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孟子集註

맹자집주

범례 |
나란히 보기 지원 안함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맹자집주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8. 萬章 問曰 或[이] 謂孔子 於衛 主癰疽시고 於齊 主侍人瘠環이라니 有諸乎ㅣ잇가(잇가) 孟子[ㅣ] 曰 否ㅣ라 不然也ㅣ라 好事者 爲之也ㅣ니라

8. 만장이 여쭈었다.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공자께서 위(衛)나라에서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의원의 집에서 묵으셨고, 제(齊)나라에서는 내시(內侍)인 척환(瘠環)의 집에서 묵으셨다.’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그렇지 않네. 일 꾸미기 좋아하는 자들이 지어낸 말이네.
[James Legge] Wan Chang asked Mencius, saying, 'Some say that Confucius, when he was in Wei, lived with the ulcer-doctor, and when he was in Ch'î, with the attendant, Ch'î Hwan;-- was it so?' Mencius replied, 'No; it was not so. Those are the inventions of men fond of strange things.
集註
謂舍於其家여 以之爲主人也 癰疽 瘍醫也 侍人 奄人也이요이니 皆時君所近狎之人也 好事 謂喜造言生事之人也
於衛애(예) 主顔讐由ㅣ러시니 彌子之妻 與子路之妻[로] 兄弟也ㅣ라 彌子 謂子路曰 孔子 主我시면 衛卿[을] 可得也ㅣ라여 子路 以告대 孔子[ㅣ] 曰 有命이라시니 孔子 進以禮시며 退以義샤(시고) 得之不得애(에) 曰 有命이라시니 而(如)主癰疽與侍人瘠環이시면(이면)[] 無義無命也ㅣ니라

공자께서 위나라에 계실 때에 안수유(顔讐由)의 집에 묵으셨는데, 위나라 임금의 총애를 받던 미자(彌子)의 아내는 자로(子路)의 아내와 형제간이었네. 그래서 미자가 자로에게 이르기를 ‘공자께서 우리 집에 묵으시면 위나라의 경(卿)이 되실 수 있다.’고 하였네. 자로가 이 말을 아뢰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벼슬하는 것은 천명에 달려 있네.’ 하셨네. 공자께서는 예(禮)에 따라 나아가시고 의(義)에 따라 물러나시어, 벼슬을 얻고 얻지 못하는 것은 ‘천명에 달려 있다.’고 하셨는데, 그러고서 만일 임금의 총애를 받는 의원이나 내시인 척환의 집에 묵으셨다면, 이는 의를 무시하시고 명(命)을 무시하신 것이네.
[James Legge] 'When he was in Wei, he lived with Yen Ch'âu-yû. The wives of the officer Mî and Tsze-lû were sisters, and Mî told Tsze-lû, "If Confucius will lodge with me, he may attain to the dignity of a high noble of Wei." Tsze-lû informed Confucius of this, and he said, "That is as ordered by Heaven." Confucius went into office according to propriety, and retired from it according to righteousness. In regard to his obtaining office or not obtaining it, he said, "That is as ordered." But if he had lodged with the attendant Chî Hwan, that would neither have been according to righteousness, nor any ordering of Heaven.
集註
顔讐由 衛之賢大夫也 史記 作顔濁鄒니라 彌子 衛靈公幸臣彌子瑕也 徐氏曰 禮 主於辭遜이라 進以禮고 主於斷制 退以義니 難進而易退者也 在我者 有禮義而已 得之不得 則有命存焉이니라
孔子 不悅於魯衛샤(예) 遭宋桓司馬 將要而殺之야 微服而過宋시니(이러시니) 是時[예] 孔子當阨샤 主司城貞子ㅣ(시며) 爲陳侯周臣시니라

공자께서 노(魯)나라와 위나라에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으시어 그곳을 떠나 송(宋)나라로 가셨는데, 그때 송나라 사마(司馬)인 환퇴(桓魋)가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자를 죽이려 하자, 공자께서 미복(微服) 차림으로 송나라를 지나가셨네. 이때에 공자께서 위급한 상황에 당면하였으나 송나라의 현명한 대부인 사성정자(司城貞子)의 집에서 머무셨는데, 그는 나중에 진후(陳侯) 주(周)의 신하가 된 사람이었네.
[James Legge] 'When Confucius, being dissatisfied in Lû and Wei, had left those States, he met with the attempt of Hwan, the Master of the Horse, of Sung, to intercept and kill him. He assumed, however, the dress of a common man, and passed by Sung. At that time, though he was in circumstances of distress, he lodged with the city-master Ch'ang, who was then a minister of Châu, the marquis of Ch'an.
集註
不悅 不樂居其國也 桓司馬 宋大夫向魋(상퇴) 司城貞子 亦宋大夫之賢者也 陳侯名周 按史記컨대 孔子爲魯司寇시니 齊人 饋女樂以間之어늘 孔子遂行사 適衛月餘 去衛適宋이러시니 司馬魋欲殺孔子어늘 孔子去至陳사 主於司城貞子시니라 孟子言 孔子雖當阨難이나이나 猶擇所主시니 況在齊衛無事之時 豈有主癰疽侍人之事乎아하시니라
吾聞 觀近臣호 以其所爲主ㅣ오 觀遠臣호 以其所主ㅣ라호니(ㅣ라니) 若孔子 主癰疽與侍人瘠環이시면(이면) 何以爲孔子ㅣ리오(ㅣ시리오)

내 들으니 ‘조정에 있는 신하를 관찰할 때에는 자기 집에 누구를 묵게 하는가를 가지고 관찰하고, 먼 지방에서 와서 벼슬하는 신하를 관찰할 때에는 누구의 집에 묵는가를 가지고 관찰한다.’ 하였으니, 만일 공자께서 임금의 총애를 받는 의원과 내시인 척환의 집에서 묵으셨다면, 어떻게 공자라 할 수 있겠는가?”
[언해] 나 드로니 近근臣신을 觀관호 그 主쥬ㅣ 되 바로 고 遠원臣신을 觀관호 그 主쥬 바로 다 호니 만일 孔子ㅣ 癰疽져와 다 侍시人 瘠쳑環환을 主쥬시면 엇디  孔子ㅣ라 리오
[James Legge] 'I have heard that the characters of ministers about court may be discerned from those whom they entertain, and those of stranger officers, from those with whom they lodge. If Confucius had lodged with the ulcer-doctor, and with the attendant Chî Hwan, how could he have been Confucius?'
集註
近臣 在朝之臣이요 遠臣 遠方來仕者 君子小人 各從其類 觀其所爲主與其所主者 而其人 可知니라

맹자집주 책은 2019.04.2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