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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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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손자孫子》에 대한 후서後序
序聖兪注孫子 故其議如此
매성유梅聖兪가 주석을 단 《손자孫子》에 서문을 쓴 것이므로 그 의론이 이와 같은 것이다.
世所傳孫武十三篇 多用하니 號三家孫子
세상에 전하는 《손자孫子》 13편은 대부분 조공曹公두목杜牧진호陳皥의 주석을 쓰니, 《삼가손자三家孫子》라고 부른다.
余頃與撰四庫書目이러니 所見孫子注者尤多
내가 근자에 《사고서목四庫書目》의 편찬에 참여하였는데 《손자》에 주석을 단 자가 〈삼가 외에도〉 더욱 많음을 보았다.
武之書 本於兵하니 兵之術非一이요 而以不窮爲奇하니
손무孫武의 책은 병법兵法에 근본한 것이니, 병술兵術은 한 가지가 아니요 무궁無窮함을 뛰어난 것으로 여긴다.
宜其說者之多也로다
그러니 해설한 자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凡人之用智 有短長하고 其施設各異
무릇 사람이 지혜를 쓰는 것은 장단長短이 있고 그 베푸는 것도 각기 다르다.
故或膠其說於偏見이나 然無出所謂三家者
그러므로 그 해설이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하나 이른바 삼가三家에서 벗어나는 자는 없다.
三家之注 皥最後 其說時時攻牧之短이라
삼가三家의 주석 가운데 진호의 주석이 가장 나중에 나왔으니, 그 해설이 때때로 두목의 단점을 공박하였다.
두목은 또한 개연히 병법에 대해 논하기를 가장 좋아하여 병법을 시험해보고자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자이니, 그 학문은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의 일을 매우 폭넓고 상세하게 말해내었다.
然前世言善用兵稱曹公하니 曹公嘗與董呂諸袁으로 角其力而勝之하야 遂與吳蜀分漢而王이라
그러나 지난 세상에 용병用兵을 잘한 이를 말할 때에는 조공曹公을 일컬으니, 조공은 일찍이 동탁董卓여포呂布원씨袁氏들과 힘을 겨루어 승리하여 마침내 나라‧나라와 함께 나라의 땅을 나누어 왕이 된 사람이다.
傳言魏之諸將 出兵千里 每坐計勝敗하야 授其成算이어든 諸將用之 十不失一이요 一有違者 兵輒敗北
전하는 말에 나라의 장수들이 천 리 바깥으로 출병함에 조공이 매양 앉아서 승패를 헤아려 계책을 내려주면 장수들이 그 계책을 씀에 열에 하나도 잘못되지 않았고, 하나라도 어기는 것이 있으면 군대가 번번이 패배하였다고 한다.
故魏世用兵 悉以從事하니 其精於兵也如此
그러므로 위나라 시대에 용병할 때 모두 《맹덕신서孟德新書》를 따랐으니 그가 병법에 정묘함이 이와 같았다.
牧謂曹公於注孫子尤略이라하니
두목은 조공이 주석을 단 《손자》에 대해 더욱 요략要略하다고 하였다.
蓋惜其所得하야 自爲一書 是曹公悉得武之術也
대개 조공은 자신이 터득한 병법이 알려지지 못하는 것을 애석해하여 스스로 한 권의 책을 지었으니, 이는 조공이 손무孫武병술兵術을 모두 터득한 것이다.
然武嘗以其書干어늘 闔閭用之하야 西破楚하고 北服齊晉하야 而霸諸侯하니
그러나 손무가 일찍이 자신이 지은 병서兵書를 가지고 오왕吳王 합려闔閭에게 자신을 써줄 것을 청하였는데, 합려가 손무와 그의 병법을 써서 서쪽으로는 나라를 격파하고 북쪽으로는 나라와 나라를 굴복시켜 제후들을 제패制霸하였다.
