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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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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源圖
韓愈(退之)
按陶淵明敍桃源事云 先世避秦하여 隱居於此어늘 後人 不深考하고 因謂秦人 至晉猶有不死라하여 指以爲神仙이라 惟韓退之桃源圖 王介甫桃源行 東坡和桃源詩 深得淵明之指也
神仙有無何渺茫
桃源之說誠荒唐이라注+桃源之說誠荒唐 : 晉太康中 武陵人 捕魚라가 從溪行하여 忘路遠近이라 逢桃林夾岸하니 無雜花菓 云秦人避世至此
流水盤廻山百轉하니
生綃數幅垂中堂이라
武陵太守好事者
題封遠寄南宮下
忻得之하니
波濤入筆驅文辭
文工畵妙各臻極하니
異境恍惚移於斯
架巖鑿谷開宮室하니
接屋連墻千萬日이라
了不聞하니
非所恤이라
種桃處處惟開花하니
川原遠近蒸紅霞
初來猶自念鄕邑터니
歲久此地還成家
漁舟之子來何所
物色相猜更問語
이요
群馬南渡開新主注+群馬南渡開新主 : 晉書 元帝卽位建業하니 童謠云 五馬浮渡江 一馬化爲龍이라하니라
聽終辭絶共悽然하니
自說經今六百年이라
當時萬事皆眼見이나
不知幾許猶流傳이라
爭持牛酒來相饋하니
不同樽俎異
月明伴宿玉堂空하니
骨冷魂淸無夢寐
夜半金鷄啁哳鳴하니
飛出客心驚이라
人間有累不可住하니
依然離別難爲情이라
船開棹進一回顧하니
萬里蒼茫煙水暮
世俗寧知僞與眞注+世俗寧知僞與眞 : 眞僞不可辨 應起句神仙渺茫之說이라
至今傳者武陵人이라


桃源의 그림을 보고 짓다
한유(퇴지)
살펴보건대 陶淵明이 桃源의 일을 서술하기를 “先代가 秦나라를 피하여 이곳에 은거했다.” 하였는데, 후세 사람들은 깊이 상고하지 않고 인하여 말하기를 “秦나라 사람들이 晉나라 때까지도 죽지 않은 이가 있다.” 하여 이를 가리켜 신선이라 하였다. 오직 韓退之의〈桃源圖〉와 王介甫의〈桃源行〉, 東坡의〈和陶桃花源〉이 도연명의 뜻을 깊이 얻었다.
神仙의 있고 없음 어찌 이리 허황한가
桃源의 말 참으로 황당하네.注+晉나라 太康年間에 무릉 사람이 물고기를 잡다가 시내를 따라 올라가 길의 원근을 잊었다. 강 언덕 좌우에 늘어서 있는 복숭아 숲을 만나니, 잡다한 꽃과 과일나무가 없었고 秦나라 사람이 세상을 피하여 이곳에 이른 것이라고 하였다.
흐르는 물 감돌고 산은 백 번이나 감아 도니
생비단에 몇 폭의 그림 堂 가운데에 드리웠다오.
武陵의 太守 일을 좋아하는 자라
封緘 위에 써서 멀리 南宮 아래에 부쳐 왔네.
南宮先生 이것을 기쁘게 받아보니
파도가 붓에 들어와 文章을 구사하누나.
문장 아름답고 그림 묘하여 각각 극치 다하니
신선의 황홀한 경치 이 곳에 옮겨 놓았네.
바위에 나무 걸치고 골짝 파 宮室 여니
지붕과 담장 연하여 천만 일 지내 왔네.
嬴氏 쓰러지고 劉氏 넘어진 것 듣지 못했으니
땅 갈라지고 하늘 나누어짐 걱정할 바 아니네.
복숭아 심어 곳곳마다 꽃 피니
시내와 언덕 遠近에 붉은 놀 피어 오르는 듯.
처음 와서는 그래도 고향 고을 생각했는데
세월이 오래자 이곳이 도리어 집을 이루었네.
漁舟의 낯선 사람 어디서 왔는고
자세히 살펴보며 서로 의심하고 다시 말을 묻누나.
큰 뱀이 중간이 끊겨 前王朝 망하고
여러 말이 남쪽으로 건너와 새 王朝 열었다오.注+《晉書》에 “元帝가 建業에서 즉위하니 童謠에 이르기를 ‘다섯 말이 강을 건너갔는데 한 말이 변하여 용이 되었다.’ 했다.” 하였다.
듣기를 마치고 말이 끝나자 함께 서글퍼하니
스스로 말하기를 지금까지 육백 년 지내 왔다 하네.
당시의 모든 일 모두 눈으로 직접 보았는데
이 사실 얼마나 세상에 그대로 流傳하는지 모르노라.
다투어 쇠고기와 술 가지고 와 서로 대접하니
禮數가 똑같지 않고 술동이와 도마도 다르누나.
달 밝은데 함께 빈 玉堂에서 자니
뼈가 시리고 정신이 맑아 잠 못 이루노라.
한밤중 金鷄가 소리쳐 우니
火輪이 솟아오르자 나그네 마음 놀라네.
인간에 얽매임 있어 머무를 수 없으니
아련히 이별함에 심정을 가누기 어려워라.
배를 출발시키고 노 저으며 한 번 돌아보니
만리가 아득하여 안개와 물 아스라하네.
세속에서야 어찌 거짓인지 참인지 알겠는가.
지금 이것을 전하는 자 武陵 사람이라오.注+거짓인지 참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은 起句의 신선이 아득하다는 말에 응한 것이다.
