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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集註

맹자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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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집주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4. 有爲神農之言者許行 自楚之滕야 踵門而告文公曰 遠方之人 聞君[의] 行仁政고 願受一廛而爲氓노이다 文公 與之處시니 其徒數十人 皆衣褐고 捆屨織席[야] 以爲食더라

4. 신농씨(神農氏)의 학설을 주장하는 자인 허행(許行)이 초(楚)나라에서 등나라로 와서, 궁궐 문에 이르러 문공에게 아뢰었다. “먼 지방 사람이 군주께서 인정을 행하신다는 말을 듣고, 살 곳을 받아 이 나라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문공이 그에게 거처할 곳을 주었다. 이에 그를 따르는 무리 수십 명이 모두 갈옷을 입고는, 신을 두드려 만들고 자리를 짜서 이것을 팔아 양식을 마련하였다.
[James Legge] There came from Ch'û to T'ang one Hsü Hsing, who gave out that he acted according to the words of Shan-nang. Coming right to his gate, he addressed the duke Wan, saying, 'A man of a distant region, I have heard that you, Prince, are practising a benevolent government, and I wish to receive a site for a house, and to become one of your people.' The duke Wan gave him a dwelling-place. His disciples, amounting to several tens, all wore clothes of haircloth, and made sandals of hemp and wove mats for a living.
集註
神農 炎帝神禮氏 始爲耒耜여 敎民稼穡者也 爲其言者 史遷所謂農家者流也이요 名也 踵門 足至門也 仁政 上章所言井地之法也 民所居也 野人之稱이라 毛布 賤者之服也 扣㧻之 欲其堅也 以爲食 賣以供食也 程子曰 許行所謂神農之言 乃後世稱述上古之事 失其義理者耳 猶陰陽醫方 稱黃帝之說也
陳良之徒陳相 與其弟辛으로 負耒耜而自宋之滕[야] 曰 聞君 行聖人之政호니(니) 是亦聖人也ㅣ시니(ㅣ니) 願爲聖人氓노이다

초나라 유자(儒者) 진량(陳良)의 제자 진상(陳相)이 그의 아우 신(辛)과 함께 쟁기를 지고서 송나라에서 등나라로 와서 말하였다. “임금께서 성인(聖人)의 정치를 행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또한 성인이시니, 성인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James Legge] At the same time, Ch'an Hsiang, a disciple of Ch'an Liang, and his younger brother, Hsin, with their plough-handles and shares on their backs, came from Sung to T'ang, saying, 'We have heard that you, Prince, are putting into practice the government of the ancient sages, showing that you are likewise a sage. We wish to become the subjects of a sage.'
集註
陳良 楚之儒者 所以起土 其柄也
陳相 見許行而大悅야 盡棄其學而學焉이러니 陳相 見孟子야 道許行之言曰 滕君(은) 則誠賢君也ㅣ어니와 雖然[이나] 未聞道也ㅣ로다(ㅣ러라) 賢者 與民竝耕而食며 饔飱而治니(어) 今也[애] 滕有倉廩府庫니 則是厲民而以自養也ㅣ니 惡得賢이리오(이리오더이다)

