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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3)

근사록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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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집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5-1 古者 八歲入小學하고 十五入大學하야 擇其才可敎者하야 聚之하고 不肖者 復之農畝하니
蓋士農不易業이요 旣入學則不治農이니 然後 士農判이니라
古者 自國之 及士庶人之子 八歲則皆入小學하고 十五則入大學하니 然後 擇其材之可敎者하야 聚之於學하고 其不可敎者 復歸之農畝하니라
15-2 在學之養 若士大夫之子 則不慮無養이요 雖庶人之子라도 旣入學則亦必有養하니라
古之士者 自十五入學하야 至四十方仕하니 中間 自有二十五年學이요 又無利可趨하니 則所志 可知
須去趨善하야 便自此成德이러니
後之人 自童稚間으로 已有汲汲趨利之意하니 何由得向善이리오
故古人 必使四十而仕하니 然後志定이라
只營衣食 却無害어니와 惟利祿之誘 最害人이니라
本註云 人有養이라야 便方定志於學이니라
○ 先王設敎 養之周而待之久하시니 士有定志하야 專於修己而緩於干祿이라
故能一意趨善하야 卒於成德이러니 後世 反是
只營衣食者 求於力分之內하니 未足以奪志 故無害어니와 若誘於利祿이면 則所學 皆非爲己而根本已撥矣
故害最甚이니라


15-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옛날에는 8세가 되면 소학小學에 들어가고 15세가 되면 대학大學에 들어가서, 재주가 가르칠 만한 자를 가려서 대학大學에 모으고 불초不肖한 자는 다시 농촌農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리하여 농부農夫가 직업을 바꾸지 않으며 이미 대학大學에 들어가면 농업農業을 다스리지 않았으니, 이런 뒤에야 농부農夫가 판별이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라의 귀유貴遊 자제子弟로부터 서인庶人의 자식에 이르기까지 8세가 되면 모두 소학小學에 들어가고 15세가 되면 대학大學에 들어갔으니, 이렇게 한 뒤에 재주가 가르칠 만한 자를 가려서 대학大學에 모으고 가르칠 수 없는 자는 다시 농촌農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15-2 학교學校에 있을 때의 급양給養(의식을 줌)은 만약 대부大夫의 자식이라면 급양給養이 없음을 염려할 필요가 없고, 비록 서인庶人의 자식이라도 이미 대학大學에 들어가면 또한 반드시 급양給養이 있었다.
옛날에 선비들은 15세에 대학大學에 들어가서 40세에 이르러 비로소 벼슬하였으니, 중간에 본래 25년 동안의 배움이 있고 또 달려갈 만한 이익이 없었으니, 뜻한 바를 알 수 있다.
모름지기 으로 달려가서 스스로 이 을 이루었다.
그런데 후세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이미 급급하게 이익에 달려가는 마음을 두니, 어떻게 을 향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반드시 40세가 되어서야 벼슬하게 하였으니, 이렇게 한 뒤에야 뜻이 안정되는 것이다.
단지 의식衣食을 경영함은 무방無妨하거니와 오직 이록利祿의 유혹이 가장 사람에게 해롭다.”
본주本註에 “사람은 급양給養이 있어야 비로소 학문學問에 뜻을 정한다.” 하였다.
선왕先王이 가르침을 베풀 적에 급양給養하기를 두루하고 기다리기를 오래하였으니, 선비가 정한 뜻이 있어서 자기 몸을 닦음에 전일專一하고 祿을 구하는 데에 느슨하였다.
그러므로 한 마음으로 추향趨向하여 마침내 을 이루었는데, 후세後世에는 이와 반대이다.
단지 의식衣食을 경영하는 것은 힘과 분수分數의 안에서 구하니, 뜻을 빼앗지 못하므로 무방無妨하거니와 만약 이록利祿에 유혹을 당하면 배운 바가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어서 근본根本이 이미 뽑힌다.
그러므로 가 가장 심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貴遊子弟 : 王公 등 貴族의 子弟로 벼슬하지 않는 자를 이른다. 遊는 仕宦과 대칭되는 말로 놀면서 학업에 종사함을 이른다.

근사록집해(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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