면 찰 수 있고, 해지면 새로워질 수 있다.[窪則盈 敝則新]”라고 하였다.
역주4 簨簴(순거) : 고대에 종, 석경, 북 등을 매어놓는 나무틀을 가리키는데, 가로로 댄 나무를 簨이라고 하고 기둥처럼 세운 것은 簴라고 한다.
역주5 孝廉 : 본래 漢代에 관리를 선발하는 두 가지 科目으로, 孝는 孝子를 가리키고 廉은 廉潔한 선비를 가리킨다. 漢 武帝 元光 元年(B.C. 134)에 郡國에 令을 내려 孝와 廉 각각 1人을 천거하게 하였다가 뒤에는 孝廉이라고 합칭하였는데, 역대로 襲用하여 州에서는 秀才를 천거하고 郡에서는 孝廉을 천거하게 되었다.
역주6 春官 : 禮部를 말한다. 唐나라 武測天 때 禮部를 春官으로 개명한 뒤로, 후세에 춘관으로 예부를 통칭하였다. 唐‧宋 때 과거고시는 예부에서 주관하였다. 여기서는 進士科에 응시한 것을 말한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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