杜甫
國初已來畵鞍馬
는神妙獨數江都王
이라注+江都王 : 名畵記에 江都王緖는 霍王元軌之子라將軍得名三十載
에人間又見眞
이라曾
先帝
하니龍池十日飛霹靂
이라內府殷紅馬腦盤
을婕妤傳詔才人索
이라盤賜將軍拜舞歸
하니輕紈細綺相追飛
라貴戚權門得筆跡
하니始覺屛障生光輝
라昔日太宗拳毛騧
요注+昔日太宗拳毛騧 : 太宗所乘이 名拳毛騧니 乃平劉黑時所乘이라近時郭家師子花
라注+近時郭家師子花 : 郭子儀收復京師한대 代宗이 以花虯賜之하니 名師子驄이라今之新圖有二馬
하니復令識者久歎嗟
라此皆騎戰一敵萬
이니縞素漠漠開風沙
라其餘七匹亦殊絶
하니逈若寒空動煙雪
이라霜蹄蹴踏長楸間
하니馬官厮養森成列
이라可憐九馬爭神駿
하니顧視淸高氣深穩
이라借問苦心愛者誰
오이라憶昔巡幸新豐宮
할새翠華拂天來向東
이라騰驤磊落三萬匹
이皆與此圖筋骨同
이라注+騰驤磊落三萬匹 皆與此圖筋骨同 : 明皇이 幸驪山할새 王毛仲이 以廐馬數萬從하고 每色作一隊하여 相間若錦綉하니라으로無復射蛟江水中
이라注+無復射蛟江水中 : 元封五年에 漢武帝自潯陽浮江하여 親射蛟江中하여 獲之하니라君不見
前松柏裏
에去盡鳥呼風
이라
錄事인 韋諷의 집에서 曹將軍이 그린 말 그림을 구경한 引
두보
國初 이래로 안장 얹은 말 그린 것
신묘함에 있어 유독 江都王
注+《名畵記》에 “강도왕 緖는 곽왕 元軌의 아들이다.” 하였다. 꼽았네.
장군이 명성 얻은 지 삼십 년에
人間에 또다시 참으로 乘黃 보게 되었네.
일찍이 先帝가 타던 照夜白 그리니
용못에서는 열흘 동안 霹靂 날았다오.
內府에 있는 검붉은 馬腦 쟁반
첩여에게 명하여 才人에게 찾아오게 하였네.
쟁반을 장군에게 하사하자 절하여 받고 춤추고 돌아가니
가벼운 깁과 고은 비단 서로 따라 날아갔네.
貴戚의 권문세가들 그의 筆跡 얻으니
비로소 屛風과 障子에 빛남 깨달았다오.
옛날 太宗이 타던 拳毛騧와
注+太宗이 타던 말의 이름이 권모왜이니, 바로 劉黑(門*違:위)을 평정할 때에 타던 것이다.근래 郭子儀 집안에 師子花 있었는데
注+郭子儀가 경사를 수복하자, 代宗이 화규마를 하사하니 이름을 師子驄이라 하였다.지금의 새 그림에 이들 두 말 있으니
다시 識者들 오랫동안 감탄하게 하였네.
이 말 모두 騎兵戰에 一騎가 萬騎 대적할 수 있었으니
흰 비단에 막막히 바람과 모래 날리는 듯하여라.
그 나머지 일곱 필도 매우 뛰어나니
멀리 차가운 공중에 연기와 눈 움직이는 듯하네.
서리처럼 하얀 발굽 큰 추자나무 사이 달려가니
관리하는 관원과 말 먹이꾼 삼삼히 열을 이루었네.
사랑스러운 아홉 말 神俊함 다투니
돌아보는 눈길 淸高하며 기상이 침착하고 평온하였네.
한번 묻노니 고심하여 이것을 사랑한 자 누구인가
뒤에는 韋諷 전에는 支遁이 있었다오.
저 옛날 巡幸하여 新豊宮에 행차할 적에
비취 깃발 하늘에 펄럭이며 동쪽 향해 왔었네.
그때 뛰어오르며 우뚝히 솟았던 삼만 필
모두 이 그림에 있는 말과 筋骨이 같다오.
注+明皇이 驪山에 행차할 적에 王毛仲은 황실의 마굿간에 있는 말 수만 필을 따르게 하고 색깔마다 一隊를 만들어서 서로 끼워넣어 비단 무늬같게 하였다.보물 바쳐 河宗 뵈온 뒤로부터
다시는 강물 속에서 蛟龍 쏘아 잡은 일 없었네.
注+元封 5년(B.C. 106)에 漢 武帝가 심양에서 배를 타고 친히 강 가운데에서 교룡을 쏘아 잡았다.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金粟堆 앞의 소나무와 잣나무에
龍媒는 다 가버리고 새들만 바람에 울부짖는 것을.
賞析《杜少陵集》13권에 실려 있는 바, 廣德 2년(764) 杜甫가 成都에서 지은 것으로 제목 밑의 주에 “韋諷은 집이 成都에 있었고 당시 閬州錄事였다.” 하였다. 이 시는 曹霸가 그린 九馬圖를 보고 읊은 것으로, 우선 조패의 화가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찬미하고, 그 다음으로 구마도에 그려진 준마의 웅장한 자태를 묘사하였으며, 끝으로 말의 성쇠를 통해 국가의 성쇠를 생각하고 感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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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록사택관조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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