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性者는 萬物之一源이라 非有我之得私也니 惟大人이라야 爲能盡其道라
是故로 立必俱立하며 知必周知하며 愛必兼愛하며 成不獨成하나니 彼自蔽塞而不知順吾理[性]者는 則亦末如之何矣니라
惟大人者能盡己之性則能盡人之性이니 蓋性本無二也라
故己有所立에 必與夫人以俱立하며 己有所知에 必使夫人以周知하며 愛必兼愛하야 使人皆得所愛也하며 成不獨成하야 使人皆有所成也니 四者는 大人之所存心也라
立者
는 禮之幹也
注+欄外書曰 注에 以禮智仁義配言은 恐拘라요 知者
는 智之用也
요 愛者
는 仁之施也
요 成者
는 義之遂也
라
如是而彼或蔽塞而不通하야 不知所以順乎理면 則亦無如之何어니와
然其心
은 固欲其同盡乎一源之性也
니 此卽大學明明德於天下
요 中庸成己成物之道
니 蓋西銘之根本
注+按 朱子曰 性爲萬物之一源이라 性者는 人物之所同得이니 非惟己有요 人亦有是며 非惟人有요 物亦有是라하니 此通人與物而言之也라 葉氏只曰 人所同得이라하고 又曰 能盡人之性이라하고 而物則不及하니 然則天命之性이 有所欠闕하야 而大人亦不能盡物之性矣니 不能盡物之性이면 則可謂盡其道乎아 此則不但措語間病敗也라 此章本意는 則不過曰性者는 人與物之所同得이로되 而惟大人이 能盡其道하야 立必俱立하고 成不獨成이니 猶論語所謂己欲立而立人이요 中庸成己成物之意也라 知必周知者는 知在己之理하야 而天下萬物之理를 無不周知也요 愛必兼愛者는 愛於其親하야 而天下之人與物을 无所不愛也니 此句는 乃大人盡其道之事也라 其末에 彼自蔽塞者는 蔽言人이요 塞言物이니 此章은 自頭至尾히 无不通人物而言之者라 如此看首尾하면 則語意不滯하야 萬物一源之旨 有所歸宿矣리라 或曰 立必俱立, 成不獨成은 可語於人이나 不可語於物이니이다 曰 立必俱立則然矣어니와 成不獨成은 豈不可語於物哉아 王制에 不曰獺祭魚然後에 虞人入澤梁하고 豺祭獸然後에 田獵하며 鳩化爲鷹然後에 設罻羅하고 草木零落然後에 入山林乎아 此聖人成育萬物之道라 而朱子論修道之敎에 曰 至於天下之物하야는 則順其所欲하고 違其所惡하며 因其材質之宜하야 以致其用하고 制其取用之節하야 以遂其成者라하시니 此可見成不獨成之意也니라 ○ 又按 兼愛를 孟子註曰 无所不愛也라하고 朱子又曰 兼天下之人而盡愛는 蓋墨道也라하시니 此則只取其語하야 以言大人无所不愛之意니 不可以辭害義어늘 葉氏所謂使人皆得所愛는 語意未妥니라 且立者는 禮之幹이라하니 此亦未穩이라 易曰 貞者는 事之幹이라한대 本義曰 貞者는 於人則爲智而爲衆事之幹이니 幹은 木之身而枝葉所依而立者也라하니라 以元亨利貞之貞으로 爲衆事之幹은 固也어니와 以立爲禮之幹이 可乎아 況此立字는 己欲立而立人之立也라 朱子以或人所論欲立은 謂欲自立於世요 立人은 謂扶持培植하야 使之自立之說로 爲是하시니 然則與立於禮之卓然自立하야 不爲事物之所搖奪者로 不同矣라 葉氏以立知愛成四字로 分屬禮智仁義하야 爲學之始終하야 若謂立於禮, 成於樂者하니 然則此四句는 乃爲學之次序요 非大人盡道之事也라 種種語病이니 不可不知니라也
니라
〈횡거선생橫渠先生이 말씀하였다.〉
“성性은 만물萬物이 똑같은 근원이어서 나만 사사로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오직 대인大人이라야 그 도리를 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서면 반드시 함께 서고 알면 반드시 두루 알고 사랑하면 반드시 겸하여 사랑하고 이루면 혼자만 이루지 않는 것이니, 저 스스로 가리우고 막혀서 자신의 성性을 순히 따를 줄 모르는 자는 또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성性은 하늘에 근원하여 사람이 함께 얻은 것이다.
오직 대인大人만이 자신의 성性을 다할 수 있는 바, 〈자신의 성性을 다하면〉 남의 성性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니, 성性은 본래 두 가지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서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남과 더불어 함께 서며, 자신이 아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남으로 하여금 두루 알게 하며, 사랑하면 반드시 겸하여 사랑해서 남들로 하여금 모두 사랑하는 바를 얻게 하며, 이루면 혼자만 이루지 아니하여 모두 이루는 바가 있게 하는 것이니, 이 네 가지는 대인大人이 마음에 두는 것이다.
섬〔立〕은
예禮의
근간根幹이요,
注+《난외서欄外書》에 말하였다. “주注에 예지禮智와 인의仁義를 배합하여 말한 것은 너무 구애된 듯하다.” 앎〔知〕은
지智의
용用이요, 사랑〔愛〕은
인仁의 베풂이요, 이룸〔成〕은
의義의 이룸이다.
입어예立於禮부터 성어의成於義에 이르기까지는 배움의 시작과 끝이다.
