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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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戱贈鄭溧陽
李白
溧陽 金陵縣名이라 ○ 鄭姓爲溧陽令한대 太白 高尙其志하여 自得酒中之趣하고 笑傲流俗하여 自以淵明比方也
이라
素琴本無絃하고注+ 素琴本無絃 : 陶淵明 蓄素琴一張하니 絃不具하고 每撫而和之曰 但得琴中趣 何勞絃上聲고하니라
漉酒用葛巾이라注+ 漉酒用葛巾 : 王弘 使郡將候之러니 値陶潛酒熟하여 乃取頭上葛巾漉酒하고 還復戴之하니라
淸風北窓下
自謂羲皇人이라注+自謂羲皇人 : 陶潛 夏月虛閑 高臥北窓之下하고 淸風颯至 自謂羲皇上人이라
하여
一見平生親注+ 何時到栗里 一見平生親 : 太白 謂幾時得到鄭公所居之栗里하여 一見平生契舊之親고하니라
장난삼아 鄭溧陽에게 주다
이백
율양은 금릉의 현 이름이다.
○ 鄭姓이 溧陽縣令이 되자, 李太白이 그 뜻을 고상하게 하여 스스로 술 가운데의 취미를 얻고 流俗을 비웃고 하찮게 여겨 자신을 陶淵明에 비교한 것이다.
陶令은 날마다 취하여
다섯 버드나무에 봄 온 줄 몰랐네.
素琴은 본래 줄이 없고注+陶淵明이 평소 거문고 하나를 마련해 두니, 휘와 현을 갖추지 않고 언제나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다만 거문고 가운데의 취미를 얻을 뿐이니, 어찌 수고롭게 줄을 튕겨 소리를 내겠는가.” 하였다.
술 거를 때에는 葛巾 사용하였다오.注+王弘이 고을의 장수로 하여금 가서 문안하게 하였더니, 陶潛은 술이 익자 마침내 머리에 썼던 葛巾을 취하여 술을 거르고 다시 갈건을 머리에 썼다.
시원한 바람 불어오는 북쪽 창문 아래에
스스로 羲皇의 사람이라 말하였네.注+陶潛이 여름철 한가로울 때에 북쪽 창 아래에 높이 눕고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스스로 羲皇上人이라 칭하였다.
언제나 栗里에 이르러
평소의 친한 벗 한 번 만나볼는지.注+李太白이 언제나 鄭公이 사는 율리에 가서 한 번 평소에 사귄 옛날 친구를 만나볼까 한 것이다.
賞析
이 시는《李太白集》10권에 실려 있다. 鄭溧陽은 溧陽令인 鄭晏이라는 사람으로, 이백의 벗이다. 제목 밑의 주에 ‘이백이 자신을 도연명에게 비유하였다’고 한 것은 잘못인 듯하다. 鄭溧陽을 도연명에 비유하고, 이어서 이백이 평생의 벗인 정율양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鄭士信의 《梅窓集》에도 이 사실을 언급하고 “당시 술을 좋아하는 鄭氏가 溧陽令이 되었으므로 李白이 그를 栗里에 있던 陶令에 비유하여 장난삼아 지어준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구에 ‘언제나 栗里에 이르러 평소의 친한 벗을 한번 만나볼까’라고 말한 것이다.”하였다.
역주
역주1 陶令日日醉 不知五柳春 : 陶令은 晉나라의 處士인 陶淵明이 彭澤令을 지냈다 하여 이렇게 칭한 것이며, 陶淵明은 일찍이 문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어놓고 스스로 五柳先生이라 호하였다.
역주2 : 거문고의 줄을 고르는 자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거문고의 앞쪽에 둥근 모양으로 박은 크고 작은 열세 개의 자개 조각을 이른다.
역주3 何時到栗里 : 栗里는 潯陽에 있는 지명으로 陶淵明이 살던 곳인데, 여기서는 鄭溧陽이 사는 곳을 가리킨 것이다. 李德弘의 《艮齋集》續集 4권에 “本註는 잘못된 듯하다. 이 詩가 만약 李白이 자신을 陶淵明에게 견준 것이라면 末句는 ‘溧陽이 언제나 栗里에 이르러 한 번 나를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될까’ 라는 의미이니, 이는 장난삼아 말한 것에 불과하며, 만약 정율양을 도연명에게 견준 것이라면 末句는 ‘내가 언제나 율리에 이르러 한 번 그대를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될까’ 라는 의미이니, 後者의 말이 타당할 듯하다.” 하였다. 金隆의 《勿巖集》에도 본주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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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희증정율양 232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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