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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3)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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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악정樂亭에 대한 기문記文
太守之文이라
태수太守의 글이다.
脩旣治滁之明年夏 始飮滁水而甘일새 問諸滁人하니 得於州南百步之近이라
내가 저주滁州를 다스린 이듬해 여름에 비로소 저주의 물을 마셔보게 되었는데 그 맛이 좋은지라, 저주 사람에게 물어보니 남쪽으로 100보 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가져온 물이라고 하였다.
其上 豐山聳然而特立하고 下則幽谷窈然而深藏하고 中有淸泉 滃然而仰出하니 俯仰左右 顧而樂之
그 위에는 풍산豐山이 우뚝하게 홀로 서 있고 그 아래에는 그윽한 골짜기가 아늑하고 깊었으며 중간에는 맑은 샘이 용솟음쳐 위로 분출되고 있으니, 상하좌우를 돌아봄에 낙토樂土라고 여겨졌다.
於是 疏泉鑿石하고 闢地以爲亭하야 而與滁人으로 往遊其間호라
이에 샘을 틔우고 암석을 깎고 터를 닦아서 정자를 만들어 저주 사람들과 그곳에 가서 노닐었다.
저주滁州는 전쟁이 빈발하던 오대五代 시절에 전투가 벌어졌던 땅이다.
昔太祖皇帝 嘗以周師兵十五萬於淸流山下하고 生擒其將皇甫暉姚鳳於滁東門之外하야 遂以平滁
옛날 태조황제太祖皇帝가 일찍이 후주後周의 군대를 이끌고 청류산淸流山 아래에서 이경李景의 병사 15만 명을 격파하고서 그 장수 황보휘皇甫暉요봉姚鳳을 저주 동문東門 밖에서 사로잡아 마침내 저주를 평정하였다.
脩嘗考其山川하고 按其圖記하야 升高以望淸流之關하야 欲求暉鳳就擒之所호되 而故老皆無在者하니 蓋天下之平 久矣
내가 일찍이 그 산천과 지지地志를 살펴보고서 높은 곳에 올라 청류산의 관문을 바라보면서 황보휘와 요봉이 사로잡힌 장소를 찾으려고 하였으되 이를 알 고로故老들 모두 생존해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대개 천하가 평정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自唐失其政으로 海內分裂하야 豪傑竝起而爭하야 所在爲敵國者 何可勝數리오
나라가 정권을 잃은 뒤로부터 해내海內가 분열되어 호걸들이 함께 일어나 다투어 곳곳마다 서로 적국敵國이 되어버린 경우를 어찌 이루 다 셀 수 있겠는가.
及宋受天命하야 聖人出而四海一하얀 向之憑恃險阻 剗削消磨하야 百年之間 漠然徒見山高而水淸하며 欲問其事호되 而遺老 盡矣
나라가 천명을 받아 성군聖君이 출현하여 사해四海일통一統됨에 이르러서는, 지난날 험조險阻한 지형을 의지하고 믿던 자들이 멸망하고 소멸되어 백년 사이에 아득하게 한갓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광경만 보일 뿐이며, 그때의 일을 묻고자 해도 유로遺老들은 벌써 다 세상을 떠나버렸다.
今滁介於江淮之間하야 舟車商賈四方賓客之所不至 民生不見外事而安於畎畝衣食하야 以樂生送死하니 而孰知上之功德 休養生息涵煦百年之深也리오
지금 저주는 강수江水회수淮水 사이에 끼어 있어서 배와 수레와 상인들과 사방의 나그네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인지라, 백성들은 외부의 일을 알지 못하고서 편안히 밭에서 농사짓고 입고 마시며 삶을 즐거이 누리고 죽은 이를 장송葬送하니, 이들을 휴양休養하고 생식生息하게 하여 백년 세월 동안 은택으로 적셔주고 길러주신 성상의 깊은 공덕을 뉘라서 알겠는가.
脩之來此 樂其地僻而事簡하고 又愛其俗之安閑이러니
내가 이곳에 왔을 때 그 땅이 외지고 공무가 적은 것을 즐거워하였고, 또 그 풍속이 편안하고 청한淸閑한 것을 사랑하였다.
旣得斯泉于山谷之間하얀 乃日與滁人으로 仰而望山하며 俯而聽泉하야
그리고 이미 산곡山谷 사이에서 이 샘을 얻게 되어서는 이에 날마다 저주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들어 산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여 샘물 소리를 들으면서, 그윽한 향화香花를 줍고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었으며 풍상風霜빙설氷雪이 내림에 산의 맑고 빼어난 모습이 다 드러났으니, 사시四時의 풍경 가운데 사랑할 만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又幸其民 樂其歲物之豐成而喜與予遊也
게다가 다행히 저주의 백성들이 풍년이 들어 작물이 풍성한 것을 즐거워하면서 기쁘게 나와 노닐었다.
因爲本其山川하야 道其風俗之美하야 使民으로 知所以安此豐年之樂者 幸生無事之時也로라
이에 그 산천의 모습을 바탕으로 삼고서 그 풍속의 아름다움을 말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이 풍년의 즐거움을 편안히 누릴 수 있는 까닭은, 다행히 일이 없는 태평한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임을 알게 하고자 한다.
夫宣上恩德하야 以與民共樂 刺史之事也
대저 성상의 은덕을 선양하여 백성들과 더불어 즐기는 것은 자사刺史의 일이다.
遂書以名其亭焉하노라
마침내 이 글을 적어 정자를 명명하노라.
역주
역주1 : 이 글은 慶曆 6년(1046)에 지은 것이다. 당시에 구양수는 范仲淹의 新政을 지지하다가 죄를 얻어 滁州知事로 좌천되었다. 滁州는 宋나라 때에 淮南東路에 속해 있었으며 治所는 지금의 安徽省 滁州市에 있었다. 《朱子語類》에는 朱子가 구양수의 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글이 바로 〈豐樂亭記〉라는 기록이 있다.
農巖 金昌協의 《農巖集》 34권 〈雜識〉에서는 “〈國風〉과 〈離騷〉의 맛으로 문장을 지은 것은 오직 歐公만이 그러하였다. 혹자가 ‘〈豐樂亭記〉와 〈峴山亭記〉 같은 류가 그것인가?’라고 묻기에, 내가 이르기를 ‘거기에 가깝다. 그러나 그 작품들뿐만 아니라 다른 글도 대체로 모두 그러하니, 반복하여 詠歎한 부분을 살펴보면 바로 그러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역주2 滁於五代干戈之際 用武之地也 : 滁州는 五代 시기에 처음에는 南唐에 소속되었다가 후에는 後周로 편입되었다. 이 지역은 江淮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이 지역을 두고 후주와 남당 사이에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역주3 李景 : 南唐의 2대 황제이다.
역주4 掇幽芳而蔭喬木……無不可愛 : 掇幽芳은 봄의 풍경이고, 蔭喬木은 여름의 풍경이며, 風霜氷雪 刻露淸秀는 秋冬의 풍경이다. 刻露淸秀는 서리와 눈발이 내려 나뭇잎들이 지고 난 뒤 산의 본래 자태가 다 드러난다는 뜻이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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