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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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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2. 부사산浮槎山의 물에 대한 기문記文
風韻翛然이라
운치가 소연하다.
在愼縣南三十五里하니 或曰浮闍山이라하고 或曰浮巢二山이라하니
부사산浮槎山신현愼縣 남쪽 35리에 있으니 부도산浮闍山이라 부르기도 하고 부소이산浮巢二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其事出於之徒荒怪誕幻之說이라
부사浮槎에 관한 일은 불가佛家도가道家들이 하는 황당하고 기괴한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其上有泉하니 自前世論水者皆弗道
부사산浮槎山 위에 샘이 있으니 전세前世로부터 물을 논한 사람들은 모두 말한 적이 없었다.
余嘗讀하야 愛陸羽善言水러니 後得
내가 일찍이 《다경茶經》을 읽고서 육우陸羽가 물에 대해 잘 말하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후에 장우신張又新의 《전다수기煎茶水記》를 얻어봄에 유백추劉伯芻이계경李季卿이 나열한 물의 차례를 수록해놓고서 육우陸羽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然以茶經考之컨대 皆不合이요 又新 妄狂險譎之士 其言難信이라
그러나 《다경茶經》을 상고해보건대 모두 합치되지 않고, 장우신張又新경망輕妄하고 음험陰險한 선비이니 그의 말은 믿기 어렵다.
頗疑非羽之說이러니 及得浮槎山水하고 然後益以羽爲知水者러라
자못 육우陸羽의 설이 아닐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는데, 부사산浮槎山의 물을 얻고 난 뒤에 더욱 육우陸羽가 물을 아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浮槎與 皆在廬州界中하되 較其水味컨댄 不及浮槎遠甚이어늘
부사산浮槎山용지산龍池山은 모두 여주廬州 지역에 있는데도 물맛을 비교해보면 부사산浮槎山의 물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而又新所記 以龍池爲第十하고 浮槎之水 棄而不錄하니 以此知其所失多矣
그러나 장우신張又新이 기록한 바에는 용지龍池를 10등이라 하였고 부사산浮槎山의 물은 버리고 기록조차 하지 않았으니, 이로써 잘못된 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羽則不然하야 其論曰 山水上이요 江次之 井爲下
육우陸羽는 그렇지 않아 논하기를 “산수山水가 으뜸이고 강수江水가 다음이고 우물물이 하등이 된다.
山水 乳泉石池漫流者上이라하니 其言雖簡이나 而於論水 盡矣
산수山水유천乳泉석지石池가 넘쳐흐르는 것이 으뜸이다.”라고 하였으니, 그의 말은 비록 간략하지만 물을 논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다.
浮槎之水 發自
부사산浮槎山의 물은 이후李侯가 처음 발견하였다.
嘉祐二年 李侯以鎭東軍 出守廬州하야 因遊金陵하고하야 飮其水하고
가우嘉祐 2년(1057)에 이후李侯진동군류후鎭東軍留後로 외직으로 나와 여주廬州의 수령이 되어 금릉金陵을 유람하고 장산蔣山에 올라 그 물을 마셔보았다.
旣又登浮槎하야 至其山上 有石池涓涓可愛하니 蓋羽所謂乳泉漫流者也
이윽고 또 부사산浮槎山에 올라 산 위에 이르자 석지石池가 졸졸 흐르는 모습이 좋았으니 대개 육우陸羽가 이른바 “유천乳泉이 흘러나온다.”라는 것이었다.
飮之而甘일새 乃考圖記하고 問於故老하야 得其事迹하고 因以其水遺予於京師어늘 予報之曰
물을 마셔봄에 맛이 좋은지라 이에 도기圖記를 고찰하고 그곳의 노인들에게 물어서 사적事迹을 찾고, 인하여 그 물을 서울에 있는 나에게 보내왔거늘 내가 그에게 이렇게 답하였다.
李侯 可謂賢矣로다
이후李侯는 어질다고 할 만하다.
夫窮天下之物하야 無不得其欲者 富貴者之樂也이요
천하의 사물을 다 찾아서 원하는 사물을 얻지 못함이 없는 것은 부귀한 사람의 즐거움이다.
至於蔭長松하며 藉豐草하야 聽山溜之潺湲하며 飮石泉之滴瀝 此山林者之樂也
그리고 우거진 장송長松 아래에 이르러 무성한 풀을 깔고 앉아서 산골물의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흐르는 석천石泉의 물을 마시는 것은 바로 산림에 있는 자의 즐거움이다.
而山林之士 視天下之樂 不一動其心하고 或有欲於心이라도 顧力不可得而止者라야 乃能退而獲樂於斯하니 彼富貴者之能致物矣로되 而其不可兼者 惟山林之樂爾
산림의 선비가 천하의 즐거움을 보았을 때에 한 번도 마음이 동하지 않고, 혹 마음에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다만 자신의 힘으로 얻지 못해 그만둔 사람이라야 비로소 물러나 이곳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니, 저 부귀한 자가 사물을 죄다 구할 수는 있지만 겸유할 수 없는 것은 오직 산림의 즐거움뿐이다.