진상이 허행을 만나보고 크게 기뻐하여 자기가 배운 것을 다 버리고 그에게 배웠다. 진상이 맹자를 뵙고 허행의 말을 전하였다. “등나라 임금은 진실로 현군(賢君)이지만 아직 도(道)를 듣지는 못하였습니다. 현자(賢者)는 백성들과 함께 농사지어서 먹으며 손수 밥을 지어 먹고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런데 지금 등나라에는 곡식창고와 재물창고가 있습니다. 이는 백성을 해쳐서 자신을 봉양하는 것이니, 어떻게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James Legge] When Ch'an Hsiang saw Hsü Hsing, he was greatly pleased with him, and, abandoning entirely whatever he had learned, became his disciple. Having an interview with Mencius, he related to him with approbation the words of Hsü Hsing to the following effect:-- 'The prince of T'ang is indeed a worthy prince. He has not yet heard, however, the real doctrines of antiquity. Now, wise and able princes should cultivate the ground equally and along with their people, and eat the fruit of their labour. They should prepare their own meals, morning and evening, while at the same time they carry on their government. But now, the prince of T'ang has his granaries, treasuries, and arsenals, which is an oppressing of the people to nourish himself. How can he be deemed a real worthy prince?'
集註
饔飱 熟食也 朝曰 饔이요 夕曰 飱이라 言當自炊爨以爲食고 而兼治民事也 病也 許行此言 蓋欲陰壞孟子分別君子野人之法이라
孟子[ㅣ] 曰 許子(ㅣ) 必種粟而後[에] 食乎 曰 然다(이다) 許子(ㅣ) 必織布而後[에] 衣乎 曰 否ㅣ라 許子 衣褐이니라(이니이다) 許子(ㅣ) 冠乎 曰 冠이니라(이니이다) 曰 奚冠 曰 冠素ㅣ니라(ㅣ니이다) 曰 自織之與 曰 否ㅣ라 以粟易之니라(니이다) 曰 許子(ㅣ) 奚爲不自織 曰 害於耕이니라(이니이다) 曰 許子(ㅣ) 以釜甑爨며 以鐵耕乎 曰 然다(이다) 自爲之與 曰 否ㅣ라 以粟易之니라(니이다)

맹자께서 물으셨다. “허자(許子)는 반드시 직접 곡식을 심은 뒤에 밥을 먹는가?” 진상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허자는 반드시 삼베를 짠 뒤에 옷을 해 입는가?” “아닙니다. 허자는 갈옷을 입습니다.” “허자는 관(冠)을 쓰는가?” “관을 씁니다.” “어떤 관을 쓰는가?” “흰 비단으로 만든 관을 씁니다.” “직접 그것을 짜는가?” “아닙니다. 곡식을 주고 바꿉니다.” “허자는 어찌하여 직접 짜지 않는가?” “농사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허자는 가마솥과 시루로 밥을 짓고, 쇠붙이로 된 농기구로 밭을 가는가?” “그렇습니다.” “직접 그것을 만드는가?” “아닙니다. 곡식을 주고 바꿉니다.”
[James Legge] Mencius said,'I suppose that Hsü Hsing sows grain and eats the produce. Is it not so?' 'It is so,' was the answer. 'I suppose also he weaves cloth, and wears his own manufacture. Is it not so?' 'No. Hsü wears clothes of haircloth.' 'Does he wear a cap?' 'He wears a cap.' 'What kind of cap?' 'A plain cap.' 'Is it woven by himself?' 'No. He gets it in exchange for grain.' 'Why does Hsü not weave it himself?' 'That would injure his husbandry.' 'Does Hsü cook his food in boilers and earthenware pans, and does he plough with an iron share?' 'Yes.' 'Does he make those articles himself?' 'No. He gets them in exchange for grain.'
集註
所以煮 所以炊 然火也 耜屬也 此語八反 皆孟子問而陳相對也
以粟易械器者 不爲厲陶冶ㅣ니 陶冶 亦以其械器易粟者 豈爲厲農夫哉리오 且許子 何不爲陶冶야 舍皆取諸其宮中而用之고 何爲紛紛然與百工交易 何許子之不憚煩 曰 百工之事(를) 固不可耕且爲也ㅣ니라(ㅣ니이다)