夫使武自用其書 止於彊霸하고 及曹公用之하얀 然亦終不能滅吳蜀하니 豈武之術 盡於此乎
대저 손무에게 스스로 그 병서를 사용하게 함에 나라는 강한 패자가 되는 데 그쳤고, 조공이 그 병법을 씀에 이르러서는 나라 역시 끝내 나라와 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하였으니, 어쩌면 손무의 병술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抑用之不極其能也
아니면 그 병법을 사용하는 자가 그 능력을 다하지 못한 것인가?
後之學者徒見其書하고 又各牽於己見이라 是以 注者雖多而少當也
후세의 학자들은 한갓 그 책을 보기만 하고 또 각기 자기 견해에 구애拘礙되었기 때문에 주석을 낸 자들은 비록 많았으나 합당한 것은 적었다.
獨吾友聖兪 不然하야 嘗評武之書曰 此戰國相傾之說也
오직 나의 벗 매성유梅聖兪는 그렇지 않아 일찍이 손무의 병서를 평하여 이르기를 “이는 전국戰國시대 때 여러 나라들이 서로 다툴 때의 학설이다.
三代王者之師 武不及也라하다
삼대三代왕자王者의 군대에서 대사마大司馬가 아홉 가지 경우에 주벌誅伐하는 법에는 손무가 미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然亦愛其文略而意深하고 其行師用兵料敵制勝 亦皆有法하고 其言甚有次序로되
그러나 또한 그 글이 간략하고 뜻은 깊으며, 군대를 움직이고 병사를 부리고 적을 헤아려 승리를 거두는 것이 또한 모두 법도가 있으며, 그 말이 매우 차서次序가 있음을 좋아하였다.
而注者汨之하야 或失其意
그런데 주석을 내는 자들이 원의를 혼란시켜서 그 참뜻을 잃기도 하였다.
乃自爲注하야 凡膠於偏見者 皆排去하고 傅以己意而發之하니 然後武之說不汨而明이라
이에 스스로 주석을 달아 무릇 편견에 사로잡힌 것을 모두 제거하고 자신의 생각을 붙여서 그 뜻을 밝히니, 이렇게 한 뒤에야 손무의 학설이 혼란스럽지 않고 그 진의가 분명해졌다.
吾知此書當與三家竝傳이요 而後世取其說者 往往於吾聖兪多焉이라
나는 〈매성유梅聖兪가 주석을 단〉 이 책이 마땅히 삼가三家의 책과 나란히 후세에 전해질 것이고, 후세에 《손자》의 해설을 볼 때에 왕왕往往 우리 매성유가 지은 주석을 보는 자가 많을 것임을 알겠다.
매성유는 사람됨이 근엄하고 질박하고 온후하고 공손하며 의관을 갖추고 행동하는 모습은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유자儒者의 모습이니, 후세에 이 책을 보는 자가 〈매성유를 생각하는 것이〉 장자방張子房장부壯夫일까 의심한 태사공太史公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역주
역주1 : 이 서문은 대략 宋 仁宗 嘉祐 연간(1056~1063)에 지어진 것이다. 梅堯臣(1002~1060)이 일찍이 인종에게 글을 올려 兵法에 대해 말하면서 아울러 《孫子》 13편에 주석을 달았다. 매요신은 安徽 宣城人으로 字는 聖兪, 號는 宛陵이다. 처음에는 지방 관리로 전전하다가 歐陽脩의 추천으로 國子監直講이 되었다. 저서에 《宛陵集》, 《唐載記》 등이 있다.
역주2 曹公杜牧陳皥 : 曹公은 曹操(155~220)를 가리킨다. 저서에 《孫子略解》, 《兵書接要》 등이 있다.
杜牧(803~852)은 唐나라 京兆 萬年 사람으로 자는 牧之, 호는 樊川이다. 監察御史, 黃州‧池州‧睦州刺史, 司勳員外郞, 知制誥, 中書舍人 등을 역임했다. 병법에 조예가 깊어 《孫子》에 주석을 달기도 했다. 문장과 시에 능했으며, 李商隱과 더불어 ‘李杜’로 불렸고 문풍이 杜甫와 비슷해서 小杜로도 불린다. 저서에 《樊川文集》 등이 있다.