그러므로 첫번째로 〈예禮에〉 선다고 말씀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데도 저가 혹 가리고 막혀서 통하지 못하여 이치를 순히 따를 줄을 모른다면 또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진실로 한 근원의
성性을 함께 다하고자 하니, 이는 곧 《
대학大學》에
명덕明德을
천하天下에 밝히는 것이요, 《
중용中庸》에
성기성물成己成物(자기를 이루고 남을 이룸)의
도道이니, 〈
서명西銘〉의
근본根本이라 할 것이다.
注+살펴보건대 주자朱子가 말씀하기를 “성性은 만물萬物의 똑같은 근원根源이 된다. 성性은 사람과 물건이 똑같이 얻은 것이니, 자기만 소유한 것이 아니요 남 또한 이것을 소유하였으며, 비단 사람만 소유한 것이 아니요 물건 또한 이것을 가지고 있다.” 하였으니, 이는 사람과 물건을 통틀어 말씀한 것이다. 그런데 섭씨葉氏는 다만 “사람이 똑같이 얻은 것이다.” 하였고, 또 “사람의 성性을 다할 수 있다.” 하였고 물건에는 미치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천명지성天命之性이 흠궐欠闕된 바가 있어서 대인大人 또한 물건의 성性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건의 성性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 도道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는 다만 말을 얽는 사이의 병폐일 뿐만이 아니다. 이 장章의 본의本意는 ‘성性은 사람과 물건이 똑같이 얻었는데 오직 대인大人만이 그 도리道理를 다하여, 서면 반드시 함께 서고 이루면 혼자만 이루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논어論語》에 이른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세운다.’는 것과 같고, 《중용中庸》에 ‘자기를 이루고 남을 이룬다.’는 뜻과 같다. ‘알면 반드시 두루 안다.’는 것은 자기 몸에 있는 이치를 알아서 천하天下 만물萬物의 이치를 두루 알지 않음이 없는 것이요, ‘사랑하면 반드시 겸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그 어버이를 사랑하여 천하 사람과 물건을 사랑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이 구절은 바로 대인大人이 그 도道를 다하는 일이다. 그 끝에 ‘저 스스로 가리우고 막혔다.〔蔽塞〕’고 한 것은 폐蔽는 사람을 말하고 새塞은 물건을 말한 것이니, 이 장章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과 물건을 통틀어 말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와 같이 처음과 끝을 본다면 말뜻이 막히지 않아 만물萬物이 한 근원根源이라는 뜻이 귀결될 곳이 있을 것이다.
혹자或者가 말하기를 “서면 반드시 함께 서고 이루면 혼자만 이루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에게는 말할 수 있으나 물건에게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서면 반드시 함께 선다는 것은 그렇지만, 이루면 혼자만 이루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 물건에 대해 말할 수 없겠는가.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수달이 물고기로 제사를 지낸 뒤에 우인虞人이 택량澤梁에 들어가 고기를 잡고, 승냥이가 짐승으로 제사를 지낸 뒤에 사냥을 하며, 비둘기가 변하여 새매가 된 뒤에 그물을 쳐서 새를 잡고, 초목의 잎이 떨어진 뒤에 산림에 들어가서 나무를 벤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는 성인聖人이 만물萬物을 육성育成하는 도道이다. 주자朱子는 수도지교修道之敎를 논할 적에 천하天下의 물건에 이르러서는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순히 하고 그 싫어하는 바를 어기며 그 재질材質의 마땅함을 따라서 씀을 지극히 하고, 취하여 쓰는 데에 절제하여 그 이룸을 이루는 것이다.’ 하였으니, 여기에서 이루면 혼자만 이루지 않는 뜻을 볼 수 있다.”
○ 또 살펴보건대 겸애兼愛를 《맹자孟子》의 주註에 “사랑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하였고, 주자朱子는 또 말씀하기를 “천하의 사람을 다 겸하여 사랑하는 것이니, 이는 묵가墨家의 도道이다.” 하였다. 이는 다만 묵가墨家의 말을 취하여, ‘대인大人은 사랑하지 않는 바가 없다.’는 뜻을 말씀한 것이니, 말(글)을 가지고 본의本意를 해쳐서는 안된다. 그러하니 섭씨葉氏의 이른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사랑하는 바를 얻게 한다.’는 것은 말뜻이 온당치 못하다. 또 ‘입立은 예禮의 근간根幹이다.’ 하였으니, 이 또한 온당치 못하다. 《주역周易》에 “정貞은 일의 근간이다.” 하였는데, 《본의本義》에 이르기를 “정貞은 사람에 있어서는 지智가 되어 모든 일의 근간이 되니, 간幹은 나무의 몸통으로 가지와 잎이 의지하여 서는 것이다.” 하였다. 원元‧형亨‧이利‧정貞의 정貞을 모든 일의 근간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입立을 예禮의 근간이라 하는 것이 옳겠는가. 더구나 이 입자立字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세운다.〔己欲立而立人〕’는 입자立字이다. 혹자或者가 “욕립欲立은 자기가 스스로 세상에 서고자 하는 것이요, 입인立人은 붙들어 주고 배식培植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서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는데, 주자朱子가 이 말을 옳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탁연卓然히 자립自立하여 사물에게 흔들리거나 빼앗기지 않는 ‘입어예立於禮’와는 똑같지 않다. 그런데 섭씨葉氏는 입立‧지知‧애愛‧성成 네 글자를 예禮‧지智‧인仁‧의義에 나누어 소속시켜서 학문學問의 시始와 종終이라 하여, 마치 입어예立於禮, 성어악成於樂이라는 말과 똑같이 여겼으니, 그렇다면 이 네 구句는 바로 학문學問하는 차례요 대인大人이 도道를 다하는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말에 병폐가 있으니,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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