惟富貴者而不得兼然後 하니 其不能兩得 亦其理與勢之然歟인저
오직 부귀한 사람이 겸유할 수 없어야 그런 뒤에 빈천貧賤한 선비가 스스로 만족하여 세속을 굽어볼 수 있으니, 두 가지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이치와 형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 것이다.
今李侯 生長富貴하야 厭於耳目이어늘 又知山林之爲樂하야 至於攀緣上下하야 幽隱窮絶人所不及者 皆能得之하니 其兼取於於物者 可謂多矣
지금 이후李侯는 부귀한 집안에서 생장하여 성색聲色의 즐거움을 실컷 누렸거늘, 또 산림의 즐거움을 알아서 이 산을 힘써 오르내리면서 사람들이 이르지 못했던 으슥하고 궁벽한 곳을 모두 찾아냈으니, 사물에게서 겸하여 얻은 것이 많다고 이를 만하다.
李侯折節好學하야 喜交賢士하고 敏於爲政하야 所至 有能名이라
이후李侯는 자신을 낮출 줄 알고 학문을 좋아하여 어진 선비들과 교유하기를 좋아하고 정사를 펼치는 데에 민첩하여 이르는 곳마다 〈잘 다스린다는〉 평판이 있었다.
凡物不能自見而待人以彰者有矣 其物未必可貴而因人以重者亦有矣
무릇 사물은 스스로 드러나지 못하고 사람을 기다려 드러나는 것이 있고, 그 사물이 반드시 귀중하게 여길 만한 것이 아닌데 사람으로 인하여 귀중하게 되는 것도 있다.
故予爲志其事하야 俾世知斯泉發 自李侯始也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이 일을 기록하여 세상에 이 샘이 발견된 것이 이후李侯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리고자 하노라.
역주
역주1 : 이 글은 嘉祐 3년(1058) 2월 24일에 지은 것이다. 浮槎山은 安徽省 合淝市의 동쪽 80리쯤에 있다.
역주2 浮槎 : 전설 속에 등장하는 바다와 天河를 오가는 뗏목을 말한다. 晉나라 張華의 《博物志》에 “天河는 바다가 서로 통한다. 해마다 8월이면 어김없이 浮槎가 왕래하는데, 어떤 이가 그 배를 타고 떠나 10개월 만에 어떤 곳에 이르니, 성곽과 궁실이 있고 그 안에 베 짜는 여자가 있고 한 사내는 물가에 소를 끌어 물을 마시게 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역주3 浮圖老子 : 浮圖는 佛家를 이르고 老子는 道家學脈의 창시자인데, 후에 道家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다.
역주4 茶經 : 唐나라 竟陵 사람인 陸羽(?~804)가 지은 책으로 차의 기원, 달이는 법, 맛, 그릇 등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주5 張又新水記 : 張又新은 字가 孔昭이고 深州 陸澤 사람이다. 元和 9년(814)에 進士가 되었다. 唐 敬宗 때 李逢吉의 黨人인 八關十六子 중 한 사람이다. 《水記》는 張又新이 지은 것으로 《煎茶水記》를 가리킨다.
역주6 載劉伯芻李季卿所列水次第 以爲得之於羽 : 《煎茶水記》에 劉伯芻가 등급을 나눈 7가지 물과 李季卿이 물에 대해 논한 것을 앞에 나열하고, 다음으로 陸羽가 등급을 나눈 20가지 물을 열거해두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역주7 龍池山 : 일명 龍穴山이라고 부르는데, 安徽 六安縣 동쪽 50리에 있다. 산 뒤쪽에 龍池가 있는데 맛이 감미롭다고 한다.
역주8 李侯 : 李公謹을 가리킨다. 嘉祐 3년(1058)에 歐陽脩가 李公謹에게 보낸 편지에 “이전에 보내주신 浮槎山의 물을 받았고, 저에게 記文을 짓게 하셨습니다.”라는 말이 있고, 또 별지에 “보내주신 浮槎山의 물은 맛이 더욱 좋습니다.”라는 말이 있다.
역주9 留後 : 宋나라 때의 節度觀察留後을 줄여서 부른 말이다.
역주10 蔣山 : 江蘇 南京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鍾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漢나라 말에 蔣子文이 秣陵尉가 되어 賊를 쫒아 鍾山 아래에 이르렀는데, 賊에게 습격당하여 죽자 이곳에 葬事 지냈다고 전한다. 吳나라 孫權이 祖父의 이름이 鍾이었기 때문에 避諱하여 蔣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역주11 貧賤之士有以自足而高世 : 부귀한 사람들은 산림의 즐거움을 겸할 수 없기 때문에 貧賤한 선비가 홀로 산림의 즐거움을 향유하면서 스스로 만족하여 세속을 초탈한다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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