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2)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에 대한
議論正大하고 知見得大頭腦處
의론이 정대正大하고 대체大體의 핵심을 알았다.
불법佛法이 중국의 우환憂患이 된 지가 천여 년입니다.
世之卓然不惑而有力者莫不欲去之로되 已嘗去矣而復大集이라
세상에 우뚝이 서서 미혹되지 않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를 제거하고자 하지 않은 이가 없었지만, 이미 제거되었다가도 다시 크게 모입니다.
攻之暫破而愈堅하고 撲之未滅而愈熾하야 遂至於無可奈何하니 是果不可去邪
잠시라도 공격을 그만두면 더욱 견고해지고 완전히 박멸하지 않으면 더욱 치성하여 마침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이 과연 제거할 수 없는 것이겠습니까.
蓋亦未知其方也
아마도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夫醫者之於疾也 必推其病之所自來而治其受病之處하나니
무릇 의원이 병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병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아서 그 병통이 생기게 된 근원을 다스려야 합니다.
病之中人 乘乎氣虛而入焉이면 則善醫者不攻其疾하고 而務養其氣하니 氣實則病去 此自然之效也
병이 사람에게 파고든 것이 가 허한 틈을 타고 들어왔으면 치료를 잘하는 의원은 그 병을 공격하지 않고 그 를 기르기를 힘쓰니, 가 충실하면 병이 제거되는 것은 자연적인 공효입니다.
故救天下之患者 亦必推其患之所自來而治其受患之處
그러므로 천하의 우환을 구제하는 자 역시 반드시 우환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아서 그 우환이 생기게 된 근원을 다스려야 합니다.
佛爲夷狄이라 去中國最遠이요
부처는 오랑캐라 그 나라는 중국과의 거리가 매우 멀고 부처가 있은 지도 진실로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堯舜三代之際 王政修明하고 禮義之敎 充於天下하니 於此之時 雖有佛이라도 無由而入이러니
요순堯舜삼대三代 시대에는 왕정王政이 환하게 닦이고 예의禮義의 가르침이 천하에 충만하였으니, 이때에는 비록 불교가 있다 하더라도 들어올 길이 없었습니다.
及三代衰하야 王政闕하고 禮義廢하니 後二百餘年 而佛至乎中國이라
그런데 삼대三代가 쇠퇴해지자 왕정王政이 잘못되고 예의禮義가 무너졌는데, 그 뒤 200여 년 만에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由是言之컨대 佛所以爲吾患者 乘其闕廢之時而來 此其受患之本也
이로 말미암아 말해보면, 불교가 우리의 우환이 되는 것이 잘못되고 무너진 때를 틈타 들어왔으니, 이것이 우환이 생기게 된 근원입니다.
補其闕하고 修其廢하야 使王政明而禮義充하면 則雖有佛이라도 無所施於吾民矣 此亦自然之勢也
잘못된 것을 보수하고 무너진 것을 수리하여 왕정王政이 밝아지고 예의禮義가 충만하게 하면, 아무리 불교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백성들에게 베풀 곳이 없을 것이니, 이 또한 자연적인 형세입니다.
昔堯舜三代之爲政 設爲井田之法하야 籍天下之人하야 計其口而皆授之田하니
옛날 요순堯舜삼대三代의 임금이 정사를 다스릴 때에는 정전법井田法설행設行하여 천하 사람을 등재하여 그 식구를 계산하여 모두 전지田地를 주었습니다.
凡人之力能勝耕者 莫不有田而耕之하고 斂以什一하되 하야 以督其不勤하야 使天下之人으로 力皆盡於而不暇乎其他
그리하여 경작할 힘이 있는 사람은 모두 전지가 있어 경작하지 않는 자가 없고, 10분의 1을 세금으로 거두되 그 부세賦稅에 차등을 두어서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을 독책하여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남묘南畝에 온 힘을 쏟고 다른 일은 돌아볼 겨를이 없게 하였습니다.
然又懼其勞且怠而入於邪僻也
그러나 또 고생하다 보면 장차 태만해져서 삿된 데 빠질까 두려워하였습니다.