“곡식을 주고 연장이나 그릇과 바꾸는 것이 도공(陶工)이나 대장장이에게 해가 되지 않으니, 도공이나 대장장이 또한 그 연장이나 그릇을 주고 곡식과 바꾸는 것이 어찌 농부(農夫)에게 해가 되겠는가? 또 허자는 어찌하여 직접 질그릇을 굽고 풀무질을 하여 모두 자기 집안에서 만들어서 쓰지 않고,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백공(百工)과 교역(交易)을 하는가? 어찌하여 허자는 이처럼 번거로운 것을 꺼리지 않는가?” “백공의 일은 진실로 농사지으면서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James Legge] Mencius then said, 'The getting those various articles in exchange for grain, is not oppressive to the potter and the founder, and the potter and the founder in their turn, in exchanging their various articles for grain, are not oppressive to the husbandman. How should such a thing be supposed? And moreover, why does not Hsü act the potter and founder, supplying himself with the articles which he uses solely from his own establishment? Why does he go confusedly dealing and exchanging with the handicraftsmen? Why does he not spare himself so much trouble?' Ch'an Hsiang replied, 'The business of the handicraftsman can by no means be carried on along with the business of husbandry.'
集註
孟子言而陳相對也 械器 釜甑之屬也 爲甑者 爲釜鐵者 止也 或讀屬上句니 謂作陶冶之處也
然則治天下 獨可耕且爲與 有大人之事며(고) 有小人之事니(며) 且一人之身而百工之所爲[ㅣ]니 如必自爲而後[애] 用之면(댄) 率天下而路也ㅣ니라(ㅣ니)[로] 曰 或勞心며 或勞力이니(야) 勞心者 治人고 勞力者 治於人이라니(이니) 治於人者 食人고 治人者 食於人이(이라니) 天下之通義也ㅣ니라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유독 농사지으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대인(大人)의 일이 있고, 소인(小人)의 일이 있네. 그리고 한 사람의 몸에 백공이 만든 것들이 모두 필요한데, 만일 반드시 모두 직접 만든 뒤에 쓴다면 이는 천하 사람을 몰아 길에서 분주히 왕래하게 하는 것이네. 그러므로 옛말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은 힘을 수고롭게 하니,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의 다스림을 받는다[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하였네. 남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여 살리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 얻어먹는[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것이 천하의 공통된 도리일세.
[James Legge] Mencius resumed, 'Then, is it the government of the kingdom which alone can be carried on along with the practice of husbandry? Great men have their proper business, and little men have their proper business. Moreover, in the case of any single individual, whatever articles he can require are ready to his hand, being produced by the various handicraftsmen:-- if he must first make them for his own use, this way of doing would keep all the people running about upon the roads. Hence, there is the saying, "Some labour with their minds, and some labour with their strength. Those who labour with their minds govern others; those who labour with their strength are governed by others. Those who are governed by others support them; those who govern others are supported by them." This is a principle universally recognised.
集註
此以下 皆孟子言也 謂奔走道路여 無時休息也 治於人者 見治於人也 食人者 出賦稅여 以給公上也 食於人者 見食於人也 此四句 皆古語而孟子引之也 君子 無小人則飢고 小人 無君子則亂니 以此相易 正猶農夫陶冶 以粟與械器相易이니 乃所以相濟 而非所以相病也 治天下者 豈必耕且爲哉리오
當堯之時야 天下[ㅣ] 猶未平야 洪水[ㅣ] 橫流야 氾濫於天下야(며) 草木暢茂며 禽獸繁殖이라(고) 五穀不登며 禽獸偪人야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이어늘(이어) 堯獨憂之샤 擧舜而敷治焉이어시늘(시니) 使益掌火신대 烈山澤以焚之니 禽獸[ㅣ] 逃匿이어늘(이러라) 疏九河며(시며) 瀹濟漯而注諸海시며 決汝漢[며] 排淮泗而注之江시니 然後[에] 中國 可得而食也니 當是時也야 八年於外예(샤) 三過其門而不入시니 雖欲耕이나(인) 得乎

