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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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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李邕
李白
字太和 楊州人이라 有文名하여 開元中 北海太守하니 時稱李北海러니 李林甫忌其才故 殺之하니라

假令風歇時下來라도
猶能簸却滄溟水
世人見我恒殊調하고
聞余大言皆冷笑
猶能畏後生
하니
丈夫未可輕年少
李邕에게 올리다
이백
李邕(이옹)은 자가 太和이니 楊州 사람이다. 문장을 잘한다는 명성이 있어 開元年間에 북해태수를 지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李北海라고 칭하였는데, 李林甫가 그의 재주를 시기하여 살해하였다.
큰 붕새 어느 날 바람과 함께 날아올라
扶搖 타고 곧바로 구만 리 상공에 올라가네.
가령 바람 그쳐 내려오더라도
오히려 滄溟의 물 까부를 수 있다오.
세상 사람들 내가 항상 세속과 格調가 다름 보고
나의 큰 소리 듣고는 모두 냉소하네.
宣父도 오히려 後生들 두려워했으니
丈夫는 젊은이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오.
賞析
이 시는《李太白集》9권에 실려 있는 바, 이백이 당시의 대선배이자 文士들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李邕에게 자신의 포부를 서술하여 올린 것이다.《唐書》〈文苑列傳〉에 의하면 이옹은 廣陵 江都 사람으로 詞賦를 잘하여 玄宗에게 총애를 받았으나 張說ㆍ李林甫의 미움을 받아 70여세에 결국 죽임을 당하였는데, 생전에 문장을 잘하고 인재를 기른다는 美名을 얻었다 한다. 이백과는 20여세 이상의 나이 차이가 있으므로 蕭士贇은《分類補註李太白集》에서 “이 시는 이백의 작품이 아닌 듯하다.” 하였다.
鄭士信〈1558(명종 13)-1619(광해군 11)〉의《梅窓集》에 이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소개한다.
“마지막 구의 注에 ‘큰 붕새로 이옹의 재주를 비유하여 李邕이 비록 젊지만 경시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한 것은 매우 잘못이다. 이옹의 知名이 李林甫보다 앞에 있었다. 이옹이 젊었을 때에 이백의 나이는 아직 어렸으니, 이 시에 ‘이옹에게 올렸다.’고 한 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 이백이 豪放俊逸한 才氣을 자부하여 시를 올린 것이니, 큰 붕새는 바로 이백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마지막 구에 ‘宣父도 오히려 後生을 두려워하였으니, 丈夫는 나이 젊은 사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였는 바, 이는 이옹의 年齒와 德望이 비록 자신보다 높지만 자신이 나이가 젊다 하여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으로 말한 뜻이 매우 분명하다.”
역주
역주1 大鵬一日同風起 扶搖直上九萬里 : 扶搖는 큰 바람을 이른다.《莊子》〈逍遙遊〉에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 갈 적에 물을 3천 리를 치며 扶搖를 타고 9만리 상공으로 날아간다.” 하였다.
역주2 宣父(보)猶能畏後生 : 宣父는 孔子를 이르는 바, 唐나라 開元 27년(739)에 文宣王에 봉해졌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論語》〈子罕〉에 “후생이 두려울 만하니, 그들의 장래가 어찌 나의 지금만 못함을 알겠는가.[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라고 한 孔子의 말씀이 있으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3 :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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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이옹 395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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