於是 爲制牲牢酒醴以養其體하고 하야 以悅其耳目하고 於其不耕休力之時 而敎之以禮
이에 희생犧牲과 술과 예주醴酒를 만들어 그 신체를 기르고, 악기樂器예기禮器를 만들어 그 이목耳目을 즐겁게 하고, 경작하지 않고 쉬는 농한기에는 를 가르쳤습니다.
故因其田獵而爲하며 因其嫁娶而爲婚姻之禮하며 因其死葬而爲喪祭之禮하며 因其飮食群聚而爲
그러므로 그 사냥으로 인하여 수수蒐狩를 만들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로 인하여 혼인婚姻를 만들고, 죽으면 장사 지내는 일로 인하여 상제喪祭를 만들고, 함께 모여 먹고 마시는 일로 인하여 향사鄕射를 만들었습니다.
非徒以防其亂이요 又因而敎之하야 使知尊卑長幼하니 凡人之大倫也
이것으로 그 어지러움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또 인하여 를 가르쳐서 존비尊卑장유長幼의 차서를 알게 하였으니, 모두 인간의 대륜大倫입니다.
故凡養生送死之道 皆因其欲而爲之制하니
그러므로 산 자를 봉양하고 죽은 자를 장송葬送하는 법도를 모두 인간의 본능에 따라 제정하였습니다.
飾之物采而文焉이라 所以悅之하야 使其易趣也 順其情性而節焉이라 所以防之하야 使其不過也
채색으로 장식하여 문채 나게 하였으므로 이를 좋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나아가도록 하였고, 본성에 맞게 조절하였으므로 이를 방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然猶懼其未也 又爲立學以講明之
그러나 그래도 부족할까 두려워하여 또 학교를 세워서 이를 강구하고 밝혔습니다.
故上自 下至 莫不有學하야 擇民之聰明者而習焉하야 使相告語而誘勸其愚惰하니 嗚呼
그러므로 위로 천자天子로부터 아래로 향당鄕黨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없는 곳이 없어서, 백성들 가운데 총명한 이들을 뽑아 이를 강습시켜 서로서로 타이르고 얘기하여 어리석고 나태한 자들을 인도하고 권면하도록 하였으니, 아!
何其備也
어쩌면 그리도 구비되었단 말입니까.
三代之爲政 如此하야 其慮民之意 甚精하고 治民之具 甚備하고 防民之術 甚周하고 誘民之道 甚篤하니 行之以勤而被於物者洽하고 浸之以漸而入於人者深이라
대개 요순堯舜삼대三代의 정사가 이와 같아서 그 백성을 염려하는 뜻이 몹시 정치精緻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도구가 몹시 구비되었으며, 백성을 방비하는 기술이 몹시 주밀周密하고 백성을 인도하는 방도가 몹시 독실篤實하였으니, 부지런하게 행하여 사물에 끼친 은택恩澤이 흡족하고, 점차적으로 적셔 사람에게 스민 은택이 깊었습니다.
故民之生也 不用力乎南畝 則從事於禮樂之際하고 不在其家 則在乎之間하니 耳聞目見 無非仁義
그러므로 백성들이 살아가면서 남묘南畝에 힘을 쓰지 않을 때에는 예악禮樂에 종사하고, 집에 있지 않을 때에는 상서庠序에 있었으니,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 인의仁義가 아님이 없었습니다.
樂而趣之 不知其倦하여 終身不見異物이어니 又奚暇 夫外慕哉리오
피곤한 줄도 모른 채 즐거이 나아가느라 종신토록 다른 일은 보지도 못하니, 또 어느 겨를에 저 외물外物을 사모하겠습니까.
故曰雖有佛이나 無由而入者 謂有此具也
그러므로 “비록 불교佛敎가 있다 하더라도 들어올 길이 없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이러한 도구가 있었기 때문임을 이릅니다.
