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多聞
이 不足以盡天下之故
注+按 繫辭曰 感而遂通天下之故라하고 孟子曰 天下之言性也는 則故而已라하니 註에 故者는 其已然之迹이니 若所謂天下之故者也라 事物之理 雖若無形而難知나 然其發見之已然은 則必有迹而易見이라하니라니 苟以多聞而待天下之變
이면 則道足以酬其所嘗知
요 若劫之不測
이면 則遂窮矣
注+欄外書曰 天下之事 萬變無窮하야 固非聞見所盡이라 況復劫之以不測이면 死生禍福이 變起倉卒하니 彼記問學者 其能不喪膽奪魂이리오 則窮矣라 不測字는 指事變이니 卽聞見不及處니라리라
心通乎道면 則能盡夫事理之所以然이라 故應變而不窮이어니와 不通乎道而徒事乎記問이면 則見聞有限而事變無涯라 卒然臨之以所未嘗知면 則窮矣리라
99. 〈
횡거선생橫渠先生이 말씀하였다.〉
“
다문多聞(見聞을 많이 함)으로는
천하天下의
소이연所以然을 다할 수 없으니,
注+살펴보건대 〈계사전繫辭傳〉에 “감동하여 마침내 천하天下의 고故를 통한다.” 하였고, 《맹자孟子》에 “천하天下의 성性을 말함은 고故일 뿐이다.” 하였는데, 집주集註에 “고故는 이미 그러한 자취이니, 〈계사전繫辭傳〉에 이른바 ‘천하天下의 고故’와 같다. 사물의 이치가 비록 형체가 없어서 알기 어려운 듯하나 그 발현함의 이미 그러함은 반드시 자취가 있어 보기가 쉽다.” 하였다.만일
다문多聞을 가지고
천하天下의
사변事變에 대응하려고 한다면
도道가 일찍이 알고 있던 것에만
수응酬應할 뿐이요, 만약 예측하지 못한 것을 갑자기 들이대면
지식知識이 마침내 궁해질 것이다.”
注+《난외서欄外書》에 말하였다. “천하의 일이 만 가지로 변화하여 무궁하니, 진실로 보고 들어서 다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더구나 다시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들이대면 사생死生과 화복禍福의 사변事變이 창졸간에 일어나니, 저 기문記問의 학자學者가 어찌 간담肝膽이 서늘해지고 혼魂을 빼앗기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곤궁해진다. 불측不測이라는 글자는 사변事變을 가리킨 것이니, 바로 보고 들음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다.”
〈《횡거선생맹자설橫渠先生孟子說》에 보인다. 이하도 같다.〉
고故는
소이연所以然이요
注+살펴보건대 이는 《맹자孟子》의 주註와 같지 않으니, 《맹자집주孟子集註》의 뜻으로 보면 다문多聞이라는 글자에 가까울 듯하다.수酬는 응함이다.
마음이 도道를 통달하면 사리事理의 소이연所以然을 다할 수 있으므로 사변事變에 대응하여 곤궁하지 않을 수 있지만, 도道를 통달하지 못하고 한갓 기문記問만 일삼으면 견문見聞이 한계가 있고 사변事變이 끝이 없어서 마침내 일찍이 알지 못한 것으로 임하면 지식知識이 곤궁해질 것이다.