요(堯)임금 때를 당하여 천하가 여전히 평정되지 못해서 홍수(洪水)가 멋대로 흘러 천하에 범람하여 초목(草木)이 무성하고 금수(禽獸)가 번식하였네. 그리하여 오곡(五穀)이 여물지 못하고 금수가 사람을 위협해 짐승의 발자국과 새의 발자국이 나라 안에 어지럽게 나 있었는데, 요임금께서 이를 걱정하시어 순(舜)을 등용하여 다스리게 하셨네. 이에 순이 익(益)으로 하여금 불을 담당하게 하셨는데, 익이 산과 늪에 불을 질러 태우자 금수가 도망하여 숨었네. 그리고 순이 우(禹)로 하여금 홍수를 다스리게 하셨는데, 우가 모든 강(江)을 소통시키고 제수(齊水)와 탑수(漯水)를 소통시켜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하시며, 여수(汝水)와 한수(漢水)를 트고 회수(淮水)와 사수(泗水)를 터서 양자강(揚子江)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셨으니, 그런 뒤에 중국(中國)이 곡식을 먹을 수가 있었네. 이때를 당하여 우가 8년 동안 밖에 있으면서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하셨으니, 비록 직접 농사를 지으려 해도 할 수가 있었겠는가?
[James Legge] 'In the time of Yâo, when the world had not yet been perfectly reduced to order, the vast waters, flowing out of their channels, made a universal inundation. Vegetation was luxuriant, and birds and beasts swarmed. The various kinds of grain could not be grown. The birds and beasts pressed upon men. The paths marked by the feet of beasts and prints of birds crossed one another throughout the Middle Kingdom. To Yâo alone this caused anxious sorrow. He raised Shun to office, and measures to regulate the disorder were set forth. Shun committed to Yî the direction of the fire to be employed, and Yî set fire to, and consumed, the forests and vegetation on the mountains and in the marshes, so that the birds and beasts fled away to hide themselves. Yü separated the nine streams, cleared the courses of the Tsî and T'â, and led them all to the sea. He opened a vent also for the Zû and Han, and regulated the course of the Hwâ'i and Sze, so that they all flowed into the Chiang. When this was done, it became possible for the people of the Middle Kingdom to cultivate the ground and get food for themselves. During that time, Yü was eight years away from his home, and though he thrice passed the door of it, he did not enter. Although he had wished to cultivate the ground, could he have done so?'
集註
天下猶未平者 洪荒之世 生民之害多矣러니 聖人迭興사 漸次除治사되 至此尙未盡平也 大也 橫流 不由其道而散溢妄行也 氾濫 橫流之貌 暢茂 長盛也 繁殖 衆多也 五穀 稻黍稷麥菽也 成熟也 路也 獸蹄鳥跡 交於中國 言禽獸多也 布也 舜臣名이라 熾也 禽獸逃匿然後 禹得施治水之功이라 通也 分也 九河 曰 徒駭, 曰 太史, 曰 馬頰, 曰 覆釜, 曰 胡蘇, 曰 簡, 曰 潔, 曰 鉤盤, 曰 鬲津이라 亦疏通之意 濟漯 二水名이라 決排 皆去其壅塞也 汝漢淮泗 亦皆水名也 據禹貢及今水路컨대 惟漢水入江耳 汝泗則入淮而淮自入海니 此謂四水皆入于江 記者之誤也
后稷 敎民稼穡여(샤) 樹藝五穀대(신대) 五穀[이] 熟而民人[이]니 人之有道也애(ㅣ) 飽食煖衣야(고) 逸居而無敎ㅣ면 則近於禽獸ㅣ릴 聖人[이] 有憂之샤 使契爲司徒야 敎以人倫시니 父子有親이며(며) 君臣有義 夫婦有別이며(며) 長幼有序ㅣ며(며) 朋友有信이니라(니) 放勳[이] 曰 勞之來之며 匡之直之며 輔之翼之야 使自得之고 又從而振德之라시니 聖人之憂民 如此시니(ㅣ어시든) 而暇耕乎

