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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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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1. 능계석菱溪石에 대한 기문記文
事雖不甚緊要 却自風致翛然이라
일은 그다지 긴요하지 않으나 도리어 절로 초연한 풍치風致가 있다.
菱溪之石有六이러니 其四爲人取去하고 其一差小而尤奇하야 亦藏民家하고 其最大者 偃然僵臥於谿側하니 以其難徙 故得獨存이라
능계菱溪의 돌은 여섯 개가 있었는데, 그중 네 개는 사람들이 가져가버렸고, 〈남은 두 개 중〉 하나는 조금 작으면서 더욱 기이하여 또한 민가民家에 보관하고 있고, 가장 큰 것은 편안하게 능계菱溪 곁에 누워 있으니 운반하기 어렵기 때문에 홀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每歲寒霜落하야 水涸而石出이면 谿傍人見其可怪하야 往往祀以爲神이라
날씨가 추워져 서리가 내려 물이 말라 돌이 드러날 때마다 시냇가의 사람들이 괴이함을 보고서 왕왕 제사를 지내 신령한 것으로 삼았다.
菱谿皆不載
능계菱溪을 살펴보면 모두 수록되어 있지 않다.
刺史李濆爲荇谿記云 水出하야 西經라하되 以地求之하면 今無所謂荇谿者
회창會昌 연간에 자사刺史 이분李濆이 〈행계기荇谿記〉를 지어 “물이 영양령永陽嶺에서 나와 서쪽으로 황도산皇道山을 경유하여 내려온다.”라고 하였는데, 그 지역에서 찾아보면 지금 이른바 행계荇溪라는 것은 없다.
詢於滁州人하니 曰 此谿是也
저주滁州 사람에게 물어보니 “능계菱溪가 바로 행계荇溪이다.
하니 淮人爲諱其嫌名하야 以荇爲菱이라하니 理或然也
양행밀楊行密회남淮南을 점거하였는데, 회남淮南 사람들이 그의 혐오스런 이름을 피하여 ‘’자를 ‘’자로 바꾸었다.”라고 하니 이치가 그럴듯하였다.
谿傍若有遺址하니 云故將之宅이니 石卽劉氏之物也라하다
시냇가에 유허遺墟가 있으니 옛 장수 유금劉金의 집인데, 돌은 바로 유씨劉氏의 물건이었다고 한다.
時貴將이라
유금劉金위오僞吳 때의 높은 장수였다.
與行密俱起合淝하니 號三十六英雄 金其一也
양행밀楊行密과 함께 합비合淝에서 거병擧兵하였으니, 36명의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 중에 유금劉金이 한 사람이다.
金本武夫悍卒이어늘 而乃能知愛賞奇異하야 爲兒女子之好하니 豈非遭逢亂世하야 功成志得하야 驕於富貴之佚欲而然耶
유금劉金은 본래 씩씩한 무부武夫이자 용맹한 병사였는데, 이에 능히 기이한 것을 애상愛賞할 줄 알아서 아녀자들이 좋아할 거리가 되었으니 아마도 난세를 만나 공을 이루고 뜻을 얻어 부귀富貴에 대한 큰 욕심 탓에 교만해져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想其陂池臺榭 奇木異草 與此石稱하니 亦一時之盛哉인저
못과 누대에 기이한 초목이 이 돌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또한 당시의 성대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今劉氏之後 散爲編氓하되 尙有居谿旁者
지금 유씨劉氏의 후손들은 흩어져 평민이 되었지만 아직도 능계菱溪 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予感夫人物之廢興하고 惜其可愛而反棄也하야 乃以三牛曳置하고 又索其小者하야 得於白塔民朱氏하야 遂立于亭之南北하니 亭負城而近일새 以爲滁人歲時嬉遊之好
나는 저 인물의 흥폐에 대해 감회가 일고, 돌이 아낄 만한데 도리어 버려진 것을 애석하게 여겨 이에 세 마리의 소로 돌을 끌어다 유곡幽谷에 두고, 또 그 작은 돌을 찾아 백탑白塔에 사는 주씨朱氏에게서 얻어 마침내 정자의 남북에 세워두니, 정자는 성을 등지고 가까이 있기 때문에 저주滁州 사람들이 세시歲時로 노닐며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
夫物之奇者 棄沒於幽遠則可惜이요 置之耳目則愛者不免取之而去
사물 중에 기이한 것이 유원幽遠한 곳에 버려져 매몰되면 아까워할 만하고, 그것을 이목耳目에 띠는 곳에 놓아두면 좋아하는 사람이 가지고 가버림을 면치 못한다.
嗟夫 劉金者 雖不足道 然亦可謂雄勇之士 其生平志氣 豈不偉哉
아, 유금劉金이란 자는 비록 말할 것이 못 되지만 또한 씩씩하고 용맹한 사내였으니 평생의 지기志氣가 어찌 크지 않았겠는가.
及其後世하야 荒烟零落하야 至於子孫泯沒而無聞이온 況欲長有此石乎
후세에 이르러 몰락하고 쇠락하여 자손들이 민몰泯沒되어 알려짐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하물며 이 돌을 오래도록 소유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用此可爲富貴者之戒
이로써 부귀한 자들의 경계로 삼을 만하다.
而好奇之士聞此石者 可以一賞而足이니 何必取而去也哉
그리고 이 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선비는 한번 완상하면 그만일 것이니 굳이 가져갈 필요 있겠는가.
唐荊川曰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行文 委曲幽妙하야 零零碎碎作文하니 歐陽公獨長이라
“글을 짓는 것이 위곡委曲하고 유묘幽妙하여 자질구레한 일을 가지고 글을 지었으니 구양수歐陽脩만의 장점이다.”
역주
역주1 : 이 글은 歐陽脩가 滁州에 있던 慶曆 6년(1046)에 지은 것이다. 菱溪는 滁州城 동쪽 5리쯤에 있는 작은 시내이다.
역주2 圖與經 : 地理에 관한 서적들을 가리킨다.
역주3 會昌 : 唐나라 때의 연호로 841년에서 846년까지이다.
역주4 永陽嶺 : 安徽 來安縣 북쪽에 있다.
역주5 皇道山 : 滁州의 동북쪽 18리쯤에 있다.
역주6 楊行密據淮南 : 楊行密은 唐 昭宗 때에 淮南節度使가 되었는데, 후에 스스로 五代十國의 하나인 吳나라를 세우고 淮南 일대를 점거하였다.
역주7 劉金 : 楊行密의 部將으로 唐 僖宗 때에 楊行密과 함께 合淝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일찍이 濠州와 滁州의 刺史를 역임하였는데, 용맹함으로 이름을 알렸다.
역주8 僞吳 : 楊行密이 唐 僖宗 때에 合淝에서 반란을 일으켜 吳國을 세우고 淮南 일대를 점거하였다. 五代十國의 하나이다.
역주9 幽谷 : 滁州의 남쪽에 있으니 豐樂亭을 바로 幽谷의 紫微泉 가에 세웠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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