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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4)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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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交似疎而感獨深이라 用也字爲韻하야 貫到篇末이라
嗚呼公乎 余將老也 閱世久也 見時之事 可喜者少 而可悲者多也 士少勤其身하야 以干祿仕取名聲하니 初若可愛慕者衆也러니
旣而得其所欲而怠하며 與迫於利害而遷하니 求全其節以保其終者 十不一二也
其人康強飮食하며 平居笑言하야 以相歡樂 察其志意 可謂偉然이나
而或離或合하야 不見幾時라가 遂至於衰病하며 與其俯仰旦暮之間忽焉以死者 十常八九也
嗚呼公乎 所謂善人君子者 其難得旣如彼하고 而易失又如此也 故每失一人 未嘗不咨嗟殞泣하야 至於失聲而長號也
惟公 材謀足以居大臣하며 文學足以名後世하니 宜在朝廷하야 以講國論이어늘
而久留于外하며 宜享壽考하야 以爲人望이어늘 而遽云長逝하니
此搢紳大夫所以聚弔于家하며 而交朋故舊莫不走哭于位 豈惟老病之人 獨易感而多涕也 尙享


02. 吳尙書에 대한 祭文
교분은 깊지 않은 듯하지만 슬픈 감정은 유독 깊다. 자를 운자로 사용하여 편의 끝까지 일관되게 사용하였다.
아, 공이여. 내 장차 늙었으니 세상의 일을 겪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당세의 일을 보면 기뻐할 만한 일은 적고 슬퍼할 만한 일은 많았습니다. 선비는 어려서 스스로 부지런히 학문하여 祿俸官位을 구하여 명성을 얻으니, 처음에는 아끼고 사모할 만한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원하는 바를 얻고서는 태만해지며 利害를 가까이하다 지조를 바꾸니 절개를 온전히 지켜 죽을 때까지 보전하는 사람은 열에 한두 사람뿐입니다.
그 사람이 건강하게 음식을 먹고 평소 웃고 이야기 나누며 서로 즐겁게 지냄에 志意을 살펴보면 훌륭하다 할 만하지만
혹 헤어지고 혹 만나 얼마간 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노쇠하여 잠깐 사이에 갑자기 죽는 사람도 열에 여덟아홉이나 됩니다.
아, 공이여. 이른바 善人君子는 얻기 어려움이 이미 저와 같고, 쉽게 잃는 것이 또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매번 한 사람을 잃을 때마다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목 놓아 곡하고 길게 울부짖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공은 재주와 지모는 大臣의 자리에 앉을 만하고 文學은 후세에 명성을 떨치기에 충분하니, 조정에 있으면서 國論을 강론했어야 하는데
외직에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長壽를 누려 人望을 얻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길이 떠나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搢紳大夫들이 집에 모여 조문하고 붕우들이 哭位에 곡하러 달려오지 않는 이가 없으니, 어찌 늙고 병든 저만이 쉽게 슬픈 감정이 북받쳐 많은 눈물을 흘릴 뿐이겠습니까. 尙享.


역주
역주1 祭吳尙書文 : 이 글은 嘉祐 3년(1058)에 지은 것이다. 吳尙書는 吳育(1004~1058)으로 자는 春卿, 시호는 正肅이다. 天聖 5년(1027)에 進士試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資政殿太學士에 이르렀다. ≪宋史 권291 吳育列傳≫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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