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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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連昌宮辭
元稹
連昌宮中滿宮竹
歲久無人森似束이라
又有墻頭千葉桃하니
風動落花紅蔌蔌이라
宮邊老人爲余泣호되
少年選進因曾入이라
上皇正在望仙樓하니
太眞同憑欄干立이라
樓上樓前盡珠翠하니
炫轉熒煌照天地
歸來如夢復如癡하니
何暇備言宮裡事
初過寒食一百五하니注+初過寒食一百五 : 冬至後過一百單五日하여 爲寒食이라
店舍無煙宮樹綠이라
夜半月高絃索鳴하니
이라
力士傳呼覓念奴하니注+念奴 : 天寶中名妓之善歌舞者
念奴潛伴諸郞宿이라
須臾覓得又連催하니
特勅街中許燃燭이라
春嬌滿眼睡紅綃하니
掠削雲鬟旋粧束이라
飛上九天歌一聲하니
吹管이라
하니
色色轟綠續이라
李謨擪笛傍宮墻하여
偸得新翻數般曲이라注+偸得新翻數般曲 : 明皇 上元夜 潛遊燈下러니 忽聞樓上吹笛 奏前夕新翻之曲者하고 大駭하여 密捕笛者하다 詰問하니 云是夕 竊於天津橋上玩月이라가 聞宮中奏曲하고 遂於橋柱 以爪畵譜하여 記之 問其誰氏하니 曰李謨 明皇異之하여 賜物遣去하니라
平明大駕發行宮하니
萬人鼓舞途路中이라
하고
楊氏諸姨車鬪風이라
明年十月東都破하니
御路猶存祿山過
驅令供頓不敢藏하니
萬姓無聲淚潛墮
兩京定後六七年
却尋家舍行宮前이라
莊園燒盡有枯井하고
行宮門闥樹宛然이라
爾後相傳六皇帝하니注+爾後相傳六皇帝 : 自明皇後 又傳肅宗代宗德宗順宗憲宗六朝皇帝
不到離宮門久閉
往來年少說長安하니
玄武樓成花萼廢注+玄武樓成花萼廢 : 昔於宮西 創花萼相輝之樓러니 後又建玄武樓하고 遂廢花萼之樓하니라
去年勅使因斫竹하여
偶値門開暫相逐이라
荊榛櫛比塞池塘이요
狐兎驕癡緣樹木이라
舞榭欹傾基尙存이요
文窓窈窕紗猶綠이라
塵埋粉壁舊花鈿이요
烏喙風箏碎如玉이라
上皇偏愛臨砌花하니
依然御榻臨階斜
이요
菌生香案正當衙
寢殿相連端正樓하니
太眞梳洗樓上頭
晨光未出簾影黑하니
至今反掛珊瑚鉤
指向傍人因慟哭하고
却出宮門淚相續이라
自從此後還閉門하니
夜夜狐狸上門屋이라
我聞此語心骨悲하니
太平誰致亂者誰
翁言野父何分別
耳聞眼見爲君說이라
姚崇宋璟作相公하여注+姚崇宋璟作相公 : 姚崇, 宋璟 皆作明皇賢相하여 致太平하니라
勸諫上皇言語切이라
燮理陰陽禾黍豐하고
調和中外無兵戎이라
長官淸平太守好하니
揀選皆言由相公이라
開元欲末姚宋死하니
朝廷漸漸由妃子注+朝廷漸漸由妃子 : 唐之亂階 自此始矣
祿山宮裏養作兒하고注+祿山宮裏養作兒 : 天寶十載 召祿山入禁中이러니 貴妃使宮人으로 以彩輿舁之하다 問後宮喧笑한대 左右以貴妃洗兒對하니 上喜하여 賜貴妃洗兒錢하니라
虢國門前鬧如市注+虢國門前鬧如市 : 貴妃妹封虢國夫人하니 勢焰熏炙하여 人皆附之하여 其門如市하니라
弄權宰相不記名이나
依俙憶得
廟謨顚倒四海搖하니
五十年來作瘡痏
神聖丞相明하니
詔書纔下이라
官軍又取하니
此賊亦除天下寧이라
年年耕種宮前道러니
이라
老翁此意深望幸하니
努力廟謨休用兵하라
연창궁사
원진
連昌宮 안에 가득한 대나무
오랫동안 돌보는 사람 없으니 다발로 묶어 놓은 듯하네.
