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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集註

맹자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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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凡九章이라
1. 公孫丑 問曰 夫子 當路於齊시면 管仲晏子之功 可復許乎ㅣ잇가(잇가)

1. 맹자(孟子)의 제자 공손추(公孫丑)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만일 제(齊)나라에서 요직(要職)을 맡으신다면 관중(管仲)과 안자(晏子)(안영(晏嬰))의 공적을 다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James Legge] Kung-sun Ch'âu asked Mencius, saying, 'Master, if you were to obtain the ordering of the government in Ch'î, could you promise yourself to accomplish anew such results as those realized by Kwan Chung and Yen?'
集註
公孫丑 孟子弟子 齊人也 當路 居要地也 管仲 齊大夫 名夷吾 相桓公여 霸諸侯니라 猶期也 孟子未嘗得政시니 丑蓋設辭以問也
孟子[ㅣ] 曰 子誠齊人也ㅣ로다 知管仲晏子而已矣온여

“그대는 참으로 제나라 사람이로다. 관중과 안자만 알 뿐이로구나!
[James Legge] Mencius said, 'You are indeed a true man of Ch'î. You know about Kwan Chung and Yen, and nothing more,
集註
齊人 但知其國有二子而已 不復知有聖賢之事
問乎曾西曰 吾子 與子路孰賢 曾西 蹴然曰 吾先子之所畏也ㅣ니라(ㅣ시니라) 曰 然則吾子 與管仲孰賢 曾西 艴然不悅曰 爾何曾比予於管仲 管仲[이] 得君 如彼其專也ㅣ며 行乎國政 如彼其久也ㅣ로 功烈 如彼其卑也니 爾何曾比予於是오니라(오)

어떤 사람이 증자(曾子)의 손자(孫子)인 증서(曾西)에게 묻기를 ‘그대와 자로(子路) 중에 누가 더 낫소?’ 하니, 증서가 불안해하면서 말하기를 ‘그분은 우리 선친(先親)께서도 존경하신 분이오.’ 하였네. ‘그렇다면 그대와 관중 중에 누가 더 낫소?’ 하니, 증서가 얼굴을 붉히고 불쾌해하며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 나를 관중에게 비교하오? 관중은 저처럼 군주의 신임을 전적으로 받았으며, 저처럼 국정(國政)을 오래 맡았는데도 공적(功績)이 저처럼 보잘것없으니, 당신은 어찌 나를 그런 사람에게 비교한단 말이오?’ 하였네.
[James Legge] 'Some one asked Tsang Hsî, saying, "Sir, to which do you give the superiority,-- to yourself or to Tsze-lû?" Tsang Hsî looked uneasy, and said, "He was an object of veneration to my grandfather." "Then," pursued the other, "Do you give the superiority to yourself or to Kwan Chung?" Tsang Hsî, flushed with anger and displeased, said, "How dare you compare me with Kwan Chung? Considering how entirely Kwan Chung possessed the confidence of his prince, how long he enjoyed the direction of the government of the State, and how low, after all, was what he accomplished,-- how is it that you liken me to him?"
集註
孟子引曾西與或人問答如此시니라 曾西 曾子之孫이라 不安貌 先子 曾子也 怒色也 曾之言 則也 猶光也 桓公 獨任管仲四十餘年니 是專且久也 管仲 不知王道而行霸術이라 言功烈之卑也 楊氏曰 孔子言子路之才曰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라하시니 使其見於施爲라도 如是而已 其於九合諸侯여 一匡天下에는 固有所不逮也 然則曾西推尊子路如此고 而羞比管仲者 何哉 譬之御者컨대 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 管仲之功 詭遇而獲禽耳 曾西 仲尼之徒也 不道管仲之事니라
曰 管仲 曾西之所不爲也어늘(어) 而子 爲我願之乎

