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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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戱簡鄭廣文兼呈蘇司業
杜甫
廣文 名虔이니 玄宗 愛其才하여 置廣文館하여 以爲博士하니라 司業 國子學官으로 名源明이니 能詩하여 肅宗朝 知制誥하니라
廣文到官舍하여
繫馬堂階下
醉卽騎馬歸하니
頗遭官長罵
才名三十年
坐客寒無氈이라注+ 才名三十年 坐客寒無氈 : 吳隱之爲度支尙書하여 以竹蓬爲屛風하여 坐無氈席三十年하니 引此하여 言虔之貧約이라
近有蘇司業하여
時時與酒錢이라注+ 近有蘇司業 時時與酒錢 : 虔 始爲廣文館博士러니 性嗜酒하여 不治事라가 數爲官長所誚호되 怡然不以爲意하고 至貧窶하니 惟蘇源明 重其才하여 乃時時給餉之하니라
희롱하여 鄭廣文에게 편지를 올리고 아울러 蘇司業에게 올리다
두보
廣文은 이름이 虔이니 玄宗이 그 재주를 아껴서 廣文館을 설치하여 박사로 삼았다. 司業은 國子監의 학관으로 이름은 源明이니, 詩를 잘하여 肅宗 때에 지제고가 되었다.
廣文이 官舍에 이르러
대청 섬돌 아래에 말 매어놓네.
취하면 즉시 말 타고 돌아가니
官長의 질타 크게 당했다오.
才名 날린 지 삼십년에
坐客들 추워도 방석 없네.注+吳隱之가 탁지상서가 되어서 대나무와 쑥으로 병풍을 만들어 자리에 방석을 깔지 않고 30년을 지냈는데, 이것을 인용하여 鄭虔의 가난함을 말한 것이다.
근자에는 蘇司業이
때때로 술과 돈 준다오.注+鄭虔이 처음에 광문관 박사가 되었는데 성품이 술을 좋아하여 사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다가 여러번 上官에게 꾸짖음을 당하였으나 태연하여 개의치 않았고 지극히 가난하니, 蘇源明이 그의 재주를 소중하게 여겨 때때로 돈을 대주었다.
賞析
이 시는《杜少陵集》3권에 실려 있는 바, 廣文館 博士 鄭虔에게 준 시로 天寶 14년(755) 장안에 있을 때에 쓴 것이다. 정건은 당시의 유명한 학자로 詩ㆍ書ㆍ畵에 모두 뛰어나 현종이 三絶이라고 칭찬하였으나 天寶 초년에 사사로이 國史를 編修한다는 참소를 받고 10년간 멀리 귀양갔다가 장안으로 돌아와 광문관 박사가 되었다. 그는 성품이 초탈하고 호방하였으며 두보와 30여년의 나이차가 있었지만 친밀하게 지냈으니, 이는 정건의 일생이 불우하고 두보 역시 그러하였으므로 서로 知己라 여긴 까닭이었다. 이에 鄭虔에게 편지를 보내어 위로하고 아울러 가난한 정건을 도와 주는 國子司業 蘇源明에게도 경의를 표한 것이다.
高尙顔〈1553(명종 8)-1623(인조 1)〉의 《泰村集》1권에 商山城 아래에서 이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가 실려 있다.
“부임하였으나 관사가 없어 西城 아래에 집을 세내었네. 며칠 머물다 돌아올 때마다 남들의 비웃음 아랑곳하지 않네. 가난하게 한 해를 보내니 거북등에 어찌 털이 나겠는가. 바야흐로 窮鬼를 보내고자 하나 倉官이 봉록을 아낀다오.[到官無公舍 賃屋西城下 信宿每歸來 任他人笑罵 爲貧送一年 龜背那成氈 方欲送窮鬼 倉官靳俸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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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희간정광문겸정소사업 246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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