또 담장머리에는 千葉의 碧桃 있으니
바람 불자 꽃 떨어져 붉은 꽃잎 나부끼네.
궁궐 가의 노인 나를 보고 울며 말하되
소년 시절 뽑혀 일찍이 궁중에 들어갔었는데
上皇(玄宗)이 바로 望仙樓에 계시니
太眞이 함께 난간에 기대어 섰습니다.
누 위와 누 앞 모두 진주와 비취로 장식하니
현란하고 휘황하여 天地에 비추었습니다.
돌아오니 꿈인 듯 또 바보가 된 듯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궁중의 일 자세히 말하였겠습니까.
처음으로 일백 오일 지나 寒食이 되니注+冬至 뒤에 105일이 지나면 한식이 된다.
가게와 집에 연기 없어 궁중의 나무 더욱 푸르렀습니다.
한밤중 달이 높이 떴는데 거문고 소리 울리니
樂工 賀懷知가 비파 타며 場屋을 정하였습니다.
高力士가 전하여 고함쳐 念奴注+念奴는 天寶 연간에 가무를 잘하던 유명한 기생이다.찾으니
念奴는 몰래 樂工들과 짝하여 자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찾아내고 또 연달아 재촉하니
特命으로 길거리에 촛불 밝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아리따운 자태 눈 가득히 붉은 비단 이불에서 자다가
구름같은 머리 빗질하고 곧바로 단장하여 띠를 묶고는
九天으로 날아올라 한 소리로 노래하니
二十五郞이 노래에 맞추어 피리 불었습니다.
어느덧 大徧 梁州曲 다 연주하니
여러 가지 龜玆曲 연이어 울렸습니다.
李謨는 젓대 잡고 궁중의 담 옆에 있으면서
새로 작곡한 몇 개의 곡조 훔쳐 베꼈습니다.注+明皇이 上元날 밤에 몰래 등불 아래에서 놀았는데, 홀연히 누대 위에서 피리 부는 소리를 들으니, 전날 저녁에 새로 지은 곡조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크게 놀라 은밀히 피리부는 자를 잡아다가 힐문하니, 말하기를 “어젯밤에 몰래 천진교 위에서 달을 구경하다가 궁중에서 연주하는 곡조를 듣고는 마침내 다리 기둥에다 손톱으로 악보를 그려 기억하였다.” 하였다. 그의 성명을 물으니 李謨라 하였다. 명황은 기이하게 여겨 물건을 하사해 주고 가게 하였다.
平明에 大駕 行宮을 출발하니
수많은 사람들 길 가운데에서 북 치며 춤추었습니다.
百官과 의장행렬 岐王과 薛王 피하였고
楊氏의 자매들 바람과 싸우며 수레 몰아 갔습니다.
明年 시월 洛陽이 격파되니
임금 다니시던 길 남아 安祿山이 지나갔습니다.
백성들 몰아 宿食을 제공하게 하여 감히 감추지 못하니
백성들 소리 없이 남몰래 눈물 떨어구었습니다.
長安과 洛陽 평정된 후 육칠 년만에
나는 다시 집 찾아 行宮 앞으로 왔습니다.
莊園은 불타 없어지고 마른 우물만 남았으며
行宮의 문에는 나무만 완연하였습니다.
그후 서로 여섯 황제 전해오니注+明皇 뒤로 또 肅宗ㆍ代宗ㆍ德宗ㆍ順宗ㆍ憲宗의 여섯 황제를 전하였다.
離宮에는 이르지 아니하여 오랫동안 궁문 닫혀 있었지요.