후직(后稷)이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서 오곡을 심고 가꾸게 하자, 오곡이 익고 인민(人民)이 잘 길러졌네. 사람에게는 도리가 있는데 배불리 먹고 따뜻이 옷을 입고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금수에 가까워지네. 이 때문에 성인인 순임금께서 이를 근심하시어 설(契)을 사도(司徒)로 삼아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하셨으니, 부자간에는 친함이 있다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간에는 의리가 있다는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간에는 분별이 있다는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간에는 차례가 있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간에는 믿음이 있다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이것일세. 요임금께서 말씀하기를 ‘수고로운 자를 위로하고 먼 데서 오려는 자를 오게 하며, 간사한 자를 바로잡아 주고 굽은 자를 펴주며, 부축하여 서게 하고 도와주어 행하게 하여 스스로 선한 본성(本性)을 얻게 하고, 또 따라서 진작시켜 은혜를 베풀어주라.’고 하셨으니, 성인께서 백성을 걱정하심이 이와 같으니 어느 겨를에 농사를 짓겠는가?
[James Legge] 'The Minister of Agriculture taught the people to sow and reap, cultivating the five kinds of grain. When the five kinds of grain were brought to maturity, the people all obtained a subsistence. But men possess a moral nature; and if they are well fed, warmly clad, and comfortably lodged, without being taught at the same time, they become almost like the beasts. This was a subject of anxious solicitude to the sage Shun, and he appointed Hsieh to be the Minister of Instruction, to teach the relations of humanity:-- how, between father and son, there should be affection; between sovereign and minister, righteousness; between husband and wife, attention to their separate functions; between old and young, a proper order; and between friends, fidelity. The high meritorious sovereign said to him, "Encourage them; lead them on; rectify them; straighten them; help them; give them wings:-- thus causing them to become possessors of themselves. Then follow this up by stimulating them, and conferring benefits on them." When the sages were exercising their solicitude for the people in this way, had they leisure to cultivate the ground?
集註
言 水土平然後 得以敎稼穡이요 衣食足然後 得以施敎化 后稷 官名이니 棄爲之이나 言敎民이면 則亦非竝耕矣 亦種也 殖也 亦舜臣名也 司徒 官名也 人之有道 言其皆有秉彝之性也이나 無敎 則亦放逸怠惰而失之 聖人 設官而敎以人倫시니 亦因其固有者而道之耳 書曰 天敍有典시니 勅我五典사 惇哉라하니 此之謂也 放勳 本史臣贊堯之辭어늘 孟子因以爲堯號也 猶惠也 堯言 勞者 勞之고 來者 來之며 邪者 正之고 枉者 直之며 輔以立之고 翼以行之여 使自得其性矣 又從而提撕警覺以加惠焉여 不使其放逸怠惰而或失之라하시니 蓋命契之辭也
[ㅣ] 以不得舜[으로] 爲己憂시고[이] 以不得禹皐陶[로] 爲己憂시니 夫以百畝之不易[로] 爲己憂者 農夫也ㅣ니라

요임금께서는 순과 같은 사람을 얻지 못함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으셨고, 순임금께서는 우와 고요(皐陶) 같은 사람을 얻지 못함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으셨으니, 100묘의 전지(田地)가 다스려지지 못함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는 자는 농부일세.
[James Legge] 'What Yâo felt giving him anxiety was the not getting Shun. What Shun felt giving him anxiety was the not getting Yü and Kâo Yâo. But he whose anxiety is about his hundred mâu not being properly cultivated, is a mere husbandman.
集註
治也 堯舜之憂民 非事事而憂之也 急先務而已 所以憂民者 其大如此 則不惟不暇耕이라 而亦不必耕矣니라
分人以財 謂之惠 敎人以善 謂之忠이오 爲天下得人者 謂之仁이니 是故[로] 以天下與人(은)고 爲天下得人(은)니라(이니라)

사람들에게 재물(財物)을 나누어주는 것을 ‘혜(惠)’라 이르고, 사람들에게 선(善)을 가르쳐주는 것을 ‘충(忠)’이라 이르며, 천하 사람들을 위하여 인재(人才)를 얻는 것을 ‘인(仁)’이라 이르네. 이러므로 천하를 남에게 주기는 쉽고,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기는 어렵네.
[James Legge] 'The imparting by a man to others of his wealth, is called "kindness." The teaching others what is good, is called "the exercise of fidelity." The finding a man who shall benefit the kingdom, is called "benevolence." Hence to give the throne to another man would be easy; to find a man who shall benefit the kingdom is difficult.
集註
分人以財 小惠而已 敎人以善 雖有愛民之實이나이나 其所及 亦有限而難久 惟若堯之得舜 舜之得禹皐陶라야 乃所謂爲天下得人者而其恩惠廣大고 敎化無窮矣 此所以爲仁也
孔子[ㅣ] 曰 大哉 堯之爲君이여 惟天[이] 爲大어늘(어시) 惟堯[ㅣ] 則之시니 蕩蕩乎民無能名焉이로다 君哉 舜也ㅣ여 巍巍乎有天下而不與焉이라시니 堯舜之治天下 豈無所用其心哉시리오마(시리오) 亦不用於耕耳시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위대하다, 요의 임금 노릇하심이여! 오직 하늘이 위대한데 요임금께서 이것을 본받으셨으니, 그 덕이 넓고 커서 백성들이 형용할 수가 없도다. 임금답다, 순임금이시여! 그 덕이 높고 높아 천하를 소유하시고도 관여(關與)하지 않으셨다.’ 하셨으니, 요순께서 천하를 다스리심에 어찌 그 마음을 씀이 없으시겠는가마는, 농사짓는 데는 쓰지 않으셨네.
[James Legge] 'Confucius said, "Great indeed was Yâo as a sovereign. It is only Heaven that is great, and only Yâo corresponded to it. How vast was his virtue! The people could find no name for it. Princely indeed was Shun! How majestic was he, having possession of the kingdom, and yet seeming as if it were nothing to him!" In their governing the kingdom, were there no subjects on which Yâo and Shun employed their minds? There were subjects, only they did not employ their minds on the cultivation of the ground.
集註
法也 蕩蕩 廣大之貌 君哉 言盡君道也 巍巍 高大之貌 不與 猶言不相關이니 言其不以位爲樂也
吾聞用夏變夷者ㅣ오 未聞變於夷者也ㅣ케라(케라) 陳良 楚産也ㅣ니 悅周公仲尼之道야 北學於中國이어늘(대) 北方之學者 未能或之先也니 彼所謂豪傑之士也ㅣ라(ㅣ어) 子之兄弟 事之數十年이라가 師死而遂倍之온여