관중처럼 되는 것은 증서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인데, 자네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
[James Legge] 'Thus,' concluded Mencius, 'Tsang Hsî would not play Kwan Chung, and is it what you desire for me that I should do so?'
集註
孟子言也 望也
曰 管仲 以其君霸고 晏子 以其君顯니 管仲晏子(ㅣ) 猶不足爲與잇가

“관중은 자기 임금을 패자(霸者)로 만들었고, 안자는 자기 임금을 세상에 이름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관중과 안자도 오히려 따라할 만하지 못하단 말입니까?”
[James Legge] Kung-sun Ch'âu said, 'Kwan Chung raised his prince to be the leader of all the other princes, and Yen made his prince illustrious, and do you still think it would not be enough for you to do what they did?'
集註
顯名也
曰 以齊[로] 由反手也ㅣ니라

“제나라같이 큰 나라를 가지고 왕 노릇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일세.”
[James Legge] Mencius answered, 'To raise Ch'î to the royal dignity would be as easy as it is to turn round the hand.'
集註
反手 言易也
曰 若是則弟子之惑 滋甚케이다(이다) 且以文王之德으로 百年而後崩샤 猶未洽於天下ㅣ어시(ㅣ어) 武王周公 繼之(신대) 然後[에] 大行니 今言王若易然시니(이면) 則文王[은] 不足法與잇가

“그렇다면 저의 의혹이 더욱 깊어집니다. 문왕(文王)께서는 훌륭한 덕을 가지고 교화(敎化)를 펴시다가 백 년 뒤에 돌아가셨는데도 여전히 천하에 교화가 두루 미치지 못하여, 무왕(武王)과 주공(周公)께서는 계속한 뒤에야 교화가 크게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왕도정치를 행하는 것이 쉬운 것처럼 말씀하시니, 문왕은 본받을 만하지 못하단 말입니까?”
[James Legge] 'So!' returned the other. 'The perplexity of your disciple is hereby very much increased. There was king Wan, moreover, with all the virtue which belonged to him; and who did not die till he had reached a hundred years:-- and still his influence had not penetrated throughout the kingdom. It required king Wû and the duke of Châu to continue his course, before that influence greatly prevailed. Now you say that the royal dignity might be so easily obtained:-- is king Wan then not a sufficient object for imitation?'
集註
益也 文王 九十七而崩시니 言百年 擧成數也 文王 三分天下 才有其二러시니 武王 克商여 乃有天下시고 周公 相成王여 制禮作樂然後 敎化大行니라
曰 文王은(을) 何可當也ㅣ시리오(ㅣ리오) 由湯[으로] 至於武丁 賢聖之君[이] 六七야(샤) 天下[ㅣ] 歸殷[이] 久矣 久則難變也ㅣ라(ㅣ오) 武丁 朝諸侯有天下호(샤) 猶運之掌也시니(ㅣ어시) 紂之去武丁 未久也ㅣ라 其故家遺俗 流風善政 猶有存者며 又有微子微仲王子比干箕子膠鬲 皆賢人也ㅣ라(ㅣ니) 相與輔相之(라)[로] 久而後[에] 失之也니 尺地[도] 莫非其有也ㅣ며 一民[도] 莫非其臣也ㅣ어늘(ㅣ어) 然而文王 猶方百里起시니 是以難也ㅣ니라(ㅣ시니라)

