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고문진보전집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高都護驄馬行
杜甫
高仙芝開元末 爲西域副都護
安西都護胡靑驄
聲價欻然來向東이라
此馬臨陣久無敵하니
與人一心成大功이라
功成惠養隨所致하니
飄飄遠自
雄姿未受伏櫪恩이요
猛氣猶思戰場利
腕促蹄高如하니
交河幾蹴層冰裂
五花散作雲滿身하고
萬里方看汗流血이라
長安壯兒不敢騎하니
走過掣電傾城知
[都
두보
역사책에 고선지가 開元 말년에 서역의 부도호가 되었다 한다.
安西都護의 西胡産 靑驄馬
높은 聲價 지닌 채 갑자기 동쪽 향해 왔네.
이 말이 敵陣에 임하면 오랫동안 대적할 이 없으니
사람과 한 마음이 되어 큰 공 이루었네.
공이 이루어지자 은혜롭게 기름 이르는 곳마다 따르니
표표히 멀리 流沙로부터 왔다오.
웅자는 마판에서 길러지는 은혜 받으려 하지 않고
맹렬한 기운은 아직도 전장에 빨리 달려감 생각하누나.
발목이 짧고 발굽이 높아 쇠를 밟은 듯하니
交河를 몇 번이나 밟아 층층으로 언 얼음 깨뜨렸나.
다섯 꽃무늬 흩어져 구름이 온몸에 가득하고
만리를 달려야 비로소 피땀이 흐름 볼 수 있네.
長安의 건장한 아이들도 감히 타지 못하니
달려 번개처럼 지나감 온 성안이 안다오.
푸른 실로 머리 묶고 그대 위해 늙으니
어찌하면 橫門의 길 나가 달려보나.
賞析
이 시는《杜少陵集》2권에 실려 있다. 高都護는 고구려 출신의 장수인 安西都護 高仙芝로, 唐나라 貞觀 17년(643)에 西州에 安西都護府를 설치하고 顯慶 3년(658)에 治所를 龜玆國城(지금의 新疆省)으로 옮겼는데, 于闐의 서쪽과 波斯의 동쪽에 있는 16개 도호부가 여기에 속하였다. 天寶 6년(747) 고선지가 少勃律을 격파하여 공을 세웠는데, 이해에 大食國 등 72국이 모두 항복하였으며, 8년에 고선지가 入朝하였다. 이 시에 ‘飄飄遠自流沙至’라 하고 ‘長安健兒不敢騎’라 한 것은 바로 이 시가 天寶 8년에 지어진 것임을 말해 준다. 이 시는 이전에 고선지가 長安에 머물러 있었는데 등용되지 못하자 杜甫가 이를 애석히 여겨 이 詩를 지었다 하기도 하고, 杜甫 자신을 비유한 것이라 하기도 한다.
李廷龜〈1564(명종 19)-1635(인조 13)〉의《月沙集》3권에〈驄馬行〉幷序에 “고인이 이르기를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말을 알아보는 伯樂은 항상 있지 않다.’ 하였으니, 말이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인가? 사람이 말을 만나지 못한 것인가? 이는 다만 말이 名馬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어찌 다만 말만 그렇겠는가. 아! 어찌 다만 말만 그러하겠는가.” 라 하고, 시에서는 “노룡현 위 대완의 총마가 종자가 특이해 멀리 流沙에서 동쪽으로 왔네. …… 백락이 이미 죽은 지 오래니 누가 노마와 천리마를 알겠는가.[盧龍縣上大宛驄 異種遠自流沙東……伯樂死已久 誰知駑與驥]”라고 하여, 훌륭한 재주를 지녔으나 세상에 쓰여지지 못하는 인재를, 백락을 만나지 못한 총마에 비유하였다.
역주
역주1 流沙 : 沙漠으로, 모래가 물처럼 흐르기 때문에 일컫은 것인데, 서쪽의 아주 먼 곳을 가리킨다.
역주2 踣鐵 : 金隆의《勿巖集》4권에 “踣는 아마도 覆字와 같은 듯하니, 말발굽이 견고하여 쇠를 밟고 서있는 듯함을 형상한 것이다.” 하였다.
역주3 靑絲絡頭爲君老 何由却出橫(광)門道 : 橫門은 漢代 長安城 북쪽에 있던 第一門으로 西域으로 통하는 큰 길이 나 있었다. 여기서는 驄馬의 재능을 쓰지 못함을 한탄하는 말이다.《漢書 西域傳 上》
역주4 : 광
동영상 재생
1 고도호총마행 872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