及周之衰하야 秦幷天下 盡去三代之法하야 而王道中絶하니 後之有天下者 不能勉强하야 其爲治之具 不備하고 防民之漸 不周
나라가 쇠퇴해짐에 미쳐 나라가 천하를 병합하면서 삼대三代의 법을 모두 제거하여 선왕先王가 끊어졌는데, 후세의 천하를 소유한 자가 힘을 쏟지 못하여 그 정치를 하는 도구가 구비되지 못하고 백성을 방비하는 점화漸化가 주밀하지 못하였습니다.
佛於 乘間而出하야 千有餘歲之間 佛之來者日益衆하고 吾之所爲者日益壞
불교가 이때 틈을 타고 나와서 천여 년 동안 불법佛法이 들어오는 것은 날로 더욱 많아지고 우리가 하는 일은 날로 더욱 무너졌습니다.
井田最先廢而兼幷游惰之姦起하고 其後所謂蒐狩婚姻喪祭鄕射之禮凡所以敎民之具 相次而盡廢
정전법井田法이 가장 먼저 폐지되었는데 남의 땅을 겸병兼幷하고 방탕 나태한 간악함이 일어났으며, 그 뒤로 이른바 수수蒐狩ㆍ婚姻ㆍ喪祭ㆍ鄕射의 인 백성을 가르치는 도구들이 줄줄이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然後 民之姦者 有暇而爲他하고 其良者 泯然不見禮義之及己
그런 뒤에 백성들 가운데 간악한 자는 겨를이 생겨 딴짓을 하고, 선량한 자는 예의禮義가 자기에게 미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하였습니다.
夫姦民有餘力이면 則思爲邪僻하고 良民不見禮義 則莫知所趣
무릇 간악한 백성에게 여력餘力이 있으면 삿된 짓 하기를 생각하고, 선량한 백성이 예의禮義를 보지 못하면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합니다.
佛於此時 乘其隙하야 方鼓其雄誕之說而牽之하니 則民不得不從而歸矣어든
불교佛敎가 이때 그 빈틈을 타고 들어와 그 과장되고 허탄한 설법說法을 늘어놓으며 이들을 끌어들이니, 백성들이 따라가 귀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又況王公大人 往往倡而敺之曰 佛是眞可歸依者라하니 然則吾民何疑而不歸焉이리오
그런데 또 더구나 왕공王公 대인大人이 왕왕 앞장서서 내몰며 “부처님은 참으로 귀의할 만한 분이다.”라고 하니, 그렇다면 우리 백성들이 무엇을 의심하여 귀의하지 않겠습니까.
幸而有一不惑者然而怒하야 曰 佛何爲者
다행히 조금도 미혹되지 않는 자가 있어 버럭 성을 내며 “부처가 뭐하는 자인가!
吾將操戈而逐之라하고 又曰 吾將有說以排之라하니 夫千歲之患 徧於天下하니
내 장차 창을 잡고 쫓아내리라.”라고 하고, 또 “내 장차 설파하여 물리치리라.”라고 하니, 천 년의 우환憂患이 온 천하에 퍼졌습니다.
豈一人一日之可爲리오마는 民之沈入於骨髓하니 非口舌之可勝이라
어찌 한 개인이 할 수 있고 하루아침에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백성들이 골수에 파고들 정도로 깊이 취하였으니, 구설口舌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然則將奈何
그렇다면 장차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曰莫若修其本以勝之
그 근본을 닦아서 이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昔戰國之時 交亂이어늘 孟子患之하야 而專言仁義
옛날 전국시대戰國時代양주楊朱묵적墨翟이 함께 어지럽혔는데, 맹자孟子가 이를 근심하여 오로지 인의仁義만 말하였습니다.
故仁義之說勝이면 則楊墨之學廢하고
그러므로 인의仁義의 설이 우세하면 양주‧묵적의 학설이 사라집니다.
漢之時 百家竝興이어늘 患之하야 而退修
나라 시대에 백가百家가 동시에 창성하였는데 동생董生이 이를 근심하여 물러나 공자孔子를 닦았습니다.
故孔氏之道明이면 而百家息하니
그러므로 공자의 도가 밝으면 백가가 종식됩니다.
