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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眞寶前集

고문진보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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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檠歌
韓愈(退之)
公所以詠幽閨之思者如此
長檠八尺空自長이요
短檠二尺便且光이라
黃簾綠幕朱戶閉하니
風露氣入秋堂凉이라
裁衣寄遠淚眼暗하니
搔頭頻挑移近床이라
이라
夜書細字綴語言하니
兩目眵昏頭雪白이라
此時提掣當案前하니
看書到曉那能眠
一朝富貴還自恣하니
長檠高張照珠翠
吁嗟世事無不然하니
墻角君看短檠棄
짧은 등잔대를 읊은 노래
한유(퇴지)
公이 그윽한 閨房의 그리움을 읊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여덟 자의 긴 등잔대 공연히 길기만 하고
두 자의 짧은 등잔대 편리하고도 밝다오.
누런 주렴과 푸른 장막에 붉은 문 닫혔는데
바람과 이슬 기운 들어오니 가을집 썰렁하네.
옷 재단하여 멀리 임에게 부치느라 눈물로 눈이 어두우니
머리 긁적이며 자주 심지 돋우어 床에 가까이 옮겨 놓네.
太學의 儒生들 東魯의 나그네로
스무 살에 집을 하직하고 과거 공부하러 왔다오.
밤이면 작은 글자 써서 언어 엮으니
두 눈은 눈꼽 끼어 어둡고 머리는 백설처럼 세었어라.
이때에 등잔대 끌어다가 책상 앞에 놓으니
책 보며 새벽에 이르러 어찌 잠을 잘 수 있겠는가.
하루 아침 부귀해지면 도리어 스스로 방자해지니
긴 등잔대 높이 올려 진주와 비취로 장식한 집에 비친다오.
아! 세상 일은 이러하지 않음 없으니
그대 담장 귀퉁이에 짧은 등잔대 버려져 있음 보리라.
賞析
《韓昌黎集》5권에 실려 있는 바, 제목이〈短燈檠歌〉로 되어 있다. 제목 밑의 주에 규방의 그리움을 읊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학문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함을 한탄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즉 지난날 修己治人하기 위하여 학문에 정진하다가 부귀해지고 나면 스스로 방자하여 宴樂을 탐함을 경계한 것이다.
趙希逸〈1575(선조 8)-1638(인조 16)〉의《竹陰集》6권에〈短檠〉이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려 있다.
“가련타 등잔불이 사람을 향해 밝음이여. 반딧불과 백설 모두 짧은 등잔대만 못하다오. 심지 돋우고 옛책을 펼치며 등잔불 가물거리는 깊은 밤에 앉아 있네. 일 년내내 밤을 새우니 어찌 무료하겠나. 몸을 따르는 그림자 가장 정이 있다네. 끝내 담장 귀퉁이에 버려짐 혐의하지 말라. 세간의 영욕은 본래 서로 따르는 법이라네.[可憐燈火向人明 螢雪俱應讓短檠 挑盡玉虫披古帙 墮殘金粟坐深更 窮年繼晷寧無賴 伴影隨身最有情 畢竟莫嫌墻角棄 世間榮辱本相生]”
역주
역주1 太學儒生東魯客 二十辭家來射策 : 東魯는 春秋時代 魯나라로 중국 동쪽에 있다 하여 이름한 것이다. 魯나라는 孔子가 태어난 곳이므로 곧 儒學을 공부하는 선비를 일러 東魯客이라 한다. 舊本의 註에는 東魯客이 韓愈를 가리킨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李德弘의 《艮齋集》續集 4권에 “本註에 ‘韓退之는 東魯 사람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 내용은 의심할 만하다. 한퇴지는 鄧州 南陽人으로 그 선대가 혹 昌黎에 거주하기도 하고 혹 懷孟으로 옮기기도 하였는데, 이 세 곳은 모두 兗州의 魯지방 경계에 속하지 않으니, 어찌 東魯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였고, 金隆의《勿巖集》에도 한퇴지가 동로사람이 아님을 말하고, “또한 박사가 되었는데 그를 유생이라고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더구나 보내온 편지에 부귀해지면 스스로 방자해진다는 것은 도를 자처하는 사람의 말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였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하는 말에 불과하고, 또 二十이라고 말한 것은 弱冠으로부터 학업에 힘써 백발에 이르렀음을 말한 것일 뿐이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라고 하였다. 射策은 漢나라 때 선비를 시험 보이던 방법의 하나로 과거에 응시하거나 급제함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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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경가 788

고문진보전집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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