“문왕을 어찌 당할 수 있겠는가? 은(殷)나라는 탕왕(湯王)으로부터 무정(武丁)에 이르기까지 어질고 성스러운 임금 예닐곱이 나와서 천하를 다스려 천하의 민심(民心)이 은나라에 돌아간 지 오래되었으니, 오래되면 변하기 어려운 법일세. 그러므로 무정이 제후(諸侯)들에게 조회받고 천하를 소유하되 손바닥에 천하를 놓고 움직이듯이 쉬웠던 것이네. 폭군 주왕(紂王)의 시대는 무정과 시간적인 거리가 오래지 않았네. 그러므로 그 당시 훈구대신(勳舊大臣)의 집안과 전해오는 좋은 풍속과 유풍(流風)과 선정(善政)이 여전히 남은 것이 있었네. 또 미자(微子)와 미중(微仲)과 왕자(王子) 비간(比干)과 기자(箕子)와 교격(膠鬲)이 모두 현인(賢人)이었네. 이들이 서로 주왕을 보좌하였으므로 오랜 뒤에야 천하를 잃었던 것일세. 한 자 되는 땅도 주왕의 소유 아님이 없었으며, 한 사람의 백성도 주왕의 신하 아닌 이가 없었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문왕께서 사방 백 리 되는 나라를 가지고 일어나셨으니, 이 때문에 천하에 교화가 두루 미치기가 어려웠던 것일세.
[James Legge] Mencius said, 'How can king Wan be matched? From T'ang to Wû-ting there had appeared six or seven worthy and sage sovereigns. The kingdom had been attached to Yin for a long time, and this length of time made a change difficult. Wû-ting had all the princes coming to his court, and possessed the kingdom as if it had been a thing which he moved round in his palm. Then, Châu was removed from Wû-ting by no great interval of time. There were still remaining some of the ancient families and of the old manners, of the influence also which had emanated from the earlier sovereigns, and of their good government. Moreover, there were the viscount of Wei and his second son, their Royal Highnesses Pî-kan and the viscount of Ch'î, and Kâo-ko, all men of ability and virtue, who gave their joint assistance to Châu in his government. In consequence of these things, it took a long time for him to lose the throne. There was not a foot of ground which he did not possess. There was not one of all the people who was not his subject. So it was on his side, and king Wan at his beginning had only a territory of one hundred square lî. On all these accounts, it was difficult for him immediately to attain to the royal dignity.
集註
猶敵也 自成湯으로 至於武丁 中間 太甲, 太戊, 祖乙, 盤庚 皆賢聖之君이라 起也 自武丁至紂 凡七世 故家 舊臣之家也
齊人[이] 有言曰 雖有知慧 不如乘勢 雖有鎡基 不如待時라니 今時則易然也ㅣ니라

제나라 사람의 말에 이르기를 ‘비록 지혜(智慧)가 있으나 형세(形勢)를 타는 것만 못하며[雖有知慧 不如乘勢], 비록 농기구(農器具)가 있으나 농사철을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雖有鎡基 不如待時].’ 하였으니, 지금이야말로 왕도정치를 행하기 쉬운 때이네.
[James Legge] 'The people of Ch'î have a saying-- "A man may have wisdom and discernment, but that is not like embracing the favourable opportunity. A man may have instruments of husbandry, but that is not like waiting for the farming seasons." The present time is one in which the royal dignity may be easily attained.
集註
鎡基 田器也 謂耕種之時
夏后殷周之盛애(에) 地未有過千里者也니(ㅣ러니) 而齊有其地矣 鷄鳴狗吠[ㅣ] 相聞而達乎四境니(이러니) 而齊[ㅣ] 有其民矣 地不改辟矣 民不改聚矣라도 行仁政而王이면 莫之能禦也ㅣ리라(ㅣ니라)