오가는 소년들 長安의 일 말하는데
玄武樓는 이루어지고 花萼樓는 폐지했다 하였습니다.注+옛날 궁궐 서쪽에 化萼相輝樓를 창건하였는데, 뒤에 또다시 玄武樓를 세우고 마침내 化萼樓를 폐하였다.
지난해 勅使가 대나무 베러 와서
우연히 문 여는 날 만나 잠시 서로 따라갔답니다.
가시나무와 개암나무 즐비하여 못 메웠고
여우와 토끼 교만한 듯 어리석은 듯 나무사이에 뛰놀았습니다.
춤추던 누대 기울었으나 터는 아직 남아 있고
꽃무늬 창 그윽하나 깁은 아직도 푸르렀습니다.
먼지는 분 바른 벽 덮었는데 옛 꽃비녀 보였고
까마귀는 風磬 쪼아 옥 부서지는 소리 났답니다.
上皇은 섬돌 가의 꽃 특별히 사랑하였는데
옛모습 그대로 예전의 御榻 뜰에 임하여 비껴 있었습니다.
뱀은 제비집에서 나와 斗栱에 서려 있고
버섯은 香案에 나 집무실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寢殿이 端正樓와 서로 연해 있는데
太眞이 누대 위에서 머리 빗고 씻던 곳이었습니다.
새벽빛 나오지 않아 발 그림자 침침하였는데
지금까지 산호 갈고리 뒤집혀 걸려 있었습니다.
옆 사람 향해 가리키며 인하여 통곡하고
다시 궁문 나와서도 눈물이 서로 이어졌습니다.
이 뒤로 다시 궁문 닫히니
밤마다 여우와 살쾡이들 문과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나는 이 말 듣고 마음과 뼛골 슬퍼지니
태평을 이룬 것 누구이며 나라를 어지럽힌 것 누구인가.
노인 말하기를 촌늙은이가 무엇을 분별하겠습니까마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 그대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姚崇과 宋璟이 相公이 되어서는注+姚崇과 宋璟은 모두 명황의 어진 재상이 되어 태평성대를 이룩하였다.
上皇에게 권하고 간하는 말 간절하였습니다.
陰陽을 조화롭게 다스려 벼와 기장 풍년 들고
中外를 조화시켜 병란이 없었습니다.
장관들 청렴하고 공평하며 태수들 훌륭하니
인물을 선발함 모두 相公에게 말미암는다고 말했습니다.
開元 말엽에 姚崇과 宋璟이 죽으니
조정은 점점 양귀비에게 말미암게 되었습니다.注+唐나라가 혼란해진 階梯가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安祿山이 궁중에 들어와 養子 되었고注+天寶 10년(751)에 安祿山을 불러 궁중에 들어오게 하였는데 楊貴妃가 궁녀들로 하여금 그를 채색 가마에 태우게 하였다. 임금이 후궁들이 떠들고 웃는 이유를 묻자, 좌우의 사람들은 양귀비가 아이를 씻겨 주어서라고 대답하니, 임금은 기뻐하여 양귀비에게 洗兒錢(아이를 씻기는 돈)을 하사하였다.
虢國夫人 문 앞은 시장처럼 시끄러웠습니다.注+楊貴妃의 언니가 虢國夫人에 봉해지니, 형세와 기염이 찌를 듯하여 사람들이 모두 아부해서 그 문이 시장과 같았다.
권력을 농간한 재상 이름 기억할 수 없으나
어렴풋이 楊氏와 李氏로 기억합니다.
조정의 계책 전도되어 四海가 흔들리니
오십 년 이래 큰 상처되었습니다.
今皇께서 神聖하고 승상 현명하니
조서 내리자 吳와 蜀이 평정되었으며
官軍이 또 淮西의 역적 사로잡으니
이 역적 또한 제거되자 천하가 평화로워졌습니다.
해마다 連昌宮 앞의 길에 밭갈아 심었는데
금년에는 자손 보내어 밭갈지 않았습니다.