賞析
이 시는《韓昌黎集》3권에 실려 있다. 桃源은 陶淵明의〈桃花源記〉에 나오는 신선 세계로 이 그림을 보고 읊은 것이다. 참고로 도연명의〈桃花源詩〉倂記를 싣는다.
“晉나라 太元 연간에 고기잡이 하는 武陵 사람이 계곡을 따라 가다가 얼마나 길을 갔는지 몰랐는데, 문득 복숭아꽃 숲을 만났다. 양쪽 강안 수백 보에 다른 나무는 없이 芳草가 아름답고 桃花가 어지러우니, 어부가 매우 이상하게 여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 숲끝까지 가고자 하였다. 그런데 숲이 끝나고 물이 발원하는 곳에 문득 산 하나가 있었다. 산에 작은 입구가 있었는데 마치 빛이 있는 것 같았다. 곧 배를 놓아두고 입구를 따라가니 처음에는 매우 좁아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 만하였으나 다시 수십 보를 가자 널찍하고 환하였다. 땅은 평평하고 넓으며 집들은 반듯하고 좋은 전답과 아름다운 못에 뽕나무와 대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으며 길이 서로 통하고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서로 들렸다. 이 가운데 왕래하며 씨뿌리고 일하는 남녀들은 外界人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노인과 어린아이들은 모두 편안하고 즐거워하였다. 이들은 어부를 보자 크게 놀라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므로 자세히 말해 주었다. 집으로 가기를 청하여 그를 위해 술을 내오고 닭을 잡아 음식을 장만하였으며, 마을에 이런 사람이 와있다는 말을 듣고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와서 소식을 물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자신들은 ‘선대에 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처자와 마을 사람을 이끌고 이 외진 곳에 와서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않아 마침내 외인과 단절되었다.’고 하였다. 지금이 어느 시대냐고 물었는데, 漢나라가 있었던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니, 魏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부가 그들에게 알고 있는 역사 사실을 일일이 다 말해 주니, 모두 탄식하며 처연해 하였다. 나머지 사람들도 각기 자신들의 집으로 불러다가 모두 술과 밥을 대접하였다. 어부가 며칠을 머물다가 돌아가겠다고 말하자, 그들 중 어떤 사람이 ‘外人에게 말할 것이 못된다’고 당부하였다. 어부는 나와서 배를 찾은 다음 곧 지난번 왔던 길을 따라 곳곳에 표시하고는 郡下에 도착하여 태수에게 나아가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하니, 태수가 곧 사람을 보내어 어부를 따라서 지난번 표시해 두었던 곳을 찾아가게 하였지만 마침내 길을 잃고 더 이상 원래의 길을 찾지 못하였다. 南陽의 劉子驥는 고상한 선비로,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여 직접 桃花源을 찾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병들어 죽었다. 이후로는 도화원으로 가는 길을 묻는 자가 없었다.”
시의 끝에 蘇東坡가 평하기를 “세상에 桃源의 일이 전해지는데 대부분 사실보다 과장되었다. 陶淵明이 기록한 것을 상고해 볼 때 단지 先世에 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이곳에 왔다고 말하였으니, 어부가 본 것은 아마도 그들의 자손이고 죽지 않고 살아남은 秦나라 사람은 아닐 것이요, 또 닭을 잡아 음식을 장만하였다고 하였으니, 어찌 신선으로서 살생을 하였겠는가?” 라고 하였다.
朴彭年〈1417(태종 17)-1456(세조 2)〉의《朴先生遺稿》와 成三問〈1418(태종 18)-1456(세조 2)〉의《成謹甫集》에는 匪懈堂 李瑢(安平大君)이 지은〈夢遊桃源記〉에 대해서 쓴 글이 있는데, 주로 비해당의 記文이 武陵桃源을 잘 형용하였음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역주
역주1 南宮先生 : 南宮은 禮部를 가리키는 바, 당시 禮部郎中으로 있던 韓愈가 자신을 이렇게 칭한 것이라 하였는데, 李德弘의《艮齋集》續集 4권에는 “당시에 韓公이 禮部郎中이 되었는데, 예부의 上官 중에 이 그림을 얻고서 시를 지어 公에게 보여준 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公이 이 시를 지어 찬미한 것이다. 아래의 南宮先生은 바로 이 그림을 얻고서 시를 지은 사람이다. 만약 韓退之가 자신을 先生이라고 하였다면 이른바 ‘파도가 붓에 들어왔다’는 것과 ‘문장이 묘하여 극치를 다하였다’고 말한 것은 모두 意義가 없다.” 하여 이 주를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金隆의《勿巖集》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보인다.
역주2 嬴顚劉蹶 : 嬴氏는 秦나라이고 劉氏는 劉邦의 漢나라로 곧 진나라와 한나라가 모두 망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3 地拆天分 : 中國이 魏ㆍ晉, 南北朝 시대에 여러 나라로 분열됨을 말한 것이다.
역주4 大蛇中斷喪前王 : 秦나라가 망하고 漢나라가 건국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한나라를 세운 劉邦이 일찍이 大澤을 지나가는데 큰 뱀이 길을 막고 있으므로 칼로 그 뱀을 베어 죽였다. 그후 부하가 그 길을 지나가니, 한 할미가 나타나 울면서 “내 아들은 白帝의 아들인데 이제 赤帝의 아들이 죽였다.” 하였는 바, 백제의 아들은 진나라이고 적제의 아들은 한나라라 한다.
역주5 禮數 : 禮儀를 가리킨다.
역주6 火輪 : 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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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원도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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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원도 481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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