此所謂修其本以勝之之效也
이것이 이른바 그 근본을 닦아서 이기는 공효입니다.
今八尺之夫 被甲荷戟하야 勇蓋三軍이나 然而見佛則拜하고 聞佛之說則有畏慕之誠者 何也
지금 8척 장부가 갑옷을 입고 창을 잡아 용맹이 삼군三軍을 압도하지만, 그런데도 불상佛像을 보면 절을 하고 불교佛敎의 설법을 들으면 경외하고 사모하는 정성이 있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彼誠壯佼 其中心茫然하야 無所守而然也
저가 진실로 장대하고 훤칠하지만, 그 중심中心에 아무것도 지키는 바가 없어서 그러한 것입니다.
一介之士 然柔懦하야 進趨畏怯이나 然而聞有道佛者 則義形於色하야 非徒不爲之屈이요 又欲驅而絶之者 何也
한낱 선비가 보잘것없이 나약하여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만, 그런데도 불법佛法을 말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들으면 의기義氣를 낯빛에 드러내며 굽히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게다가 몰아내어 끊어버리고자 하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彼無他焉이라 學問明而禮義熟하야 中心有所守以勝之也
저것은 다름이 아니라 학문이 밝고 예의禮義가 익숙하여 중심中心에 지키는 바가 있어서 이를 이기기 때문입니다.
然則禮義者 勝佛之本也
그렇다면 예의禮義는 불교를 이기는 근본입니다.
今一介之士知禮義者 尙能不爲之屈하니 使天下皆知禮義 則勝之矣 此自然之勢也
지금 예의禮義를 아는 한낱 선비조차도 오히려 굽히지 않는데, 가령 천하가 모두 예의禮義를 알면 불교를 이길 것이니, 이것은 자연스러운 형세입니다.
佛之所以能入爲中國之 固由王道之衰 而歐陽公所謂修其本以勝之 是也
불교가 들어와 중국의 적치赤幟가 된 까닭은 진실로 왕도王道가 쇠퇴하였기 때문이니, 구양공歐陽公의 이른바 “그 근본을 닦아 이겨야 한다.[修其本以勝之]”는 것이 이것이다.
然達磨以下 彼固有一片直見本性之超卓處 故能驅天下聰明穎悟之士하야 而宗其敎어늘 歐陽公於佛氏之旨 猶多糢糊하니
그러나 달마達磨 이하로 저들에게 진실로 본성本性직견直見한 하나의 뛰어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천하의 빼어나게 총명한 선비들을 몰아 불교를 높이도록 할 수 있었는데, 구양공歐陽公불씨佛氏의 뜻에 대해 오히려 모호한 점이 많다.
而所謂修其本以勝之 恐非區區禮文之習而行之之所能勝也
이른바 “그 근본을 닦아 이겨야 한다.”라고 한 것은 아마도 구구區區예문禮文을 익히고 행하는 것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聖人在上而斯道大明乎天下하야 天下之士家喩而戶曉於聖人之敎然後 佛之見解自息耳
성인聖人이 위에 있어 사도斯道가 크게 천하에 밝아져 천하의 선비들이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집집마다 깨우쳐준 뒤에야 불교의 견해가 절로 종식될 것이다.
不然이면 鮮不蹈 其何能以遠之乎리오
그렇지 않으면 정자程子의 이른바 “음탕한 음악音樂과 아름다운 미색美色”에 빠지지 않을 자 드물 것이니, 그 어떻게 이를 멀리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本論中 : 이 글은 慶曆 2년(1042)에 지은 것이다. 이는 歐陽脩가 詔令에 응하여 올린 또 한 편의 時論이다.
역주2 佛法爲中國患 千餘歲 : 佛敎는 東漢 明帝 때 중국으로 들어왔는데, 이때부터 宋나라 歐陽脩가 이 글을 쓸 때까지가 근 천 년이 된다.