나는 중화(中華)의 문명한 가르침을 가지고 오랑캐를 변화시켰다는 말은 들었지만, 오랑캐에게 변화당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네. 진량은 초나라 태생으로, 주공(周公)과 중니(仲尼)의 도를 좋아하여 북쪽으로 중국에 와서 공부하였는데, 북방(北方)의 학자들도 그보다 앞선 자가 없었으니, 그는 이른바 걸출한 선비일세. 그런데 그대의 형제가 그를 수십 년 동안 섬기다가 스승이 죽자 마침내 배반하는구나!
[James Legge] 'I have heard of men using the doctrines of our great land to change barbarians, but I have never yet heard of any being changed by barbarians. Ch'an Liang was a native of Ch'û. Pleased with the doctrines of Châu-kung and Chung-nE, he came northwards to the Middle Kingdom and studied them. Among the scholars of the northern regions, there was perhaps no one who excelled him. He was what you call a scholar of high and distinguished qualities. You and your brother followed him some tens of years, and when your master died, you forthwith turned away from him.
集註
此以下 責陳相倍師而學許行也 諸夏禮義之敎也 變夷 變化蠻夷之人也 變於夷 反見變化於蠻夷之人也 生也 陳良 生於楚니 在中國之南이라 北遊而學於中國也 過也 豪傑 才德出衆之稱이니 言其能自拔於流俗也 與背同이라 言 陳良 用夏變夷어늘 陳相 變於夷也
昔者[애] 孔子커시늘(커시) 三年之外 門人 治任將歸 入揖於子貢고 相嚮而哭야 皆失聲然後[에]어늘(커) 子貢 反築室於場야 獨居三年然後[에]니라 他日애(에) 子夏子張子游 以有若似聖人이라야 欲以所事孔子[로] 事之야 彊曾子댄(대) 曾子[ㅣ] 曰 不可니 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라시니라