하(夏)‧은(殷)‧주(周)의 전성기에도 땅이 천 리를 넘는 경우가 있지 않았는데 제나라는 그만 한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인가(人家)가 많으면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鷄鳴狗吠]가 도성으로부터 사방의 국경에 도달하는데 제나라가 이만 한 백성을 가지고 있으니, 땅을 더 개척하지 않고 백성을 더 모으지 않더라도 인정(仁政)을 행하여 왕도정치를 한다면 이를 막을 자가 없을 것이네.
[James Legge] 'In the flourishing periods of the Hsiâ, Yin, and Châu dynasties, the royal domain did not exceed a thousand lî, and Ch'î embraces so much territory. Cocks crow and dogs bark to one another, all the way to the four borders of the State:-- so Ch'î possesses the people. No change is needed for the enlarging of its territory: no change is needed for the collecting of a population. If its ruler will put in practice a benevolent government, no power will be able to prevent his becoming sovereign.
集註
言其勢之易也 三代盛時 王畿不過千里어늘 今齊已有之니 異於文王之百里 又鷄犬之聲 相聞여 自國都 以至於四境니 言居民稠密也
且王者之不作이(ㅣ) 未有疏於此時者也며(ㅣ며) 民之憔悴於虐政 未有甚於此時者也니(ㅣ니) 飢者[애] 易爲食이며 渴者[애] 易爲飮이니라

또 왕자(王者)가 나오지 않음이 지금보다 더 드물었던 적이 없으며, 백성들이 학정에 시달려 초췌해진 것이 지금보다 더 심한 적이 없으니, 굶주린 자에게는 어떤 음식이든 먹을거리가 되기 쉽고[飢者 易爲食], 목마른 자에게는 어떤 음료라도 마실거리가 되기 쉽네[渴者 易爲飮].
[언해]  王者쟈의 作작디 아니홈이 이 時시만 疏소 이 잇디 아니며 民민의 虐학政에 憔쵸悴홈이 이 時시만 甚심 이 잇디 아니니 飢긔者쟈애 食식 되옴이 쉬오며 渴갈者쟈애 飮음 되옴이 쉬오니라
[James Legge] 'Moreover, never was there a time farther removed than the present from the rise of a true sovereign: never was there a time when the sufferings of the people from tyrannical government were more intense than the present. The hungry readily partake of any food, and the thirsty of any drink.'
集註
言其時之易也 自文武至此 七百餘年이니 異於商之賢聖繼作이요 民苦虐政之甚니 異於紂之猶有善政이라 易爲飮食 言飢渴之甚 不待甘美也
孔子[ㅣ] 曰 德之流行 速於置郵而傳命이라시니(이라시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덕(德)이 유행되는 것이 파발마(擺撥馬)로 명(命)을 전달하는 것보다 빠르다.’ 하셨으니,
[언해] 孔子ㅣ 샤 德덕의 流류行홈이 置티郵우로 命 傳뎐홈두군 速속다 시니
[James Legge] 'Confucius said, "The flowing progress of virtue is more rapid than the transmission of royal orders by stages and couriers."
集註
驛也 馹也 所以傳命也 孟子引孔子之言 如此시니라
當今之時야 萬乘之國 行仁政이면 民之悅之 猶解倒懸也ㅣ리니[로] 事半古之人이오 功必倍之(ㅣ) 惟此時[ㅣ] 爲然니라(이니라)

지금과 같은 때를 당하여 만승(萬乘)의 나라가 인정을 행한다면 백성들이 거꾸로 매달렸다가 풀려난 것처럼 기뻐할 것이네. 그러므로 일은 옛사람의 반(半)만 하고도 효과는 반드시 옛사람의 배(倍)가 되는 것은 바로 지금이 그러한 때일세.”
[언해] 이젯 時시 야 萬만乘ㅅ 國국이 仁政을 行면 民민의 悅열홈이 倒도懸현을 解홈 리니 故고로 ㅣ 녯사애 半반만 고 功이 반시 倍홈은 오직 이 時시ㅣ 그러니라
[James Legge] 'At the present time, in a country of ten thousand chariots, let benevolent government be put in practice, and the people will be delighted with it, as if they were relieved from hanging by the heels. With half the merit of the ancients, double their achievements is sure to be realized. It is only at this time that such could be the case.'
集註
倒懸 諭困苦也 所施之事 半於古人而功倍於古人 由時勢易而德行速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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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공손축문왈 부자…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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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공손축문왈 부자…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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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공손축문왈 부자… 104

맹자집주 책은 2019.04.2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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