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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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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夜吳歌
李白
乃樂府曲名이니 皆言相思之情也 子夜 夜中也 今豫章以東至浙西皆吳地
長安一片月
萬戶擣衣聲이라
秋風吹不盡하니
總是玉關情이라注+ 總是玉關情 : 後漢班超 居西域三十年 以老思歸하여 願生入玉門關하니 關在今沙州之西, 蒲昌海之東하니 關外 皆係西域諸國也
何日平胡虜하여


자야오가
이백
子夜吳歌는 바로 樂府의 曲調 이름이니, 모두 서로 그리워하는 情을 말한 것이다. 子夜는 한밤중이다. 吳는 지금의 豫章 동쪽 지방으로 浙江 서쪽에 이르기까지 모두 吳지방이다.
長安에는 한 조각 달 밝은데
수많은 집에서는 다듬이 소리 들려오네.
가을바람 끊임없이 불어오니
모두가 玉門關의 임 그리는 情이라오.注+後漢의 班超가 西域에 거처한 지 30년만에 나이가 늙어 돌아올 것을 생각하여 살아서 玉門關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였으니, 옥문관은 지금 沙州의 서쪽, 蒲昌海의 동쪽에 있었는 바, 관문 밖은 모두 西域의 여러 나라에 속한다.
어느 날에나 오랑캐들 평정하고
良人은 먼 부역에서 돌아오실는지.
賞析
이 시는 《樂府詩集》에는 〈子夜四時歌〉라는 제목으로, 《李太白集》6권에는 〈子夜吳歌〉라는 제목으로 4수가 실려 있는데, 이 시는 그중 셋째 수인 秋歌이다. 〈子夜歌〉는 六朝 때에 長江 유역인 吳지방에서 불리워지던 民歌 중의 하나이다. 전설에 晉代에 子夜라고 불리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 노래를 잘 불렀으므로 ‘자야’를 노래 이름으로 삼았다 한다. 그 후에 이러한 종류의 노래가 유행하였는데, 〈大子夜歌〉ㆍ〈子夜警 歌〉ㆍ〈子夜戀歌〉의 變曲이 있고, 四季를 노래한 것은 〈子夜四時歌〉라고 부른다. 明나라 王夫之는 《唐詩評選》에서 “앞의 네 구는 천지 사이에서 생성된 좋은 구인데, 李太白에게 拾得되었다.[前四句是天壤間生成好句 被太白拾得]” 하였다. 참고로 春ㆍ夏ㆍ冬歌를 싣는다.
“장안의 羅敷라는 여인 綠水 가에서 뽕을 따네. 흰 손은 푸른 가지 위에 있고 단장한 얼굴은 밝은 햇살 아래 곱기도 하여라. 누에가 주리므로 첩이 가려 하니 태수도 만류하지 마오.[秦地羅敷女 採桑綠水邊 素手靑條上 紅粧白日鮮 蠶飢妾欲去 五馬莫留連]〈春歌〉
鏡湖 삼백리에 연꽃이 봉우리를 터뜨렸네. 오월에 西施가 연을 따니 사람들 구경하느라 若耶를 메웠네. 배를 돌린 지 한 달이 못 되어 越王家로 시집갔다오.[鏡湖三百里 菡萏發荷花 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 回舟不待月 歸去越王家]〈夏歌〉
내일 아침 驛使가 출발하니 밤새도록 征袍에 솜을 두네. 맨손으로 바늘 뽑기도 손이 시린데 어떻게 가위를 잡고 옷을 지을까. 재봉해 먼길에 부치니 어느 날에나 臨洮에 닿으려나.[明朝驛使發 一夜絮征袍 素手抽針冷 那堪把剪刀 裁縫寄遠道 幾日到臨洮]〈冬歌〉"
金世濂〈1593(선조 26)-1646(인조 24)〉의 《東溟集》1권에도 〈子夜吳歌〉2首가 실려 있으므로 아래에 소개한다.
“낭군이 중문에서 오니 총각에 흰 버선을 신었네. 나와 보는 것 더딤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소. 부엌 앞에서 대충 머리카락 매만지고 있어서라오.[郎自中門來 總角白纏襪 莫怪出看遲 廚前略拭髮]
촛불을 밝혀 부엌으로 들어가 밤중에 낭군의 밥을 짓네. 물을 길음에 우물이 얼어 미끄럽고 땔나무 꺾으니 팔뚝에 힘이 빠지네.[明燭入廚下 夜中作郞食 汲水井氷滑 折薪臂無力]”


역주
역주1 良人罷遠征 : 良人은 남편으로 남편이 부역을 끝내고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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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야오가 366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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