이 늙은이의 뜻 皇帝가 오시기 깊이 바라서이니
부디 조정의 계책 잘 세워 用兵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賞析
連昌宮은 唐나라 황제의 行宮 중의 하나로 高宗 顯慶 3년(658)에 지어졌는데, 지금의 河南省 宜陽縣 서쪽 19리 지점에 있었다. 元和 13년(818) 원진이 通州司馬였을 때에 이 유명한 장편 敍事詩를 지었는데, 연창궁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安史(安祿山과 史思明)의 亂을 전후로 한 唐나라 정치의 治亂의 원인을 탐색하였다.
崔演( ?-? )의《艮齋集》1권〈連昌宮〉에서는 안록산의 난이 빚어지게 된 시대적인 상황을 서술한 다음 “아 처음은 있으나 잘 끝마침이 드무니 임금의 마음이 현명한가의 여부에 달려있네.[嗟有初而鮮終 在一心之聖狂]”라 하고 “돌아보건대 시군과 세주는 어찌하여 이것을 거울삼아 징계하지 않는가.[顧時君與世主 盍監此而懲創]”라고 경계하였다.
역주
역주1 賀老琵琶定場屋 : 賀老는 악공인 賀懷知로 唐나라 때 비파를 잘 타기로 유명하였다. 場屋은 본래 廣場 가운데 막으로 둘러친 科擧試驗場을 뜻하는데, 광대나 樂工들의 놀이 舞臺도 이와 비슷하므로 場屋이라 칭한 것이다.
역주2 二十五郞 : 스물다섯번째 郞이라는 뜻으로 邠王 李承寧을 가리킨다. 玄宗의 아우인데 피리의 명수였다.
역주3 : 篴
역주4 逡巡大徧梁州徹 : 大徧은 大遍이라고도 하며 梁州는 唐나라 敎坊의 曲名으로 본래 西凉의 曲名인데 大徧과 小徧으로 나뉘었다. 金隆의《勿巖集》4권에 “逡巡은 잠시라는 뜻이니, 어느덧 이미 양주곡을 두루 연주했다는 것이다. 徹은 파한다(끝낸다)는 뜻이다.” 하였다.
역주5 龜玆 : 옛날의 樂曲 이름으로 본래 龜玆國의 악곡이었다. 구자국은 漢代에 西域에 있던 여러 나라 중의 하나이다.《隋書 樂志 下》
역주6 百官隊仗避岐薛 : 岐薛은 唐 玄宗의 아우인 岐王 李範과 薛王 李業을 가리킨다. 金隆의《勿巖集》4권에 “隊仗은 호위병과 의장행렬이다.” 하였다.
역주7 蛇出燕巢盤鬪栱 : 金隆의《勿巖集》4권에 “盤鬪栱은 斗栱의 위에 서려 있는 것이니, 두공은 동자 기둥이 몰려 있는 곳이다.” 하였다.
역주8 楊與李 : 唐 玄宗 때의 權臣인 楊國忠과 李林甫를 가리킨다.
역주9 今皇 : 여기서는 唐 憲宗을 가리킨 것이다.
역주10 吳蜀 : 吳는 江南東道節度使 李錡를, 蜀은 劍南西川節度使 劉闢을 가리킨다.
역주11 淮西賊 : 淮西節度使 吳元濟를 가리킨다.
역주12 今年不遣子孫耕 : 李德弘의《艮齋集》續集 4권에 “도적들이 이미 제거되어 천하가 태평하기 때문에 더 이상 連昌宮 앞의 길에 밭갈고 씨뿌리지 않겠다고 말하였으니, 늙은이의 이 말은 皇帝가 오기를 깊이 바라서이다.” 하였고, 金隆은 “전쟁이 일어나 자손들이 지난날처럼 궁궐의 앞길에 밭갈고 씨뿌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하였다.
동영상 재생
1 연창궁사 504
동영상 재생
2 연창궁사 629
동영상 재생
3 연창궁사 598
동영상 재생
4 연창궁사 564
동영상 재생
5 연창궁사 553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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