옛적에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공자의 문인(門人)들이 심상(心喪) 3년을 행하였네. 3년이 지난 뒤에 문인들이 짐을 챙겨 돌아갈 적에 자공(子貢)의 처소에 들어가서, 자공에게 읍하고 서로 마주보고 통곡하여 모두 목이 쉰 뒤에 돌아갔는데, 자공은 다시 돌아와 무덤가에 여막(廬幕)을 짓고서 홀로 3년을 더 지낸 뒤에 돌아갔네. 후일에 자하(子夏)‧자장(子張)‧자유(子游)가 유약(有若)이 공자와 닮았다고 하여, 공자를 섬기던 예(禮)로써 그를 섬기려 하면서 증자(曾子)에게 그렇게 하기를 강요하자, 증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안 되오. 선생님의 덕은 양자강과 한수의 물로 씻은 것과 같고 가을볕에 쬔 것과 같아서 희고 흼이 이보다 더할 수가 없소.’ 하셨네.
[언해] 녜 孔子ㅣ 몰커시 三삼年년ㅅ 外외예 門문人이 任을 治티야 將 歸귀 入야 子貢공의게 揖읍고 서르 嚮야 哭곡야 다 聲을 失실 후에 歸귀거늘 子貢은 反반야 場애 室실을 築튝야 호을로 三삼年년을 居거 後후에 歸귀니라 他타日에 子夏하와 子張과 子游유ㅣ 有유若으로 聖人 다 야 孔子 던 바로 事코져 야 曾子 彊대 曾子ㅣ 샤 可가티 아니니 江漢한으로 濯탁며 秋츄陽으로 暴폭디라 皜호皜호홉다 可가히 尙티 몯리라 시니라
[James Legge] 'Formerly, when Confucius died, after three vears had elapsed, his disciples collected their baggage, and prepared to return to their several homes. But on entering to take their leave of Tsze-kung, as they looked towards one another, they wailed, till they all lost their voices. After this they returned to their homes, but Tsze-kung went back, and built a house for himself on the altar-ground, where he lived alone other three years, before he returned home. On another occasion, Tsze-hsiâ, Tsze-chang, and Tsze-yû, thinking that Yû Zo resembled the sage, wished to render to him the same observances which they had rendered to Confucius. They tried to force the disciple Tsang to join with them, but he said, "This may not be done. What has been washed in the waters of the Chiang and Han, and bleached in the autumn sun:-- how glistening is it! Nothing can be added to it."
集註
三年 古者 爲師心喪三年니 若喪父而無服也 擔也 冢上之壇場也 有若似聖人 蓋其言行氣象 有似之者니 如檀弓所記 子游謂有若之言 似夫子之類是也 所事孔子 所以事夫子之禮也 江漢 水多니 言濯之潔也 秋日 燥烈니 言暴之乾也 皜皜 潔白貌 加也 言 夫子道德明著여 光輝潔白시니 非有若所能彷彿也 或曰 此三語者 孟子贊美曾子之辭也
今也[애] 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ㅣ어늘(ㅣ어) 倍子之師而學之니 亦異於曾子矣로다

지금 알아들을 수 없는 왜가리소리를 지껄이는 것 같은 남쪽 오랑캐 허행이 선왕(先王)의 도를 비난하거늘, 그대는 그대의 스승을 배반하고 이것을 배우니, 또한 증자와 다르도다.
[언해] 이제 南蠻남만ㅅ 鴃격舌셜읫 사이 先션王의 道도ㅣ 아니어 子ㅣ 子의 師 倍고 學니  曾子애셔 다도다
[James Legge] 'Now here is this shrike-tongued barbarian of the south, whose doctrines are not those of the ancient kings. You turn away from your master and become his disciple. Your conduct is different indeed from that of the philosopher Tsang.
集註
博勞也 惡聲之鳥 南蠻之聲 似之니 指許行也
吾聞出於幽谷야 遷于喬木者ㅣ오 未聞下喬木而入於幽谷者케라

나는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간다는 말은 들었어도,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 깊은 골짜기로 들어간다는 말은 듣지 못했네.
[언해] 내 幽유谷곡애 出츌야 喬교木목애 遷쳔 者쟈를 듣고 喬교木목애 下하야 幽유谷곡애 入 者쟈 듣디 몯게라 변티 몯홈이로다
[James Legge] 'I have heard of birds leaving dark valleys to remove to lofty trees, but I have not heard of their descending from lofty trees to enter into dark valleys.
集註
小雅伐木之詩云 伐木丁丁이어늘 鳥鳴嚶嚶이로다 出自幽谷여 遷于喬木이라하니라
魯頌[애] 曰 戎狄是膺니 荊舒是懲이라니 周公이(은) 方且膺之어시늘(어시) 子是之學니 亦爲不善變矣로다

《시경》 〈노송(魯頌) 비궁(閟宮)〉에 이르기를 ‘오랑캐인 융(戎)과 적(狄)을 공격하니, 남쪽의 초나라와 서(舒)나라가 징계되었다.’고 하였으니, 주공께서도 바야흐로 이들을 응징하셨는데 그대는 이것을 배우니, 또한 잘 변화하지 못한 것이로다.”
[언해] 魯로頌숑에 오 戎융과 狄뎍을 이에 膺응니 荊형과 舒셔ㅣ 이에 懲딩타 니 周쥬公공은 야흐로  膺응커시 子ㅣ 이 호니  잘 변티 몯홈이로다
[James Legge] 'In the Praise-songs of Lû it is said,

"He smote the barbarians of the west and the north,
He punished Ching and Shû."