역주3 有佛 固已久矣 : 佛敎는 B.C. 6세기에서 5세기경 동북 印度에서 창시되었다. 이 때문에 중국과의 거리가 멀고 오래되었으며 夷狄이라 일컬은 것이다. 夷狄은 중국에서 漢族 이외의 다른 민족이나 外國에 대한 통칭이다.
역주4 差其征賦 : 土質에 따라 賦稅에 차등을 둔다는 말이다.
역주5 南畝 : 田地, 곧 농사를 뜻한다.
역주6 弦匏俎豆 : 弦匏는 현악기와 관악기를 가리키고, 俎豆는 연회나 朝聘, 祭祀 등에 사용하는 禮器를 가리킨다.
역주7 蒐狩之禮 : 蒐는 봄 사냥이고, 狩는 겨울 사냥으로, 《春秋左氏傳》 昭公 8년에 “봄 사냥과 겨울 사냥을 인하여 武事를 닦으니, 이는 禮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8 鄕射之禮 : 周代의 鄕大夫가 3년마다 유능한 인재를 뽑아 천거하기 위해 거행하던 활쏘기 의식, 또는 지방 장관이 봄가을에 백성을 모아 學宮에서 활쏘기를 익히는 의식을 말한다. 이 鄕射禮를 행하기 전에 鄕人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며 잔치하는 鄕飮酒禮를 행하였다.
역주9 天子之郊 : 天子가 있는 都城 近郊로, 都城 밖 100리 이내를 郊라 한다.
역주10 鄕黨 : 25家를 閭라 하고, 4閭(100家)가 族, 5族(500家)이 黨, 5黨(2,500家)이 州, 5州(12,500家)가 鄕인데, 여기서는 鄕里와 같은 말로 쓰였다.
역주11 堯舜 : 本集에는 없다.
역주12 庠序 : 庠序는 鄕校를 말하는데, 夏나라에서는 校라 하였고, 殷나라에서는 序라 하였고, 周나라에서는 庠이라 하였다. 《孟子 滕文公 上》
역주13 : 本集에는 없다.
역주14 : 불
역주15 : 감
역주16 楊墨 : 楊墨은 戰國時代 楊朱와 墨翟의 竝稱이다. 楊朱는 ‘爲我說’을 주장하고, 墨翟은 ‘兼愛說’을 주장하여 이 두 說이 천하에 성행하였는데, 孟子는 ‘爲我’는 임금을 무시하고 ‘兼愛’는 아비를 무시하는 것이라 하여 異端으로 보고 극력 배척하였다.
역주17 董生 : 董生은 漢나라 때 학자 董仲舒이다. 《春秋》를 전공하여 景帝 때 博士가 되었는데, 학문에 전념하여 휘장을 드리우고 講誦하면서 3년 동안 정원을 한 번도 내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賢良對策〉을 올려 儒學을 존중하고 百家 사상을 배척할 것을 주장하여 經學의 지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春秋繁露》 등이 있다. 《漢書 권56 董仲舒傳》
역주18 孔氏 : 孔氏는 孔子로, 곧 儒家의 학설을 가리킨다.
역주19 : 묘
역주20 赤幟 : 韓信이 趙나라를 이기고 趙나라 성벽에 올라가 조나라 깃발을 뽑고 漢나라의 상징인 붉은 깃발[赤幟]을 세웠던 데서 온 말로 勝者 또는 領袖의 뜻으로 쓰인다. 《史記 권92 淮陰侯列傳》
역주21 程子之所謂淫聲美色 : 程子는 程頤를 가리킨다. 《論語》 〈爲政〉에 “異端을 專攻하면 害가 될 뿐이다.[攻乎異端 斯害也已]”라고 하였는데, 朱子의 集註에, 程子의 “佛氏의 말은 楊朱ㆍ墨翟에 비하면 더욱 近理하니, 이 때문에 그 해가 됨이 더욱 심하다.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음탕한 音樂과 아름다운 女色처럼 여겨 멀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츰차츰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 것이다.[佛氏之言 比之楊墨 尤爲近理 所以其害爲尤甚 學者當如淫聲美色以遠之 不爾則駸駸然入於其中矣]”라고 한 말을 인용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