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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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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史論
사론史論
歐陽公 於敍事處 往往得太史遷髓하고
구양공歐陽公서사敍事를 하는 곳에 왕왕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골수骨髓를 얻었다.
而其所爲新唐書及五代史短論 亦竝有太史公風度
그가 지은 《신당서新唐書》 및 《오대사단론五代史短論》에도 모두 태사공의 풍도가 있다.
予故撮錄이라
내가 이런 까닭에 촬록撮錄한다.
凡二十一首
모두 21수이다.
01. 《당서唐書》 〈병지兵志〉에 대한
唐兵三變處 如掌이라
나라 병사 제도가 세 차례 변화된 것이 마치 손바닥처럼 환하다.
古之有天下國家者 其興亡治亂 未始不以德이요 而自戰國秦漢以來 鮮不以兵이라 夫兵豈非重事哉
옛날에 천하와 국가를 소유한 이는 그 흥망興亡치란治亂에서 비롯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전국시대戰國時代한시대漢時代 이래로는 병사에서 비롯되지 않은 적이 드무니, 저 병사가 어찌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然其因時制變하야 以苟利趨便하야 至於無所不爲로되
그러나 때에 따라 기변機變제어制御하여 이익을 탐내고 편리함을 좇아 하지 못하는 짓이 없는 데에 이르렀다.
而考其法制하얀 雖可用於一時 而不足施於後世者多矣 惟唐立하야 頗有足稱焉이라
그 법제를 살펴보건대 비록 한때에는 쓸 만하나 후세에 시행하지 못할 것들이 많았고, 오직 나라는 부병제府兵制를 세워 자못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
蓋古者兵法起於井田이러니 自周衰 王制壞而不復하고 至於府兵하얀 始一寓之於農이요 其居處敎養畜材待事動作休息 皆有節目하니 雖不能盡合古法이나 蓋得其大意焉이라
옛날에 병법兵法정전井田에서 시작되었는데 나라가 쇠미해진 뒤로 왕제王制가 무너져 회복되지 못하였고, 부병府兵으로 말하자면 처음에는 오로지 에다 넣었고 그 거처와 육성, 인재를 길러 일에 대비하는 법, 일을 하고 휴식하는 것들에 모두 절목이 있었으니, 비록 모두 고법古法에 합치하지는 않으나 대개 그 대의大意에 맞았습니다.
此高祖太宗之所以盛也
이것이 고조高祖태종太宗 시대가 융성했던 까닭입니다.
至其後世하야 子孫驕弱하야 不能謹守하야 屢變其制하니 夫置兵 所以止亂이러니 及其弊也하얀 適足爲亂이요 又其甚也 至困天下以養亂하야 而遂至於亡焉이라
후세에 이르러서는 자손들이 교만하고 나약하여 삼가 지키지 못하여 그 제도를 누차 바꾸었으니, 대저 병력兵力을 두는 것은 을 그치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폐단이 생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이 되기에 알맞을 뿐이고, 게다가 심한 경우에 이르러서는 천하를 곤궁하게 하여 을 길러서 마침내 망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蓋唐有天下 二百餘年 而兵之大勢三變이니
대개 나라가 천하를 다스린 지 2백여 년에 병사의 대세大勢가 세 차례 변하였다.
其始盛時 有府兵하고 府兵後廢而爲하고 彉騎又廢之兵 盛矣러니
처음 융성할 때에 부병府兵을 두었고, 부병府兵이 뒤에 폐지되자 확기彉騎를 시행하였고, 확기彉騎가 또 폐지되자 방진方鎭병제兵制가 흥성하였다.
及其末也하얀 强臣悍將 兵布天下하고 而天子亦自置兵於京師하니 曰禁軍이라
그러다가 당나라 말엽에 이르러 강성强盛신하臣下호한豪悍장수將帥가 천하에 병사를 펼쳐놓았고, 천자 역시 경사京師에 스스로 병사를 배치하니 명칭이 금군禁軍이다.
其後天子弱하고 方鎭彊하야 而唐遂以亡滅者 措置之勢使然也
그 뒤에 천자天子가 약해지고 방진方鎭이 강해졌으니, 당나라가 마침내 멸망한 것은 조치한 형세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若乃將卒營陣車騎器械征防守衛凡兵之事 不可以悉記 記其廢置得失終始治亂興滅之迹하야 以爲後世戒云이라
장졸將卒, 영진營陣, 거기車騎, 기계器械, 정방征防, 수위守衛 등과 같은 병사에 관한 제반 사항을 일일이 다 기록할 수는 없고, 폐치廢置득실得失치란흥멸治亂興滅 전말의 자취를 기록하여 후세의 경계로 삼는다.
역주
역주1 唐書兵志論 : 이 글과 아래의 글들은 모두 《唐書》의 志를 위해 節錄한 것이다. 歐陽脩는 至和 원년(1054)에서 嘉祐 5년(1060)까지 《당서》를 정리하여 《新唐書》를 편찬하는 일을 관장하였는데, 이 글은 그때 각각의 志에 대해 성격과 내용을 논술하였다. 이 글은 唐나라 兵制의 변천을 논술하였다.
역주2 府兵之制 : 府兵制를 말한다. 부병제는 唐나라 때에 행하여진 兵農一致의 군사 제도이다. 均田의 농민에게서 20세 이상의 남자를 뽑아 府兵으로 삼아, 농한기를 이용하여 군사 훈련을 받아 경비에 임하게 하고 그 대신 조세를 면해주었다. 당나라는 10개 道에 634개의 府를 설치하고 명칭을 折衝府라 하였다. 折衝都尉, 果毅都尉 등을 두어 그들을 거느리게 하였다. 부병의 시초는 西魏 때 《周禮》를 본떠 전국에 6軍을 두고, 6군을 다시 100府로 나누어 郞將이 거느리게 한 것이다.
역주3 彉(확)騎 : 唐나라 宿衛兵의 명칭이다. 唐 玄宗 11년(723)에 수도를 숙위하던 府兵들이 대거 도망하였다. 이에 재상 張說의 건의를 받아들여 서울 근방의 府兵과 白丁들을 선발 모집하여 彉騎制를 시행하였다. 해마다 두 달만 수도를 숙위하면 변경으로 出征가는 것을 면제해주는 제도이다.
역주4 方鎭 : 한 지방의 兵權을 장악하는 軍士의 長官을 말하는데, 節度使를 가리킨다. 곧 국경 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절도사 중심의 체제를 말한다. 뒤에 절도사가 힘을 키워 藩鎭이 할거하는 형국이 되었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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