Thus Châu-kung would be sure to smite them, and you become their disciple again; it appears that your change is not good.'
集註
魯頌 閟宮之篇也 擊也 楚本號也 國名이니 近楚者也 艾也 今按 此詩 爲僖公之頌이어늘 而孟子以周公言之시니 亦斷章取義也
從許子之道(면) 則市賈[ㅣ] 不貳야(며) 國中[이] 無僞야 雖使五尺之童[으로] 適市라도 莫之或欺니(리니) 布帛長短[이](면) 則賈相若며 麻縷絲絮輕重[이](면) 則賈相若며 五穀多寡[ㅣ](면) 則賈相若며 屨大小[ㅣ](면) 則賈相若이니라(이리이다)

진상이 말하였다. “허자의 도를 따르면 시장의 물건 값이 다르지 않아서 온 나라 안에 거짓이 없어질 것이니, 비록 5척의 동자(童子)를 시장에 보내더라도 혹시라도 그를 속이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베나 비단의 길이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으며, 삼과 실과 생사(生絲)와 솜의 무게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으며, 오곡의 양이 같으면 값이 서로 같으며, 신의 크기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을 것입니다.”
[James Legge] Ch'an Hsiang said, 'If Hsü's doctrines were followed, then there would not be two prices in the market, nor any deceit in the kingdom. If a boy of five cubits were sent to the market, no one would impose on him; linen and silk of the same length would be of the same price. So it would be with bundles of hemp and silk, being of the same weight; with the different kinds of grain, being the same in quantity; and with shoes which were of the same size.'
集註
陳相 又言許子之道如此니 蓋神農 始爲市井이라 許行 又託於神農而有是說也 五尺之童 言幼小無知也 許行 欲使市中所粥之物 皆不論精粗美惡고 但以長短, 輕重, 多寡, 大小 爲價也
曰 夫物之不齊 物之情也ㅣ니(ㅣ라) 或相倍蓰며 或相什伯며 或相千萬이어늘(이어) 比而同之니 亂天下也ㅣ로다 巨屨小屨 同賈ㅣ면 人豈爲之哉리오 從許子之道ㅣ면(면) 相率而爲僞者也ㅣ니 惡能治國家ㅣ리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물건이 똑같지 않음은 물건의 실상(實狀)일세. 그러므로 값의 차이가 혹은 서로 배(倍)가 되고 다섯 배가 되며, 혹은 서로 열 배가 되고 백 배가 되며, 혹은 서로 천 배가 되고 만 배가 되네. 그런데 자네는 질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무게와 길이로만 따져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여 값을 같게 하려 하니, 이는 천하를 어지럽히는 짓일세. 만일 큰 신과 작은 신이 값이 같다면 사람들이 어찌 큰 신을 만들겠는가? 허자의 도를 따른다면 서로 이끌고서 서로 속이게 하는 것이니, 어떻게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James Legge] Mencius replied, 'It is the nature of things to be of unequal quality. Some are twice, some five times, some ten times, some a hundred times, some a thousand times, some ten thousand times as valuable as others. If you reduce them all to the same standard, that must throw the kingdom into confusion. If large shoes and small shoes were of the same price, who would make them? For people to follow the doctrines of Hsü, would be for them to lead one another on to practise deceit. How can they avail for the government of a State?'
集註
一倍也 五倍也 什伯千萬 皆倍數也 次也 孟子言 物之不齊 乃其自然之理 其有精粗 猶其有大小也 若大屨小屨同價 則人豈肯爲其大者哉리오 今不論精粗고 使之同價 使天下之人으로 皆不肯爲其精者고 而競爲濫惡之物여 以相欺耳니라

맹자집주 책은 2019.04.2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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