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 問 必有事焉
注+孟子公孫丑上篇曰 必有事焉而勿正이라하니라은 當用敬否
잇가 曰
敬은 是涵養一事요 必有事焉은 須用集義니 只知用敬이요 不知集義면 却是都無事也니라
孟子言養氣
注+孟子公孫丑篇曰 我善養吾浩然之氣라하니라曰 必有事焉
이라하시고 又曰 是集義
注+同篇曰 又曰 是集義所生者라 非義襲而取之也라하니라注+孟子本註曰 集義는 猶言積善이니 蓋欲事事皆合於義也라所生者
라하시니 人之所爲 皆合於義
하야 自反無愧
면 此浩然之氣 所以生也
라
敬者는 存心而已니 若不集義면 安得謂之必有事焉이리오
[張伯行 註] 此程子恐人以敬爲專是主靜하야 而流爲寂守之學也라
或問必有事焉은 當用敬否잇가하니 是疑孟子言必有事者는 或是當用敬以持之니 便是有所事也라
蓋隨事合宜하야 積累以獲此心裁制之安이 方是有事니 若只知用敬하야 空洞洞把持在此하고 不知就事物上하야 體察其所當然之理면 卻是都無一事也니 何以言必有事乎아
中理
는 在事
注+按 所以中者 非吾心之裁制乎아 然理在事上故로 曰 中理在事라하니라하고 義
는 在心
하니라
60-1 “반드시 일삼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
注+《맹자孟子》〈공손추公孫丑 상편上篇〉에 이르기를 “반드시 일삼음이 있으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라.” 하였다. 은 마땅히
경敬을 써야 합니까?” 하고 묻자, 〈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경敬은 함양涵養하는 한 가지 일이요 ‘반드시 일삼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름지기 집의集義(의로운 일을 축적함)를 써야 하니, 다만 경敬을 쓸 줄만 알고 집의集義할 줄을 모른다면 이는 모두 일삼음이 없는 것이다.”
맹자孟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것을 말씀하면서
注+《맹자孟子》〈공손추公孫丑 상편上篇〉에 이르기를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 하였다. “반드시 일삼음이 있어야 한다.” 하였고, 또 말씀하기를 “이(浩然之氣)는
의義로운 일을 축적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注+《맹자孟子》의 같은 편篇에 또 이르기를 “이것은 의義를 많이 축적하여 생기는 것이다. 의義가 하루 아침에 엄습하여 갑자기 취하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注+《맹자孟子》의 본주本註에 “집의集義는 적선積善이라는 말과 같으니, 일마다 모두 의義에 합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였다. 하였으니, 사람의 행하는 바가 모두
의리義理에 부합하여 스스로 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으면 이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겨나는 것이다.
경敬은 마음을 보존할 뿐이니, 만약 집의集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반드시 일삼음이 있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張伯行 註] 이는 정자程子가 사람들이 경敬을 오로지 정靜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여겨서 고요히 지키는 학문으로 흐를까 두려워한 것이다.
혹자或者가 묻기를 “‘필유사언必有事焉’은 마땅히 경敬을 써야 합니까?’” 하였으니, 이는 맹자孟子가 말씀한 ‘필유사必有事’라는 것이 혹 경敬을 써서 지켜야 하니, 이것이 곧 ‘일삼는 바가 있는 것인가’ 하고 의심한 것이다.
“경敬이라는 것은 주일무적主一無適이니 바로 함양하는 쪽의 일이다.
일삼음이 있는 것이 비록 경敬을 떠나지는 않으나 ‘반드시 일삼음이 있다’는 것은 모름지기 집의공부集義工夫를 써야 한다.
일에 따라 마땅하게 하여 이것을 많이 쌓아 이 마음의 재제裁制하는 편안함을 얻는 것이 바야흐로 일삼음이 있는 것이니, 만약 다만 경敬을 쓸 줄만 알아 부질없이 잡아서 여기에 두고, 사물상事物上에 나아가서 그 소당연所當然의 이치를 체찰體察할 줄 모른다면 이는 도리어 한 가지 일도 없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일삼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다시 묻기를 “의義는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닙니까?” 하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치에 맞음은 일에 있고,
注+살펴보건대 이치에 맞는 것이 내 마음의 재제裁制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치는 일에 있으므로 이치에 맞는 것이 일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의義는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의義는 내 마음의 재제裁制이고 이치에 맞음은 사리事理의 마땅함에 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에 있고 마음속에 있는 구별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