陳皥(?~?)는 唐나라 때 사람으로 杜牧보다 뒷시대의 사람이며 나머지 사항은 미상이다. 《宋史》 〈藝文志〉에 진호가 주석한 《손자》 1권이 기재되어 있다.
역주3 牧亦慨然最喜論兵……其學能道春秋戰國時事甚博而詳 : 두목은 〈上周相公書〉, 〈感懷詩〉, 〈罪言〉 등의 작품에서 수차례 《손자》에 주석을 단 것과 당시의 用兵에 관한 일을 언급하였는데, 특히 〈上周相公書〉에서는 “제가 《손자》 13편에 주석을 단 것은 비록 위로는 天時를 궁구하지 못했고 아래로는 人事를 다하지 못하였으나, 위로는 周나라와 秦나라에 이르고 아래로는 長慶(唐 穆宗의 연호)과 寶曆(唐 敬宗의 연호) 때의 용병에 이르기까지 형세와 허실을 구절에 따라 해석하였습니다.[某所注孫武十三篇 雖不能上窮天時 下極人事 然上至周秦 下至長慶寳歷之兵 形勢虛實 隨句解析]”라고 하였다.
역주4 新書 : 曹操가 편찬한 兵書인 《孟德新書》를 가리킨다.
역주5 吳王闔閭 : 闔閭(B.C. 515~B.C. 496)는 闔廬로도 쓰며, 春秋시대 吳나라의 임금으로 이름은 光이다. 楚나라의 망명객 伍子胥를 기용하고 孫武를 장군으로 삼아, 楚나라를 정벌하여 대패시키고 승기를 타 초나라의 수도 郢까지 진격하였으나 秦나라 군대가 와서 구원하고 국내에 내란까지 일어나 후퇴하였다. 후에 越王 句踐과 싸워 槜李에서 패했는데, 이때 부상을 당해 죽었다. 19년 동안 재위하였다.
역주6 司馬九伐之法 : 《周禮》 〈夏官 司馬 大司馬之職〉에 “九伐의 법으로 邦國을 바로잡는다.”라 하고, 구체적인 실례를 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제후 중에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능멸하거나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침범하면 그 토지를 삭감하고, 賢良을 멋대로 죽이고 백성을 해치면 征伐하고, 폭정을 행하고 이웃 나라를 속이면 그 임금을 폐하고, 안으로 폭정을 하고 밖으로 다른 나라를 능멸하면 교체하고, 田野가 황폐하고 백성이 흩어지면 그 토지를 삭감하고, 험고함을 믿고 천자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치고, 까닭 없이 친족을 죽이면 잡아서 그 죄를 다스리고, 신하가 그 임금을 추방하거나 시해하면 죽이고, 천자의 명령을 어기고 政法을 따르지 않으면 이웃 나라와 교통하지 못하게 하고, 내외의 인륜을 悖亂시키면 誅殺한다.”
역주7 聖兪爲人……何異 : 매성유의 사람됨이 謹質溫恭하고 모습이 단아하므로, 후세 사람들이 이러한 매성유가 兵書에 주석을 달았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다.
태사공이 장자방이 장부일까 의심했다는 것은, 장자방의 겉모습이 여인처럼 아름다웠으므로 장자방이 장부의 공업을 이룬 것을 태사공이 의아해했다는 말이다. 《史記》 〈留侯世家〉의 마지막에 태사공 司馬遷이 평하기를 “나는 留侯가 아주 장대하고 걸출한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畵像을 보니 모습이 마치 아리따운 여인 같았다. 공자께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여 子羽를 오판하였다.’ 하셨는데, 留侯에 있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余以爲其人計魁梧奇偉 至見其圖 狀貌如婦人好女 蓋孔子曰 以貌取人 失之子羽 留侯亦云]”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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